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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1-18 14:32
민중교회론에 대한 하나의 고찰
글쓴이 : 손규태
 
香山洋人(가야마 히로또) / 일본성공회 부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 1999년 2월 월례포럼
 
1. 들어가며

 
민중신학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가? 제1세대 민중신학을 비판하면서 발전 계승하려하는 제2세대(또한제3세대) 민중신학이, 제1세대 신학의 어떤 부분을 비판하고 어떤 부분을 계승 발전시키려 하는가? 이러한 물음이 필자의 출발점이다. 특히 그 출발에 있어 다가와나 아라이 등 일본 신학자들과 어느 정도 관계를 맺고 있는 민중신학은 일본 기독교계에도 많은 관심을 끌었으며, 9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신학으로 불리는 구리바야시의 '가시관의 신학'도 민중신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며,1) 남미의 해방신학과 더블어 일본의 일반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일정한 영향을 준 민중신학에 대해서, 필자는 한 사람의 일본 그리스도인으로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면서 주목해 왔다.
 
안병무의 일본에서의 강연회와 그 원고의 출판(1986년), {民衆神學의 探究}의 번역 출판(1989년), {民衆神學 이야기}의 번역 출판(1992) 이후 민중신학의 동향에 대해서는 '도미사카(富坂) 그리스도교 센터'를 중심으로 계속적인 활동이 있고, 97년 박성준의 {民衆神學의 形成과 展開}의 출판에 의해 일본 신학계의 많은 연구자가 다시 민중신학을 주목하고 있다.
 
민중신학은 한국의 70년대라는 한 상황 속에서 출발한 신학이며, 민중신학은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모든 요소들을 무시해서 검토할 수 없는 신학이다. 우리는 이것을 '상황신학'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신학이란 본래 그러한 상황, 인간의 삶의 자리와의 관계성을 맺는 것임을 주장하고,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기성신학(학문), 특히 (일본도 포함한) 서구적 신학이 전제로 하는 '보편성'의 환상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기도 했다.
 
민중신학을 검토하려면, 우선 그 신학적 특수성, 신학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고, 이것을 비판적이든지 긍정적이든지 간에 계승 발전시키려 하는 작업은 민중신학의 특징적인 성격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민중신학은 한 신학자의 제자들이 계승하는 '학파'가 아니라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고 대화 가능한 열린 신학으로서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민중신학'이라고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안을 수 없다. 즉 민중신학의 주제·방법론 등, 민중신학의 정체성에 관한 요소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제1세대 신학이 제출했던 서구신학 비판·탈신학·반신학·제도교회 비판 등, 이러한 과제가 현단계에 있어서 어떤 구체적인 결실을 맺고, 또한 오늘날에 있어서 이 방향의 유효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조건들이 요청되는 것인지, 이러한 작업이 계속해서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필자는 민중신학을 '교회 이해'라는 제목을 통해서 민중신학의 하나의 특징을 이해하려 하겠다. '이것이 민중신학의 교회론이다' 라는 주장을 하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민중신학이 말해오고, 많은 사람들이 실천해왔던 '민중신학적 교회'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고찰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앞에 말했듯이 민중신학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민중신학적인 무엇'을 검토하고자 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그리스도교(신학)가 그 모든 실천의 자리, 생활의 자리로 보아왔던 '교회'를 하나의 좌표로 잡는 것은, 민중신학을 고찰하기 위한 작업으로서는 큰 오류는 아닐 것이다.

2, '제1세대 민중신학'의 교회 이해
 
여기서 말하는 '세대'는 신학자의 세대가 아니라 신학적 경향에 따라서 나눈 것이고, 제1세대 민중신학이란 구체적으로는 안병무와 서남동의 민중신학을 의미한다.
 
