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북한의 주체사상과 남한의 전통적 기독교는 그 역사적 출발점에서 보거나 그것들이 지향하는 이념적 목표에서 보거나 장차 가장 화해하기 힘든 두개의 이념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북한의 주체사상은 하나의 철학사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원리로서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 남한의 반공적 역대정권들을 가장 확실하게 지지해 준 세력들을 들자면 대다수의 보수적인 개신교와 천주교도들이라고 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공으로 말하자면 보수적 개신교회들을 능가할 수 있는 다른 종교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교회가 반공과 반북한의 보루 역할을 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기독교의 반공주의의 역사는 적어도 192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과 중국등을 통해서 조선에 소개된 공산주의 사상은 반제국주의와 반봉건주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무차별적으로 확산되었었다. 이들 공산주의 운동은 당시 선교사들과 그들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들을 제국주의 선전선동의 앞잡이로 매도하고 그들의 선교활동을 제국주의 사상운동으로 몰아세웠었다. 말하자면 당시 공산주의 운동에서 가장 시급히 극복해야 할 것으로서 자본주의적 세계관과 유착되어 있는 기독교였던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반기독교 운동의 실상이다.
이러한 기독교와 공산주의 운동 사이의 역사적 적대감은 6.25전쟁을 통해서 더욱 내면화되기 시작하여 그 동안의 긴 역사적 과정들을 통해서 체제화 되기에 이른 것이다. 무엇보다도 남북한이 분단된 이래로 북한에서는 마르크시즘의 토착적이고 민족적 형태인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되고 남한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외형 하에 파행적인 군사독재가 계속되면서 이들 사이의 적대감은 점차 심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개신교 정통주의 세력은 북한 공산주의 집단을 묵시록에 등장하는 무저갱에서 나온 붉은 용으로 파악하고 아마게돈 신학으로 무장하는 것을 가장 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었다. 소련과 중국은 그런 붉은 용의 두목이요 따라서 모든 악한 것과 불길한 것은 북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했었다. 이러한 반공적인 기독교는 미국에 대한 천사장 가브리엘적 환상을 가짐과 함께 이미 위에서도 언급한대로 역대 군사독재정권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고 그들의 온갖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를 반공의 이름으로 눈감아 주고 정당화해 주었다.
이러한 기독교와 사회주의 간의 역사적 적대감은 결과적으로는 상호간에 왜곡된 오해에 기인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대립은 이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진보적인 기독교도들 안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의 일이다.
우선 1960년대 초반에 체코슬로바키아의 로마드카를 중심으로 한 크리스천과 마르크시스트들 간의 대화는 이들 사이에 잉태되어 온 역사적 적대감이 대부분 상호간의 오해와 불신에 기인한다는 것을 밝혀냈었다. 특히 골비처와 몰트만 등 서구의 신학자들과 당시 현존하던 사회주의의 이념적 실천적 모순들을 깊이 통찰하고 있던 동구의 휴매니스틱한 사회주의자들이나 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추구하고 있는 역사적 변혁의 지향성에서 많은 유사성을 발견하고 서로 대화하고 협력할 것을 주장하고 나선다. 그들은 왜곡된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와 거기에 기초한 인간관의 모순들을 비판함으로써 교회의 갱신을 꾀하고 오히려 기독교의 본질을 사회주의 운동에서 발견하고 동시에 사회주의의 왜곡을 기독교 정신을 통해서 갱신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들이 관심한 것은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이 지향하는 사회변혁의 이상들에서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역사적 적대감을 극복하려고 했던 운동은 비단 유럽에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1972년에 남미에서 결성된바 있는 “사회주의를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운동은 당시로서는 매우 새롭고 고무적인 것이었다. 미국과 그들의 다국적 기업들에 의한 남미 대륙의 대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는 한계상황에 달했었다. 가장 자연자원이 풍부한 대륙이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대륙으로 전락한 것이다. 600년 전 콜럼버스로부터 시작되는 남미의 역사는 유럽인들의 강제와 착취의 역사 그 자체였다. 이러한 착취와 억압의 역사에서 눈을 뜬 남미의 천주교인들은 새로운 신학적 사고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곧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해방의 신학이다. 산디아고에서 모인 “사회주의를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대회에서는 모든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의 해방과 더불어 그들은 사회주의 대륙의 건설을 다짐했었다. 여기서는 기독교인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대화의 차원을 넘어서 구체적인 협력의 차원으로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이것은 미국 중앙정보부에 의한 반혁명 세력의 확장과 그들에 의한 아옌데 대통령의 암살과 더불어 사회주의 정권이 몰락함으로써 끝장나고 말았다.
