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통일 독일의 개신교 협의회(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는 1991년 10월 10일 경제백서(Wirtschaftsdenkschrift)를 채택하여 발표했다. 이러한 경제백서의 발표는 이미 독일 통일 이전부터 서독 교회에 의해서 준비되어 오던 것이지만 통일과 더불어 동독교회의 대표들까지 참가하여 동독의 관점과 의견들도 반영한 것으로서 명실공이 독일 전체 개신교인들의 백서로 탄생한 것이다. “공공 복리와 사익 - 미래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경제행위”라는 제목을 가진 183면에 달하는 이 문서는 네개의 장(章)들과 세 개의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백서는 뮈헨 대학의 사회윤리학 교수인 렌톨프(Trutz Rendtorff)를 의장으로 하고 25명에 달하는 저명한 교수들과 학자들로 구성된 독일 개신교의 “公的 責任을 위한 委員會“(Die Kammer der Evangelischen Kirche in Deutschland für Öffentliche Verantwortung)에 의해서 작성되고 개신교 협의회의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러한 경제백서의 발표로 독일 개신교는 모든 신도들에게 금후로 경제생활에 관한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함은 물론 그것의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서 사용하게 되었다. 이미 통일 이전에도 동서독 교회들은 환경문제나 핵문제 그리고 민주화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중대한 사안들에 대해서 오랜 연구를 거쳐서 백서나 연구서들을 발표하곤 했었다. 이러한 백서나 연구서가 공적으로 개신교 협의회 총회에서 받아들여지면 그것은 교회 생활및 신자들의 개개인의 생활과 활동을 위한 지침서로서의 구속력을 가진 것이 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1969년에 발표한 동구와의 화해를 위해서 발표한바 있는 “동방백서”와 ”교회와 자유민주주의“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금세기 말에 들어 와서 전세계 교회들은 경제문제 특히 “정의로운 세계경제질서”에 관해서 깊은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미증유의 풍요를 구가하고 있는 선진 산업국가들과 더불어 심각한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다수의 제3세계 국민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부유한 국가들은 더욱 부유해 지고 가난한 나라들은 더욱 가난해 지는 구조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적인 차원에서의 이러한 정의로운 경제질서의 수립이야말로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들에게 특히 교회에게 부과된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5년에 채택된바 있는 “독일 개신교와 자유민주주의”(Evangelische Kirche und freiheitliche Demokratie)에서는 주로 민주적 국가형태의 기본문제들이 다루어졌고 또 基本法(憲法)에 나타나 있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개신교인들의 동의가 명백하게 천명되었었다. 당시만 해도 이러한 국가형태라고 하는 정치적 문제만을 다루었고 경제문제들은 상세히 다루지 못했었다. 그러던 차에 경제문제가 매우 중요한 “현재의 도전”으로 등장하면서 독일 개신교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백서는 社會的 市場經濟(Soziale Marktwirtschaft)라고 하는 맥락에서 경제행위의 구조들과 과제들을 취급하고 현재의 도전들을 고려하여 그리스도교적 책임의 전망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 독일 교회의 경제백서는 세계교회협의회의 개발부가 마련하고 있는 “신앙의 문제로서의 경제”- 경제생활에 관한 에큐메니칼 선언 초안" 와 더불어 앞으로 독일의 그리스도인의 경제행위는 물론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의 경제적 삶을 위한 매우 포괄적인 길 안내와 과제를 제시해 주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경제백서가 출현하게 된 배경들과 그 내용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과제들을 비판적으로 모색해 보고자 한다.
