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들어가는 말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이 한국의 지성계에서 나돌기 시작한 것은 퍽 오래된 이야기다. 신학계에서도 몇몇 관심 있는 학자들 사이에 여기에 대한 토론이 있었으나 이 논의는 크게 발전되지 못하고 사라진 형편이다. 그렇게 된 원인에는 우선 한국 교회 혹은 신학계가 처해있는 교리주의 내지는 교조주의의 지적 바벨론 포로가 그 첫째 원인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다음으로는 한국 그리스도교회 혹은 그리스도교인들의 반지성주의가 두 번째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교권주의 및 교조주의와 평신도들의 반지성주의가 신학적 논의를 어렵게 만들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한국 교회 전체를 어둡고 엄습한 중세적 모습으로 퇴행시키거나 아니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적 물질주의의 기복사상으로 내몰아서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 한국교회는 교묘하게 위장된 물신숭배적 샤마니즘과 탐욕에 사로잡힌 팟쇼적 성직자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한국 교회를 총체적 위기로 몰아넣어서 그리스도의 정신은 사라지고 성직자들은 무당보다 더 무당이 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복을 비는 데만 정신 팔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거나 반교회적 입장을 갖게 되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트모던 신학을 다루는 의미는 우리 한국 교회를 포로로 하고 있는 교리주의와 그것을 기초로 해서 군림하고 있는 팟쇼적 성직주의를 떠나서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의 정신을 찾고 그의 삶을 본받고 나아가서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신자유주의와 인간들의 갈등의 기본원인인 종교간의 대립을 극복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그러면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 즉 탈근대성을 논의하고 이해함에 있어서 우선 문제삼게 되는 것은 근대성이 문제삼고 있는 정신 혹은 시대정신이 어떤 것인가를 간단히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서양에서 근대성 혹은 근대정신의 배경이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르네상스, 종교개혁, 콜롬버스의 신대륙발견, 활자의 발명, 프랑스 혁명, 산업혁명 등 계몽주의적 사상과 인본주의 사상이었다. 이러한 근대성은 17세기에 들어와서 신율(神律이 지배하던 중세기 내지는 종교개혁 이후의 정신사적 틀이 붕괴되고 인간중심의 세계관이 뿌리를 내림으로써 본격적으로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근대성의 보다 구체적인 출현은 17세기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등이 제시한 새로운 우주관 즉 지구 중심의 우주관이 아니라 태양중심의 우주관과 베이콘, 데크라트, 죤 록크 등에 의해서 제시된 새로운 경험적 지식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계몽사상이 가져다 준 근대성이 달성해 놓은 수많은 변화들 다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로버트 피핀(Pippin)이라는 철학자는 “철학적 문제로서의 근대성”이라는 책에서 그것이 가져온 결과들을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로 구분해서 말하고 있다. 1) 근대 단일 민족 국가형성, 2) 이성의 절대적 권위, 3) 진보사상과 자연과학의 출현, 4) 자연의 비신화화, 5) 개인의 천부적 권리, 6) 시장경제의 출현 및 도시화, 7) 기독교 휴매니즘에 기초한 정치적 관용 등이 그것들이다.
