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세계화의 두 얼굴
지금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질서 즉 지구화시대에 살고 있다. 이 새로운 질서란 1990년 소연방의 붕괴와 동구권의 해체 이후 냉전체제가 사라지고 미국을 일극체제로 하는 자본주의적 세계질서를 말한다. 새로운 세계질서는 전체세계의 역학관계와 상호관계에서 새로운 틀이 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미국을 정점으로 일어나는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 영역에서 새로운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1990년 미국대통령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는 이것을 “새로운 세계질서”라고 불렀었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가 목표로 하는 것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고 유럽과 일본을 두 극들로 삼아 미국식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를 보다 확고하게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산시키고 관철해 나가는 데 있다.
서구역사에서 이러한 세계화의 사상과 의지는 진정한 의미에서 신약성서의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예수는 제자들과 헤어지기 전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마지막 선교사명을 전달한다. “내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전체 세계를 향한 예수의 지상명령은 바울을 통해서 기독교를 지중해지역과 소아시아로 확장시켰고, 10세기에는 유럽 전체로 퍼져나가게 했다. 11세기에 들어와서 이러한 선교명령은 5세기경 이슬람에 의해서 점령당한 과거의 기독교의 지역을 회복하려는 십자군 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했으나 실패한다.
이러한 기독교적 선교명령에서 출발한 세계화의 꿈은 15세기에 들어와서 유럽인들의 초기 자본주의 등장과 항해술의 발전과 결합되면서 세계적 차원을 획득하게 된다.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점령함으로써 유럽인들의 세계화의 꿈은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500여 년 전 콜럼버스는 스페인 페르난데스 왕과 이사벨라 여왕이 참석한 출발미사에서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이다. 그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백성들의 우상들을 비로 쓸어버리고 그들이 처한 곳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를 굳게 믿고 항해 길에 나섰다. 5세기경 어거스틴의 사상에도 이러한 기독교적 세계화의 꿈이 잘 나타나 있었다. 이 콜럼버스의 역사적 항해에서 기독교적 세계선교명령과 식민주의 내지는 제국주의적 세계화의지가 가장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결합된다.
아버지의 전기 및 전설들의 저자인 콜럼버스의 둘째 아들은 이와 같은 기독교적 선교명령과 제국주의적 세계화의지를 다음과 같이 잘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존하심은 인디오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생필품의 부족과 질병까지도 보내주어 그들의 숫자가 전에 비해 3분지 1로 줄어들게 하셨다. 이것을 통해서 분명해진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과 그의 고귀한 뜻을 통해서 그 같은 놀라운 승리와 원주민들의 굴복을 가능하게 해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 비해서 우리의 것들은 모든 면에서 우수하긴 했지만 그들의 압도적 다수가 우리의 유리한 조건들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Spiegel 1991.12).
15세기 유럽의 기독교적 선교명령과 제국주의적 의지의 결합으로 시작된 세계화 이후의 세계를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디낭 브라우델(Ferdinand Braudel)은 그의 책 “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양항해 기술은 유럽인들과 비유럽인들 사이에 대칭관계를 만들었고, 따라서 세계적 척도에서 보면 유럽인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이 말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는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무역을 지배하는 자는 세계의 부를 지배하고, 따라서 세계 자체를 지배한다는 영국의 역사학자 Walter Raleigh의 명제를 입증해 준다. 문명비평가 커크패트릭 새일(Kirkpatric Sale)이 “낙원의 정복”이란 책에서 말한바와 같이 콜럼버스로부터 시작되는 서구문명의 승리 즉 유럽인들에 의한 세계화는 오늘날 로마 교황으로부터 중국에서 팔리는 코카콜라에 이르기까지 정신적 승리요, 심리적 정복의 성격을 띠고 있다.