세 번 째 들 수 있는 것은 세계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선교개념의 제시가 그 동안의 이들 사이의 적대관계를 반성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그 동안 선교라 하면 전통적으로 이베리아식 식민지에 따른 남미의 가톨릭 선교와 그 후에 등장한 19세기 중엽 이래의 영미식 식민지 확장에 동행했던 개신교의 확장을 들 수 있다. 이베리아식 식민지는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대륙과 나라들에로의 “사람들의 이식”을 통한 점령을 의미한다. 16세기의 남미의 선교는 이러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인들의 이주와 원주민들의 학살과 추방을 통해서 달성되었다. 19세기는 서구인들에게는 ”위대한 세기“지만 제3세계인들에게는 ”식민지의 세기“였다. 개신교 선교는 당시 영미를 중심으로 한 식민지 세력들과 더불어 달성되었다. 이러한 선교개념은 우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와 결탁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목표는 1910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회가 선언한대로 기독교 문화의 확산에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1960년대 등장했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개념은 종래의 선교개념이 지녔던 19세기적인 “복음전도”(Evangelisation)의 지평을 넘어서 하나님의 세계통치와 경륜의 역사적 현실에서 묻게 되었다. 특히 1973년 방콕에서 열렸던 세계선교 대회에서 내걸었던 주제 “오늘의 구원론”(Salvation Today)은 과거의 선교신학에서 영혼구원에서부터 전인구원 즉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로부터의 해방으로 파악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선교론과 구원론의 새로운 지평이 열림으로써 그동안 기독교와 마르크시즘 사이의 오해의 요소들이 많이 해소되고 대화의 장이 마련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 안의 변화는 더욱 과격한 것이었다. 제2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통해서 그 동안의 반공적 가톨릭교회 안에서 사회정의 실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1968년에 발표된 메델린 문서는 역사적으로 처음으로 “해방”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남미에서 해방신학의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이러한 제2바티칸 공의회와 해방신학의 출현은 그동안의 중요한 신학적 개념들을 새롭게 파악하는 결정적 계기들을 만들어 주었다. 예로서 전통적인 죄에 대한 개인적이고 인격주의적 이해에서부터 그것이 가지는 사회경제적인 범주를 묻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역사적 적대감을 극복하려는 운동이 외국에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의 대화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선각자들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서 우리는 박형규목사를 들 수 있다. 그는 이미 70년대 초에 한신대에 강사로 나가면서 그동안 유럽의 신학자들 사이에서 진행되었던 그리스도인들과 마르크시스트들 사이의 대화들을 소개하려 했었고 동시에 남미 등에서의 사회주의를 위한 교도들의 운동 등을 기독교 사상지를 통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운동들에 대한 소개들은 젊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대학생들과 청년층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속해 있는 교회들의 신학적 정향들을 문제삼기 시작했고 그동안에 왜곡되어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에도 수정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운동이 1960년도 4.19혁명 이후에 학생운동의 방향을 재수정하게 했고 교회 안에서의 갱신운동의 방향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반공을 국시“로 생각하고 있던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이 방면에 대한 연구와 발표의 자유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 다음으로 기독교와 마르크시즘 내지는 마르크시즘의 변형된 형태로서의 주체사상 사이의 적대감을 해소하려는 시도들은 일부 민중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있었다. 그들은 주체사상과 민중신학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공통의 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서 서로 배우고 수정하며 보완해 나갈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협의회와 소속 교단들의 “평화통일 위원회”들을 통해서 북한 바로 알기 운동과 함께 제한적이긴 하지만 상호 방문과 만남을 통해서 그동안의 오해들 불신들을 상당 부분 제거하는 일에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한걸은 더 나아가서 소연방의 붕괴와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동서냉전의 이념적 대결의 시대는 끝나고 점차 새로운 화합의 세계질서가 자리잡혀 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 우리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 및 중국과도 국교를 수립했고 그들에게 가졌던 과거의 적대감이 순전히 허위의식에 기초한 것이었음을 발견했다. 나아가서 우리는 그동안 30여년의 왜곡된 군사독재 정권을 청산하고 이른바 문민정치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적 여건의 변화에 상응하여 우리의 사고와 의식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때에 도달했고 나아가서 새로운 실천을 통하여 통일운동에 이바지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길고도 지루한 왜곡된 남북관계의 청산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전환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것이 오늘의 시점인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타부시했거나 아니면 왜곡되게만 파악했던 북한과 그 국가체제를 유지시키는 기본원리인 주체사상에 대한 바른 이해와 평가야 말로 그들을 바로 알고 그들과의 대화의 장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이의 역사적 적대의식들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고 새로운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공동의 과제를 발견하는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주체사상의 역사적 배경과 핵심내용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일반이 그러하듯이 하나의 철학사상일 뿐만 아니라 북한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하나의 지도원리이다. 말하자면 북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사회적 규범과 개개인의 생활과 사고방식까지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하나의 국가이념(Staatsgedanken)이다.
