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역사적 회상
19세기 말 20 세기 초에 개신교는 조선반도에 선교를 시작했다. 이 시기로 말하자면 서양세력의 아시아 침략이 그 절정에 달했고 그 물결을 타고 서구화와 근대화에 일찍이 성공한 일본이 아시아 대륙에서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세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1860년 명치유신을 단행한 일본은 화혼양재(和魂洋才)의 기치를 들고 서양문물을 신속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서구식 근대화와 산업화에 성공하고 그 여세를 몰아서 아시아에서 새로운 맹주로 등장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일본은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세력을 잡고 있던 중국과의 전쟁(1896년)에서 승리하고 곧이어 강대국 러시아와의 전쟁(1904년)에서도 승리함으로써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아세아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 일본의 승리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조선은 마침내 독립된 자주국가로서의 주권을 상실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조선반도는 역사적으로 몽고와 중국의 역대정권들의 침입과 그로 인한 불평등 조약 등으로 인해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을 당해왔었지만, 이렇게 국가와 국민의 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일본에 의한 것이 처음이다.
그 후 근대적 산업기반이 취약했던 조선반도는 서구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서 광산 등 원자재개발권을 박탈당했고 철도 등 기간산업의 부설권들이 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산림마저도 채벌권이 외국인의 손으로 넘어간다. 오랫동안 조선인들의 삶의 기초가 되었던 농업기반마저도 일본제국주의 세력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수탈당했다. 따라서 조선반도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과 일본제국주의 세력의 산업화를 위한 원료공급기지와 그들의 잠재적 시장으로 되었고 부족했던 일본본토의 식량을 충당하는 공급기지로 전락하게 된다.
그뿐인가? 식민지화된 조선의 인적 자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일차적으로는 이들 서구열강과 일본제국주의 세력들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자원 갈취를 위한 값싼 노동력이 되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내에서 값싼 노임을 받고 탄광노동자, 철도건설 현장의 잡역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그들이 점령했던 여러 나라에 강제로 끌려가서 노동력으로 전락했다. 농지를 빼앗긴 다수의 농민들은 도시에서 시작된 일본인들의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이 되거나 아니면 빼앗긴 땅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리고 농토를 잃은 수많은 농부들은 만주나 연해주 등지로 삶의 터전을 찾아서 대거 이주하거나 추방되었다. 이렇게 조선반도가 국가로서의 주권을 상실함으로 인해서 조선민족이 당한 시련과 고통은 여기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1945년 그 동안의 독립투쟁의 성과와 더불어 미국과 소련 등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함으로써 국가의 주권을 다시 회복하고 근대적 국가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한을 점령한 미군과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의 헤게모니의 대결로 인해서 국토와 국민은 분열되고 통일된 자주독립국가의 꿈은 깨어지고 만다. 이데올로기적 차이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들 사이의 정치적 반목과 신탁통치를 둘러싼 갈등은 통일된 하나의 근대적 국가 수립을 실패하게 한다. 그 결과 남북에서 각기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미국과 소련은 조선민족이 자주적 민족국가 건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핑계로 남한에서는 미국에 의한 군정이 실시되고 북한에서도 소련에 의한 통치가 시작된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서 미국은 이승만을 부추겨 1948년 8월 15일 남한의 단독정부를 세우게 했고, 여기에 자극을 받은 북한은 같은 해 9월9일 소련의 지원을 받아 북한정권을 수립하게 됨으로써 마침내 남북한의 민족적 분단뿐만 아니라 국가적 분단이 완성되었다. 이는 곧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미국과 소련이 각 점령지에서 일단 자신들의 헤게모니 지배를 완성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남북의 정치적 민족적 분단의 완성과 미국과 소련의 헤게모니 장악의 완성은 결과적으로 세력권의 분배로 인해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정착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었다. 이들 경쟁하는 양대 세력 가운데 어느 하나가 한반도에서 헤게모니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결론에서 나온 잠정적 합의일 뿐이다. 한반도의 38선을 경계선으로 소련을 정점으로 한 사회주의권과 미국을 정점으로 한 자본주의권의 대결, 즉 동서간의 냉전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미소를 중심으로 한 양대 진영 사이의 냉전체제는 매우 불안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곧 1950년 한국전쟁을 통해서 냉전은 곧 열전으로 나타났다. 한국전쟁은 북한에 의해서는 미국의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남북통일을 완성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남한에게는 공산주의자들의 세력 확대를 위한 침략전쟁으로 규정되었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과 유엔의 기치 아래 미국과 15개국의 지원을 받은 남한 사이의 전쟁은 수백만 명의 인명살상과 전국토의 황폐화를 낳고 3년 만에 결실 없이 끝났다. 