콜럼버스 이래 굴복당한 다른 대륙의 사람들에게는 서구의 언어와 의복뿐만 아니라 가치관과 관습들이 강요되고 있다. 콜럼버스 이래 유럽의 것은 문화라면, 다른 대륙의 것은 민속이고, 유럽의 것이 종교라면, 다른 대륙의 것은 미신이고, 유럽의 것들은 언어들이라면, 다른 대륙의 것은 방언이며, 유럽의 것은 예술품이라면, 다른 대륙의 것은 민속품이 되었다. 유럽인들의 세계화의 역사에서 다른 대륙의 역사는 “日蝕의 歷史”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이러한 기독교적 선교명령과 자본주의적 세계화의지의 결합을 스페인 사람들과 미국인들은 두 문명 즉 남미문명과 유럽문명의 “만남”(Begegnung)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미국은 1992년 10월 12일을 “콜럼버스의 날”로 선포하고 그의 미 대륙 발견 50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 날을 기해서 미국레이건 행정부는 스페인 바셀로나에 있는 콜럼버스라는 정복자의 남신상과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의 결혼식을 거행했다. 식민지 정복자 콜럼버스와 식민지 해방자 자유의 여신상의 이러한 기괴한 결합은 오늘날의 제국 미국이 가진 대외정책의 이중성을 상징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학자며 반제국주의 비평가 노암 촘스키(Noam Chomsky)교수는 이러한 정복자 남신상과 자유의 여신상의 결합을 “제국주의적 야합”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었다. 그에 의하면 오늘날 미국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복을 일삼고, 이러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민주주의의 수출로 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세계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개된 사건의 새로운 이름이며 따라서 종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계의 변두리까지 자본주의적 경제방식의 공간적 확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화의 추세는 오늘날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경향이며 되돌릴 수 없는 운동이며 따라서 우리는 거기에 순응해야 하고 저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 생각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세계화 과정은 자본주의 체제를 반대했던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예견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산당선언에도 낡은 산업은 새로운 산업으로 대치되어야 하고 “모든 사회적 상황들을 지속적으로 뒤흔들어놓음으로써 낡고 녹 쓴 사회관계들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바로 오늘날의 세계화를 예견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Ebert Giersch).
세계화와 민중의 삶
그런데 이러한 세계화를 통한 전체세계의 연계는 시장이라는 징표 하에서 지구적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는가? 자유, 규제철폐, 사유화라는 도식으로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서구유럽의 자본주의국가들은 지난 30여 년 전부터 자기들이 만들어낸 국제기구들, 즉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의 지원을 받아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에게 시장통합을 강요하고 있다. “파도가 상승하면 그것과 더불어 모든 배들도 물위에서 상승한다”는 유비를 통해서 선진국에서의 자본주의적 발전의 결실은 결국 모든 후진국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분배된다는 미국 대통령 John F. Kennedy의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부자의 밥상에 더 많은 음식이 올라가면 거기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도 더 만하져서 밑에서 기다리는 굶주린 나사로의 배도 그 만큼 더 채워지는 것인가?(마태복음 13:12).
아니다. 오늘날 세계화를 통한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의 전 세계적 승리는 사회적 분열과 정치적 불안을 위협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민족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승리자와 패배자의 골은 깊어지고, 격차는 넓어지기만 한다. 자본가들과 임금노동자들 사이의 소득격차는 유럽의 복지국가들에서마저도 놀랍도록 심각해지고 있다. 모든 성장의 열매들은 세계인구의 5분지 1에게만 혜택으로 돌아가고,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점점 더 빈곤해지고 있다. 1960년 세계인구 가운데 5분지 1에 해당되는 복지국가들의 개인소득이 가장 가난한 20%의 국가들의 그것보다 약 30배가 많았으나, 세계화의 물결이 휩쓸고 간 지금은 약 80배가 많아졌다. 세계 인구의 5분지 1은 하루에 1달러도 못되는 수입으로 살아가야 한다. 경기가 나빠지면 자본가들은 구조조정 즉 노동자를 해고하는 기업의 “몸집을 줄이기”(downsizing) 후에 “재가동화”(re-engineering)를 통해서 다시 이윤을 창조하지만 노동자들은 굶주린 배를 더 줄이며 고통당하거나 아니면 비정규직화나 해고로 실업으로 생명을 위협 당한다.