안병무는 민중신학에 교회관이 있지만 교회론은 다루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민중신학 자체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제가 시급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민중신학이 발전되어 나가면 이에 따라 부각되는 참 교회의 모습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2) 서남동에 있어서도 민중신학의 주제는 '교회'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종말의식의 상실에 의한 제도화와 타락의 역사로 보고, 제도화된 교회는 타락에 산물이며, 예수 운동의 계승에 있어서는 교회는 결국 '비본질적인 무엇'에 불과한 것이었다.3) 그러나 그 들이 현실의 교회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비판은 현실의 제도적 교회를 전제로 한 것이고 내부로부터의 교회개혁을 위한 예언자적 비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4)
 
안병무는 예수와 민중들의 만남의 자리를 교회의 원점으로 보고 있다. 교회의 역사는 종말 의식을 상실하는 과정이며 교회가 종말 의식과 예수와 민중과의 만남의 자리 역할을 회복시키는 일이 그의 주장이었다. 안병무는 종말론적 교회로서 민중교회, 금요기도회, 목요기도회, 갈릴리 교회, 집회들, 노동자의 현장을 말한다. 또한 남미의 바닥 공동체가 교회의 참 모습이며, 기성교회는 그러한 민중의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5) 이것이 안병무가 제출한 새로운 교회의 하나의 이미지였는데, 구체적으로는 '지도자들은 민중의 느낌과 생각을 언어화하며, 민중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되며 용기를 주는가를 생각하며, 그것으로 제도를 만들어 삶 한가운데 고투하는 민중을 존중하고 저들이 고뇌 속에서 성서를 어떻게 읽어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서 계시만큼이나 존중해야 하고, 저들이 그렇게 자기 소리를 말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6) 민중이 주인이 되고 권위적 구조가 없는 교회의 구체적 과제들을 말하는 것이다.
 
서남동이 제출한 새로운 교회의 이미지, 즉 '현장교회'는 '교회의 제3형태', '성령의 교회', '민중의 교회'도 안병무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7) 종말의식을 상실함으로써 등장한 타락의 산물인 제도적 교회에 대해서, 민중해방사건 그 자체를 전혀 다른 의미의 교회로 간주한다는 것이 교회의 제3형태, 성령의 교회이며, 그것을 민중의 교회라고도 한다. 이것은 교회의 구체적인 형태를 의미하는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제도적 교회 속에 있는 교리화된 예수 외에는 어느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회의 현상에 대해서, 이 세상 속에 나타나고 있는 해방 투쟁, 인권운동, 민중들의 궐기사건 속에 하느님의 역사함을 발견하고자 하는 부름이다.
 
안병무와 서남동의 교회비판과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이미지는, 종말의식을 상실한 제도 교회는 종말의식을 되찾아야 하고, 정치성을 상실한 교회는 정치성을 되찾아야 하고, 관념화된 교회는 육체성, 물질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지배자에 의해 유괴당한 교회'를 되찾는 것이 그들의 주제이며, 교회는 민중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전달하는 현장교회, 성령의 교회, 민중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오늘날 교회에 관한 신학을 구축함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제2세대 민중신학'의 교회 이해
 
여기서 '제2세대 민중신학'이란 제1세대 민중신학을 계승 발전하려 하는 신학적 작업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많은 신학자들에 의한 의욕적 작업 가운데, 특히 '교회'에 대한 발언을 중심으로 해서 검토하고자 한다. 안병무, 서남동을 70년대의 지식인이라고 할 때, 제2세대 민중신학을 형성하는 논자들은 80년대의 활동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제1세대 신학을 통해서 신학적 자극을 받으면서 80년대라는 변화한 상황을 기초로 한다.
 
