들어가는 말
2006년 6월 26일 동국대학교는 강정구 교수에게 “교권임면권자는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자에 대해서는 직위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립학교법 28조를 적용해서 직위해제처분을 내렸다. 직위 해제된 강교수는 교수의 직위는 유지하되 강의를 하지 못하고 연구비 지급을 받지 못하며 대외적으로는 동국대학교수로서 활동할 수 없게 된다. 그가 무죄판결을 받으면 그는 다시 대학의 교수로서 모든 권리를 회복하지만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에는 대학이 다시 징계위원회를 열어 그의 신분에 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강교수 사건으로 대학에서 학문의 자유의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되었지만 이것은 비단 이번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해방 이후 권위주의 정권들이 들어선 이후 대학에서 학문의 자유가 문제된 사건들은 수 없이 많았다. 1968(?)년 박정희 정권 시절 처음으로 정치교수로 낙인찍혀 해직된 신상초와 전경연 교수사건을 비롯해서, 유신헌법을 통해서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위한 총통제를 획책하고 있다고 서울법대 강의실에서 언급한 것이 문제가 되어 최종길교수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살해되어 창문으로 내어던져진 사건 등이 있다. 박정희 유신통치에 반대하다가 대학으로부터 추방당한 교수들 가운데는 1974년에 서울대학교 백낙청, 고려대학교 이문영, 김용준 교수 등이 있고 1975년에는 한신대학교 안병무, 문동환 등과 연세대학교 김동길, 김찬국, 서남동 양인웅, 이계준 등이 있다. 이들은 이른바 정치교수 내지는 유신반대운동을 한다는 구실로 대학에서 추방되었는데 그 때 대학들은 이들의 보호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화된 사회에서 대학들은 학문의 자유를 위한 교수들의 활동에서 대학의 지원이 오히려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보다 감소한 느낌마저 들고 있다.
대학과 학문의 자유
대학은 학문의 전당으로서 불리는데 학문이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 자유를 생명으로 할 때에만 성립된다. 그래서 미국의 교육학자 죤 두이는 대학의 존재목적은 진리기능을 수행하는데 있고 이 기능수행을 위해서는 학문의 자유가 필수불가결의 것이라고 했다. 학문의 자유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일에 종사하는 학자들과 학생들의 공동체이며, 독립적 사고의 센터로서, 지식의 증진과 보급을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다. 대학이 이런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대학의 구성원인 교수와 학생들이 자신들의 임무를 아무런 구애 없이 자유롭게 이행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 권리가 곧 학문의 자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문의 자유는 연구의 자유, 토론의 자유, 교수의 자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12세기 유럽에서 최초로 대학이 성립될 때부터 견지되어온 사상이다. 이러한 대학의 자유이념은 시대변천에 따라서 다소 강조점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그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학문의 자유가 그렇게도 강조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러한 자유의 이념이 다양한 지배세력들 특히 종교집단들과 정치집단들에 의해서 항상 위협을 당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세기에 성립된 대학들은 학문 자체를 위한 자유보다는 대학의 자치권과 면책특권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학문의 자유”보다는 대학의 자치권과 권위의 수호에 관심을 더 기울여서, 엄격히 말하면 대학기관의 자유(Institutional freedom)가 중요한 사안이었다. 학문의 자유(Wissenschaftliche Freiheit)란 용어는 19세기 독일 대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푸러시아 시절 독일에서는 철학자 Humboldt, Fichte, Schelling 등의 영향으로 지식의 비판적 기능이 강조되고, 대학의 사명은 진리추구를 통해서 지식의 증진에 있다는 인식이 등장하면서 더욱 학문의 자유가 중시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1810년 베를린 대학을 중심으로 해서 교수들에게는 교수의 자유(Lehrfreiheit)와 학생들에게는 학습의 자유(Lernfreiheit)라는 특권을 부여했다. 이러한 특권들이 모든 대학으로 확산됨으로써 독일에서는 “위대한 독일대학의 시대”가 열렸다.