이러한 주체사상은 일찍이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항일무장투쟁의 경험가운데서 반사대주의, 반교조주의, 반종파주의 투쟁과정에서 “전 인민대중에 의거한 혁명과 건설”이 주체사상의 사상적이고 실천적인 기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55년경이고 1960년대 말에 가서야 소위 “주체사상”으로 체계화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1955년 말이라는 시기는 북한으로 말하면 소련의 내정간섭이 극심해지고 거기에 편승한 당내의 파벌투쟁과 함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파국등 북한정권 수립 이래 총체적인 위기에 처했던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국내외적으로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당의 지도이념으로서 주체사상의 확립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주체노선의 결정은 당시 전후 복구를 위한 소련으로부터의 지원의 필요성과 함께 당시의 신생 사회주의 국가군들에게 행사한 소련의 제반 영역에서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매우 대담한 것이며 모험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체사상의 출현배경은 스탈린 사망 이후에 등장한 후루시쵸프와 더불어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 일어난 변화에서 보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는 대내적으로 “사회주의가 승리하여 과도기가 끝났으며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전 인민의 국가”를 선언했고 또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의 본질이 변하였으므로 제국주의 세력과의 평화공존 속에서 사회주의에로 평화적 이행이 가능하다”라고 주장하면서 데땅트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러한 수정주의적 노선에 대해 중국이 가장 강력한 비판을 가했고 북한도 거기에 동조했다. 그러면서 논쟁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본질문제로 옮겨 가면서 중국이 극좌적인 노선을 택하자 북한은 다시 중국과 소련을 다함께 패권주의, 대국주의로 비판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소련과 중국에 대한 동시적 비판에서 북한은 독자노선을 천명하고 이 과정에서 ’정치에서의 자주‘와 ‘외교에서의 자주’를 표방하고 나선다.
소련은 1959년부터 코메콘을 강화하여 “사회주의적 국제 분업”을 제안하고 이것을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강요했는데 북한은 이것에 강력히 반대했다. “그들은 종합경제의 간판 밑에 형제국가들의 경제적 자립을 없애고 이 나라들의 민족경제의 발전을 통제하며 그것을 다른 나라의 경제에 얽매인 기형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경제적 자립이 상실되면 나라의 완전한 독립과 자주권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은 뻔 한 일이다. 독립과 자주권이 없는 곳에서는 진정한 국제적 평등도 사실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이 내걸고 있는 “경제에서의 자립”이다.
마지막으로 “국방에서의 자위”의 원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이 원칙은 국방건설과 군사전략에서 “자력갱생”을 제창한 것으로서 “어떠한 외래침략자들의 침공에도 대처하여 자체의 힘으로 조국의 인민을 수호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보위하여 혁명을 계속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노선은 멀리는 쿠바위기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고 가깝게는 남한에서의 5.16군사구테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체사상의 기본원리에 대한 신학적 평가
북한의 주체사상은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개의 범주 -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원리 그리고 지도원리 - 로 구성되어 있다. 철학적 원리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회역사원리는 사적 유물론을 그리고 지도원리는 당활 동의 원리를 담고 있다. 그러면 우선 세 가지 원리들의 내용을 검토하고 신학적으로 평가해 보자.