이 변화는 기관 운동을 중심으로 한 인권운동부터 광범위한 사회변혁운동으로의 변화이며, 그 변화 가운데 그리스도교계가 담당하는 역할이 축소되어 나갔다는 것이며, 이러한 변화 가운데 그리스도교 신학이 70년대 같은 '증언'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 변혁 운동에 참여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과제를 제출했다. 이 과제를 받아들이고 형성된 신학이 '운동의 신학', '물의 신학'이었는데 전체 운동 속에서 한 부문 운동으로서의 그리스도교 운동이라는 도식을 설정하면서, 전체 운동의 언어와 사고를 그리스도교 운동이 수용하기 위해 유물론 신학의 가능성이 추구되었다. 한편 광범위한 전체운동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운동은 부문운동으로서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는 필요가 있다는 과제도 있었다. 이 두 가지 과제는 '교회'라는 현실, 운동과 신학의 통합적인 실천 현장에서는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과제였다.
 
또한 제2세대 민중신학의 과제를 체계화, 학문화, 보편화로 설정하는 경향도 있다. 이것은 제1세대 신학이 학문화를 추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발전 계승하는 의미로의 작업이라는 입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제1세대 신학이 기성신학의 학문적 자세(강당신학)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제와 갈등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통합시키는가를 염두에 두면서 교회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제2세대 민중신학을 검토하고자 한다.

(1) 박재순의 '밥상 공동체'
박재순은 전통적 개념을 재해석함으로써 민중신학의 새로운 전개를 시도하는 신학자다. 그가 1988년에 발표한 {예수 운동과 밥상공동체}의 제2부 [예수운동 교회 민중]에서는 밥상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예수 운동을 규정하고 있고, 이러한 이해는 1995년의 논문집 {열린사회를 위한 민중신학}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그는 예수운동, 즉 밥상공동체운동의 계승과 실천이야말로 교회의 본질이라고 한다. 예수 운동의 본질을 밥상공동체운동으로 보는 점은 안병무의 견해를 계승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제1세대 신학이 타락의 과정으로서 강력하게 비판했던 초대교회부터 콘스탄틴에 의한 공인 이후의 교회사 속에서도 밥상공동체적인 본질을 유지해왔던 것은 '교회'이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8)
 
또한 박재순은 '기성교회와 민중교회의 협력모델'을 통해서 한국교회 전체의 쇄신을 말하고 있다.9) 이 방향은 기성교회나 신학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협력인데, 그는 민중신학의 체계화, 학문화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제1세대 신학의 기본적인 방법론적인 틀이었던 '하느님의 선교신학'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제1세대 신학과의 결별을 의도하는 것 같다.10) 박재순의 기성신학과의 협력 노선에는 제1세대 신학의 예언자적 전통을 계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그가 의도하는 것이며, 특히 어려운 상태에 있는 민중교회를 살리는 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문제는 제1세대 신학에 대한 큰 비판 중의 하나인 현장 교회와의 관계성, 즉 실천성 결여의 문제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2) 김용복의 '민중교회론'
김용복은 제1세대 민중신학을 형성해 온 신학자이다. 그러나 그가 전계하는 '민중교회론'은 1980, 90년대의 상황을 기초로 하는 것이며, 민중신학의 발전과정 속에서 계속해서 작업을 하는 신학자로서 제2세대 신학의 틀 안에서 검토하려 한다.
 
김용복의 '민중교회론'은 하느님의 백성의 본질을 민중으로 보고 교회의 기본적 성격은 민중성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민중과 연대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임을 주장한다.11) 여기서 그의 민중교회론 전체를 검토할 수는 없지만, 앞에서 본 제1세대 신학과의 관계에 있어서 특징적인 부분을 보고자 한다.
 