경제백서의 출현 배경들
우선 이러한 경제백서의 출현의 배경으로서 들 수 있는 것은 지난 40년 동안 동서의 냉전체제와 그 대결국면의 변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부터 유럽의 교회들 안에서는 그리스도교와 맑시즘의 대화가 매우 중요한 잇슈로 등장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는 사실상 냉전체제를 완화시키는 일이나 그 후에 있은 평화운동에서의 반핵을 목표로 한 공동전선의 수립에 크게 기여했을 뿐이다 .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제기된 물음은 오히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서의 경제적 성과에 집중되었다. 말하자면 경제적 성과에 있어서 “자본주의냐 아니면 사회주의“냐 하는 논의가 교회 안에서 활발하게 진행된 것이다. 이 두 체제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경제적 성과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우수하냐 하는 것이다. 이 두 체제들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인간에게 정의롭고 바람직한 삶의 조건들을 제시해 주느냐 하는 토론과는 거리가 먼 토론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토론들은 점차 동독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새로운 움직임을 동트게 했다. 그것은 이제까지 서독에서 달성한 자본주의적 성과들이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거의 이념적 탈출에서부터 경제적 동경에 의한 서방에로의 탈출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논의가 진행되는 1980년대 중반부터 사태의 급박한 변화들이 예견되기 시작했다. 당시 권력에 오른 소련의 고르바쵸프는 당시까지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오랜 이념적 대결의 폐해를 감지하고 새로운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결의 지속은 결과적으로 사회주의는 물론 자본주의의 세계도 파탄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위 ”신사고“의 배경에는 당시의 ”현존하던 사회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딜렘마가 놓여 있다. 이제까지의 중앙 통제적인 계획경제가 가지고 있는 관료주의적인 모순들과 함께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사회 전체에 걸친 부정과 부패가 결국 사회주의의 이상을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그의 인식이었다. 이러한 신사고의 가장 구체적인 결실은 독일의 통일이고 분단된 유우럽의 통합이었다.
이러한 변화된 상황 특히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고 살아왔던 동서독이 통일을 마지해서 새로운 삶의 살아가는데 있어서 새로운 경제질서의 모색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쉽게 보아 자본주의가 성공했기 때문에 경제는 전적으로 시장경제에로의 전환함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구 동독 지역에 뿐만 아니라 사회당이 건재하고 있는 구서독 지역에도 사회주의적 이상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과거의 이질적인 경제체제와 이념적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기 위한 장치로서의 새로운 경제질서의 모색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사회적 시장경제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모순점들을 해명하고 보완하는 일이 시급히 요청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러한 경제백서가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주도하에서 국제간의 심각하게 왜곡된 경제질서이다. 이러한 왜곡되고 불의한 국제경제질서에 관한 문제는 주로 세계교회협의회의 사회신학적 발전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이것은 WCC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삶과 노동”(Life and Work)의 국제 기독자 대회는 이미 1925년에 스톡홀름에서 모여서 “그리스도의 영성과 가르침이 경제 및 산업생활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바 있다. 이러한 관점은 1937년에 옥스포드에서 모인 대회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고 토론은 당시의 대공항과 더불어 제기된 문제들 즉 대량실업, 경제적 삶에 있어서의 기회균등 그리고 부의 과도한 집중의 문제들을 다루었다.
1948년에 기존의 에큐메니칼 단체들이 연합하여 암스텔담에서 탄생한 세계교회협의회는 “책임 사회론”(Responsible Society)을 제창하고 “정의와 공공질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의 자유가 보장되고, 정치 권력과 경제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또한 자신들의 권력행사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되는 민중들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선포했다. 이 때 교회협의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제적 힘의 과도한 집중과 함께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정치 및 경제력의 중앙집중을 극복한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의 세계사회를 지향점으로 제시했었다.