오늘날 학문의 자유문제는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룬 미국의 대학 특히 "미국대학교수연합회"(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Professors)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이 연합되는 독일 등에서 발전시켜온 학문의 자유를 더욱더 이론적으로 정립하여 미국대학의 기본원칙으로 제도화하는데 성공했다. 즉 중세유럽대학들의 자기권의 원칙과 독일대학의 교수의 자유이념 그리고 미연방헌법에 나타난 권리장전의 시민의 기본권 등을 기초로 해서 학문의 자유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갔던 것이다. 이러한 학문의 자유는 선진국에서는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에까지 확대해 가는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
중세유럽대학의 성립과 학문의 자유
11세기말부터 14세기까지 유럽대학들은 교황과 황제사이의 수장권(首長權) 투쟁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탄생한다. 이러한 성속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교황은 교회법을 통해서, 황제는 로마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우위를 입증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서 법학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데 Irnerius가 Bologna에 로마법 강좌와 사숙을 개설한 것이 볼로냐 대학의 시작이다. 이렇게 해서 대학의 법학연구는 교황과 황제로부터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는데 그들은 학자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연구결과를 내놓기를 기대했다. 이렇게 되자 대학은 두 세력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두 세력의 영향권에서 독립할 수 있게 되어 “제국 속의 제국”이라는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한다. 십자군 전쟁이후 대학들은 그리스 학문들을 다시 받아들여 법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천문학, 수학 등 여러 분야로 연구들을 확대해 가면서 그 규모와 인원들이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각 분야의 학자들이 학문들을 연구하는 단체들을 만들어 학자들의 길드가 구성되기 시작하는데 오늘날의 대학이란 명칭도 조합들의 협동체를 지칭하는 용어인 총조합(Universitas)란 말에서 기원한다.
이러한 길드형의 대학은 조직형태에 있어서 볼로냐 대학의 형태와 파리대학의 형태로 나누어진다. 볼로냐 형태는 학생들이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학생길드가 대학으로 발전한 형태이고 파리형태는 교수들의 길드가 대학으로 발전된 형태이다. 대개 부호들과 귀족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볼로냐 대학길드는 학생들이 모든 권한을 갖고 교수임용으로부터 총장선임까지 선임했다. 파리대학은 볼로냐와는 달리 성직자인 교수들로 구성되고 교황이 임명한 총장(Chancellor)이 교수들을 임명하고 학교의 모든 학사를 집행한다. 학문의 자유와 관련해서 볼 때 볼로냐 대학전통은 학생들의 권리신장과 학습의 자유를 고양하는 토대가 되고 파리대학의 전통은 교수단의 교수권과 교권신장과 신분보장에 토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학문의 자유는 교수권과 함께 학습권의 자유를 함께 신장해 나가는 조화를 지향하고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교회와 국가 혹은 교황권과 황제권이라고 하는 서로 대립하고 협력하는 이중적 구성체에 의해서 성립된 중세사회에서 점차 제3의 섹트라고 할 수 있는 집단들이 성립되는데 그것이 곧 길드이다. 길드는 주로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으로서 조직해 나갔으나 대학도 이러한 길드의 하나로서 발전해 나갔다. 이러한 길드들은 하나의 자치단체로서 외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는 자치권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 조건인데 이러한 면책특권은 국왕이나 교황으로부터 받아야 했다.
대학의 면책특권은 프랑스의 루이 7세가 교권신장을 위해서 파리대학에 몇 가지 면책특권을 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대학의 특권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교수와 학생들의 병역 및 납세 면제
2) 대학의 독자적 사법권 부여
3) 각종 학위 수여권
4) 총학장의 자치적 선출
5) 교수와 학생의 여행의 자유 및 신분보장
그런데 대학길드의 이러한 자치권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에 따라 교황이나 고위성직자 혹은 황제나 국왕의 간섭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을 통해서 얻어진 것도 사실이다. 특히 교수면허권(ius ubique docendi)이 교황으로부터 주어졌으나 그것은 후에 교수단체들 자체가 그것을 부여할 수 있는 권한도 획득한다. 이렇게 됨으로써 교회수회의(congregation)가 학교 전체를 운영하게 된다.
대학이 외부로부터 부당한 침해를 받을 경우 투쟁수단으로서 사용된 것은 강의를 중지하는 정강(suspension)이란 수단과 교수들이 타 지역으로 이주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예로서 켐브리지 대학은 국왕에게 항거하여 옥스퍼드대학을 떠난 교수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1231년 교황은 교수들의 정강권과 학칙제정권 그리고 학칙위반자에 대한 제재권 등을 부여했다.
