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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7 09:19
미국의 패권정책과 한반도의 평화
글쓴이 : 손규태

서론적 고찰: 미국의 세기의 시작

 

오늘의 강연주제는 신학자의 과제라기보다 국제정치학자가 맡아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 과제를 맡아놓고도 오랫동안 주저했다. 그러나 이 과제를 그대로 수행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함석헌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부채를 별로 갚아보지 못한데 대한 자성이고 다른 이유는 오늘날 미국이라는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세계이해는 물론 자기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결단과 행동을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이해는 곧 우리 자신의 이해와 직결되고 따라서 원하든 원치 안든 미국과의 관계설정이 모든 나라들의 미래운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늘날 미국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정치, 종교,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삶의 전 영역에 관여하고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역사상 로마제국도 단지 지중해 연안국가들과 유럽과 아이일부국가들에게만 패권을 행사했지 미국처럼 전 세계 모든 나라와 그 국민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주지는 않았었다. 따라서 미국의 실체에 대한 바른 이해만이 우리의 실존을 바로 이해하고 바로 결단하고 바로 행동할 수 있는 준거라고 할 수 있겠다.

19412월 미국의 잡지 라이프"(Life)지의 발행인 Henry Luce는 이 잡지서문의 제목을 미국의 세기”(The American Century)라고 달았었다. 벌써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미국은 자기들이 주도하는 시대를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그 후 미국의 세기라는 주제는 우리 시대사의 중요한 개념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히틀러가 구소련연방을 침공하고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하기 몇 달 전 Luce미국의 경험이 미래를 푸는 열쇠이다. 미국은 국제적 국가들에서 큰 형님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20세기 초 전통적 강대국들 예를 들면, 프랑스, 스페인, 합스부르크 제국은 세력들은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영국, 러시아, 미국, 독일 등 서로 경쟁하는 제국들이 지배권을 놓고 다투던 당시 미국의 세기를 말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뭔가 모험적 예단인 같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 수상 글래드스턴(William Gladstone)이나 유럽의 단결을 외치던 독일 황제 빌헬름 II(Wilhelm II) 같은 사람들은 미국이 장차 역사의 중심이 될 것을 예상했었다. 이들이 성장하는 미국의 영향력을 두려워하게 된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당시의 막강한 경제력에 있었다. 물질적 부가 정치적 군사적 영역에도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은 비옥한 토지, 엄청난 지하자원, 급성장 하는 산업생산력, 거대한 철도와 도로망, 바쁘게 돌아가는 항만들, 수많은 백만장자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미국의 국민 총 생산량은 다른 모든 강대국들의 것과 맞먹었다. 그 밖에도 이러한 미국을 가능하게 한 것은 낡은 땅 유럽에서와는 다른 미국인들의 개척정신이었다. 그리고 사회적 상승의 꿈은 매년 유럽으로부터 수많은 이민자들을 끌어들였고 그들은 자신들의 행복과 나라의 부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이후 유럽에 대해서는 고립정책을 쓰고 있었고 중앙정부는 그렇게 강력하지 못했으며 세계에서 두 번째 큰 함대를 가졌으나 군대는 시원치 않았다. 이러한 미국의 존재가 오히려 유럽인들에게는 다행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혜안을 가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미국의 거대한 자원들이 조만간 유럽의 강대국과의 균형을 깨뜨릴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었다. 영국의 외무장관 그레이(Edward Grey) 경이나 젊은 윈스턴 처칠(W. Churchill) 같은 이는 미국을 거대한 산업기계라고 묘사했는데 이러한 진단은 타당한 것이었다. 19148월 유럽의 강대국들에 의한 세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나 서로 적대시 하는 양편 국가들이 연합하여 싸우자 국가 간의 갈등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전쟁의 비용이 계속 증가하자 두 연합국들은 새로운 전쟁 파트너들, 예를 들면 터키, 일본,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스 등을 찾았다. 1918년은 결정적인 해였다. 그들의 군대는 서부전선에서 승부를 결정하지 못한 교착상태에 있었다. 그렇지만 역사가 테일러(A. J. P. Taylor)가 지적한대로 당시 세계의 균형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국가는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나라 미국이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미국의 존재가 서서히 국제정치의 중심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이 들고 나온 민족자결주의가 그 대표적인 표징이었다. 그리고 유럽국가들 안에서 승리 없는 평화, 대양(大洋)의 자유와 새로 강조된 국제적 질서는 계속해서 정치적 논의를 바꾸어 나갔다. 그러나 1919년 미국은 아직까지는 우유부단한 강대국으로 남아 있었다. 미국의회는 고립주의와 중립성을 결의했다. 윌슨의 작품인 국제연합은 더 이상 고려되지 않았다. 1917/18년 엄청나게 무장을 강화한 미국의 군대도 똑같이 뒤로 물러나 있었다. 엘리트 군대인 해병대를 해체하자는 제안까지 나왔고 심지어 국무성, 즉 외무부라는 기구의 유지를 놓고도 논쟁이 있었다. 외국의 비밀문서들을 해독하는 비밀기구가 폐쇄되기도 했다.

