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통일의 현실
1993년 8월 23일자 독일의 저명한 시사주간지 “Spiegel"에 ”파괴의 함머“라는 제목 하에 통일 독일 이후의 여러 가지 상황을 진단하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서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동독에서는 자포자기가 확산되고 있다. 실업률의 성장은 멈출 것 같지 않다. 약속된 경제활성화는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있다. 불신감이 팽창하고 있다. 서독의 경쟁자들이 신탁회사들의 지원을 받아서 동독을 파괴하는 것인가?“
이 말은 통일 3년째를 맞이한 동독의 상황을 일반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독인들은 통일 후에 자기들이 기대했던 것들이 거의 달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통일과 더불어 서독 정부가 약속했던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배신감 마저 느끼고 있는 것이다.
로이트(Reuth)라고 하는 적은 마을에 사는 페트 슈미트(Peter Schmidt)라고 하는 가구상은 1990년 5월 양 독일의 화폐통합과 국토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이전에 국유화되었던 자기의 가구공장을 되돌려 받아다. 이렇게 국가로부터 공장을 되돌려 받은 그는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보다 낳은 운영을 기대했었다. 그 동안 그 지방에서 명성을 날리던 이 가구공장을 잘 운영함으로써 그는 보다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8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 이 공장은 지금 파산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서독 남부에 있는 뷔템베르그(Würthemberg) 지방에서 온 경쟁자가 질좋고 값싼 가구들을 대량으로 공급함으로써 그의 가구공장은 완전히 파산직전에 처하게 된 것이다. 서독에서 온 경쟁자가 완성된 가구를 자기들의 자재 값도 미치지 못하는 값으로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서독의 질 높은 기술과 낮은 가격 앞에서 그의 공장 제품들은 전혀 경쟁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이다. 결국은 이러한 서독 상품의 덤핑판매가 동독상품들을 여지없이 시장에서 몰아내고 따라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동독의 공장들은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통일독일의 상황을 보여주는 한 단면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서독놈(Wessi라고 경멸한다)이 또 동독에 있는 하나의 공장을 문닫게 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 이것은 이전의 서독과 오늘날의 동독인들의 문제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는 시장경제가 안고 있는 간교함과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서독의 기업들은 동독의 기업들을 이길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우크라이나에다 가구 공장을 세우고 시간당 50페니(250원) 정도를 주고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자본과 기술 그리고 셰계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던 동독의 기업들을 도산하게 마련이다. 그 결과들은 동독의 공장들의 폐쇄요 그 다음은 노동자들의 해고를 몰고 오는데 즉 대량실업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동독인들은 서독의 대기업들이 동독의 경쟁자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말살하려고 한다고 믿게 되었다.
얼마 전에 튀링겐(Thüringen) 지방에 있는 화학공장 노동자들이 단식농성에 들어가서 전국이 떠들썩한 일이 있다. 그들이 내건 표제어는 ”오늘은 화학 공장, 내일은 석탄광산 그리고 모레는 모든 것이 도산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유럽의회의 독점방지 위원회에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이 동독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통일 이전의 동독의 상황이 나빳지만 지금과 같이 처절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한스 폰 도나니(Hans von Dohnanyi=현재 Leipziger Takraf AG의 회장)은 현재의 동독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차별 받는다는 느낌이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커가고 있다.”
이렇게 해서 콜(Kohl) 총리가 통일 직후 약속했던 경제의 폭발적 성장에 대한 신앙은 쓰라린 기만과 실망으로 나타났다. 1990년 여론조사에서 대부분의 동독인들은 통일이 되고 나서 2년 이내에 동서독의 생활정도가 비슷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전 동독 주민들의 80%가 그들의 경제적 상황이 더 나빠졌거나 매우 나빠진 것으로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 조건들은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수입이 늘고 따라서 그들의 생활수준은 서독인들의 60%정도에 머문 것으로 되어 있다.
한 통계를 보면 1991년 서독인 한 사람의 연평균 소득이 25600마르크(1280만원)인데 비해서 동독인은 년평균 12500마르크(625만원)이었습니다. 1992년에 와서는 서독인은 26500마르크(1325만원)인데 비해서 동독인은 15600마르크(780만원)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서독인의 평균재산은 1991년도에 개인 당 49130마르크(24565천원)인데 비해서 동독인은 10417마르크(520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2년에는 서독인은 51740마르크(2587만원)인데 비해서 동독인은 12917마르크(6458500원)에 불과했다. 동독인들도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지만 서독인들에 비해서는 턱없이 모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돈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즉 전망이 없다고 하는 것이 이전의 동독인들에게는 더욱 문제가 된다. 모든 사유화된 기업들이 강건너 편에 도달하기도 전에 침몰해 보린 것이다. 한번 실업자가 된 사람은 일생동안 실업자로 남을 것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있다. 콜수상이 약속한 대로 2년 안에 서독인들과 같이 잘 살 것이라는 꿈은 완전히 사라지고 앞으로 20년이나 지나야 서독인들과 비슷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상실된 환상과 깨어진 약속에 대해서 동독인들은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칼리(Kali) 회사의 호프만(Dirk Hoffmann)은 자기들만 전쟁에서 패배한 느낌이라고 말한다.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으려고 함으로서 자신들은 고향을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동독인들의 90% 이상이 동서독 간의 균열이 더 넓어졌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동독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탁회사들을 ”식민주의의 變形“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것도 다른 대륙에 가서 행하는 식민지가 아니라 자기 국민들에게 행하는 식민지라는 것이다. 서독의 연극연출가 호흐후트(Hochhuth)는 이러한 동독의 현재의 상황을 ”봐이마르의 서독놈들“(Wessis in Weimar)이란 연극에서 묘사하고 있다.