한 마디로 근대성에서는 종교적 인간관이 아니라 이성적 인간관, 신비적 자연관이 아니라 수학적 자연관, 역사에서의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 그것의 합목적적 진보관, 사회의 합리화와 관료화, 정치에 있어서 관용과 민주주의, 종교에서의 탈형이상화 내지는 탈계시화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근대성은 중세적 신중심의 인간관과 세계관으로부터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근대성이 가져다 준 결과 특히 부정적 결과들은 어떤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는 탈근대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의 배경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피핀이 제시하고 있는 근대성의 결과들 가운데 몇 가지를 분석함으로써 그 답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근대주의의 혹은 근대성의 출현과 그것이 가져온 문제점들
첫째 근대 단일민족국가 형성이 가져다준 결과들을 살펴보자. 르네상스와 계몽주의가 등장하던 15-6세기 유럽에서는 카톨릭의 종교적 보편주의와 로마제국의 정치적 보편주의가 붕괴되면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을 중심으로 단일 민족국가 형성이 시작되었다. 즉 신성 로마 제국과 카톨릭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얽혀 있던 나라들이 민족을 단위로 해서 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이것은 곧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의 붕괴을 말하는 것이며 동시에 카톨릭 교회의 단일체제가 무너지는 것으로서 전통적 유럽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따라서 민족국가간의 경쟁이 시작된다. 우선 이들 민족국가들은 정치적으로는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절대군주체제를 세우고 되고 거기에 따라서 경제적으로는 중상주의를 발전시킴으로써 서로 대결하는 구도가 발생한다. 이러한 민족국가간의 경쟁과 대립은 유럽에서 지속적으로 국가간의 헤게모니 다툼과 함께 전쟁을 촉발시켰다. 따라서 민족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전에 없이 많은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민족국가들의 헤게모니 다툼의 결과물인 중상주의는 이들의 눈을 해외로까지 돌리게 해서 식민주의 시대를 열게 된다. 이들은 식민지 개척과 더불어 아프리카와 남미와 유럽을 연결하는 삼각무역체제가 발달하면서 제국주의가 강화된다. 처음에는 이베리아 반도 국가들, 스페인과 포루투칼이 나서서 남미를 식민지화하고 원주민들을 과도하게 학살했으며 결국 노동력이 부족해서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예로 잡아다가 남미의 탄광이나 북미의 농장으로 보내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민족국가 시대는 유럽국가들 사이의 경쟁과 자기팽창이 그들 사이의 전쟁과 전세계를 향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 이것이 근대성이 가져온 민족국가 형성이 가져온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문제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근대성의 또 하나의 특징인 진보사상과 자연과학의 발전과 연관된다.
둘째 근대성이 가져온 도구적 이성에 의한 진보사상의 출현과 자연과학의 발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근대성 혹은 계몽주의를 지탱해 주었던 기둥들 가운데 하나로서 진보사상과 과학주의는 놀라울 정도로 인간의 삶을 향상시켰고 따라서 진보에 대한 신앙이 탄생했고 나아가서 진보는 불가피하다는 숙명론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진보사상에 의하면 인간은 이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만들 수 있다는 과학과 기술의 결합으로 인해서 우리는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진보사상과 과학주의는 서구 사회뿐만 아니라 오늘날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근대성의 사상적 기초로서 진보사상과 과학주의가 가져다 준 긍정적 측면들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는 이것들이 가져다 준 재앙들 앞에 인간은 떨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났던 핵무기 사용과 더불어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전쟁은 인간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여기에 대한 강대국들의 통제가 시작되었으나 아직도 예측할 정도로 안심할 수 있는 상태에 있지 못하다. 이런 핵무장뿐만 아니라 과학주의가 낳은 과도한 자연과 자원의 남용으로 인해서 지구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심각한 환경의 파괴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 자신들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로마 클럽은 성장의 한계를 제안하고 있고 오늘날 세계교회협의회 등은 “지속 가능한 사회”(the sustainable society)를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낙관적 진보사상이나 만능적 과학주의에 매달릴 수 없는 자기절제, 자기축소의 시대를 마지하고 있다.
셋째로 근대성의 중심 논제 가운데 하나인 시장경제의 출현과 오늘날의 현실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이른바 자유시장 경제이론은 근대성의 논제 가운데 오늘날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전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시장경제 이론과 실천은 우리 인류의 모든 삶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말까지 기간에 소련을 중심으로 하고 동구라파를 축으로 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이론이 등장하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자유시장경제에 도전장을 냈지만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이 경제체제는 그것이 가진 고도의 도덕성의 요구들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자면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고도의 도덕성과 인간성을 필요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는 타락한 관료주의와 거기에 실망한 노동계급의 태만이 그 체제를 붕괴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이다. 그것은 그 동안 사회주의의 도전과 자기의 내부 모순으로 인한 몰락을 피하기 많은 개혁을 추진해 왔지만 오늘날의 세계를 파라다이스로만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빈익빈 부익부의 차이는 점점 더 커지기만 한다. 이른바 가난한 80%의 인간과 부유한 20%의 인간으로 세계가 양분되었고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심화되어 가난한 90%와 부유한 10%의 인간들로 갈라져 있다. 다시 말하자면 가난한 90%의 인간이 10%의 부를 가지고 살고 있고 부유한 10%의 인간들이 세계의 부의 90% 이상을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의 이익을 능가함으로써 이 자유시장경제의 문제점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람들은 산업체에서 일하기보다는 돈 놓고 돈 먹는 주식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네스토 카느디날(Ernestlo Cardinal) 신부가 말한 대로 주식투자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땀흘리고 노동하는 것을 멀리함으로써 인간성마저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이러한 근대성 혹은 근대주의에서의 신학운동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근대성 혹은 근대주의 안에서의 신학의 특징은 초기에는 이신론(Deism)에서 볼 수 있듯이 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해명하는데서 출발한다. 