그러나 중세유럽대학들은 교회의 지원으로 성장했고 교수들의 대부분이 성직자들이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교회의 통제를 받기도 했다. 특히 신학과 철학은 교회의 엄격한 통제 하에 놓여 있어서 학문의 자유의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들이 교회와 국왕 그리고 도시민들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학자들의 엄격하고 자율적인 자기통제와 조합원으로서 응집된 단결력을 과시하는데서 가능했다.
독일대학에서 학문의 자유문제
독일 대학에서 학문의 자유는 1701년 프리드리히 1세가 설립한 할레(Halle)대학에서 그 기원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주로 철학의 자유(libertas philosophia)를 기본이념으로 하는데 철학을 신학의 시녀로부터 해방하여 오직 이성에 기초해서 가르치도록 한 것이다. 1737년에 설립된 괴팅겐 대학에서는 “교수의 자유”를 중심으로 삼는데 여기서는 기존의 지식이나 도그마의 전수를 배격하고 자유로운 학문탐구를 주창했다. 이러한 학문의 자유는 보불전쟁에서 패배하고 할레대학을 상실한 독일황제 프리드릭히 3세는 베를린대학을 창설하는데 여기서 Humboldt, Schleiermacher, Fichte, Schelling 등이 크게 기여한다. 여기서는 전통적 지식과 교의의 매개체로서의 대학보다는 이성적 사고에 의한 비판적 연구가 학문의 자유의 기초가 된다.
독일대학의 이념은 19세기 초에 과학적 지식의 탐구를 통하여 국가에 봉사한다는 매우 국가주의적 체제로 전환된다. 이것은 당시 독일이 군주제에서부터 입헌군주제로 전화하던 시기의 일이다. 그래서 당시 독일 헌법에 베를린 대학을 국가기관이면서 동시에 독립된 특권단체로 규정한다. 이렇게 대학이라는 기관이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받지만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자치단체가 된다. 이렇게 베를린 대학이 이 시기에 헌법적 보호를 받는 국가기관이 된 것은 그 후 독일대학들의 법적 위상을 결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일본대학들도 이러한 독일 모델을 받아들였다.
학문의 자유와 관련해서 독일대학은 지식전수라는 전통적 대학에서부터 “진리가 우리를 인도하는 곳이 어디든지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는 대학”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전통적 지식이나 도그마라는 뭔가 고정된 것을 전달하는데서 생기는 제약으로부터 “진리탐구”라는 이성적 활동에서 학문의 자유를 찾는다. 따라서 대학은 정치나 교권으로부터의 압력이나 대학당국자의 통제에서 벗어나 교수 개개인이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연구하며 자유롭게 가르치는 것에서 학문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독일대학의 학문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교수의 자유와 학습의 자유 그리고 대학의 자율성이 문제가 된다.
우선 교수의 자유에는 교수들의 연구의 자유, 발표의 자유, 가르치는 자유가 포함된다. 즉 교수는 어떤 주제든지 마음대로 연구하며 출판하고 가르칠 수 있다. 그리고 대학에서 강의 시수, 주제, 방법, 운영 등의 자유를 갖는다. 공무원인 교수의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독일에서는 용인도 보호도 해주지 않았다.(학습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문제는 앞서 언급한비 있어서 생략한다).
학문의 자유의 한계의 문제
교수가 학문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은 모든 것에서 무제약적 자유를 향유한다는 뜻은 아니다. 교수도 국가의 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일반인들이 누리는 권리와 의무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이라고 하는 특수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교수가 갖는 학문의 자유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연구와 교수하는 일에서 제한 없는 자유를 누리지만 대학이라는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서는 지켜야 할 규범들이 있게 마련이다. 좀 오래된 것이긴 하지만 미국의 교수연합되는 1940년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제한사항들을 원칙성명을 통해서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 발표한바 있다.
1) 금전적 대가를 목적으로 한 연구는 대학당국의 이해를 얻어야 한다.
2) 자기과목과 무관한 논쟁적 문제를 강의에 도입해서는 안 된다.
3) 학교당국의 특수한 목적 즉 종교적 목적 때문에 있게 되는 학문적 자유의 제한의 문제 는 임용 당시 문서로 작성한다.