제1세대 신학에 있어서 '민중성'은 배타성과 당파성의 지표이었다. 그러나 김용복은 포괄성의 지표로 민중성을 말한다. 서남동은 부자가 천당 갈 수 없다는 명제로 복음의 당파, 배타성을 주장했다.12) 안병무도, 배부르고 권력 가진 사람들은 자동적으로(하느님나라에서) 배제된다고 말한다.13) 그들은 예수의 제자비판을 통하여, 체제와 반체제의 갈등, 그리고 성문 밖의 그리스도라는 당파성과 배타성을 주장하는데, 민중성은 반민중적인 존재를 배제하는 지표였다. 이에 비하면, 김용복은 하느님 나라는 민중의 것이며, 교회는 본래적으로 민중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민중성은 포괄성의 지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기성교회 편에 서서 기성교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김용복은 기성교회의 배타적인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포괄성을 강조하는데, 여기에는 '민중도 포함하는 교회'라는 발상이 있지 않은가. 김용복이 말하는 배타성은 가진 자들이 민중들을 배제하는 뜻이며, 제1세대 신학에는 그 반대로 하느님 나라가 가진 자들을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용복은 교회란 본래 민중의 것이라는 전제를 내세우고, 그 교회 그리고 교회의 전통이나 교회의 교리를 민중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으로 민중교회론을 구축한다. 이 작업에 있어서는 교회의 신학의 틀, 기존의 교회구조 자체는 재검토의 대상이 아니었다.

(3) 권진관의 '새로운 품성과 영성의 공동체'
권진관의 출발점은 기독교적 입장에서 사회 변혁을 위한 논리적 기초를 제시하는 것이며,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공헌할 수 있는 실천적 신학을 구축하는 데 있다. 그는 신학이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며, 운동을 위한 신학이어야 하고 민중신학은 민중운동을 위한 것이라는 기본적 입장을 가지면서, 10년이 지난 민중교회의 현장 목회자들이 눈앞에 둔 어려운 현실 문제에 대한 실천적인 응답으로서 교회론을 전개하고 있다.14)
 
권진관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사상'을 참조해서 교회변혁을 위해 기성교회, 기성신학, 교회 대중들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역할은 민중교회가 담당하는 것으로 보는데, 민중교회에는 이러한 설득력 있는 품성과 덕성이 요청되고, 이것은 교회로의 본질에 관한 문제라고 한다. 또한, 교회개혁을 위해서는 '진전한 위치'에 서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주류교회와의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타협하지 않은 위치이며, 민중교회는 새로운 품성과 덕성을 가지고 기성교회와의 긴장 관계 속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권진관이 말하는 실천성이다.15) 권진관은 구체적으로는 기초공동체적인 형태를 생각하고 있다.16)
 
권진관이 주장하는 실천상, 교회 개혁을 위한 전략, 품성과 덕성 등은, 제1세대 신학의 종말론적 성격에 비교한다면, '중간 시대'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성교회의 개혁이 아니라 새로운 교회 '제3교회'를 구성한 제1세대 신학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설정이 있는 것이다.

(4) 맺음말
민중교회론은 제1세대 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려는 제2세대 신학의 중심적인 과제 중의 하나다. 여기서 검토한 박재순, 김용복, 권진관은 각각 기성교회와의 관계를 위해 대중성의 확보, 교회의 민중적 본질에 의한 민중교회의 포괄성의 주장, 교회 개혁을 담당하는 민중교회의 충실 등의 과제에 따라서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민중신학과 기성교회와의 대화 가능성, 또는 기성교회의 교회론과의 대화 가능한 민중교회론 실현을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위에서 전통의 재해석, 성서의 민중적 해석, 현대의 진보적인 신학과 사상과의 대화에서 나타난 실천성의 심화 등, 민중신학의 영역을 확대하고, 새로운 전개를 만든 적극적인 요소들을 산출하고 있다. 이것은 민중적 교회를 지향하는 기성교회를 지원하는 방향이기도 하고, 민중교회 뿐만 아닌 일반적인 교회론의 차원으로서도 중요한 지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 있어서 제1세대 신학이 제시했던 교회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가진 의미를 너무 쉽게 넘어가 버렸다는 느낌이 있다. 제1세대 신학은 제도화의 문제뿐만 아니라 교회라는 형태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 있어서 교회는 구체적인 조건 아래서 명확한 한계를 가진 것이며, 보편적인 것으로 존재론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제1세대 신학이 제시했던 그 지점으로부터 다시 교회를 생각하고, 교회의 틀 자체를 재설정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길도 남아있지 않은가 라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새로운 민중신학이 기성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틀 속에서의 하나의 고유한 영역을 형성하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신학의 틀 자체에 대한 과감한 도전은 기성신학 속에서도 있다. 1세대의 민중신학은 개량주의적 신학이 아니라, 혁명적 신학이었다. 그리고 제2세대 신학의 과제는 그 혁명을 전술화시키고, 추상적이고 낭만적이었던 1세대 신학의 혁명이념을 실천 차원으로 이끌어 가는 신학이 되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작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위치, 신학의 자리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민중신학의 연속성 가운데 신학의 자리의 문제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 민중신학은 어디까지도 민중사건에 동참해서 민중의 소리를 듣고 전달하는 신학이며, 기성체제 밖에 서는 '성문 밖' 신학이다. 그러므로 '성문 안'에서는 필연적으로 예언자가 되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신학이 자기의 신학의 자리를 어디에 설정하느냐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4. 민중교회와 민중신학
 