이신론에 따르면 신은 더 이상 어떤 인격신으로서 세계와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은 시계공과 같아서 세계라는 시계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저절로 가도록 장치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신론은 인간의 자율성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근대성의 신학적 주류를 이루었던 자유주의 신학은 신정통주의와 경건주의를 극복하려는 운동으로서 출발한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신학을 정통주의의 교리주의 혹은 교조주의에서 해방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학을 경건주의의 종교적 감성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계몽주의 신학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슐라이엘마하(Schleiermacher)에 의하면 인간의 내면 속에는 심미적 영역과 유사한 종교적 감각의 영역이 있으며 이 종교적 감각은 인간에게서 이성 혹은 합리적 의식과 같이 보편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초월자에 대한 절대적 의존의 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신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종교적 의식과 합리적인 측면은 동등하고 이들 사이에는 궁극적 연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후에 등장한 릿츨(Albrecht Ritschl) 같은 자유주의 신학자는 종교와 도덕 혹은 종교와 문화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릿츨은 종교적 구원을 역사 내에서 도덕적 진보와 결합시켰는데 인간에게서 도덕성이 높이 함양되면 궁극적으로는 지상에는 인간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슐리이엘마하는 신학을 경건주의에서 해방시켰으나 결국은 인간의 종교적 감정에 귀속시켰고 릿츨은 신학을 정통주의의 교리주의에서 해방시키려 했으나 결국 도덕이나 문화의 영역으로 귀속시키고 말았다. 한마디로 이들은 기독교를 교파주의와 신앙고백의 틀이 되는 교리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는데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와 지식의 문제
생물학과 물리학의 발전은 오늘날 우리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 이끌어 왔다. “근대이전의 세계는 유기체적이었고 근대적 세계의 상은‘ 기계적이며 이원론적이었으나 근대 이후의 세계의 상은 역사적이고 관계적이며 인격적이다.” James Miller의 이 말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가장 간략하게 특징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특징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 요약하고 있다.
첫째 세계는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것이다. 모더니즘 시대에는 실체란 그 안에 영원한 본질을 구비하고 있고 그래서 그 영원한 본질이 사물의 본성과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생물학에서는 사물은 불변하는 본질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비결적정 변수들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완결된 피조물이 아니라 지속적 창조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은 어떤 필연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성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
둘째 세계는 상대적이고, 비결정적이며 참여적이다. 모든 존재는 절저하게 상대적이다. 뉴톤은 한 대상이 고립되어 존재할 수 있는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을 가정했으나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를 통해서 이러한 논거들을 제거해 버린다. 양자론에 의하면 우주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궁극적 분자나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역동적 관계들로 이루어졌다. 하이젠버거(Werner Heisenberg)는 불확실성의 원리를 통해서 실재들에는 비결정성, 즉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만물의 중심에는 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신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자물리학의 발전으로 절대적 객관성이란 존재할 수 없고 단지 ‘상대적’ 객관성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우리가 말하는 지식도 이전의 지식과 즉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지식관은 거부된다. 따라서 지식은 진화되고 관계성을 가지며 비결정적이고 참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근대 후기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지식은 역사적으로 연루된다. 그 어느 것도 문화적 상황을 떠나서는 인식될 수 없다. 문화적 환경이 인식대상을 구성한다. 따라서 문화적으로 중립적인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이란 발견된다기보다는 만들어지는 것이며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장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성장되는 것이다.” 토마스 쿤(Thomas Kuhn) 같은 학자는 자연과학을 역동적 역사적 현상으로 분석해 냄으로써 이론에서의 근본적 전환이 단순히 과거 지식의 논리적 수정이나 재해석이 아니라 세계관적 급진적 변혁이라는 사실을 입증했었다. 폴라니(Michael Polanyi) 같은 학자는 진리란 인식하는 개인이나 공동체 안에 내재하며 그러면서도 그것을 초월해 있는 실재의 인식에 헌신하고 있는 상호주체적 공동체(intersubjective Community)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따라서 진리, 특히 사회과학적 지식은 인식주체들의 공동체에 따라서 상대적이기 때문에 모든 지식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신학
미국의 신학자 그리핀(David Ray Griffin)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신학의 종류를 다음 네 가지로 구별해 정리하고 있다. 말하자면 1) 구성적 혹은 수정적 타입(constructive and revisionary type), 2) 해체적 소거적 타입(deconstructive and eliminative type), 3) 해방주의적 타입(liberationist type), 4) 복고적 보수적 타입(restorationist or conservative type) 등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신학에서 이러한 다양한 입장들이 등장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근대성 혹은 근대 이후에 대한 이해의 정도와 폭과 관련된다. 그 다음으로는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학자들의 신앙고백적(혹은 교파적) 내지는 신학적 입장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보여진다.