경제적 영역에서는 자기중심적 정책을 폈고 국민총생산에서 해외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에 없이 줄었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외국에서의 미국의 경제적 재정적 정책의 영향력은 계속 증가했다. 이것은 1929년 미국의 경제공항으로 인한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충격 다음 이어지는 국제적 어려움들을 반증해 주었고 미국의 무역의 본격적 목조르기가 다음 해에 도입된 Smoot-Hawley 관세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미국이 거부했지만 세계는 경제적 구원선의 닻을 미국에서 찾았다. 미국은 1930년대에는 여전히 자연스럽게 세계무대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그와 쌍벽을 이루었던 소련처럼 단지 변방에 서있게 된다. 이 시기로 말하면 약화된 서구의 민주국가들이 등장하는 파쇼적 독재국가들과 직면해야 할 때였다. 이러한 진기한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그의 자문들은 히틀러와 일본의 군사지도자들의 점증하는 침략행위가 없었다면 미국을 고립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립주의자들의 로비는 우선 유럽과 태평양에서의 전쟁에 미국의 개입을 막고 위협들에 대처해서 어떤 전략을 세우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세기의 세계화

 

그러나 독일이 프랑스와 유럽의 약소국들을 점령하고 소련이 공격을 당하고 영국이 포위되자 미국은 국제정치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게 된다. 이것이 Henry Luce1941년 자기 국민에게 외쳤던 미국의 세기의 본격적 실행이고 20세기 후반을 미국적인 것으로 바꾸게 한 것이다. 사실상 미국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온 것이다. 미국만이 파쇼적 국가들, 독일과 이탈리아 등을 군사적으로 대항하고 파산한 여러 연합군들을 외국 자본법으로, 즉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 전쟁이 확대될수록 미국의 힘이 점점 가시화 되었다. 독일 잠수함이 미국상선 한 척을 침몰시키면 세 척을 만들어 냈었다. 비행기 한 대가 격추되면 미국은 다섯 대의 비행기를 생산했었다. 1944년에만 96318대의 비행기를 생산했고 두 주일마다 항공모함 한 척씩을 진수시켰다. 새로운 아직 시험해 보지 않은 원자탄을 생산하기 위해서 수십 억 달러의 돈을 문제없이 조달했다.

이미 1945Luce의 외침이 전 세계 여러 지역들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하든지 원치 않든지 미국은 어디서나 큰 형님”(Big Brother)이었다. 전후 재건사업에 자금을 투여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미국은 이제 가장 거대했던 해양, 무역, 금융의 국가로서 대영제국의 세계를 해체시켰다. 미국은 헤게모니 세력으로서 새로운 국제건설에서 주된 설계사가 되었다. 1944년 미국 브레턴우즈(Brettenwood)) 협의회에서 만들어진 기구들(세계은행과 세계통화기금)이 런던이 아니라 워싱턴에, 또 유엔이 제네바가 아니라 뉴욕에 본부를 두게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의 군대는 엄청나게 무장되고 워싱턴은 원자탄을 독점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해외에 주둔했던 육군과 공군은 부분적으로 철수했거나 감축되었다. 그리고 많은 미국인들은 심지어 전쟁 이전의 고립주의로 되돌아 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소관계의 악화와 냉전의 시작으로 그와 같은 계산은 빗나갔다. 유화정책과 고립주의 단계에서 얻은 교훈에 의지하는 미국의 지도적 정치가들은 급히 자신들의 정책방향을 바꾸고 그것을 원했던 모든 민주국가들에게 도움을 약속했다. 투르만 독트린의 시작이다.