이 전대미문의 내전이 끝나고 휴전협정이 체결되나 갈등과 대립의 요소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2. 냉전체제 이후 세계의 새로운 질서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전쟁으로 충돌했던 동서 양대 진영의 냉전체제는 서구에서는 1980년대 초에 몰타에서 있었던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미국의 레이건의 회담을 통해서 종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얄타회담 이후 시작되었던 동서간의 냉전체제는 몰타에서 끝났던 것이다. 이러한 냉전체제의 종식은 몇 가지 세계질서의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소비에트 연방 및 동구권의 해체를 가져옴으로써 세계는 양극체제에서 다극체제 혹은 일극체제로 나아가게 된다. 정치적으로 보면 세계는 미국을 정점으로 한 일극체제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경제적으로는 다극체제로 볼 수도 있다.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유럽공동체와 미국과 중남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나프타 그리고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경제권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세계를 이데올로기 내지는 개발의 척도에서 분류하던 방식 즉 미국과 서구유럽 및 일본 등의 자본주의적 선진제국을 지칭하던 제1세계, 그리고 소련과 동구라파 등 사회주의적 체제를 가지고 경제적으로 비교적 발전되었던 제2세계, 그리고 아시아와 중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에 있는 정치적으로도 민주화되지 못했고 경제적으로도 낙후되었던 나라들을 지칭하던 제3세계라고 분류하던 방식은 이제 사라지게 되었다.
둘째 정치적 냉전이 끝나고 세계질서가 경제적 불럭 단위로 재편되어감에 따라서 국가들 간에는 경제와 무역의 영역에서 열전의 양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미국과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주도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이래로 이제까지의 보호무역장치들이 철폐되고 무역자유화가 본격화되면서 예견되었던 일이기도 하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표방되는 오늘날의 경제와 무역의 원리에서는 과거의 민족국가 단위에서의 경제활동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따라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완전한 자유의 시대가 열렸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하여 금융자본이 과거의 산업자본을 지배하게 됨에 따라서 세계 경제 질서는 미국의 막강한 금융자본에 전적으로 종속되게 된다. 미국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을 앞세워서 세계금융시장을 장악하고 WTO 체제를 통해서 세계무역질서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국가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한 국가 안에서 계층 간의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되어 이른바 20대 80의 사회가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국가들 사이의 평화뿐만 아니라 각 국가들 안에서 “사회평화”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은 상황이 점차 증대하고 있다.
셋째 새로운 세계질서의 형성에서 이제까지의 이데올로기적 대립 대신에 민족 간, 종교간, 문명 간의 갈등이 새롭게 증폭한다. 우선 소연방의 해체로 인해서 이데올로기의 사슬에 묶여 있던 민족들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다수의 민족국가들이 강제화 되었던 연방으로부터 독립했다.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 독립했고 우크라이나와 우즈베키스탄 등 회교권 국가들이 독립을 했다. 완전한 자주와 독립의 쟁취를 위해서 투쟁하고 있는 체첸공화국 사태는 아직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또 유고연방의 분열과 함께 세르비아 및 코소보 전쟁은 민족 간 종교 간의 갈등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갈등은 이미 오래된 것이지만 이전에 식민지화되었던 회교권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증오심은 단순히 탈 식민지적 민족의식을 뛰어넘는 종교적 문화적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 20003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무역세터에 대한 알카에다의 테러공격은 이러한 제반 갈등표출의 새로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즉 전 세게적으로 테러라고 하는 새로운 방법이 약자들이 강자들에게 대항하고 가하는 투쟁방식이 된 것이다.
넷째 대부분의 선진 공업 국가들이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군대와 군비를 축소하고 복지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동서냉전체제가 해소되고 나서 특히 유럽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하고 군비의 축소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여기에서 파생되는 재정을 국민복지에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 등 선진국들의 전통적 군수산업체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으며 이들은 한국이나 이스라엘 그리고 중동과 같은 갈등지역에 무기를 수출함으로써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3. 새로운 세계질서 안에서 한반도의 현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소련의 붕괴와 동구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체제가 종식되고 동서 간에는 나름대로의 평화체제가 수립되었으나 그것의 그 냉전체제의 시발점이었던 한반도의 오늘날의 현실은 어떠한가?