이러한 책임사회론은 1975년 나이로비 총회를 거치면서 “정의, 참여, 보전가능성”(Justice, Participation and Sustainablilty)이란 도식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도식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 세계교회협의회에서 강력하게 발언권을 행사해 오던 제3세계 대표들의 주장들이 반영된 것이라 할 것이다. 우선 정의문제와 참여의 문제는 철두철미하게 제3세계의 대표들의 의견으로 반영한 것이었다. 사실상 나이로비 총회를 기점으로 해서 불의 한 세계경제질서에 관한 물음이 첨예화되었다. 그 이전 60년대만 해도 아시아 교회협의회를 비롯해서 세계교회협의회 관계자들은 “개발”의 문제를 교회의 중심적인 과제로 삼았었다. 말하자면 제3세계의 문제는 저개발의 문제요 따라서 이들에게 개발 가능한 자원과 기술을 제공하는데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로비 총회는 이러한 개발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제3세계의 빈곤의 문제는 인위적인 것 즉 불의한 세계경제구조에 기인한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보전가능성에 관한 문제는 당시의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상황을 환경과 관련해서 고려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산업사회의 현재적 발전은 보존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보전가능성의 문제는 더욱 발전되어서 1983년 카나다 뱅쿠버 대회에서 “생태계에 대한 책임과 경제정의가 실현되며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또 우리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권력에 대항해 효과적으로 투쟁해 나갈 수 있는 ‘참여적 사회’에 대한 도덕적 지표가 필요하다”는 선언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도덕적 지표를 필요로 하는 가장 큰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전세계적인 현상으로서의 빈부의 심각한 격차라 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선진 공업국과 저개발 국가들 사이에서의 빈부격차의 극대화는 말할 것도 없지만 부한 나라들 안에서의 이른바 “새로운 빈곤”(Die Neue Armut)의 출현과 함께 빈곤한 나라들 안에서 엄청난 빈부의 격차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에 세계인구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20%와 가장 부유한 20%사이의 격차가 30배에서 60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국과 같은 부유한 나라 안에서 지난 20년 동안 상위 20%의 소득은 13.8% 상승한 반면에 하위 20%의 소득은 오히려 10.9%감소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국제간의 불의한 경제질서는 지극히 인위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1990년 3월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대회가 서울에서 거행되었다. 남북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의와 동서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문제가 사실상 서로 순위다툼을 벌렸지만 동서냉전체제의 해체와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교회의 선교적 과제로서는 역시 정의 문제가 앞으로 나서게 되었다. 이 정의 문제는 곧 경제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경제백서의 출현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독일 교회의 경제백서의 출현은 우선 보전가능성(Sustainability)에서부터 창조의 보전(Integrity of Creation)이라고 하는 보다 구체적인 생태학적인 미래의 설계와 연관되어 있다. WCC의 경제문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빈부의 양극화 및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집중화와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긴박하게 대두한 문제는 환경 즉 창조질서의 보전의 문제이다. 사실상 경제적 착취와 생태계의 파괴는 동전의 양면 처럼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1991년 세계교회협의회의 켄버라 총회에서 “산업화 이후 약 200년만에 지구생명의 근원 자체를 위협하게 한 것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환경파괴의 원인으로서는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이나 전쟁 그리고 인구의 증가를 들고 있지만 사실상 가장 심각한 원인은 시장 경제적 가치에 기초한 산업화에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는 모든 것을 시장 경제적 가치로만 판단하는 데서 오는 폐해인 것이다. 그 결과 경제발전을 삶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경제 발전 자체가 목적이 됨으로써 되 돌이킬 수 없는 환경의 파괴를 자행한 것이다.
동서독의 경험을 통해서 보면 이러한 환경파괴는 단순히 자본주의적 체제의 국가들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와 처절한 경쟁관계에 있었고 그리고 환경보호를 위한 자원과 기술이 부족했던 동구에서는 더욱더 심각한 환경공해가 유발되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파괴는 인간이 만든 문명 그 자체의 보전가능성을 위협하는 것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삶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지경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통일된 독일에서의 경제백서가 등장하게 된 배경들을 세 가지 측면 즉 사회주의의 몰락과 독일의 통일,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빈부의 양극화 현상의 첨예화 그리고 근대적 산업화와 시장경제적 가치의 과도한 추구 등에서 찾아보았다. 이러한 국내외적인 난관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라고 하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문제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는 이 사회적 시장경제의 개념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검토해 보자.