동독에서 많은 것들이 잘못되어갔다. 시장경제의 도입과 마르크의 사용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잘못된 것들에서 특히 본과 벨린의 정치가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는데 더 문제가 있다. 정치가들은 동독의 경제적 부흥을 아직도 믿고 있고 관 주도의 여론조사는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인내는 한계에 도달했다. 적은 불꽃이 횃불이 되어버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동독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서독의 투자도 예정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지난 2년 동안 서독으로부터의 투자가 현저히 약화되었던 것이다. 그 동안 신탁회사들을 통해서 서독인들에게 팔려간 동독의 기업들에게 서독인들은 만족할만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노동시장의 창조는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업친데 겹친격으로 경쟁력이 약한 동독의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제침체와 그것으로 인한 엄청난 경쟁상황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동독이 붕괴되고 통일 된 이래로 동독지역에서는 약 440만 명이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사라졌다. 이것은 약 천만명의 노동자들이 일하던 자리의 거의 절반의 일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서독의 고용실태와 비교한다면 동독에는 약 200만 명의 일자리가 더 많았던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200만 명의 일자리가 더 적었다. 이렇게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에로 넘어가면서 엄청난 실업이 닥친 것이다. 동시에 서독은 수십 년에 걸쳐서 수행했던 구조개혁작업을 단지 몇 년 사이에 수행함으로써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현실사회주의적 계획경제는 오랫동안 전통적인 철강, 화학 등과 같은 중공업 위주로 발전해 왔다. 소비재 산업들, 무역, 금융, 서비스업과 같은 것들은 전혀 발전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들은 자본주의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오일위기와 외화결핍으로 동독은 그 에너지와 화학제품생산에 주로 그곳에서 나오는 석탄사용에 의지해 왔다. 이러한 환경 파괴적인 석탄에 의해서 운영되던 공장들은 통일과 더불어 문을 닫게 되었다. 1989년 이래로 석탄광산에서 일하던 사람들 가운데 8만 명이 실직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에 처해서 동독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전에 우리는 러시아인들이 와 있었다.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지금은 서독인들이 와 있다. 이것은 더욱 끔찍하다.“ 또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사회주의의 항복이후인 지금 보다 더 많은 산업시설들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경제학자며 시장경제의 충실한 추종자인 Joseph A. Schumpeter는 “창조적인 파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새로운 전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러한 파괴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파괴에서부터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사회주의의 몰락에 대해서 승리를 구가하면서 시장경제는 아무런 비판 없이 그 체제가 가지고 있는 경제의 기적적 힘을 투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시험이 아직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나는 오늘 통일된 독일의 상황을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몇 가지 실례를 들어가면서 설명했다. 이 외에도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측면에서의 문제점들도 허다하다. 그리고 이미 암시적으로만 언급했지만 동서독인들 사이의 심리적 갈등의 측면도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다. 서독인들은 통일비용에 드는 무거운 부담으로 인해서 2년이 지난 오늘날 동독인들에 대한 엄청난 심리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서로 상대방 때문에 그들의 삶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통일의 전망과 방향
위에서 말한 이러한 통일독일의 비참한 상황, 특히 동독인들의 비참한 상황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동서독 모두 통일을 위한 착실한 준비 없이 갑자기 통일이 이루어졌다. 특히 동독은 전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강대국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강제 점령됨으로써 분단된 유럽 안에서 독일은 보다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고백에 의해서 서로 갈라섰었다. 지난 50여 년 동안 동서독은 전혀 다른 이념체제 하에서 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다른 삶을 살아왔었다. 이들 사이에는 1961년 이래로 벨린의 장벽이 세워짐으로써 이러한 이념적 세계관적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었던 것이다. 물론 서독에 의한 동방정책의 결과로 얼마간의 정치적 경제적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교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장벽은 굳어져만 갔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에 와서 동서간의 냉전체제가 점차 사라지면서 이러한 여파는 동서 독일에도 강력하게 미치기 시작했다. 동독에 사는 국민들은 더욱 더 많은 자유와 서독과의 교류를 요구했다. 80년대 말을 기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인근 사회주의 국가들을 통해서 서독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동독에서의 자유화의 물결이 통제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도달했다. 이때까지도 동독의 지도자들이나 서독의 지도자들 모두가 이러한 국민의 열망과 움직임을 정치적으로 해결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동독에서는 호네카가 실각을 했고 이어서 등장한 정치 지도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한 대비책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벨린 장벽은 하루아침에 붕괴된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에 의한 흡수통일에 그 원인이 있다.
셋째 통일은 통일 상대자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정치적 협상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넷째 통일은 동독에서의 그 동안의 사회적 성과를 모조리 파괴하는 자본주의적으로 관철되었다.
이렇게 볼 때 한반도의 통일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은 흡수통일이 아닌 정치적 협상을 통한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져야한다.
둘째 한반도의 통일은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달성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고려연방제나 한민족 통일방안이나 모두 완전한 통일 이전의 단계를 설정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셋째 남북한의 체제들에서 달성된 중요한 역사적 경험과 성과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통일이 달성되어야 한다(사회적 시장경제체제).
넷째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는 완전한 독립된 민주주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동독의 소련군의 철수와 서독의 미군의 철수).
(완성)
1993년 10월 28일 원불교 종로교당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