1950년대 초 한국전쟁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에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대결적 냉전체제가 지속되었다. 그것은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론”이나 김일성 정권의 “적화통일론”으로 나타난 결과인데, 이러한 불신과 적대감은 지난 30년 동안의 군사정권 시절에도 변함없이 지속되었고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반세기동안 남북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해결의 시도가 전혀 없지 않았으나 수십 차례에 걸친 군사적 충돌로 인해서 이러한 해결책들은 사실상 그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이러한 갈등과 충돌은 사실상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던 역대 정권들의 안보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남북간의 갈등은 인위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남북간 관계는 거의 전적으로 “군사적 안보”의 개념에서만 이해되었으며, 정치적 해결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이런 군사적 대결상황에서도 몇 차례 정치적 해결의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7.4 남북공동성명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 성명을 통해서 남북은 통일을 위한 자주, 평화 그리고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합의한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의 분단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 공동성명은 월남의 공산화라는 외적 조건의 변화와 국민적 합의가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는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 이후 동서 냉전체제의 붕괴와 함께 남북이 각기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이룩된 화해의 분위기 속에 1992년 노태우 정부시절의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었다. 이 기본합의서는 화해를 위한 정치회담, 불가침과 관련된 군사회담 그리고 교류협력과 관련된 경제회담 등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매우 훌륭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서도 초고위급 수준이 아닌 총리급에 의해서 서명되었고 양국 정부의 실천의지의 결여로 인해서 아직까지도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것들보다 격상된 최고수준에서 이루어진 남북간의 합의서는 2001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6.15공동성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성명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기초로 보다 구체적으로 남북한은 정치회담뿐만 아니라 인도주의 차원에서의 적십자회담을 통한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 경제적 차원에서의 남북한 경제협력을 위한 회담 그리고 군사회담까지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을 계기로 남북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의 약간의 전진이 있었다. 그러나 9.11 미국에서의 테러사건과 거기에 대응한 남한 내의 제반 비상조치들의 발동으로 인해서 구체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다시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고 여기서는 다수의 경제적 합작사업들에 관한 합의가 있었으나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에 대한 대결정책으로 무산되었다. 금강산 관광사업과 남북이산가족 상봉사업이 중단되고 그 동안 남북협력의 커다란 성과로 되어온 개성공단 사업도 매우 위축되어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 북한에 의한 연평도 포격사건 등 전쟁발발 직전에 까지 나아갔다.
아직도 남북에는 각각 100만이 넘는 정규군이 248킬로의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각각 300만 이상의 예비군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군사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남한에는 그 외에도 4만에 가까운 미군들이 전술핵무기와 최신장비로 무장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전략핵무기 등으로 무장한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과 전투기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들의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남한은 매년 30조에 달하는 군비를 사용하고 있으며 국군의 현대화와 전력증강 프로그램에 따라서 앞으로 몇 년 동안 최신예 전투기 구입을 위해서 5조원 이상을 지출할 예정이며 재래식 무기의 영역에서도 대량의 현대무기의 구입을 예정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한은 새로운 세계질서의 개편에도 불구하고 군대의 감축이나 무기감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매년 국방비를 10%이상씩 증강시키고 있다.