1) 철학적 원리
북한의 주체철학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인간중심의 철학사상”이라는데 있다. 기존의 마르크시즘이 주로 물질세계의 합법칙성을 인식하는 문제 즉 “물질과 의식 중에 어떤 것이 선차적인가”하는 문제와 “인간이 그 물질세계를 인식가능한가”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에 주체철학은 인간을 모든 사고의 중심에 놓고 인간과 세계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것을 철학의 근본과제로 삼고 있다. 따라서 세계개조자로서의 인간의 실천적 역할을 내세움으로써 철학의 모든 임무는 인간을 위해서 복무하는 것에 있다고 했다. 따라서 주체철학의 출발점과 목표는 철저하게 인간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에서의 인간이해는 그 근본원리를 파악하기 위한 필수적요건이다. 주체철학에서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자주성과 창조성 그리고 의식성으로 규정하고 이들 세 가지 속성들을 상호 연관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속성은 자주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자주성은 “온갖 예속과 구속을 반대하고 주위 세계를 지배해 나가는 사람의 본질적 속성 즉 세계의 주인으로서 적극적으로 살려는 속성”이며 창조성은 “주위 세계를 자기의 의사와 욕구에 맞게 능동적으로 목적의식적으로 인식 개조해 나가는 사람의 속성 즉 합목적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속성”이다. 그리고 의식성은 “세계와 자신을 파악하고 대변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주관하는 속성”이라는 것이다. 주체사상에 의하면 이 세 가지 속성들은 모든 인간의 생물학적 속성과는 대비되는 사회적 속성으로서 자주성이 없으면 창조성이 없고 또 창조성이 없으면 의식성이 전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속성들을 일종의 순환관계에 있어서 서로 뗄래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제기할 수 있는 신학적 주제들은 기독교 신학이 이러한 주체철학의 ”인간중심 원리”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인간의 속성들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우선 그동안 신학에서 ”인간중심“의 원리가 어떻게 파악되었는가를 살펴보자. 17.8세기의 영국의 이신론(Deism)이나 프랑스의 자연주의 그리고 독일의 합리주의 신학들에서 주로 관심했던 문제는 “세계”(Welt)였는데 그들의 주된 관심을 “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세계에 대한 관심은 일차적으로는 세계에 대해서 가지는 신의 역할에 집중되었고 물질세계의 합법칙성에 관한 물음은 이차적인 것이었다. 영국의 이신론자들에게서 우리는 신으로부터 일정한 자율적인 법칙성을 부여받은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이신론적 관심에서부터 신학의 근본문제를 극단적으로 인간학의 문제로 전환시킨 이는 철학자 포이에르바허다. 이러한 철저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그동안의 계몽주의와 거기에 기초한 인간의식의 자기확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간중심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을 통해서도 대변되었다. 19세기의 자유주이 관심했던 것은 결정적으로 인간 자신에 관한 물음이다. 그것이 슐라이어마허의 “절대의존의 감정”이건 신칸트학파에 기초한 리츨의 도덕률이건 로데에 의한 과학적 이성이건 간에 자유주의신학의 기본관심은 이신론을 넘어서 인간의 자기가능성과 자기실현에 집중했었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이 신정통주의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는 바르트에 의해서 “인간중심주의”로서 강력한 반격을 당하고 있지만 엄격히 말해서 그들의 신학이 ”전적으로“ 인간중심주의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단지 출발점이 인간에게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서 출발해서 신에게로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여기에서 주체사상의 ”인간중심주의“와 기독교 신학의 “신중심주의”는 서로 화해할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었다. 출발점과 중심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학편에서 마르크시즘 내지는 주체사상을 수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말하자면 신적인 세계와 인간의 세계 사이에는 존재지배적인(Ontokratisch) 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이 만날 수 없는 심연인가? 나는 여기서 두 가지 철학적 신학적 논제를 제시하려고 한다.
첫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의 논제요 다른 하나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성육신의 논제이다(여기에 대해서는 Jan Milic Lochmann의 “그리스도냐 프로메테우스냐?”와 영국의 신학자인 William Tempel의 성육신 신학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들 프로메테우스 논제는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신과 세계 혹은 신과 인간의 질적 차이를 극복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과 신 사이의 존재지배적인 지평을 뛰어 넘어서신에게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다. 인간이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조건인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 준 것이다. 그리고 나서나서 제우스로부터 심한 형벌을 받는다.
