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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9 08:04
종교들의 평화사상
글쓴이 : 손규태

우리가 종교와 평화 특히 평화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일차적으로 평화에 대립되는 개념 즉 갈등에 대해서 말하게 된다. 왜냐하면 평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것과 대립되는 갈등과 그 원인을 밝히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평화연구는 곧 갈등연구라고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종교와 평화를 말하기 전에 우선 간략하게 갈등의 기원과 그 양태들을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검토해보고자 한다.

거대담론들 혹은 위대한 역사적 확신들”(Dietrich Bonhoeffer)을 중심으로 한 인간들의 사상적 혹은 이념적 갈등은 1990년 자본주의 세계와 사회주의 세계 사이의 동서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과 나라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정치적 이념적 갈등에서 문화적 갈등 혹은 민족적 갈등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갈등이거나 문화적 혹은 민족적 갈등이거나 그 갈등들의 뿌리를 살펴보면 거기에는 거의 예외 없이 인간들이나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관찰은 이미 마르크스의 통찰에 기원을 둔 것인데 그의 사상이 이제는 한물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필자는 그러한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들 사이의 이러한 물질적 욕망의 충족에 바탕을 둔 경제적 갈등들은 원시시대부터 있어왔다. 이러한 갈등은 고대 수렵사회에서는 사냥터를 확보하려는 부족 간의 갈등으로 나타났고, 농경사회에서는 보다 넓은 경작지를 차지하려는 종족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중세에 와서도 이러한 갈등들은 그 양태와 규모를 달리한다 해도 성격상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이러한 갈등은 근대에 와서 발달된 과학기술에 힘입어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서양인들은 발전된 항해기술과 무기 체제를 통해서 대양을 건너서 다른 대륙을 점령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영토와 자원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 대표적 예로서 15세기의 콜럼버스의 미 대륙발견(점령) 이후 스페인의 남미약탈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근대식무기로 남미의 원주민들을 학살했을 뿐만 아니라, 매독과 같은 유럽에만 있던 특수한 질병을 남미 사람들에게 옮겨 놓음으로써 면역력을 가지지 못하던 그들에게 대량학살이라는 재앙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17세에 들어와서 영국이 유럽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후 이른바 삼각무역을 통한 부의 축적을 들 수 있다. 영국인들은 아프리카에 가서 노예를 잡아 싣고 (대량학살이나 매독과 같은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노동력이 보족한 남미에 가서 팔고, 남미에서 값싼 자연자원을 획득하여 영국에 와서 비싸게 팔아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었다.

2차 세계대전은 영국이라는 유럽의 선진국과 미국과 러시아 등에 대한 후발국가들 즉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의 세계지배를 위한 헤게모니 다툼이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과 소련은 1950년대부터 초강대국들로 등장했고 이들 사이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체제에 근거해서 세계를 분단하여 제패하려는 냉전체제가 반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1990년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동구라파가 해체되면서 이러한 냉전체제는 끝을 보게 된다. 이렇게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 등장하면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측면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자본주의적 세계체제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이른바 새로운 세계질서 혹은 세계화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갈등들은 이러한 미국의 자본주의체제의 세계화에 종속되느냐 아니면 정치, 경제, 문화 등에서 독자적 세력으로 남느냐 하는 것에서 유발되었다. 오늘날의 국제간의 갈등은 쿠바나 북한, 리비아나 이란과 이락 등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대열에 동참하지 않느냐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러한 세계화대열에 참가하지 않는 나라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의 군사적 갈등들은 다 이러한 미국의 세계화 전략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갈등들 배후에도 역시 경제적 갈등이 중심적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갈등의 주된 변수는 국가들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며 여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갈등들은 종속변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갈등 못지않게 주목하게 되는 또 하나의 형태의 중요한 갈등은 종교적 갈등이다. 특히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확고한 신념체계라고 할 수 있는 세계의 위대한 고등종교들 사이의 갈등은 오늘날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중동지역에서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의 갈등이나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갈등이 그 대표적 예다. 주후 5세기경 새로 동장한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 사이의 갈등과 전쟁의 결과로 기독교 지역의 5분의 4가 이슬람화 되었다든지, 그 후에 16세기 오스만 터키의 기독교적 서구의 침공 등이 유럽과 소아시아에서 종교 간의 가장 큰 갈등요인이었다. 이러한 종교 간의 갈등은 19세기 유럽의 국가들의 西勢東漸과 더불어 기독교와 힌두교 혹은 기독교와 유교 내지는 일본의 신도이즘의 갈등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러한 종교적 신념체제에 근거한 종교적 갈등은 경제적 갈등 다음으로 오늘날까지도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이러한 종교적 신념체제가 일차적 갈등요인인 특정한 경제체제 혹은 이데올로기와 결합될 때 나타나는 갈등은 그 정도가 더욱 강하고 따라서 해결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갈등은 경제적 이해관계에다 종교적 신념체제가 결합되어서 그 갈등의 양상이 더욱더 중첩되고 증폭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예가 미국에서의 신보수주의적 기독교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의 결합으로 생겨난 이른바 네오콘의 현상으로서 자본의 세계지배와 기독교의 세계지배가 혼합되고 결착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다.