사회적 시장경재의 본질과 내용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서방세계에 의해서 점령되었던 독일연방공화국에서 실시되었던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 체제의 창시자는 말프레드 뮐러 아르막(Alfred Müller Armack)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이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리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 사회적 시장경제는 “시장에서의 자유의 원리를 사회적 균형의 원리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유시장 경제에서의 자유경쟁의 원리를 살리면서 이것이 가져오는 사회적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서 국가가 다양한 형태의 필요한 조처를 취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자유경쟁의 원리와 사회적 의무의 원리의 조화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생산자, 공급자 그리고 소비자로서 자기의 경제적 결단에서 가지는 경제적 주체의 개인적 자유 말하자면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에 충실하지만 동시에 거기에 절대적으로 집착하지 않고 사회적 의무의 원리도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 주체의 자유가 가지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는 상충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리는 따라서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하는 기독교적 가치와 행위지향에 기초한 인간적인 관계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성의 기본구조는 다음과 같은 두개의 극들과 대치된다. 첫째는 사회주의적 경제체제에서 추구되었던 자유원리를 부정하는 지시적인 중앙통제경제가 그것이며 다음은 스스로에게 내맡겨지고 통제되지 않고 사적 이해에 얽매인 따라서 사회원리를 결여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유주의적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는 경제적 과정의 근본적인 조정원리로서의 경젱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 자유주의와는 달리 오이켄(Walter Eucken)등에 의해서 제시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us oder Ordoliberalismus)에 따르면 경제적 경쟁의 원리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허락된다고 해도 독점적이고 기업 동맹적 경제력의 형성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그것을 위한 조건들을 만들어 주고 또 그것을 지키게 함으로써 경제행위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유방임주의와는 달리 이것은 시장의 법적 틀을 설계하는 것을 의미하지 경제적 활동과정을 설계하는 것은 아니다.
뮐러 아르막에 의해서 설계된 사회적 시장경제는 처음부터 신자유주의적 경젱원리를 그 기초로 삼았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경쟁원리의 메카니즘은 단지 경제적 조정관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르막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경제정책의 형성수단으로서 경쟁질서의 강조를 물론 나는 이전부터 너무 편협한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따라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보다 시장 조정적인 것 즉 사회복지적이고 사회정책적인 조처들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경제활동 과정에의 국가의 관여가 불가피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에 대한 도구적 이해이다. 시장경제는 자기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하나의 수단, 즉 목적을 향한 수단이다. 시장경제는 일차적으로 그 목적을 경제활동을 통한 탐구와 성과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활동을 통해서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필요한 조건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또 이러한 조건들이 마련될 때 경제는 사회적 목적들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시장경제란 그것이 가지고 있는 경쟁원리로 인해서 사회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일정한 목표를 정하고 또 일정한 수단을 통해서 통제되지 않을 때는 그것이 사회적 성격을 띨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시장경제란 시장 메카니즘에다 구성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국가에 의해서 통제되는 경제정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장과 계획의 결합(Markt-Plan-Verbindung)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시장적인 사실법칙성을 구성요소로 하고 계획 통제적 관여를 규범요소로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시장이라고 하는 도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시장법칙성에만 모든 것을 마껴두지 않는 일종의 타협적인 성격을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리에서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시장타협성(Marktkonformitaet)이 가지는 어려움들도 존재한다. 우선은 이 개념이 매우 다양하게 해석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이 시장타협성의 개념에서 시장의 경쟁원리와 사회적 의무원리 사이의 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로 등장하는 것이다. 시장의 경젱원리를 억제할 경우에는 기업들은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자본의 해외도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기업의 경쟁원리에 역점을 두다 보면 사회적 의무원리가 제한 당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리도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의 약은 아닌 것이다.