4) 학교 밖에서 시민으로서 자유를 누리지만 자기의 신분에 맞게 책임적으로 행동해야 한 다.
그리고 미국이나 영국대학들은 독일대학보다는 교수들의 정당가입이나 정치적 참여에 대해서 매우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바젤대학의 철학교수로 있었던 야스퍼스도 “그 자신이 교수건 학장이건 총장이건 대학의 구성원들이 특정 정당이나 한 국가 전체를 지지하여 정당대회에 가담하려 한다면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스스로 남용하는 것이다. 대학구성원들은 오직 지적 창조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자기 국가와 전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이런 봉사 이외의 목적을 위해 지위가 남용될 때는 대학의 이념이 수난을 당하게 된다.”
학문의 자유의 침해요인들
대학과 학문의 자유는 그 시작부터 오늘날까지 여러 가지 대내외적 요인들로 인해서 침해를 당하고 제약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는 우선 대외적 요인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1) 정치권력에 의한 침해: 대학과 학문의 발전이 오늘날 과학시대에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자면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날 근대국가들은 대학발전과 학문연구에 커다란 관심을 두고 재정적으로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관심들은 국가의 형태에 따라서 다양하게 표출된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대학들은 큰 수난의 시기를 맞이했는데 파쇼 독재체제나 공산주의 체제 등에 의해서 대학들은 자기들의 정치적 목표에 복무하는 도구로 만들려는 시도에 직면해서 대학과 학문의 자유를 상실했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끔찍한 경험을 박정희와 군사정권들에서 경험했다. 학문연구의 제약은 물론, 특히 교수권이 침해를 받았다. 정부에 비협조적인 교수들의 강의는 도청되거나 스파이 당했고, 그런 교수들은 체포되거나 심지어 고문에 의해서 살해되기도 했다.
민주화되었다는 오늘날에도 학문적 자유는 여전히 침해당하고 있으며 그것이 특히 사회주의나 북한과 관련된 이데올로기나 정치사상과 관련된 것일 때 더욱 그러하다. 강정구 교수 사건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이러한 학문적 영역에서의 자유의 침해는 말할 것 없고 한국의 대학은 정부의 복잡한 법적 행정적 통제 하에 놓여 있다. 대학의 고유한 권한이 학위수여권을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든지, 입시의 자유가 없다든지, 나아가서 교수임용권이나 이사들의 선임권도, 총학장의 선출 후 승인권 등 정치적 간섭이 매우 심각하다. 이러한 정부의 행정적 간섭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2) 금권에 의한 침해: 대학은 처음부터 외부의 금전적 지원 없이는 성립될 수 없었다. 그것이 중세대학처럼 황제나 교황의 지원이거나 아니면 근세의 대학들처럼 국가나 자치단체 혹은 종교단체의 지원이거나 미국의 경우에서 보듯이 기업이나 재벌의 지원이거나 이러한 제원 없이는 대학은 존립할 수 없다. 이러한 외부의 재정적 지원은 자연스럽게 지원하는 개인이나 기관들의 요구에 대학은 반대할 수 없다. 따라서 돈을 대학에 지원하는 세력에게 대학은 간섭받을 수밖에 없다. 또 대학 안에 있는 연구자들 특히 자연과학 계통의 연구자들은 이해당사자들의 재정적 지원 없이는 연구를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대학의 연구자들은 연구주제에서나 방향 그리고 목적에 있어서 교수 자신들의 의사보다는 지원자들의 의사에 따르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따라서 연구비를 지원하는 세력이 사실상 연구의 처음과 마지막 아니 결실도 차지하게 된다.