미국은 그리스, 터키, 다른 나토연방들, 일본, 한국, 오스트렐리어, 중남미 국가들에게 많은 군대를 주둔시키고 군사원조를 제공했다. 미국의 전폭기들이 이전의 영국공군기지들에 주둔했다. “미국의 평화”(Pax Americana)가 보편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른 나라들에 대한 미국의 힘은 이전 로마제국 이래 이렇게 강하게 구형화 된 일이 없었다. 냉전시대 엄청난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가지게 된 소련, 동유럽과 제3세계의 소련의 동맹국들, 이들의 경쟁적 이데올로기는 세계인들의 눈에는 하나의 양극체제, 즉 두 개의 강대국들의 세계로 비쳐졌다. 그러나 소련은 불완전한 강대국이었다. 소련은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점차 토대를 상실하고 마침내는 해체되어 가는 강대국이었다.

월남전과 브레턴우즈 체제의 약화 그리고 1981년 미국의 이란인질극 구출의 실패, 유럽과 일본의 부상 등으로 미국의 위상과 군사력의 약화를 보여주었으나 80년대 초부터 미국경제의 놀라운 발전으로 미국의 지도적 역할은 다시 회복된다. 이러한 기업가정신의 갱신은 결정적 조치들을 수반하는데 그것들은 생산노동자들의 세분화, 노동조합 영향력의 약화 내지 무력화, 수백만의 불안전한 시간제 일자리의 창출, 저임금국가들로의 생산시설 이전 등을 낳았다. 나아가서 70-80년대 급속하게 발전한 새로운 기술들이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데 기여했다. 컴퓨터, 통신체계, 새로운 소프트웨어 전 지구적인 통신네트 등은 단지 비 중앙집권적 사회와 경제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지식혁명을 가져왔다. 동시에 이것의 유용성은 수직적 소련이나 유럽과 일본과 같은 강력한 관료체제 사회보다는 미국과 같은 다원적 사회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지식혁명이 가져온 기술은 미국군대의 전투력 향상에 이용되었고 미국의 전쟁기계들은 전술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세계 어느 다른 나라들의 전력과도 겨루고 그것들을 능가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제국주의화

 

1990년 구소련의 붕괴와 동유럽의 해체이후 미소 양극으로 구성되었던 냉전체제는 사라지고 미국을 정점으로 한 일극체제의 새로운 세계질서로 개편되었다. 당시의 세계 정치적 분위기는 냉전체제를 벗어남으로써 국제협력을 통한 새로운 세계평화질서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동서 냉전체제의 해체는 곧이어 남북의 열전체제로 대치되었다. 그 동안 미소 양극체제 하에 있던 국가들의 정치적 자유는 곧 미국에 대한 이들 국가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새로운 좌표들이 설정된다. 유고내전, 코소보 전쟁, 체첸 전쟁 등은 미국과 러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전쟁이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주의가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908월에 일어난 걸프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석유패권을 노린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초강대국 미국에 의해서 단독으로 결정되고 러시아와 유엔 등 세계 모든 국가들이 협력해서 싸운 전쟁이다. 승리자는 홀로 미국이었고 그 승리의 결과물들은 미국의 것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 알카에다에 의한 뉴욕의 무역센터가 공격을 받아 무너진 후에 미국의 조지 부시대통령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의 전쟁도 유엔의 승인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단독 전쟁이었고 영국과 몇 개의 나라들만이 여기에 부수적으로 협력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때 우리나라도 여기에 군대를 보냈는데 그것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것보다도 더 굴욕적 형식을 취했었다. 미국은 승리했고 사담 후세인은 제거되었지만 이라크에 평화는 주어지지 않았고 민주화도 실현되지 않았다. 이 때부터 미국은 세계국가들의 보스로 모든 것을 단독으로 결정했고 러시아나 유엔 같은 국제기구도 여기에 따라야 했다.