1948년 서독에서의 화폐개혁 이후에 이룩된 경제발전은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에 기초한 것이었다. 서독에서의 지난 40년 동안에 실시되어 온 사회적 시장경제원리는 철저하게 관철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일정 정도의 성과를 가져왔다. 그 단계란 우선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요소들이 규범적인 틀에서 구형화 되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사회적 성과들도 달성했다. 1950년의 주택건설 프로그램의 실시, 1951년의 해고방지법의 통과, 1951년의 공동결정권의 획득, 1952년의 기업법, 1953년의 모성보호와 장애자 고용촉진법, 1957년의 역동적인 연금법 및 사회 및 노동재판소의 설립 등은 그 동안 사회적 시장 경제적 여건 아래서 달성된 것들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문제점들
50, 60년대에 서독에서 실천된 사회적 시장경제의 경제적 성과들과 사회적 업적들은 높은 평가를 받아서 마땅하다. 특히 이러한 경제원리가 가져다준 결실들은 고도의 산업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동독과 비교해서 그리 뒤지지 않는 사회적 성과도 달성할 수 있었다. 특히 순수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기초한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의무원리에도 비교적 충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990년대 동구의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순수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던 국가들이 여러 측면에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함으로써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도 결점과 약점들을 가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위에서도 지적한 대로 사회적 시장경제는 어떤 완결된 체제가 아니라 역동적 과정이라고 할 때 그 수정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제도는 새로운 발전의 전망을 요청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리가 어떤 완결된 체제가 아니라 역동적 과정이라고 말할 때 그것을 단순히 약점으로서만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역동적 과정으로서의 상호적 시장경제의 윈리는 만일 그 역동성이 지속될 수만 있다면 장점으로도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시대적 지역적 조건들에 따라서 새로운 대안들을 계속해서 제시할 수 있고 또 그 대안들이 실험될 수 있다면 이러한 역동성은 약점으로서가 아니라 강점으로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동구의 사회주의가 이러한 역동성을 상실함으로써 직면했던 문제들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어쨌든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리는 미래 개방적인 원리라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이미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리를 창안했던 당사자인 아르막에 의해서도 인정되고 있다. 그는 이미 1960년 ”사회적 시장경제의 제2단계“ 라고 하는 논문에서 약점들과 결점들의 시정과 함께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있다; 1. 직업학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들에서의 교육제도의 포괄적인 확대와 투자 2. 사업장에서의 노동조건들의 인간화를 통한 새로운 독자성들의 형성 3. 통화의 안정에 선행하여 국제적인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정책의 실시 4. 인간을 고려한 도시와 농촌 그리고 교통계획을 포함한 물과 공기의 깨끗한 보존을 위한 환경정책의 실시 등이 그것들이다. 그는 1969년에 발표한 ”도덕주의자와 경제학자. 경제의 인간화의 문제에 대해서“라고 하는 글에서 사회적 시장경제가 ”비대칭적 재산형성“(Asymmetrische Vermögensbildung)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말하자면 ”기업재산의 점증하는 증가의 사실“과 함께 ”폭넓은 계층의 자본참여의 결여“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시장경제의 문제점들은 다음 몇가지 점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비교적 높은 실업과 함께 이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빈곤과 사회적 불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경제력은 오늘날에 와서는 정치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경제적 성과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들이 실제로는 정치적 자유도 권리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실업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의 문제를 넘어서서 정치의 문제도 되며 나아가서 인간 본성을 왜곡시킬 수 있는 문제도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구했던 서독의 경우 60년대를 제외하고는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없었으며 오늘날까지 대량의 실업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 제도 가지는 가장 심각한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량의 실업문제가 사회적 연대성의 원리를 통해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약점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경제적 삶에 있어서의 순수 시장경제적 요소들의 적절한 유지는 가능하지만 여전히 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말하자면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성과를 매개하는 틀로서의 국가적 행위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서독의 경우 몇 가지 분명하게 나타난 지표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1970년대 초반을 깃점으로 해서 등장하고 있는 200만에 가까운 실업자들을 통해서 이러한 제도를 통해서도 완전고용은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특히 기민당의 집권과 함께 등장한 이른바 ”새로운 貧困“ 현상은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더불어 이주해온 난민들과 더불어 새로운 문제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국내적인 그리고 국제적인 경제력 집중은 경제는 물론 정치적-사회적으로 중대한 결과들을 초래하고 있다. 