민중신학은 기성의 강단신학이 아니라 현장과의 대화, 실천적인 작업을 통해서 형성되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야말로 신학의 자리라는 것은 일반적인 견해이기도 한데, 민중신학의 자리는 일반적인 교회가 아니라 '민중현장' '민중교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민중신학의 자리를 일반적인 의미로의 교회라고 하겠다는 입장도 있을 것이지만, 여기서는 민중교회와 민중신학의 관계에 대해서 짧은 고찰을 시도하고자 한다.
 
민중교회의 등장은 사회변혁운동이 성장과 더불어 교회가 고유한 운동 영역을 확보한다는 점, 기구 중심적인 그리스도교 운동에 지역성을 부여한다는 점, 추상적 운동을 과학적으로 수행한다는 점, 민중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교회를 만든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교회 개혁을 수행한다는 점 등, 특징적인 과제를 기지고 출발했다.17) 민중교회는 민중신학을 기초로 한 교회라는 직면과 민중신학이 접근하지 못했던 민중현장(현실)에서 일한다는 측면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중교회와 민중신학은 같은 목적의식으로부터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관계 또는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18) 민중교회는 민중신학을 기초로 하면서도 제1세계 신학적 교회의 개념(image, paradigm, etc)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성교회의 틀 속에 있는 교회이다. 민중교회는 기성교회에 대한 비판과 갱신운동으로서 형성되고 그 교회로서의 형태 자체가 기성교회에 대한 비판적 실천이었다. 민중교회는 새로운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제도적 교회의 한 형태임에 틀림없다. 제도적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면서 민중성, 대중성, 지역성, 교회성, 과학성19) 등을 되찾으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민중교회와 민중신학 사이의 긴장 관계는 실천 현장과 이론 사이에 있는 일반적인 긴장관계인가. 필자는 양자가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창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적인 자세이며,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점에서는 민중교회가 민중신학은 현장을 도울 수 있는 신학이 아니라고 한마디로 비판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고, 민중신학 쪽에서도 민중교회를 민중신학의 하나의 자리로서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미약하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당사자의 문제이며, 필자는 민중신학의 형성에 있어서도, 민중교회운동의 수행에 있어서도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 서는 자이기 때문에 정도 이상 무책임한 평론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