오늘날 국내기업들은 경기가 좋지 않다고 정부들에게 감세를 강요한다. 미국의 공화당 정권이나 한국의 한나라당과 같이 친기업적이거나 친 자본적 정당들은 적은 정부를 주창하면서 감세와 함께 사회복지 예산의 삭감을 강요한다. 자신들의 기업안보를 위해서는 국방예산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민생안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들은 정부가 법인세의 감세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지난 10년간 노동자들의 근로소득세가 법인세보다 3배 이상 증가되었다. 독일의 거대자본 Allianz의 Schulte-Noelle 회장은 매년 6억 2천 5백만 유로의 세금부담이 과다하다고 사회당의 Schroeder 정부를 위협하면서 기업이윤은 25%나 증가해서 83억 유로를 벌어들였다.
한국의 경우 1997년의 외환위기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체제에 의한 수출 의존적이고 취약한 한국경제와 노동시장에 대한 계획된 공격이었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외국자본의 손에 좌우되게 되었다. 노동시장은 김영삼 정부가 감행한 1997년의 비정규직과 근로자파견을 골자로 한 노동법 개악으로 최악의 상태에 빠진다. 노동법의 개악으로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이나 파견근로자들로 전락하고, 그들의 수입은 절반이하로 감소한 반면 기업의 이익은 배로 늘어났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구조조정과정에서 실업자가 된다. 노동자들의 주머니가 비고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자 내수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재래시장과 중소자영업자들은 파탄에 이르는 동안 수출하는 대기업들은 높은 이익을 남긴다. 김대중 정부는 IMF극복을 구실로 경기부양정책을 쓰고 더 가난해진 빈곤층에게 카드를 무제약적으로 나누어줌으로써 그들을 빚더미에 올라앉게 만들었다. 그들을 카드를 통해서 더욱 가난하게 할뿐만 아니라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산업의 구조조정과정에서 김대중 정부는 철도나 한전 같은 국가의 기간산업들을 외국기업에 넘기려 시도했고 주요 은행들 즉 서울은행과 외환은행 등을 외국자본에 넘겨 그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챙겨주었다. 미국자본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한지 4년 만에 5조가 넘는 이익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가게 되었다. 5조란 돈은 어떤 돈인가? 5000만 원짜리 서민주택 10만 채를 살 수 있는 돈이고 거기에 50만 명이 편안히 잠잘 수 있 엄청난 액수다.
오늘날 노무현 정부는 “한미자유무역협정”만이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 새로운 도약의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해서 국민들 반 이상이 반대하는 이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커다란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멕시코의 예에서 배워야 한다. 1993년 멕시코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 나프타를 체결했다. 바이엘이나 모토롤라 같은 몇몇 다국적 기업이 멕시코로 공장을 옮겨왔으나 일자리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미국을 향한 개방은 멕시코의 국민경제를 미국 시장에 내 주었고 밀려드는 수입물품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은 경쟁력을 상실한다. 그 결과 5 년 만에 15000개의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3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구매력은 3분지 1로 떨어졌다.
이러한 세계화를 통한 자본의 자유화와 더불어 한국의 민중이 처한 현실은 어떤가? 이것을 설명하는 지표로서 저는 한겨레신문의 내용을 여기서 소개하려 한다. “서울화곡동의 박순옥(59가명)씨는 2년 전 아들의 빚을 대신 갚아주기 위해 대부업 사무실을 찾았다. 빌린 돈 100만원과 이자 30만원을 100일 동안 매일 1만3천 원식 갚는 조건이었다. 10번 정도 갚지 못한 이자 13만원을 갚기 위해서 그는 다시 100만원(사실은 13만원을 뺀 87만원)을 꾸고 100일 동안 매일 1만 3천 원씩 갚기로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수를 제 때에 갚지 못해 다시 다른 곳에서 돈을 꾸다보니 1년이 지난 뒤에는 700만원의 빚을 지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한계레 신문 2006년 10월 9일). 이러한 대부업체들에서 급전을 빌리는 사람들은 거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거나 실업자들이다. 말하자면 이 땅에 살아가는 가장 비참한 민중들이다.