북한도 그 동안의 악화된 경제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군대나 무기의 감촉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남한의 20분의 1에 밖에 미치지 못하는 경제력과 그로 인한 심각한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서 재래식 무기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북한은 자기방어를 위해서 핵무장을 꾸준히 준비해 왔으며 그 동안의 국제기구에 의한 핵사찰이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통해서 다수의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아가서 북한은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탄 개발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냉전체제가 시작되었던 한반도는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대결과 함께 첨예하게 무장된 군사적 대결의 장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국가 간 갈등을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군사적 안보에만 의존하고 있는 극우적인 미국과 아시아에서 다시 군사대국을 꿈꾸는 일본의 극우정권의 등장으로 인해서 한반도에서의 긴장은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 9.11테러사태이후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무력위협, 나아가서는 핵 위협을 계속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전쟁발발 가능성은 지난 60년간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따라서 한반도는 중동지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핵)전쟁의 확률이 높은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군대나 무기수준으로 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게 되면 60년 전의 한국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4. 한반도에서 개신교 평화윤리학의 논거들
앞서도 언급한대로 개신교가 한반도에 선교되고 나서 한반도에서는 여러 차례의 전쟁과 그 결과로 인해 한반도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36년간의 일본강점이 끝나고 해방을 맞이했으나 남북분단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동족간의 전쟁 그리고 냉전체제가 지속됨으로 인해서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군사적 반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이념적 갈등은 오늘날 우리의 삶의 전체 영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이념적 갈등이 선거철만 되면 색깔 논쟁으로 등장하여 건전한 민주주의적 정치문화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남북한은 각기 60만이 넘는 정규군과 200만이 넘는 예비군의 유지와 함께 막대한 군사비 지출로 인해서 서민층을 지원하여 사회평화를 위한 복지비용이나 국가의 백년대계가 달려 있는 교육재정 확보에 엄청난 지장을 주고 있다. 이렇게 남북분단과 그로 인한 불평화로 인해서 발생되는 제반 영역에서의 문제점을 들자면 한이 없다. 따라서 한반도의 분단의 극복과 평화체제 수립은 우리 개신교회 아니 우리 모든 국민들의 “삶의 계명”이고 과제이다.
기독교는 지상에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종교다. 누가복음기자는 예수의 탄생사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누가복음 2:14).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의 목표는 지상에서 사람들 가운데 평화를 실현하는데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과 인간에게 평화가 주어지는 것은 각기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며 동일한 것이다. 지상에서 인간들이 평화를 누릴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지상에 보내신 것은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허락하심으로 영광을 받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수의 삶과 활동은 전적으로 평화라는 개념으로 수렴되는 것을 알게 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전체 삶과 활동을 평화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려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을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하나님과 화해시키려는 것입니다”(에베소서 2:14-16). 예수 당시 구약의 율법과 계명들은 -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이 동족인 북한 을 “主敵”으로 삼아 증오하고 미워한 것처럼 - 이방인들을 적대시하고 원수와 같이 생각하도록 강요했다. 바울에 의하면 예수는 이렇게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갈라놓고 적대시하게 하는 율법들과 계명들을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써 폐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헐고 그들이 하나가 되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그리스 사상의 형이상학적 구원론의 틀 안에서 단순히 속죄론으로(종교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생각이다. 십자가 사건은 사회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정치적 사건 즉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화해사건 나아가서는 전 세계인들의 평화적 공존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운 인간이 된 그리스도인의 삶과 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삶도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이 세상에서 사람들 사이의 평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고후 5:17-20). 여기서 바울은 분명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새로운 인간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위탁된 사명은 화해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고 또 인간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1962년도 서독 개신교 협의회(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는 당시 독일의 분단된 상황에서 서로 적대시하던 동서 진영의 화해를 위한 동방백서(Ost-Denkschrift)를 발표하면서 바로 고린도 후서 5장 17절을 그것의 주제로 삼고 있다. 즉 평화를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갈등과 반목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화해의 말씀”을 전하고 실천할 “화해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직도 냉전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남북한이 반목과 갈등 사이에서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오늘날 구체적으로 어떤 과제들을 가지고 있는가?
1) 냉전 체제적 법률들과 제도들의 제거
서론적 부분에서도 언급했지만 6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냉전체제와 그것을 지속시키고 있는 법률들과 제도들을 폐기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냉전체제의 지속은 대내 정치적으로는 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의 정치역량의 부족과 평화의지의 결여로 집약된다.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 정책이나 그 후의 역대 군사정권들의 지도자들은 정권의 정통성 결여와 국민들의 지지부족으로 남북통일과 화해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와 통일의 염원을 억압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어서 민족문제에 대한 해결의 의지도 방안도 가지고 있지 못했었다.
다른 한편 이러한 냉전체제의 지속은 대외 정치적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쌓고 있는 4대 강국들, 그 중에서도 한반도에 다수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미국의 이해관계가 남북간의 정치적 해결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한반도는 일본의 안보에도 매우 중요한 거점기지로서 중국과 러시아라고 하는 군사적 강대국들과의 대결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방어점이 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은 곧 일본안보에는 엄청난 위험과 함께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게 된다. 반면에 러시아와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과 안정은 오히려 자신들의 안보상의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군사적 부담도 경감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과거의 냉전체제를 청산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는 남북한 지도자들의 정치적 역량의 강화와 함께 민족의 자주역량의 강화와 결집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여기에 기초해서만 우리는 지금까지 강요되어온 냉전체제를 극복할 수 있다. 2001년 6월 15일에 남북한 정상들이 도출해낸 “공동성명”은 바로 이러한 민족적 자주역량의 적은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성명의 충실한 실천에 근거해서 우선적으로 해나가야 할 일은 남북한 모두가 각기 냉전적이고 대결적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제반 법률들 예를 들면 남한의 국가보안법과 북한의 사회안전법 등을 철폐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상대방을 반국가적 적대집단으로 규정하는 제반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철폐되지 않고는 이제까지의 냉전체제를 상호 극복할 수 없다.