 

한국개신교의 현실

 

19세기말 서세동점의 물결을 따라서 한국에 들어온 개신교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정통주의에 뿌리를 둔 장로교회와 경건주의에 뿌리를 둔 감리교회 그리고 국교회 내지는 주교제 전통에 뿌리를 둔 성공회 등으로 대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교파들은 당시 서세동점의 주역들이었던 미국과 영국 등에서 선교됨으로써 한국의 정치세력이나 종교 세력들과 커다란 대립 없이 선교를 시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개신교회의 선교사들은 지식인들에게는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려던 일본과는 구별되는 세력으로서 이해되고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서 환영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상당수의 지식인들과 사회적 지도층들이 기독교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입교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 예는 적지 않은 기독교 정치지도자들이 만민공동회의 등을 통해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상과 정치체제를 놓고 연구하고 토론을 벌리기도 했다. 거기서 그들은 서구의 발달된 정치체제(민주주의)는 기독교적 서구체제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종교세력 가운데 서양의 서세동점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동학도들은 그들의 혁명운동이 중국과 일본세력의 관여로 실패로 돌아가자 상당수의 신도들이 개신교로 개종하는 현상까지 있었다. 따라서 개신교회는 그 선교초기부터 한반도에서 어떤 정치적 집단이나 종교적 집단들에 의해서 크게 배척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지 않고 선교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초기 선교사업과 더불어 시작했던 사회봉사사업, 의료봉사사업, 교육사업 등을 통해서 당시의 서민들과 민중들로부터도 크게 환영을 받았다. 당시 거리에서 굶주리는 어린이들을 위해서 선교사들이 세운 고아원들이나, 이러한 고아들로부터 시작된 교육사업들, 그리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병원들은 당시 민중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에서 기쁜 소식(복음)이었다. 이러한 선교사업들은 단순히 교회를 세우고 주일예배를 보고 설교를 하는 것 그 이상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환영을 받았다. 또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통치기간에도 온갖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 아래서도 기독교는 민중들의 동반자의 역할을 미력하나마 감당했었다. 그리고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한국의 재건시절에도 기독교는 민중들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6-70년대 박정희로부터 시작되는 군사정권의 억압통치 하에서 진보적 개신교회는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와 통일운동에 매진함으로써 대중들로부터 커다란 신뢰를 받았었다.

그러나 한국개신교회는 80년대 한국의 민주화와 함께 경제성장 이후에 적극적 선교활동을 통해서 많은 성장을 거두었다. 이러한 성장을 가져온 근저에는 한국개신교회, 특히 감리교가 가졌던 경건주의적이고 부흥회적 뿌리가 하나의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한 한국개신교회는 본래의 경건주의가 갖는 검소하고 자선적인 전통을 망각하고 정통주의와 교리주의에 사로잡힘으로써 매우 배타적 성격을 가짐으로써 다른 교파들이나 타종교들에 대해서 대결적이고 전투적 자세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같은 장로교회 안에서도 수 없는 분열을 계속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적 고등종교들을 이단시하는 매우 독선적 종교로 전락했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오늘날 한반도라는 특수한 상황에 살면서 종교, 특히 정치적으로 권력화 된 개신교가 일으키고 있는 제반 갈등들에 대해서 좀더 깊은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독교 특히 보수적 개신교회는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특정한 정치적 권력집단으로 조직화되면서 계층 간의 화해와 사회통합이라는 종교가 가진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고 특정한 계급집단과 정치세력과 자기를 일치시키면서 그들의 지원세력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말 군사독재정권들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국민의 정부를 거쳐서 참여정부에서 강화되었고 이명박정부의 탄생과정에서 가장 첨예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개신교 세력과 정치세력간의 비정상적 유착과 동맹은 1960-7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지향했던 한국교회협의회의 진보적 신학방향에 대항하여 1980년대 말에 등장한 정통주의에 뿌리를 둔 보수적 개신교 집단인 한국기독교총연맹의 출현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보수적 개신교 집단은 근래에는 그 세력을 국제적 차원으로 확대하여 미국이나 유럽 등의 개신교 보수집단들 특히 신보수주의자들(Neocon)과 손을 잡고 그들에게서 사상적 지향성과 투쟁전략들을 전수받고 있는 실정이다. 말하자면 1950-60년대 기독교 안에서의 신학적 방향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 사이의 교파분열의 여파는 그 70년대 선교라는 이름으로 경쟁적 교파의 확장으로 인한 갈등을 거친 이후 80년대 이후에는 신앙 고백적 갈등을 넘어서 정치 지향적 갈등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 고등종교들의 평화이해