금융감독원이 금년에 추정한 사금융 금리는 년 204%였는데 등록업체는 167%이고 미등록 업체는 230%였다. 한 등록업자는 1000만원을 가지고 10명에게 100만원씩을 빌려주면 그에게 매일 일수로 15만원이 들어오고, 한달이면 450만원, 1년이면 5400만원 내지 600만원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부업법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이 2002년 제정되었다. 여기서는 연리 66%의 고금리를 보장해주고 있다. 이러한 고금리를 보장받는 대부업은 국내업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외국 금융자본들에게도 매력적이다. 현재 다른 나라는 그만 두고라도 일본계 자금인 ‘아프로 에프시 그룹’과 사와머니 등 약 24개의 집단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프로 에프시 그룹은 러시앤캐시와 여자크레디트, 파트너크레디트, 해피크레디트 등 업체 7곳을 거느린 대부업 재벌이다. 미국계인 메릴린치 인터내셔널 홀딩스 등도 대부업에 뛰어들고 있다. 1995년 약 4조원의 자금을 가지고 3천 여 개의 회사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열배가 넘는 자본금이 민중들의 주머니를 털어가고 있다.
세계화는 개방도상국가들에게도 축복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세계화 옹호자들의 예언은 성취되지 않았다. 세계화는 민중들에게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나타나고 있다. “거의 어디서나 세계화는 시장으로서의 길을 뛰어넘어 다시금 식민주의라는 추한 얼굴로 나타난다. 서울에서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 까지 성장했던 중산층은 사라진 반면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은 적은 돈으로 은행과 모든 국민경제의 중심을 차지했다.”(Harald Schumann, Globalisierung).
콜럼버스가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이다”라고 굳게 믿고 출발한 기독교적 세계화의 꿈은 500년이 지난 오늘날 자본주의라고 하는 보편문명의 승리로 나타났다. 세계화를 통해서 하나님이 승리하신 것이 아니라, 맘몬이 승리한 것이다. 콜럼버스 500주년을 맞아 기고한 글에서 슈피겔지 기자는 오늘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시장이 등장했고, 이 하나님의 현현은 다우존스 주가지수(Dow-Jones-Index)며, 그의 聖體는 미국의 달러고, 그의 미사는 換率調定이고, 그의 나라는 지금 크레물린의 지도자들까지도 찬양하는 자본주의적 普遍文明이다.”(Der Spiegel, 1991. 12. 31, S. 97).