2) 상호안보 개념에 기초한 군축과 민간평화운동의 확대
이러한 한반도 안의 냉전체제의 극복은 상호 안보(mutual security)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선 상호 적대적 법률들과 제도들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을 침략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는 1992년 노태우정권시절 남북한의 “기본합의서”와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에서 나온 6.15합의서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여기에 보면 남북한은 각기 상대방을 침략하거나 무력으로서 공격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그 동안 지속되어 온 평화운동의 결실로서 1980년대 초에 상호안보 개념이 등장하여 정치지도자들이나 군사지도자들이 자의적으로 전쟁을 선포하거나 국민들을 전쟁으로 내몰 수 없는 처지가 이룩됨으로써 당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이제까지 깨어질 것 같지 않게 공고하던 냉전체제를 하루아침에 헐고 새로운 협력관계를 탄생시킨바 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민족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는 통일이나 평화체제의 수립은 정부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민들, 즉 시민들의 차원에서 갈등해결의 길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시민불복종 운동으로서 병역거부 운동을 시작으로 해서 군사비 삭감운동과 더불어 언론 등과 같은 매체들을 통한 반북한운동이나 반남한운동을 거부하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특히 종교단체들과 시민단체 등이 앞장서서 이 운동을 전개해 나감으로써 남북한이 상호 적대관계에서부터 상호안보의 관계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다. 유럽 국가들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국가적 영역에서의 평화정책의 수단으로서 시민단체들에 의한 갈등해결 노력들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으며 그것은 때로는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서 실행되기도 한다. 이들 단체들 가운데 “평화교회들”의 활동은 눈부신바 있으며 8.90년대 유럽의 평화운동을 중심에 서서 이끌어 온 것은 바로 이들 평화교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들의 해소를 위한 효과적이면서도 비군사적 수단들이 시급히 요청된다. 무엇보다도 교회들에서는 이러한 노력들의 발전, 증진, 사용을 위한 평화봉사가 전개되어야 한다.
3) 평화확보에서 비군사적 수단들의 우선
우리는 그 동안 평화를 안보와 혼동함으로써 평화를 말할 때나 안보를 말할 때 전적으로 군사적 수단에 의존해 왔다. 평화개념은 안보개념과는 그 출발점과 목표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안보는 전적으로 군사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안보를 말하게 되면 군대와 무장의 정도에 따라서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안보를 확고하게 한다고 할 때는 언제나 군비증강을 염두에 두었다. 반면에 평화는 정치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개념이고 따라서 군비의 증강이 아니라 그 감축과 관련되는 개념이다. 1989년 동독교회는 세계교회협의(WCC) 총회에서 “평화문제들에서 기본정향”으로서 “비폭력을 위한 우선적 선택”(vorrangige Option für die Gewaltfreiheit)을 제시했다. 이 도식이 목표하는 바는 갈등들의 처리와 평화의 확보를 위한 비군사적 수단들의 성과능력을 검정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이 수단들을 더욱더 발전시키고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고려해 볼 수 있다.
(1) 정치적 영향력 행사와 예방을 위한 외교활동(예로서 조지 부시의 악의 축 발언과 거기에 대처한 김대중 정부의 외교적 노력들).
(2) 정의로운 세계경제질서의 확립을 통한 국가간의 갈등의 감소
(3)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협력(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및 문화적 활동에서 협력 등)
(4) 법률에 기초한 공존을 목표로 한 갈등해소를 위한 형식들의 강화
(5) 군복무 대신 민간차원에서의 평화봉사의 확대와 강화
(6) 군비축소와 전쟁물자의 판매와 이동금지
세계교회협의회(WCC)도 2001년 2월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무장 폭력의 상황에서 위협 당하는 민족 집단들의 보호”라는 문서에서 그들을 위한 평화확보와 갈등해결을 위해서 비군사적 수단들을 고려한 정치적 조처들을 강구할 것을 촉구했었다. 사실상 “비폭력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란 도식은 2001년에 시작된 폭력 극복을 위한 10년이라는 WCC 프로그램에 그 뿌릴 두고 있다.