 
5. 민중신학적 교회 이해 실천의 가능성
 
손규태는 제1세대 민중신학의 교회론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성교회로부터의 교리적, 기구적 탈출'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20) 새로운 교회의 이미지들, 즉 제3의 교회, 성령의 교회, 민중의 교회 등은 기성의 제도적 교회에 대한 비판에 기초를 든 것이기 때문에 기성의 신학적 틀으로부터의 '탈출'은 당연한 출발이 될 것이다. 손규태는 '평화교회의 모델과 일본의 무교회 운동의 방식들에 대한 연구가 요청된다'고 말하는데,21) 무교회는 종교개혁을 철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며, 프로테스탄트적 신학의 틀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단순한 '기구적 탈출' 모델로서는 일본의 무교회 운동은 의미가 있더라도, 그 이상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고고한 엘리트 집단이 될 수밖에 없었고, 필자는 민중신학적 교회 모델로서는 현실적이 아니라고 본다. 손규태가 말하듯이 제1세대 민중신학적 교회론을 구현하려면 역시 근본적 '탈출'이 있어야 되는데, 이 길은 종교로의 그리스도교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는 지평까지 포함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사실 다가와(田川)나 그의 사상적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아카이와(赤岩) 등은 이 길을 통해서 그리스도교를 탈출해 나갔다.22)
 
기성교회로부터의 탈출은 신학자인 손규태의 발언이며 교회 현장의 감각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안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제1세대 민중신학이 제기한 교회 비판과 이에 기초한 교회상과 기성교회의 한 형태로서 발전해온 민중교회와는 기본적으로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이다. 민중교회 운동은, 기성교회를 전제로 하면서 민중운동 및 기독교운동으로부터 출발한 교회 쇄신운동이며, 그 하부구조는 어디까지나 기성교회이다.
 
서남동은 '말씀(논술)'을 계시의 그릇(전달수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계시의 그릇이며, (계시는) 역사적 사건이기에 <이야기>로 담겨지고 전해지는 것'이라고 했다.23) 예수에 관한 신학적 언어를 예수 이야기로 바꾸는 일이 바로 '탈신학화'인데, 교회는 이러한 탈신학화를 통해서 '예수의 십자가형과 예수의 죽임(살해)을 되찾아서 거기에 뿌리를 박고 그 기반 위에서 신앙적인 증거를 하면 그 증거는 현실을 개변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한다.24) 이렇게 '성서와 신학의 껍질을 벗겨내고 예수와 민중의 이야기를 찾는 것이 민중의 교회'라고 한다.25) 예수사건(계시)의 본래적 하부구조를 공유함으로써 민중의 교회는 예수사건의 위치에 설 수 있다. 아니, 그렇지 않는 한 계시(예수사건)와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의 통찰에 따르면, 민중교회가 '말씀과 신학적 논술'의 교회인 기성교회에 입각하는 한, 현실을 변혁하는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제1세대적 신학의 타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변혁의 힘이 어디로부터 오느냐에 관한 신앙적 물음이다. 예수사건이야말로 현실 변혁의 유일한 전거이며 원동력이다. 예수사건을 근거로 한다는 것은 예수사건과 같은 하부구조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민중교회운동은 교회성의 확보, 과학성의 확보 등을 통해서 교회운동의 본질적 기반인 예수운동, 메시아운동의 하부구조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제1세대 민중신학에서 출발해서 기성의 교회적 틀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교회의 틀 자체에 대한 재검토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예수를 따라가는 삶에 있어서는, 교회는 하나의 선택된 형태에 불과하다. 교회는 예수 운동적 공동체의 유일한 이름이 아닐 것이다. 교회는 초기 교단이 유대교나 헬레니즘 지방의 전통 등을 참고하면서 창출한 새로운 공동체운동이라는 하나의 전략이었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는데, 탄생한 것은 교회였다'라고 하는 Alfred Loisy의 명제는 현상을 그대로 말하는 말이지 교회는 스스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것이다. 그래서 위의 명제는 하느님 나라운동이 교회운동으로 변질했다는 것이고, 그것을 잘못이라고 본다면 하느님 나라운동에 어울리는 운동방식을 다시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된다.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라는 종말에 이를 때까지의 중간시대를 살아가는 전략으로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한 것이 교회이며, 그 제도는 그 이후의 지도자들의 상황분석과 주변의 조건들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초대교회에는 배타적인 공동체 운동이나 예언자와 교사를 중심으로 한 운동들이 있었고, 그들은 교회라는 형태가 선택되어 가는 가운데 파기 또는 흡수된 것이다. 그러한 전략의 한 형태로서의 교회가 시대의 필요성,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구체적인 형태를 바꿔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황의 변화에 적응하지 않고, 특정한 형태와 방식을 고정화해서 절대화하는 교회에 대해서는, 당연히 개혁 운동이 일어나는데 그러한 개혁 운동은 초기에 배제당한 천년왕국운동, 배타적 공동체 운동, 예언자나 교사처럼 개인의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한 운동으로서 나타난다.
 