자본의 자유와 그리스도인의 자유
오늘날의 세계화의 실체는 무엇인가? 오늘날 다수의 민중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근본적 원인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것은 자본이라는 맘몬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본이라는 맘몬에게 무제약적 자유를 허락하는 데서부터 인간들은 자유를 상실하고 그것의 노예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의 대 공항은 국가들이 자본의 통제에 실패한 데서 기인했다는 것이 당시 경제학자들 특히 영국의 케인즈(John M. Keynes)의 생각이었다. 자본이동의 무제약적 자유가 위기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본의 흐름이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자금이 무역흑자국인 미국에서부터 무역적자로 시달리는 유럽으로 흘러가지 않고, 반대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흘러감으로써 미국에서 인플레가 생기고 결과적으로 공항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무역과 자본의 왜곡된 흐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944년 7월 미국의 New Hampshire주의 Bretton-Wood에서 모인 경제 각료들의 총회에서 케인즈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제하는 것이 (경제에서) 보다 더 안정적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대표 White는 여기에 대해서 제약을 둔다. “이것은 유동성자금의 소유자들에게는 자유가 제한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은 개개 나라 국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합의된 것은 회원국들의 통화들을 미국 달러에다 고정된 환율을 적용하고, 과도한 채무국에게 필요한 단기융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설립하기로 합의된다. 그리고 각국은 돈이 쉽게 해외로 빠져나갈 수 없게 통제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안정적 금융질서는 향후 25년간 서구 국가들에서 경제 활성화를 가져와서 3배 가까운 경제성장을 가져왔다. 자본이동의 통제를 통한 통화의 안정성이 세계경제와 상품무역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게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고정 환율을 달러에 적용함으로써 달러에다 무제약적 자유를 제공했고, 그것은 그 후 닉슨 대통령이 월남전 비용을 과도한 통화발행으로 충당함으로써 달러의 신뢰도가 떨어졌다. 그 결과 1973년 유럽연합은 달러에 속박된 고정 환율을 폐지하고 자국화폐의 자유를 선언한다. 당시 미국의 중앙은행 총재인 Arthur Burns는 금융시장들의 고삐가 풀려남으로써 “전체 인류에게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자본들은 더욱 자유를 구가하면서 투기 자본화되었고 이 “투기자본이 전체 국민경제를 폐허로 몰아갔다”고 독일 수상 슈뢰더는 1998년 1월 Davos Forum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세계경제포럼의 창설자 Klaus Schwab은 현재의 세계자본주의가 가는 방향을 거꾸로 돌려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이렇게어 인류는 다시 세계적 경제와 국가적 정책 사이의 틈바구니에 서게 되었지만, 세계화된 오늘의 현실에서 국가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왜냐하면 자본은 국가통제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본이 국가를 통제하는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은 초대교회에서는 그리스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의지해서 만들어낸 그리스도론을 통해서 예수의 상을 왜곡했다면, 중세기에는 로마의 법체제와 봉건체제에 의지해서 자기 완결적 성직자 중심의 권력체제를 건설하면서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왜곡했다. 근대기독교, 특히 계몽주의 신학은 종교개혁이 쟁취한 복음의 본질인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당시 강력하게 등장하는 시민계층의 자유, 즉 자본주의적 시장의 자유와 혼동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다시금 왜곡했다.
1520년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에 대해서 자유로운 주인이며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을 섬기는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된다.” 이러한 루터의 글은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대헌장”이 되어 왔다. 그러면 루터는 종교개혁을 시작하는 마당에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명제를 가지고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 우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에 대해서 자유인이라고 하는 것과 동시에 모든 것에 대해서 종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루터는 주-종이라는 대립명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는 자유인과 종, 주인과 신하라는 사회-정치적 개념영역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러한 쌍둥이 개념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데 그에 의하면 주인이 있으면 종이 있고, 종이 있으면 주인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주인이 존재하는 곳에는 다른 사람은 필연적으로 종이라고 하는 사회-정치적 의미와는 달리 루터에게서는 한 사람 그리스도인은 주인이면서 동시에 종이라는 것이다. 루터는 이러한 모순되는 개념들을 두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 즉 영적 인간과 육적 인간이라는 바울의 도식으로 풀려고 했다. 그것은 그의 또 다른 명제인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다(simul iustus et peccator)라는 도식으로도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내적 인간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루터가 주창하는 자유개념은 뭔가 내적 인간과 관련되고 종의 개념은 뭔가 외적 인간과 관계되는 것 즉 이원론적 관점에서 이해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사상이 수용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사회 정치적 지평을 상실하게 되었다. 즉 루터는 영의 자유로부터 시작함으로써 자유를 개인의 절대적 내면성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것은 모든 세속적 권위와는 대립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초월성을 가져오게 된다.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의 존재란 외적인 것이 아니며 내적 인간의 경건과만 관련된다는 것이다.