프로메테우스 논제와 같이 성육신 논제도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온갖 종류의 죄와 억압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인간이 되어 성육신한 몸으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한다. 신이 인간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화해할 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인 질적 차이를 극복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신과 인간 사이에 놓여 있는 존재지배적 간격을 뛰어 넘는다. 기독교의 성탄절은 이러한 신과 세계, 신과 인간 사이에 가로 놓인 심연이 철폐되는 사건이다. 따라서 성탄절은 엄격히 말해서 과거의 모든 이신론적 토론 아니 자유주의적 토론의 문제를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신정통주의의 하늘과 땅의 질적 차이를 뛰어넘어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하나로 만드는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구원의 사건이다. 그래서 칼뱅은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은 곧 인간에 대해서 아는 것이요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곧 인간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신학적인 것과 인간학적인 것은 따로 떼어서 다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신학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는 것으로는 주체사상이 말하고 있는 인간의 속성들 즉 자주성, 창조성 그리고 의식성에 관한 것이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주의가 인간의 속성을 “노동하는 인간”으로 파악하고 있는 대신에 “자주성”으로 파악하고 “인간을 진정한 세계의 주인으로 위치 짖는 것”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으로 인간을 자연의 노예나 신과 같은 것에 의지하게 하는 일체의 미신과 종교 그리고 숙명론을 배척하고 있다. 여기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전통적인 마르크시즘의 논제를 암시적으로 지시한다. 그러나 주체사상이 이러한 논제를 그대로 받아들여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단지 비자주적이고 의식성을 결여한 일체의 사상과 종교들을 배척할 뿐이다.
이러한 인간 속성을 대변하는 신학적 흐름은 펠라기우스로부터 시작해서 개혁교에서는 아르메니안주의를 거쳐서 오늘날에는 민중신학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신인협동론적 신학의 흐름들은 그동안 교회에서 이단사설로 배척당했지만 여기에 대한 진지한 신학적 검토가 요청되는 시기에 우리는 와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해서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른바 “열쇠권”(마태 16장 19절)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이 열쇠권은 교회사에서 로마 교회의 격상과 함께 사제들의 고해성사권과 함께 교황권의 강화에 기여한 신학적 논제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말씀만큼 성서의 역사에서 교회를 왜곡시킨 구절도 적으리라.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스도 사건 이후의 인간의 운명에 관한 것이 잘 규정되어 있다. 과거에는 모든 것이 하늘에서 열려야 땅에서도 열렸지만 이제부터는 땅에서 열면 하늘에서도 열린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허락되었다는 것이다. 숙명론이나 형이상학적 관념론이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자주성에 관한 전통은 구약의 출애굽 전통에도 잘 나타나 있고 이러한 자주화라고 하는 가치를 기독교 신학의 이름으로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며 따라서 자주성과 창조성과 의식성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2) 사회역사 원리
북한의 주체사상에서는 인민대중은 사회역사의 주체이며 인류역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지향하는 투쟁의 역사라는 것이다.(이 부분에 대한 검토는 생략한다)
3) 지도적 원리
주체사상에서 지도적 원리란 한마디로 ”인민 대중의 지위와 역할을 어떻게 높이는가?” 하는 문제로서 ”인민대중은 혁명과 건설에 대하여 주인다운 태도를 가져야 하며 주인다운 태도는 자주적 입장과 창조적 입장으로 표현된다.”고 했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민들은 자주적 입장을 견지해야 하며, 창조적 방법을 구현시켜야 하고 사상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세 가지 ”지도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미 살펴본 대로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 그리고 사상에서 주체를 주장하면서 이 중에서도 정치에서 자주를 가장 강조하고 있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도 자주성은 생명으로서 사람이 사회적으로 자주성을 잃어버리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동물과 다름이 없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에게 있어서는 육체적 생명보다도 사회정치적 생명이 더 귀중하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목숨을 붙어 있어도 사회적으로 버림을 받고 정치적으로 자주성을 잃어버리면 사회적 인간으로서는 죽은 몸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러한 자주성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 즉 사회정치적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사회정치적 생명은 수령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여기에 대하여 높은 정치적 자각과 기술에 입각한 충성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체사상에서의 지도 원리는 인민대중이 혁명과 건설에서 주인다운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과 함께 사회정치적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수령에 대한 충성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령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기본원리인 전체를 위한 개체와 개체를 위한 전체의 변증법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이 경우 수령은 김일성이라고 하는 하나의 자연인을 대변하는 이름이 아니라 전체 인민의 집약된 의사와 희망을 체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정치적 생명을 이어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상을 성육신화 한 것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주체사상에서의 지도원리의 핵심은 수령론에 귀착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수령론이 남한 정부는 물론 세계 각국들로부터 가장 의심과 오해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수령론이 특정한 개인을 수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민의 집약된 의사와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우선 근대 이후의 모든 국가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로서의 민의 통치 혹은 민주주의의 이상과는 형식과 내용과 모순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에서 실천되고 있는 수령과 당에 대한 인민들의 일치된 충성은 놀랄만한 것이다. 