이러한 미국의 패권주의는 2001911일 미국무역센터에 대한 알카에다의 테러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었고 이 패권주의는 이후 더욱 노골화되었다.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 파키스탄과 같은 미국에 비협조적 국가들도 협조해야했고 그것이 국제 정치적으로 현실적이라고 생각되었다. 20021월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미국은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을 곧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과 동일시했다. 이렇게 악과 선이라는 종교적 이분법을 통해서 세계를 해석하는 미국의 보수적 기독교의 이데올로기가 정치적 영역에서 관철되고 이 종교적 불관용이 곧 정치적 불관용으로 되어 이제까지의 국제 정치적 대화와 협력관계를 파괴한다. 이렇게 냉전시대에도 통용되었던 대화와 협력이라는 국제정치의 룰이 사라지고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마저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국가 사회로서의 국제질서의 틀이 사라지고 일인 보스국가에 대해서 복종해야 하는 다수의 국가들의 관계로 전락함으로써 국제질서는 전적으로 군사력에 의해서 조정되는 미국식 제국주의 체제로 나아간다.

 

일본의 정치학교수 후지하라 기이치(藤原歸一)世界라는 잡지(20025월호)에서 민주주의 제국이라는 글을 통해서 오늘날의 미국의 실체를 분석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제국은 다음 네 가지 형태로 분류될 수 있다고 한다. 첫째 강력한 군사대국으로서 제국, 둘째 세계의 여러 민족들을 지배하는 국가로서 제국, 셋째 해외의 식민지 국가들을 가지고 있는 제국, 넷째 세계경제에서 지배적 세력으로서 제국 등이 그것들이다. 물론 제국에 대한 이러한 네 가지 범주들은 전적으로 독자적 범주들은 아니고 서로 상호 연관된 범주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강력한 국사대국으로서의 제국은 여러 민족을 지배하는 세력일 수도 있고 또 해외에 식민지를 가진 세력으로서 제국은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세력으로서 제국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강력한 군사대국으로서 제국은 서양역사에서는 로마제국,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한나라나 당나라 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제국의 특징은 군사력을 통해서 이른바 로마의 평화 즉 경쟁하는 지역 국가들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제국은 억압당하는 국가들의 동맹을 통해서 해체되거나 아니면 내부의 모순으로 인해서 군사력이 약해짐으로써 해체되는데 이 때는 국제정치가 새롭게 시작되고 국제 정치적 차원에서 협력과 대화의 시기가 등장한다. 이러한 예는 유럽에서 17세기 30년 전쟁 동안의 종교전쟁 이후에서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세계의 여러 민족을 지배하는 세력으로서 제국은 유럽에서 합스부르크가, 로마노프가, 혹은 아시아에서는 오스만 왕조로서 이들은 18세기 국민국가의 출현으로 해체된 제국의 전형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다민족을 지배하는 국가로서의 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완전히 사라진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영국과 프랑스 등은 국민국가로 성장했지만 이들이 하나의 제국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세계로 나가서 다수의 국가들을 식민지 국가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약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세계경제에서 지배적 제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해서 살펴보자. 16세기 스페인, 18세기의 프랑스 그리고 19세기의 영국의 제국과는 달리 미국의 제국으로서의 특성은 우선 지역적으로 전 세계적 차원에서 제국이며 동시에 동맹체를 갖지 않은 단독적 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제국으로서 가장 큰 특성은 삶의 제반 영역에서의 제국 특히 경제영역에서의 제국이다. 미국은 1944년에 만든 국제적 경제기구들, 세계은행이나 세계금융통화기금을 통해서, 그리고 GATT146개국이 참가하는 WTO로 재구성함으로써 세계무역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냈다. 이것은 국민 국가적 주권 하에 있던 세계시장을 미국의 통제 하에 둠으로써 국제자본의 이동과 시장의 자유를 극대화한 조치이다. 그 다음으로는 NAFTAAPECK 등 지역협력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세계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지역적 차원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리고 냉전시대의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던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편입시키는데 성공했다. 중국시장의 편입은 앞으로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의 경제적(민주적) 제국주의

 

이러한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지구적 체제의 구축은 계속되는 시장의 통합을 앞두고 국민국가의 권력의 약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시장의 통합에 수반되는 정부와 국제기구의 총체가 사실상 오늘날의 제국, 즉 미국이 여타의 주권국가를 무력화하는 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제국개념은 시장결정론으로 해석되며 따라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시장과 제국과의 관계이다. 근대이전의 제국들은 강력한 군사력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내부의 군사력 대결로 인해서 붕괴되었다. 그러나 근대 자본주의는 군사력보다는 시장에서 지배하고 수탈하기 때문에 그 시스템이 보다 공고하게 지속될 것이다.