사회철학자 마르쿠제는 이러한 루터의 자유개념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마르틴 루터의 문서에는 부루좌적 자유개념을 구성하고 특별히 부루좌적 권위형성의 기초가 되는 모든 요소들이 최초로 총집합되어 있다: 말하자면 자유를 개인의 내면세계에만 돌리고, 동시에 외적 인간을 세상정권의 체제에 굴복시키는 것; 이러한 세속적 권력들의 체제를 내적 자율성과 이성을 통해서 초월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 ‘이중 도덕으로’ 인격과 사업(직무)을 갈라놓는 것; 실제적 부자유와 불평등을 ‘내적 자유와 평등’의 결과로 정당화하는 것 등.”
루터교에서 보수적이고 신앙 고백적 전통을 가진 신학자들에서나 자유주의적 문화개신교주의자들의 자유이해에서 나타난 결과는 마르쿠제가 언급한대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영적 인간, 혹은 내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외적 인간은 세상의 권위나 체제에 “복종하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현실적 삶에서 주어지는 부자유와 불평등은 내적 자유와 평등을 통해서 자족하거나 아니면 종말론적 차원으로 밀쳐버린다. 이러한 루터파 신학자들은 종교를 개인적 사안으로 규정하고 순수 내적인 것으로 인정함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얻고 그 결과 “그리스도 자신은 세상에서 사실상 무해하고, 무책임하며,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내면성의 찬양은 독일인의 삶에서 커다란 기만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만물에 대해서 자유로운 주인이며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을 섬기는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된다.”는 루터의 명제는 그 후예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은 영적 삶에서는 자유로운 주인이며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적 삶에서는 만물을 섬기는 종이며 누구에게나 예속된다.”라는 명제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잘못된 개신교의 자유의 이해는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구자유주의라고 하는 부루좌 사회를 거쳐서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에서 그 주인인 맘몬에게 양도하고 그것의 종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이해에서 왜곡되었던 “종 됨과 섬김”이라는 논제를 본격적으로 재해석하고 살려낸 이는 디트리히 본회퍼다. 그는 옥중서신 “저항과 복종”에서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과제를 저항과 복종이라는 도식으로 구체화한다. 그는 1944년 11월 21일 친구며 제자인 Eberhard Bethge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항과 복종 사이의 경계가 원칙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네. 그러나 이 둘은 존재해야 하며 이 둘은 결단을 가지고 파악되어야 한다네. 신앙이 그와 같은 동적이고 생동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지.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우리의 그때그때의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고 그것을 결실 있게 만들 수 있다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순전히 영적 혹은 내적 자유가 아니며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자유다. 여기서 자유는 삶의 전반적 해방을 목표로 하며 따라서 저항과 복종(고백)을 두 축으로 하고 돌며 전개된다. 다시 말하면 문화개신교주의나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회처럼 영적이고 내적 자유를 추구하면서, 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사조, 즉 자본의 자유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사조에 저항하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함으로써 그리스도가 사랑하고 섬기려했던 민중들을 섬기는 것이다. 본회퍼는 저항(자유)의 대상과 복종의 대상을 철저히 전환시킨다. 이러한 자유에서는 섬김의 대상은 역전되어 이제까지처럼 그 대상이 강한 자, 권력자, 부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 억눌린 자, 고통당하는 자가 된다. 왜냐하면 본회퍼에 의하면 하나님은 무력한 분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무력한 사람들을 돕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회퍼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세상에서는 무력하고 약하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만 그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돕는다. 마태복음 8:17절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그리스도는 그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그의 약함과 수난을 통해서 우리를 돕는다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계명은 무엇인가? 본회퍼는 감옥에 걷혀서 내면적 자유를 즐기면서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망각한 채 부루좌적 기득권 세력으로 등장한 독일교회의 개혁을 전망하면서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의 내용을 “기도하며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상에 정의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세계화 시대에 종교 아니 그리스도교의 미래는 착취당하고 가난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저항하고” 그들을 위해서 “복종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롬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