4) 법질서로서 국제적 평화질서의 강화
유엔헌장이 제시하고 있는바 국제적 평화질서의 강화를 위한 조치들이 시급하다. 이러한 국제적 평화질서들이 기능하고 또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방식으로 법적 기초 아래 구성되어야 하며 또 제도화됨으로써 “법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세계대전이후에 출범한 국제기구인 유엔이 이러한 “법의 지배”를 강제할 수 있는 국제적 기관으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법의 지배”라고 하는 꿈은 국제법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네덜란드의 법철학자인 그로티우스(Grotius)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주장해 오고 있었지만 국제적 차원에서는 항상 힘 있는 나라들에 의해서 무시당하고 말았다. 이러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을 비롯해서 골프전쟁에서 나타난 양상은 유엔은 평화를 위한 국제관계에서 “법의 지배”의 담지자라기 보다는 강대국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느낌마저 들고 있다.
독일 개신교의 평화백서인 “평화의 길에서의 전진들”이란 문서는 유럽인들의 관점에서 이러한 유엔의 기능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있다. “갈등의 경우 법이 관철되어야 한다... 유엔의 법을 통해서 논거지어진 그러나 아직도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국제적 평화질서에서 질적으로 새로운 것은 그것이 최후의 수단으로서 물리적 강제를 법의 관철의 수단으로서도 인식하고 있다는 데서 성립된다.” 이러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9.11 테러사건 이후 전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은 이러한 현존하는 국제기구의 결의나 동의 없이 전쟁을 수행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힘에 의한 군사적 평화가 아니라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로운 국제관계를 발전시키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국제적 연대를 가진 교회들이나 세계의 고등종교들은 서로 협력하여 이러한 국제적 평화질서를 세우는데 더욱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적 대결이 종식된 이후에는 민족적 혹은 종교적 갈등들이 더욱더 증가되고 첨예화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는 문화충돌론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점에서 모든 문화의 뿌리가 되는 “종교 간의 평화 없이는 세계평화도 불가능하다”라는 독일의 가톨릭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5) 최후의 수단(ultima ratio)으로서 군사력의 사용
새로운 세계질서 안에서 코소보 사건과 같은 민족적 갈등들이나 9.11 테러사건과 같은 강대국에 대한 공격 등 긴급한 상황이 도래했을 때 우리는 즉시 무력사용을 통한 문제해결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 평화윤리의 전통에서 볼 때 무력사용은 단지 불가피한 경우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하며, 과도하게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오늘날 현존하고 있는 국제평화기구 말하자면 유엔과 같은 공적 기구의 승인이나 동의를 얻어서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9.11테러사건 이후 아프간 전쟁에서는 이러한 국제법적 절차나 국제기구의 동의 없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무력을 사용한 것은 매우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겨주었다. 특히 테러의 응징이라는 차원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이락에 대한 미국의 독자적 유엔 등 국제기구의 승인 없는 무력사용은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력사용을 위해서는 충분한 이유와 함께 국제적인 동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6) 평화윤리의 주개념으로서 정의로운 평화
1981년도에 출간된 서독의 개신교 평화백서인 “평화의 보존, 증진, 갱신”(Frieden wahren, fördern und erneuern)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적 책임을 따를 의무가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기독교 과제들은 이 평화계명에 종속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여기에서 기독교 평화윤리의 목표방향에서 모든 윤리적 명제를 포괄하는 것은 지상에서의 평화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 즉 그리스도의 평화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요한 14:27).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평화는 무력을 통해서 모든 적대자들과 반대자들을 억압하고 침묵시키는 “로마의 평화”가 아니고 그리스 사람들이 말하는 “마음의 평화”(Ataraxia)도 아니다. 로마의 평화에서는 안보가 평화로 오해되고 있고 그리스의 평화에서는 내면의 안정이 평화로 변용되고 있다. 로마의 평화에서는 정치적 책임성이 군사적 의무수행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그리스의 평화에서는 정치적 책임성을 도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기독교의 평화계명과 거기에 따른 정치적 책임성은 “지상에서의 평화” 보존과 증진 그리고 갱신을 위한 투쟁적 삶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로마적 평화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너희는 내가 땅위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그리스적 평화, 마음의 평화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 실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기독교적 평화를 “정의로운 평화”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개념은 1988년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서 동독의 교회대표들이 제안한 생각으로서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보는 오직 군사적으로만 정의될 수 없다. 안보는 무엇보다도 남과 북 그리고 동과 서 사이의 삶의 기회들의 정당한 분배, 인권의 보존, 법치국가적이고 민주적 구조들의 강화, 삶의 자연적 기초들의 보호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서 확대되어 사용된 안보나 평화개념은 그 동안의 평화연구의 결과들에서 나온 것이다. 신뢰할만한 평화구조를 위한 기본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구성요소들을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자유의 수호를 보장하는 법치국가성과 거기에서 도출되는 법의 안정성 확보