우리가 전제로 하고, 원칙으로 하는 교회의 모습은 서구 교회의 선교사들이 전했던 하나의 이미지로서의 교회이다. 제2세대 민중신학의 민중교회론도 기성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것 같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민중교회론의 하나의 한계라고 봐야 될 것인데, 우리가 변혁할 수 있는 것,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선택항)로서의 교회라는 전략을 재검토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필자는 이러한 이미지를 구체화시키는 특별한 제안을 아직 확실하게 가지지는 못한다. 그러나 복음의 전승 모체가 제도적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민중임을 인정한다면, 제도적 교회와 그 주변에 있는 운동들, 직접 교회가 운영하지 아니더라도 영적인 사업으로서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포괄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틀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한성공회의 '나눔의 집'은, 교회 비판, 교회 개혁으로 출발한 '민중교회'가 아니다. 그러나, 70년대의 기구운동과는 다르다. '나눔의 집'은 신앙공동체, 사회복지 영역을 증심으로 하는 사업, 주민 연대 사업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진 하나의 운동이다. 성공회라는 전통적인 제도교회에 완전히 소속하면서 물리적으로는 성당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나눔의 집'이 실천하는 사업들, 즉 생산자공동조합, 청소년 쉼터, 실직자 쉼터 등은 '말씀의 선포'라는 점에서는 기성의 교회활동이 아닌 것 같이만, '말씀의 성육신'이라는 점에서는 바로 교회가 해야할 일이다. 이것은 추상화된 복음의 물질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현장에서 일하는 그들이 기성의 제도교회인 '성공회'라는 교단에 소속돼 있다는 것은, '나눔의 집'은 그들의 증언을 전달할 수 있는 '청중'을 가진다는 뜻이다. 권진관은 이러한 관계에 대해서 Moltmann의 '이중 작전'이라는 말을 빌려서 지적하고 있고, 이러한 긴장 관계가 교회 개혁을 위해 필요 불가결하다고 한다.

6. 결론에 대신하여
 
필자는 '나눔의 집'같은 형태를 포함해서 민중교회가 교회에 관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면서 민중신학적 교회 이해를 발전적으로 구현해나가는 가능성을 믿고 있다. 이러한 새 교회 운동을 통해서 교회 개혁, 쇄신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제도적 기구적 틀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진 자와 가난한 자의 만남을 통해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병무가 예수와 민중의 만남의 장이 교회의 원 모습이라고 말했듯이, 민중과의 만남을 통한 가진 자들이 회개하는 장이 교회의 또 하나의 참 모습이 아닌가 한다.
 
자기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밝히고 회개해서 자기 변혁을 단행하는 과정 없이 진정한 참여도 연대도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민중신학을 '예언자적 신학'이라고 한다면,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자기 신학의 자리를 어디에 정하느냐, 즉 예언자 자신의 자기 이해의 과제가 있을 것이다. 민중신학은 강단신학이 아니라 현장을 위한 실천성을 중심으로 하는 신학이며, 가진 자와 가난한 자가 사회 변혁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만나서 연대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매개 역할을 하는 신학일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사명을 검토하고 시험하고 비판을 받으면서 발전시키는 자리는 바로 현장이며, 이러한 현장이 민중교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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