오늘날의 제국에서 시장은 통합적이지만 정치는 다원적인 것이 특징이다. 정치는 다원적이나 경제는 일원적이다. 따라서 이전의 제국에서처럼 미국은 다른 나라들의 정치적 통합을 강요할 필요가 없으며 단지 정치적 힘이 강해서 시장을 강제로 통제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세계화 혹은 지구화에서 정치적 다원성은 용인되지만 경제적 다원성은 절대로 인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경제적 혹은 민주적 제국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정치적 다원주의에 기초한 미국의 경제적 혹은 민주적 제국주의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지역개입주의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과거의 제국과 같이 해외에 영토를 갖지 않고 있다. 쿠바나 필리핀과 같이 미국의 영토였던 지역들도 과거의 식민지에서 독립했고 이런 의미에서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민족자결주의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정 국가들을 미국의 군사기지화 하고 동시에 특정 국가들을 동맹국으로 지원함으로써 지역개입을 지속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식민지 독립 국가들을 경제적 정치적으로 지원하고 냉전체제에서는 좌경화와 공산화를 방지함으로써 지속적으로 동맹국가로 삼아 왔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나 일본의 주둔하고 있는 미국군대가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미국은 이들 국가들에서 통치는 하지 않지만 개입은 계속하고 있다. 미국은 이들 동맹국들을 지원함에 있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이데올로기로 내세우지만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인도주의적 가치들이 아니라 협력자를 구하고 자기 영향력 하에 두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문관들이나 CIA요원들이 활동했다. 만일 동맹국이 위기에 처하면 군사개입도 마다하지 않는데 필리핀 개입, 이란의 모자데크 전복, 스마트라 분리공작, 라오스 개입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냉전시기의 지역개입을 우리는 더러운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공산주의를 막고 민족주의를 억압함으로써 미국의 국익추구에 혈안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이 제3세계에 만들어 놓은 군사정부의 붕괴와 민주화 신장으로 세계 각국에서 정치적 변화가 있었지만 미국의 위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필리핀 정권의 몰락으로 레이건 대통령이 충격을 받았으나 클린턴 대통령 정부에 들어와서는 민주화와 인권을 미국 외교의 목적으로 내세우면서 지역개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미국은 직접 개입하지 않지만 내외의 반대세력을 이용하여 미국에 반대하는 정권들을 붕괴시킨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은 식민지 없는 제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미국이라는 본성과도 상응한다. 미국은 다민족, 다문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Star Track에 나오는 인물들에 의해서도 대변되는데 이러한 미국의 다양성이 대외관계에서도 이용되지만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미국은 일방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일방성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언급했기 때문에 생략하고 군사적 측면에서만 살펴보자.

경제, 지역개입, 민족에 의존치 않는 통합원리로 볼 때 미국은 민주주의적 즉 데모크라시 제국이다. 특히 군사적 우위에서 미국은 제국이다. 미국은 적어도 군사적 측면에서는 다른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일방적 억제력을 갖고 있고 다른 국가들이 경쟁할 수 없는 세계규모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제국들, 로마제국,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은 제국이었지만 세계적 차원에서 제국은 아니었다. 러시아나, 유럽연합, 중국 등도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적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군사행동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유엔도 미국의 독자적 군사행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특히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는 유엔이나 다른 나라의 지원 없이 미국은 군사행동을 취했고 전쟁에서 승리했다. 걸프전에서도 미국은 다른 나라들의 지원을 받았지만 싸움은 주로 미군들이 했다.