과거에 국가의 특정 군사적 목적을 위한 연구에 저항한 교수들이 있었고 여기에 항거하는 과학자 선언들이 나오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오히려 연구자들이 자발적 협력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학문의 자유는 이 자유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할 사람들로부터 심각한 침해를 받고 있다.”(Hook). 특히 특정한 기업에서 연구비를 받는 연구자들은 그 기업의 이해관계에 굴종하여 인류에게 해가 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권에 의한 침해: 학문의 자유를 가장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종교집단에 의한 교조적 침해이다. 야스퍼스 같은 철학자는 종교들 가운데서도 기독교가 가장 배타적이라고 보아 이 배타성의 낙인(Stigma der Ausschließlickeit)에서 구해내는 것을 자기 철학의 사명으로 삼았었다. 중세나 유럽과 미국의 대학들이 이 교회나 기독교 단체들에 의해서 설립된 공로도 있으나 그 종교가 배타적인 만큼 학문의 자유에 간섭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에서 개개 교파의 확장 즉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대학들이 자기들의 교리체계에 상응하지 않는 교과목이나 내용들을 교수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했다. “학교당국이 종교적 이유나 다른 목적으로 과하게 되는 학문의 자유의 제한은 임용당시에 문서로 명확하게 진술하여야 한다”는 미국대학교수연합회의 원칙성명도 이러한 종교적 제약을 수용해야 된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원임용에서 종교문제로 제약을 받지 않게 법으로 보장되어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종교적 조건이 임용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의 신학대학들의 경우 근대적 성서해석 방법과 관련해서 학문적 자유를 누리는 학교는 성공회대학과 한신대학뿐이다. 다른 여타의 대학들은 학문적 성서비판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못하며 따라서 성서학은 교리신학 즉 교권에 예속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의 신학대학들에서는 중세기보다 더 심각하게 학문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다.
재단이사회에 의한 침해: 재단이사회는 학교의 발전과 육성을 위해서 지원하는 기관이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이 기구가 준기업적 성격을 띠어 사리사욕을 채우는 기관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미국교수연합회도 대학을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기관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떤 이사가 대학의 법적 소유권자라는 이유로 학교를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학은 개인의 영리목적을 위한 단체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금의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주장하는 한기총이나 한나라당의 요구에는 학교를 사적 영리의 목적에 이용하려는 어두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이사회가 이렇게 사리를 목적으로 하는 인사들로 구성되면 대학의 자율성과 교수들의 학문연구의 자유와 교수의 자유를 간섭하고 침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학교수의 임면권을 총장에게서 재단이사회로 가져간 교육법 개악은 바로 대학의 자율과 학문의 자유에서 심대한 후퇴를 가져온 사건이다. 미국에서도 재단이사들이 점차 지식인이나 지역사회의 명망가에서부터 대기업의 총수들이나 임원들에 의해서 장악됨으로써 대학을 산업주의 내지 상업주의적으로 운영하게 만들어서 학문의 본래의 목적을 이탈하여 장사치들의 소굴로 만든다는 것이다.
학문의 자유에 대한 이러한 대외적인 침해 못지않게 대내적인 침해들도 심각하다.
1. 총학장에 의한 침해: 대학의 총학장은 기관장으로서 학사, 재무, 인사 등에 관한 결정권을 행사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위치에 있는 총학자이 자신의 권리를 오용내지 남용할 경우 심각한 학문의 자유의 침해를 가져온다. 미국의 경우 죤 두이 같은 교육학자는 대학당국에 의해서 교수들의 학문의 자유가 침해되는 사례가 더 많다고 했다. 대학총학장은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교수들의 고유한 직무에 간섭하거나 사적 감정으로 교수들에게 연구비지급이나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총학장들은 특정한 학문분야에 대해서 자기의 입장과 배치된다고 하여 가르치는 것을 금하거나(예일대의 진화론 강의반대), 특정교재사용 등을 금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특정한 사상을 가진 교수나 인사를 임용에서 제외하거나 아니면 해임시키고 강의를 주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과 학문의 자유는 해당대학의 총학장들의 직무유기나 태만으로 보호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총학장들은 대학이나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모든 세력들, 특히 정부나 교단 그리고 이사회 등으로부터 교수들과 연구 및 교수의 자유를 보호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2. 교수들에 의한 침해: 교수들은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은 대학의 진리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부여된 권리이다. 그러나 이 자유를 남용하거나 오용하고 또 여기에 수반되는 의무를 소홀히 할 때 학문의 자유가 손상된다.