한국에서의 포스트 모던 신학을 논하는 학자들은 “구성적 혹은 수정적” 차원에서 종교다원주의를 다루고 있고 복고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문제삼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해체적 소거적 차원에서 “여성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이 논의되고 있고 해방주의적 차원에서 통일신학이 논의된다고 보여진다. 물론 근대 이후의 강력하게 등장하는 세속성과 더불어 새로운 신학운동들의 등장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복고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신학을 포스모더니즘의 신학에 넣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이러한 입장은 일종의 전통신학에 대한 변증학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앞서의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특성들과 지식의 문제들을 일별 할 때 포스트모더니즘의 신학이 무엇을 발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지면관계로 몇 가지 주제만을 다루면서 이 글을 마감하려고 한다.
첫째 창조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신학에서는 창조론을 과거 언젠가 신에 의해서 완결된 것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신은 과거 어느 한 순간에 창조를 끝낸 것이 아니고 계속 창조해 오고 있으며 오늘도 창조행위는 계속된다. 그리고 창조행위에서 하나님이 주역이지만 그만이 유일한 창조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근원적인 창조작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창조자는 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만이 창조행위자는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역사의 결정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신뿐만 아니라 인간 아니 전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전체로서 창조에 동참하는 것이다.
둘째 이제까지의 교회의 주도적 신학은 창조론에 나타나 있는 인간중심주의를 당연시하고 받아들였다. 생명에 대한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신학자라도 인간 존재는 인간 이외의 생명체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이해는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볼 뿐만 아니라 자연의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곧 우주나 자연의 역사와 다른 것으로 파악하게 된다.
그런데 생명의 전체 역사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출현은 독특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인간의 출현은 우주 안에 다른 존재들(식물이든 동물이든)의 출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 즉 10만년 후에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젤 한다면 인간 중심이라는 주제는 그렇게 적절하지 않다. 사실상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는 성서에도 암시되어 있지만 근대의 시작 즉 데카르트의 주객논리에 더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근대성에서 그 기초를 두고 있는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과 신학은 오늘날 생태학적 위기에 심각한 요인이 되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신학에서는 이러한 인간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생명 중심적 신학으로 나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셋째 성육신 교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전통적 신학에서는 초월적 신과 내재적 신이 어느 순간 연합하는 것, 곧 역사의 한 순간에 육체가 된 신의 초월적 말씀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육신의 순간은 유일회적인 사건인가? 성육신 사건은 오직 나사렛 예수에게서만 일어난 사건인가? 나사렛 예수는 그의 삶과 가르침을 통하여 성육신의 모델을 분명하게 보여준 분이다. 그러나 그의 성육신 사건은 역사적 사건이지 존재론적 사건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많은 열매 중에 첫 열매일 뿐이다. 따라서 어떤 인간이든 자신의 삶을 신의 의도를 실현하는 정도만큼 그리스도의 삶, 열매에 동참한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에서의 경제적 위기, 생태학적 위기 등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들을 고려할 때 전통적 신학, 즉 근대에 제시했던 신학적 패러다임으로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신학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다원주의의 문제를 다시 한번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세계의 고등종교들 사이의 대화와 협력은 물론 모든 민족과 종교들 사이의 이해와 협력 없이는 오늘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신학은 그 지평을 더욱 확대하고 그 깊이를 더해 가는 것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