 

이러한 데모크라시 제국으로서의 미국은 부시 정권이 들어선 이래 국가 간 협조보다는 단독행동주의로 나아가고, 국제기구의 협력을 통해서 보다는 미국의 파워 특히 군사력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평화의 문제

 

데모크라시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이러한 자세는 권력집중과 주변 국가들의 주권약화 내지는 소멸로 나아가는데 특히 미국에 저항하고 있는 국가, 이라크, 북한, 이란 등 이른바 악의 축 국가들에서 그러하다. 이라크는 이미 주권을 상실했다. 이것은 세계평화와 민주주의 신장이라는 미국의 이데올로기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고 유엔도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 실질적으로 세계정부의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라고 받아들이는 정치적 현실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서 투쟁해야 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러한 현실주의를 강요된 선택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곧 미국이라는 대국이 세계정부를 대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평화와 관련해서 세계정부를 대행하는 미국이 동시에 한 국가라는 현실이 문제가 된다. 미국은 하나의 국가로서 자국의 이익과 자국기업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여타의 나라들은 이러한 미국에 저항할 수 없으며 미국과의 협력에서 이탈할 수 없고 또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관계의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여기서는 실제로는 협력은 없고 귀속만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항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곧 테러리즘이며 이것은 오늘날의 강요된 세계질서에서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상황이 오늘날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평화는 곧 세계의 보편적 평화가 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북한이 속해 있는 동아시아의 선택은 어떤 것일까?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주로 대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공산주의 확산방지와 여기에 따른 한국과 일본 등과의 동맹체제 유지였다.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본과 한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책임을 묻는 것을 회피하면서 일본의 군국주의 극우세력과 한국의 친일파와 우익세력들을 앞세워 동맹세력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러한 반공주의와 그 지원 세력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봉쇄정책은 닉슨 대통령의 중국과의 접근과 화해를 통해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다. 여기서 미국은 이제까지의 힘에 의한 봉쇄정책을 중단하고 중국과 일본 한반도에서 지역균형을 잡아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해 간다. 여기서 미국과 미군들은 세 나라로 하여금 이른바 병뚜껑역할을 통해서 기능을 하게 한다. 병속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튀어나올 수 있는 온갖 위험을 힘으로 막고 있는 역학을 미군이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으로서는 중국의 모험주의를 통제하기 위해서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중국으로서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막기 위해서 미군의 존재를 승인한다. 한국은 위의 두 나라의 모험주의나 군사적 대국화 그리고 북한에 대한 불신 때문에 미군의 존재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동아시아의 평화는 팍스 아메리카 즉 미국의 힘에 의해서 억제된 평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세기 초 영국인들이 로마의 평화를 두려워했다라는 역사학자 탁키투스의 말처럼 지금 한반도에서 평화는 국가들 사이의 화해와 협력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강요된 평화, “공동묘지의 평화60년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한마저도 미국의 평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진정한 평화는 미국의 병뚜껑 전략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전략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팍스 아메리카나에 의한 평화가 한반도에서 참된 평화가 아닌 것은 간략하게 말해서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관한 한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 정책은 오늘날 그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무력사용에 대응하여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 핵무기를 만들고 있고 지금은 그것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따른 막대한 군사비 지출이 북한 주민들의 인간으로서의 삶의 제반조건들을 희생시킨 채 고통을 당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봉쇄정책에 맞서고 있지만, 경제는 파탄에 이르고 인민은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미국의 동맹자로서 남한의 상황은 어떤가? 정치적 주권이 미국에 예속 당해 온 것은 한국전쟁 직후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한국군의 지휘권이 이양된다고 하지만 미군은 철수하지 않고 그 역할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IMF 사태이후 그리고 WTO 등장 이후에는 경제적 주권은 거의 상실한 상태다. 대부분의 사기업들은 말할 것도 공기업들에서도 엄청난 지분이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의 손에 들어갔다.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미국인들의 손에 들어갔다. 몇 년 전에는 제일은행이 몇 일 전에는 한미은행이 미국인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 이런 것을 말하자면 한이 없다. 김대중정부는 공기업 가운데 알짜배기인 철도와 한전마저 팔아먹지 못해서 안달을 했었다. 당시 정부는 경기부양의 이름으로 수많은 카드를 남발함으로써 전 국민을 채무자로 만들었다. 이들이 진 빚은 우리나라 5년 예산에 버금가는 700조 가량 된다. 700만 명의 빚쟁이들 가운데 370만 명이 신용불량자들이다. 이들은 노숙자로, 부녀자 납치강도로 자살자로 변했고 수많은 가정들이 파탄 나고 일년에 수천 명씩 자살한다. 한국경제는 파탄지경이다. 한국의 내수경기는 완전히 죽었다. 빚진 사람들이 모슨 돈으로 물건을 사겠는가? 물건을 팔지 못하니까 공장 문 닫고, 공장이 문 닫으니까 실업자가 늘어난다. 한국경제의 회생을 말하는 자들이 있으나 이런 상황에서 회생은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경제회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이명박정부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른바 기업프렌들리 정책을 폄으로써 대기업의 감세정책,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으로 막대한 이윤을 기업가들에게 몰아주고 있고 4대강 사업을 통해서 대기업 토목세력들을 지원함으로써 중소기업이나 내수경기는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금융시장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은행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게 함으로써 800조가 훨씬 넘는 가계부채가 국민의 삶을 옥조이고 있다.