(2) 심각한 경제적 불균형들의 제거와 함께 다수의 사람들이 처한 곤궁의 완화를 위 한 경제적 정의실현
(3) 불법적인 폭력을 막아내기 위한 국제조직들과 국제법의 강화
(4) 불관용과 민족주의적 경향들에 대처할 수 있는 소수민들과 다른 인종들과의 공동 의 삶을 위한 문화의 증진
이러한 네 가지 구성요소들은 한 사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 관계들 안에서도 세계적 차원의 준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5. 결 론
한국 개신교회는 한반도를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의 쟁탈전과 그들에 의한 식민지화 과정에서 조선반도에 들어왔다. 이들 영미계통에서 교파교회 혹은 자유교회의 전통을 가진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보수적이고 정통주의” 전통에 속해 있어서 처음부터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서 선교활동을 시작했으므로 복음과 그 담지자인 교회가 갖는 정치적 책임성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물론 지극히 적은 수의 일부 선교사들은 식민지화된 조선민족들에 대해서 연민의 정을 가지고 복지사업과 교육사업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당시의 국제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들이 피안의 세계가 주는 평안과 복락을 위해서 노력하도록 권면했다.
따라서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지상의 평화” 보다는 “천상의 평화”를 갈구하게 되었고 사회적 정치적 책임성,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평화위탁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일부 민족의식을 갖고 나라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민족의식을 가졌던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사들과 그 동맹세력에 의해서 교회에서 추방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은 1907년에 있었던 선교사에 의한 대부흥운동과 1910년 한일합방 직후 민족자주와 독립을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신민회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교회의 외면과 배척으로 분명하게 들어났다. 따라서 1919년 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한국개신교회는 보수적 선교사들과 그 동맹세력들에 의해서 장악되어 완전히 타계적인 기독교로 고착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45년 해방될 때까지도 종파를 가리지 않고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이 일부에서 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순부터 70년대 초에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부터이다. 국민의 동의를 외면한 한일국교 정상화의 강행과 함께 그 후에 시작된 산업화 과정에서 자행된 인권탄압에 대해서 교회가 눈을 뜨게 되었다. 이러한 계기는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의 참여적 삶의 소개와 함께 유럽에서 진행되던 산업선교 및 하나님의 선교운동에서 영감과 에너지를 얻게 되는데서 주어진다. 이 운동은 인권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기치로 출발했으나 80년대에 들어오면서 통일운동으로 발전되었다. 분단된 조국의 통일 없이는 인권도 민주화도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통일운동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이러한 통일운동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그것은 1990년 서울에서 열렸던 “정의, 평화, 장조질서의 보전” 대회를 기점으로 해서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이라는 삼중의 개념들이 궁극적으로는 “평화”라는 개념으로 수렴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부터 평화운동이 오늘날 시민운동의 보편적 개념이 된 것이다. 인권운동, 민주화 운동 그리고 통일운동도 결국은 한반도에서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운동으로 수렴되게 된다. 이러한 제반 운동들은 궁극적으로는 교회가 “지상에 평화”를 이루기 위한 부문운동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역사상 각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상이나 운동들도 궁극적으로는 “지상에서 인간들 사이의 평화”를 위한 것들이다.
궁극적 평화는 하나님의 손에 속한 것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일하는 인간들은 그리스도인들이어야 한다. 예수는 그의 산상설교에서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다”(마태복음 5:9)라고 했다. 바울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다”(롬 14:17)라고 했다. 이러한 지상에서의 평화운동이야말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오늘날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