수령과 당의 사심 없고 애국적 헌신에 대한 응답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고도의 정치조작과 대중동원 기술에 의한 기형적 통치방식이라고도 한다. 우상숭배에 민감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는 수령론은 ”인간우상숭배“로서 낙인찍히고 있다. 사회주의 일반에 대해서 가해졌던 비판인 전체주의의 전형을 여기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령론은 사실상 기독교 신학과 주체사상의 대화에서 가장 큰 장애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장애가 되는 것은 수령론이 기독교 구원론에서 등장하는 사상과 구조적으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령론은 그 구조면에서나 실쳔 면에서 너무나도 기독교의 세속화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기독교로 하여금 수령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수령론은 이미 암시한대로 주체사상의 지도원리에서 내세우고 있는 혁명과 건설에서의 인민들의 위상을 높임에 있어서나 인민들의 주체성 확립이라고 하는 차원에서 볼 때는 이론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전체와 개체의 변증법적 통일이라는 도식으로 설명한다 하더라도 이들 수령과 인민 사이는 호상적 관계라기보다는 종속적 관계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물음은 수령이 주체고 인민은 어느 경우에서나 객체화, 대상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정치적 생명의 영생론에 대해서 몇 마디 언급하고자 한다. 생물학적 생명은 생식을 통해서 전수된다. 여기에도 시간의 무한성을 전제로 하지 않을 때는 생명은 계속된다고 할 것이다.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의 영생론은 정교회의 전통적 선교론에서 나타나고 있는 후손의 생물학적이고 정교회 신앙적 연속성의 보존과 상응한다. 따라서 정교회에서의 선교는 자녀를 출산하고 그들을 정신앙으로 양육하는 것이 곧 선교이다. 여기서는 교황권의 승계가 아니라 신앙이 대를 잇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보면 주체사상에서의 사회정치적 생명의 영생론은 이 수령의 세습화와 함께 이러한 사회정치적 생명으로서의 이러한 사상의 영원한 전수와 발전을 기대하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북한 사회의 사회정치적 이상을 뭔가 불변의 것으로 이상화 하고 그것의 영원한 전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결 론
주체사상을 그 철학적 원리와 지도원리를 중심으로 해서 제기되는 몇 가지 논제를 중심으로 하고 평가해 보았다. 주체사상은 그 형식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 기독교 신학과 대화할 수 있는 많은 유사점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남북 사이의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이 두개의 사상은 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 두 사상의 대화의 장으로 삼을 수 있는 기초 가운데 하나는 민족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동서 냉전의 이념체계의 붕괴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질서 형성과 함께 등장한 가장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민족문제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강제되었던 민족들 사이의 분열은 재통합으로 나아가고 강요되었던 민족들 사이의 통합은 해체되는 과정을 격고 있다. 월남의 통일과 독일의 통일은 그 전자의 대표적 예고 유고의 내전과 소련 연방의 붕괴는 그 후자의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이러한 세계사적 전환기에서의 민족운동들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청산이라는 국제정치학적 의미와 함께 사상과 문화에 있어서도 모든 민족이 자주적으로 살고자 하는 강렬한 의사의 표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에도 문화와 과학기술을 통한 보편주의가 지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포스트 모던이즘에 기초한 지역주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신학계에서도 잘 감지할 수 있다. 남미 대륙을 중심으로 하고 등장한 해방신학이나 한국의 민중신학 미국의 흑인신학 아프리카의 민족해방신학 등이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와 같이 어떤 보편타당한 신학을 강요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신학에서도 민족문제 그리고 지역문제가 토론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한국의 신학은 한국민의 열망과 소원을 해석해 줄 수 있어야 신학으로서 자기위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에서 등장한 토착신학인 민중신학과 북한에서 체계화된 주체사상은 “민족문제“를 그 장으로 하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주체사상에서의 지도원리에서의 수령론의 문제를 우리 신학에서는 보다 고차원의 선교 신학적 접근 하에서 이해해 보려고 해야 할 것이다. 수령론이 제1계명에 기초한 신학적 논거에서 볼 때 인간우상숭배적인 요소를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독교 전통 안에서의 교황무오설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상응성은 지도자 승계에 있어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이러한 수령론이 기독교 신학과 가지는 관계를 칼 라너의 도식을 빌어서 세속적 형태에서의 “복음을 위한 존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맘몬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모순된 세속주의 보다 주체사상은 훨씬 더 복음에 가깝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북한 인민들은 보다 분명하고 따라서 극복 가능한 우상 앞에 서 있다면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불분명하고 따라서 극복 불가능한 우상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서울 남노회 동광교회에서 열린 평통위원 세미나에서 한 강연(1996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