오늘날 시장경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국내적 국제적 차원에서의 경제력의 과도한 집중과 이로 인한 정치적 영향이라 할 것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국내적 차원에서는 사회적 의무원리를 통해서 그 경제적 성과를 어느 정도 나눌 수 있었지만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여전히 자유 시장경제적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활동을 통제할 수 있는 국제적 장치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GATT나 국제금융기구 혹은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적 장치들은 그 설립 목표들은 국제간의 의무원리를 기초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강대국과 선진 공업국가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구들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진공업국가들은 이런 기구들을 통해서 국제적인 경제관계에서는 경제적 힘을 일방적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또 자기들의 국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분쟁지역에 다량의 무기를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의무원리가 단순히 특정한 국가 안에서만 통용되어서는 안되고 국제적인 연대의 차원에서까지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이러한 국제적 의무원리를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리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엄격히 말해서 사회적 시장경제는 국제관계에서는 전적으로 자유시장경쟁의 원리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리가 가져다 준 심각한 문제는 환경파괴의 문제이다. 1992년 리우 환경회의는 현재와 같은 속도로 진행되는 화경 파괴가 계속된다면 인류는 이미 금세기 안에 심각한 환경위기에 직면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환경파괴의 문제는 비단 사회적 시장경제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원리가 시장원리 즉 경쟁원리에 의존하는 한 이러한 환경파괴현상은 지속적으로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 론
서독개신교 협의회(EKD)는 이제까지 서독에서 실시된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를 경제적 차원에서 분석하고 윤리적 차원에서 판단하고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실천방안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책임성의 차원들이 고려되고 있다. 우선 책임의식이란 문화적 상황에서 형성되며 제도적 질서들을 통해서 구체화되고 시민 개개인의 경제적 삶을 통해서 실천된다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은 것을 요청하고 있다.
첫째는 문명의 방향전환이다. "경제활동에 있어서도 인간들은 목표들과 가치관에 따라서 행동하개 된다. 이러한 목표들과 가치관들은 문화적으로 구형된다. 독일과 같은 부유한 산업국가들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목표들이 무엇인가? 경제적 행위와 그 성공 자체가 삶의 내용이 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은 경제 그 이상이다. 따라서 삶의 전적인 경제화는 막아야 한다.” 이것은 사회적 시장경제가 사회적 성과들에 있어서 많은 것들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을 시장경제적 가치에 매달리게 함으로써 제기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에너지 사용의 문제 하나만을 고려하더라도 서독 사회와 같은 고도의 산업사회는 지속될 수 없는 허다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민주적 정치체제의 구현이다. 오늘날의 삶의 전반적 문제들은 정치적 결단을 통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문화적 의식의 변화들은 정치적인 조건들의 구조적 형성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이 때 정치적 구조들은 유권자들의 순간적인 욕구의 충족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문화적 방향전환이 가능한 정책과 그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틀로서의 정책들을 구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로는 개인의 책임성의 전망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책임의식은 위로부터 명령될 수는 없는 것이다. 개개 시민들은 미래 가능한 경제활동, 보다 낳은 정의의 실현과 이웃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책임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의 시민으로서도 ”보다 낳은 의“(마태 5,20)를 실천할 책임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개인적인 책임성은 기구들과 조직들 그리고 책임적인 기능들을 하는데서도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개개 시민이 기업가가 되었든지 아니면 노조원이 되었든지 자신들이 결단을 내릴 때에는 사회적 연대성과 생태학적 의무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구체적인 경제적 삶의 현장에서 사회적 연대와 생태학적 보전이 가능한 결단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일 개신교의 경제백서는 경제원리로서 사회적 시장경제원리를 맏아들이면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보강해야 한다는 점은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사회적 시장경제는 앞으로 생태학적 도전에 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세계경제의 보다 정의로운 형성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셋째는 사회적 대칭관계를 존중해야 한다.
넷째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민주적 경제로 형성해야 한다.
다섯째 독일 안에서의 통일적인 삶의 조건들을 형성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독일 신교협의회가 발표한 경제백서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리를 원칙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이것이 앞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생태학적 삶의 기초가 위협 당하고 있고 또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력의 오용이 자행되고 있는 현재의 실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결코 마술지팡이가 아니며 또 마술지팡이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한 독일 개신교 협의회의 의장 마틴 쿠루제(Martin Kruse)의 말에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카톨릭의 사회선언 Rerum Novarum이 나온지 100년이 되는 해에 그 동안 경제문제에 대해서 일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던 독일 개신교회가 이런 경제백서를 낸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세계교회협의회의 초안으로 나온 경제백서와 함께 독일 개신교의 경제백서는 오늘날의 경제문제가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