(1) 교수의 첫 번째 과제는 진리를 탐구하고 지식을 증진시키는 일이다. 이 일에서 교수는 정직해야 하며 연구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타인의 연구물을 표절하거나 아니면 연구비를 착복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2) 교수들이 사회활동이나 정치활동에 개입할 수 있으나 그 경계는 분명하게 그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활동이 관료의 직위를 얻거나 아니면 정치가로서 출세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거나 아니면 그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 할 때는 당사자들은 연구 활동과 정치활동 사이에서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외적 활동이 대학의 연구와 교수활동과 중첩되거나 혼합되어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는 스스로 학문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3) 학문의 자유는 교수들이 대학의 행정직에 집착할 경우에도 침해를 당할 수 있다. 연구보다는 행정이나 보직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면 연구와 교수의 기능은 떨어지고 그것은 마침내 학문의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
3. 학생운동에 의한 학문의 침해: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1860년대 학생운동이 극렬할 때 수많은 교수들이 강단을 떠나야 했고 특정한 학문분야들은 가르칠 수 없었던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 대학과 학문의 자유 및 연구와 교수의 자유가 학교 내 집단 즉 학생들에 의해서 훼손되었다. 중국에서 모택동에 선동을 받은 홍위병들에 의해서 대학과 학문의 자유가 유린되기도 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특정한 교수들이 학생들의 수업거부로 교수의 자유를 침해당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교수들 자신의 역량부족이나 인격적 결함이 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맺는 말
대학과 학문의 자유의 기원은 대학이라는 기관이 시작되면서부터 존재했고 존재해야 한다고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의 자유는 역사적으로 수 없이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획득되어왔고 아직도 그 과정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중세기에는 주로 종교의 교권으로부터, 근세에는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그리고 현대에는 경제적 권력으로부터 이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 과제로 되어 있다. 오늘날과 같이 자본의 세력이 막강해진 세계에서는 자본의 횡포와 억압으로부터 대학과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 그 중심과제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대학은 종교나 국가 그리고 자본의 지원 없이는 존재하거나 존속할 수 없는데 그런 점에서 이들은 대학의 성립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은 지원을 넘어서서 대학에 간섭하고 학문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려고 하는 것도 현실이다. 따라서 대학과 이들 지원집단들과의 적절한 관계설정이 바람직한데 이와 관련해서는 오늘날의 대학이 중세기나 근세의 유럽대학들의 처지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에서 시장경제의 원리가 대학과 학문연구에도 깊이 침투하여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결과가 대학에서 인문학 경시풍조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오늘날의 대학들은 점차 대학의 고유한 기능인 학문연구와 지식의 증진이라는 목적에서 이탈하여 기업들의 인력양성소로 전락해 가며, 그들의 수요와 필요에 상응하는 교육만을 강요당하고 있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그런데 이간의 이성에는 도구적 이성, 미적 이성, 비판적 이성, 보편적 이성 등 다양한 이성들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기술문명을 만들어낸 도구적 이성외에도 아름다움과 예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미적 이성, 인간과 사회의 모순들을 바로잡아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비판적 이성, 그리고 우주와 세계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탐구하고 대답을 추구하는 보편적 이성 등이 존재한다.
그동안의 대학은 인간의 삶을 통전적으로 파악하고 신학과 법학 그리고 의학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분야의 학문분야를 개발하고 발전시켜옴으로써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조화롭게 만들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적 기술세계에서는 인간의 이성 가운데 도구적 이성만을 중시하는 교육을 강요함으로써 인문학이나 예술분야 그리고 비판적 이성이 추구하는 사회학이나 보편적 이성이 추구하는 철학이나 신학 등은 대학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시대의 homo faber가 homo sapiens, homo ludens, homo ethicus를 밀쳐냈듯이,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들을 homo economucus를 만드는 일에 대학과 국가가 포로가 되어가고 있다.
이리하여 대학은 조화된 공동체적 인간성을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개체적이고 이기적인 경쟁자들을 길러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올무에 사로잡힌 지극히 속된 괴물로 전락해 가고 있다. 총장에는 학자가 아니라 경영자가 선호되며, 교수들은 학문연구와 교수보다는 시장동향에 더 민감해야 된다. 경영마인드와 시장멘탈리티가 부족한 사람은 무능한 총장이거나 교수가 된다. 학생들은 진리탐구와 지식의 증진을 위한 연구보다는 창업이나 취업준비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대학이 과거의 상아탑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과거 대학이 가졌던 조화롭고 통전적 인간들을 길러내서 공동체적이고 연대적 삶을 지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마지막 보로로서 살아 남기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것 같다.
손규태(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