 

세계에는 많은 고등종교들이 존재한다. 근동지방에서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인도에서 태어난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중국에서 등장한 유교와 도교 등 이른바 세계적 고등종교들은 모두가 한 결 같이 인간의 행복과 평화의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를 말할 때 우리는 인간의 참되 행복과 평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란 사전적 의미에서는 삶의 조용하고 편안한 상태, 갈등이나 불안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부연하자면 정치적으로는 전쟁이 없는 상태, 경제적으로는 기근이나 불경기로 굶주림이 없는 상태, 사회적으로는 계층간의 갈등이나 남녀간 혹은 인종간의 차별이 없는 상태 등이 평화의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란 인간들, 사회적 집단들, 혹은 국가들 사이에서 법적으로 규정된 규범들을 통해서 갈등들을 폭력사용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민족들이나 국가들이 무력이나 전쟁을 통해서 자기들의 정치나 이해관계를 관철해 나가지 않는 상태가 곧 평화의 상태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폭력이나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평화는 민족국가들이나 제반 종교들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나 단체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된다.

학문적 토론에서 폭력이나 전쟁이 없는 상태를 지칭하는 평화를 우리는 소극적 의미에서 평화라고 말하고 문화적 혹은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적극적 의미에서 평화라고 말한다. 즉 적극적 의미에서 평화란 폭력에 근거한 문화와 정치적 사회적 구조의 결여 혹은 억압적이고 착취적 구조들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지칭한다. 좀더 풀어서 이야기 하자면 적극적 의미에서 평화란 전쟁이나 폭력 같은 직접적 폭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억압적 정치구조나 착취적 경제구조가 존재하지 않는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적극적 의미에서 평화 혹은 구조적 평화가 지향하는 것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에 의해서 억압당하거나 착취당하지 않는 상태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빌릴 때 우리 나라의 경우처럼 1년에 66%의 고리의 이자를 주어야 한다면 이러한 사회는 착취당하는 사회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평화가 주어지지 않는다. 또 우리나라와 같이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단순히 비정규직이나 파견근로자라는 이름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의 노임의 50-60%만을 받아야 하고 자기의 권익을 위해서 노동조합도 조직할 수 없다면 그들에게는 평화가 없다. 또 국제통화기금과 같이 회원국의 80%의 동의를 얻어야 모든 결의안 통과가 가능하게 되어있는 조직에서 미국이 25%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면 이 단체는 정의롭지 않고 평화롭지도 않다. 왜냐하면 모든 회원국들이 찬성해도 미국 한 나라가 반대하면 거기서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평화는 갈등을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나라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능력이며, 또 대립갈등들을 비폭력과 창조적 공동체적 협력정신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위해서는 대화적 노력과 함께 발생하는 갈등의 원인들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제거하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고대중국의 종교인 도교의 평화이해

 

중국의 정신사의 시작은 주전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때 등장한 책으로 알려진 도교적 전통을 가진 易經에 의하면 음()과 양()이라고 하는 두 개의 기본원리들 사이의 거듭되는 변화의 원리의 상상관계를 통해서 모든 인간과 자연의 현상들이 생성소멸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철학적 사상에 의하면 음의 원리는 수용적이고, 여성적이며 지상적인 것을 상징하고, 양의 원리는 창조적이고, 남성적이며, 천적인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기본원리에서 평화란 상징적으로 양은 아래를 향하고, 음은 위를 향하는 질서에서 생기는 것으로서 설명된다. 즉 이 음과 양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만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천적인 양은 지상적인 것을 향하고 그 반대로 지상적인 음은 천적인 것을 향해 운동할 때 그 힘들이 내적인 조화를 가져오는데 그것을 통해서 만물들에게 평화와 축복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위에 있는 남성적인 양은 아래에 있는 여성적인 음을 향하여 서로 만날 때 만물들은 조화를 이루어 생산과 축복을 얻게 된다. 이것은 남녀간의 결혼관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양인 남성과 음인 여성이 서로 만나고 하나가 됨으로써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생산하며 행복을 맛보게 된다.