이 모든 것들 배후에는 미국의 평화 즉 데모크라시 제국이 도사리고 있다. 악마의 세력인 사회주의만 붕괴되면 이 세상에는 평화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던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의 예언과는 달리 오늘날 미국에 의해서 세계화된 새로운 질서에서는 7초 만에 어린이 한 명이 굶어죽고, 3억의 인구가 하루에 1천 원 미만의 돈으로 살아가야 한다. 세계인구의 0.4%가 세계의 부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이라는 데모크라시 제국 미국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계질서고 미국의 평화의 참 얼굴이다. 세계인들은 바로 이 미국의 평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결 론

 

저는 정치학자가 아니고 신학자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몇 가지 세계 평화를 위한 대안들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쇠퇴하고 황폐해진 낡은 국제기구인 유엔을 재건함으로써 새로운 민주주의적 국제협력의 틀을 마련하여 미국의 독주와 패권을 통제하고 지역분쟁과 세계적 차원에서 경제적 정의를 국제적 협력을 통해서 해결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WTOIMF, 세계은행 등과 같은 국제기구들을 보다 민주적 제도로 개선해서 미국이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결정권들을 제약함으로써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나 거대기업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경제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 따라서 미국의 국제지배가 아니라 국제협력을 위한 각국과 불럭 사이의 협력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밖에 환경이나 교육 등 국제적 기구들이 좀더 자율성을 가짐으로써 미국의 일방성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미국은 도쿄 기후협약이나 핵무기금지 확산과 같은 협약에서 탈퇴함으로써 국제관계에서 독불장군이 되었으나 이것은 미국의 강함을 나타내기보다는 오히려 약함을 드러낸 것으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역행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을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들 정의, 평화, 인권 등을 통해서 극복할 때 미국의 평화가 아니라 인류의 평화가 가능하다.

둘째 지역협력 기구의 강화를 통한 미국의 일방성의 통제가 요청된다. 나프타나 이펙 등은 지역협력 기구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함으로 공정성이 상실된 기구들이다. 유럽 공동체와 같이 미국의 패권주의와 일방성을 통제할 수 있는 기구가 동아시아에도 만들어짐으로써 미국이 국제협력으로 나오게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징조는 이미 유럽 국가들이 이라크 전쟁에 참가를 거부한 예와 현재 베이징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한 6자 회담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북행문제의 경우 유엔보다는 현재의 6자회담이 더 좋은 해결모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될 때 국제적 공공영역이 확산될 수 있다.

셋째 새로운 평화운동으로 등장하고 있는 세계의 NGO운동의 강화가 요청된다. 전통적 주권국가들이 미국의 패권주의에 의해서 힘을 잃고 있는 현실에서 새로 등장한 시민운동들은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서 세계적 차원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해서 일하고 네트웍을 형성해 가고 있다. 이 단체들은 이제는 개개 국가들의 국내적 문제를 넘어서 지구화된 조건에서 세계적 차원의 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이상과 조직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것은 함석헌 선생님의 생각을 밀리자면 씨알들이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힘의 제국을 씨알들이 추구하는 사랑과 정의 그리고 평화의 제국으로 만들어야 한다.

함석헌 탄생 103주년 기념 세미나 폭력극복 함석헌의 평화사상.”함석헌 탄생 103주년 기념 세미나(200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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