이러한 음양과계는 사회적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하고 부요한 양은 아래로 내려오고 약하고 가난한 음은 위로 올라가서 서로 만나고 조화를 이루는데서만 평화가 이루어진다. 즉 강하고 부요한 양은 위에서만 움직이고 약하고 가난한 음은 아래서만 움직이게 되면 이 둘 사이에는 만남과 조화가 있을 수 없고 소외되어 결국 갈등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강자는 자기를 비워 약자의 처지에 서고, 약자는 자기를 채워 강자의 위치에 올라갈 때 인간들과 사회에서는 평화가 주어진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평화사상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평화란 질서와 안녕과 휴식의 상태를 의미한다. 인격화된 평화로서 여신 에이레네(eirene)는 부요함의 상징과 결합되어 있다. 당시 그리스의 도시국가 사이에서는 전쟁상태가 하나의 일상적 상태로 간주될 정도로 전쟁의 연속이었다. 따라서 평화의 시간들은 일종의 잠시의 휴정상태(spondai)를 의미했었다. 실고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주전 431-404) 이후에야 비로소 평화는 오늘날의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그래서 평화협정체결들도 에이레네(평화)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곧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에서 정상적 상태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주전 4세기 초반에야 보편적 평화(koine eirene) 즉 그리스의 국가들 사이에서의 자율과 평등권에 기초한 항구적 평화질서가 계약들을 통해서 달성되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평화의 조건들은 인간들이나 국가들 사이에서의 자율과 평등권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나 국가에서 평화의 조건은 자율이 가능한 곳에서만 성립된다는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가 타율이나 종속에 의해서 규제된다면 거기에는 평화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 개인이나 국가에서 이 자율 혹은 독립이나 주권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의 조건은 인간들이나 집단 나아가서 국가들 사이에서의 동등권이다. 이 들 사이에 등등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차별이나 종속이 지배할 때 거기에는 진정한 평화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평화의 조건들로서 자율과 평등은 동전의 양면같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로마인들도 평화(pax)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그들은 가정의 평화, 가족의 평화, 국가간의 평화, 신과의 평화 등으로 구별해서 사용한다. 그러나 이 평화는 모든 세 개의 차원을 포괄하는데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 평화는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여 강력한 힘을 가짐에 따라서 로마의 평화(Pax Romana) 즉 로마의 군사적 힘에 의한 평화로 전개되었다. 즉 로마 제국 내에서 평화는 거기에 예속된 국가들이 로마의 군사력에 의해서 완전히 통제되는 상태 즉 무력에 의한 평화 즉 공동묘지의 평화로 이해되었다.

 

유대-기독교의 평화개념

 

유대교에서 평화라는 말은 희브리어 샬롬(Schalom)인데 그것은 온전함, 잘 지내는 것, 안전한 것, 행복한 것, 서로 평화롭게 지내는 것 등의 의미를 갖는다. 이 평화라는 말 샬롬은 유대인들에게서 중심적인 말이며, 이스라엘에서는 일상적인 인사말로도 사용된다.

그런데 이 샬롬이 의미하는 온전함은 신체적으로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사물이나 자연이 흠집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샬롬은 일차적으로 인간의 정신과 신체가 온전해서 모든 것을 마음먹은 대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어린이가 신체적 불구나 정신적 장애를 갖지 않고 온전하게 태어난 것도 평화라고 할 수 있다. 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거나 접하는 모든 것들이 고장이 나거나 망가지거나 하지 않은 상태도 평화의 상태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가전제품이 고장이 나거나 우리가 사는 집에 비가 새거나 하는 것도 불평화의 상태이다.

그리고 사람이 잘 지내는 것 즉 요즘 방식으로 말하면 건강하게 지낸다거나 좋은 직장을 갖는 것이라든지, 적령기에 결혼을 한다든지, 결혼하고 원하는 아이를 출산한다든지 하는 것들도 유대인들에게는 평화에 속한다. 물론 적이나 이웃에게 위협을 받지 않는 것이 평화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부부간이나 가족들 그리고 이웃들이나 직장에서 동료들과 잘 지내는 것도 평화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매일 만나고 같이 생활하는 가족들이나 동료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불평화이다.

구약성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샬롬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는 에이레네로 번역되는데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내용들을 다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서에서 약속된 평화의 왕(이사야 9:5)으로 등장하는데 그는 죄인에게 주어지는 죽음의 형벌을 자기가 걸머짐으로써 인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적대감을 마감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통한 이러한 신과의 평화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들 사이의 평화가 실현된다고 예언하고 있다. 말하자면 신과의 평화가 곧 이난들 사이의 평화의 조건들이다.

신약성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도하면서 그가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2:14). 또 예수 자신도 이 평화란 말을 제자들을 만나고 헤어질 때 인사말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산상설교에서 평화를 가져오는 자야말로 복된 사람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했다(5:9).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목적도 평화고 그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도 평화의 왕국이라는 것이 신약성서의 핵심내용이다.

그런데 예수가 전하는 평화는 그리스인들의 질서 잡힌 삶, 즉 자율과 동등권을 넘어서고 로마인들의 평화인 군사적 통제에 의한 질서유지로서의 평화를 뛰어넘어 서서 인간과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는 사건으로서의 평화를 우리에게 말한다. 그래서 예수는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14:27) 그리스나 로마의 평화가 매우 정적이고 억압적이라면 예수의 평화는 매우 역동적이다. 즉 정치적 억압이나 경제적 착취로 고통당하는 힘없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해서 투쟁하고 돕는 행위를 예수는 평화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완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

 

맺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갈등의 일반적 요인들과 종교, 특히 기독교로 인해서 발생한 갈등의 역사와 그 성격들을 고찰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고등종교들의 평화적 이상들과 실천들도 간략하게 성찰했다. 여기서는 그러한 고등종교들의 평화이해를 간략하게 구별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1. 고대의 고등종교들이 갖는 평화에 대한 이해는 매우 개인주의적이어서 개인들의 안위와 평안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고대 중국종교철학의 음양사상은 만물의 이치를 다루는 점에서 매우 보편적인 것 같이 보이지만 그 근저에는 개인의 생사화복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평화사상도 질서와 조화를 말하지만 출발점은 개인의 삶과 연결되고 있다. 구약성서의 샬롬도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안녕과 평안함이 주제가 된다.

2. 그러나 평화는 개인들의 편안한 삶을 말하고 있지만 개인은 사회적 동물로서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평화 즉 사회적 국가적 평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음양의 조화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되며, 그리스인들의 평화는 인간들 사이에서 개인의 자율과 평등권을 말하게 된다. 따라서 개인의 평화는 공동체의 평화를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3. 우리는 여기서 이른바 개인을 중심으로 보는 전쟁이나 갈등이 없는 상태로서의 소극적 평화와 함께 집단들 사이의 갈등이나 다툼이 없는 상태로서의 적극적 혹은 구조적 평화를 말하게 된다. 오늘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적 구조나 국제간의 제반 관계들을 고려할 때 우리가 더욱 주목하게 되는 것은 사회적 집단들이나 국제간의 구조적 평화가 가장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사회집단간의 사회평화, 산업현장에서 산업평화, 국제관계에서 정의로운 평화가 연구되고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4. 고대 중국의 종교나 그리스 로마의 평화들은 조화나 질서를 넘어서 힘에 의한 통제 등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러한 평화의 이상들은 주로 권력을 가진 상위집단의 이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위집단의 평화이상은 변혁이나 변화가 아니라 질서의 고착화 내지는 기득권의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유대교적 기독교적 전통에서 평화이상은 이러한 상위집단의 평화가 아니라 하위집단, 즉 정치적으로 억눌리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고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민중집단, 즉 하위집단들의 평화이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신구약성서를 관통하고 있는 사상이고, 특히 평화의 왕으로 온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 메시지이다. 그래서 예수의 도래를 준비했던 세례요한은 이렇게 외친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해지고, 굽은 것은 곧아지고, 험한 길은 평탄해져야 할 것이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누가 3:4-6). 모든 굽어진 길들이 곧아지고, 인생의 질곡의 골짜기는 메워지고, 높은 산과 언덕은 낮아져서 평등하게 될 때 평화가 온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춘다.”(시편 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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