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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23 09:28
사회윤리학자로서의 손규태
글쓴이 : 손규태

 손규태의 정년퇴직기념논문집 "공공성과 평화윤리"에 수록된

한신대학교 강원돈교수의 글


 머리말

    한국 신학계에서 손규태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학자이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유모어 감각이 뛰어나면서도, 불의를 보면 분노하고 저항하는 강직한 학자이다. 그래서 나는 손규태에게서 현대적 모드의 선비를 본다. 그의 선비적인 면모는 신부전증으로 장기 투병을 하는 가운데서도 그 빛이 바래지 않았다.

그는 역사의식과 당대인식에 투철한 학자이다. 이것이 그가 신학하는 관점과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그는 어떤 주제를 다룰 때 그 주제의 역사적 기원과 전개 과정을 추적하여 주제의 역사적 맥락을 밝히고 나서, 그 주제를 당대 현실의 맥락 속에서 체계적으로 다루고자 했다. 이러한 관점과 방법을 갖고 있었기에 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회 등의 영역에서 매우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자기 나름의 신학적 언어를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민족과 평화에 대한 그의 언어는 독특한 바 있다.

그는 한국 교회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진지성과 열정을 갖고서 당대의 문제들과 대결하면서 한국 신학 전통의 유산을 이어가고자 했고, 특히 김재준, 서남동, 변선환의 신학에 주목했다. 그는 또한 독일 신학으로부터 신학 훈련을 위한 자양분을 얻었고, 특히 마르틴 루터, 칼 바르트,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과 윤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교회사와 기독교윤리학 등 신학의 여러 분과들을 넘나드는 학문 활동을 벌였지만, 이 글에서 나는 사회윤리학자로서의 손규태에 집중해서 그가 기독교 사회윤리학에 공헌한 바를 음미하고 싶다.

이를 위해 손규태의 사회윤리학이 설정한 과제와 방법을 살피고(I), 그가 독일 신학의 전통과 한국 신학의 전통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가를 관찰하고(II), 그의 신학적 화두인 민족과 평화에 대한 논의를 분석하고(III), 그가 한국 사회윤리학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평가하고자 한다(IV).

 

I. 사회윤리학의 과제와 방법

 

손규태는 사회윤리학자로서 사회윤리학의 과제와 방법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1992년에 펴낸 사회윤리학의 탐구에 부친 서론 오늘의 상황에서 사회윤리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윤리학은 인간의 삶에 적절한 사회형성을 문제삼는다. 기독교 사회윤리학은 이러한 물음을 복음의 가치와 목표설정들의 지평에서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기독교 사회윤리학은 신앙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동시에 이성의 통찰에 의해서도 긍정되는 원리들의 빛에서 정의와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형성을 위한 지침들과 안내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사회윤리학은 하나님의 형상에 의해 창조된 영육으로 된 인간 자체와 함께, 그 인간 실존이 자신을 실현해 나가는 공동체의 구조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기독교 사회윤리학은 이러한 인간의 사회적 구조가 본질적으로 시간과 역사에 제약되는 상황에 있다는 것을 승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사회윤리학은 초시간적으로 그리고 초역사적으로 타당한 규범들의 의미에서 어떤 확정된 체계에 고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윤리학은 모든 인류가 지향해 나가야 할 기본적인 역사성을 늘 새롭게 의식하여야 한다. 이 경우 역사성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속사적 역동성에서 동터오고 하나님 나라에서 그 완성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사건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인용문은 기독교 사회윤리학의 과제와 방법에 대해 손규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압축해서 전하고 있다. 그러면 먼저 사회윤리학의 과제에 대한 손규태의 생각을 살펴보자.

 

1. 사회윤리학의 과제

 

1) 손규태의 사회윤리학 규정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윤리의 과제를 형성으로 본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형성은 물론 세상의 형성, 사회의 형성이다.

세상과 사회를 형성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은 서양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그렇고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절대성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나머지 세상의 부질없음과 덧없음을 강조하고 이를 단순히 부정하곤 했다. 거꾸로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오기 전까지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따르는 것이어서 세상의 실정성과 자기법칙성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앞의 태도는 세상의 단순한 부정으로 귀착되기에 세상과 그 구조의 개혁이나 변혁을 부질없는 일로 여길 것이요, 뒤의 태도는 세상의 단순한 긍정으로 나아갈 것이니 여기서도 세상과 사회의 변화를 기하는 것은 무모한 일에 불과할 것이다. 전자는 세상으로부터의 퇴각을 부추기고, 후자는 세상에 대한 순응을 촉진한다. 둘 다 부조리한 세상과 그 구조를 방치하는 결과를 빚어낸다. 손규태는 이러한 두 가지 태도를 넘어서서 기독교인들의 윤리적 과제를 세상의 형성, 사회의 형성으로 명확하게 부각하고자 했다.

2) 윤리의 과제가 세상의 형성에 있다면, 세상은 하나님 나라에 투명해져야 한다. 만일 세상이 하나님 나라에 투명하지 않다면, 그 투명하지 않은 부분을 드러내서 비판하고 철저하게 바꾸어야 한다.

세상을 형성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세상의 실정성과 자기법칙성에 함몰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변혁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손규태는 세상을 변혁의 대상으로 인식하면서도 세상이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될 것임을 인식하고 이를 기다리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 세상의 변혁을 위한 노력이 열광적 메시아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인식은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위의 인용문에서 손규태는 세상과 사회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이 역사성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속사적 역동성에서 동터오고 하나님 나라에서 그 완성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사건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이 함축적 표현에는 실로 많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이지만, 손규태는 그가 이제까지 쓴 여러 논문들과 저작들에서 이를 자세하게 설명한 적은 없다. 그러나 이 함축적 표현에서 분명한 논지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구속사적 역동성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긍정을 동시에 함축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그 완성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사건이 세상의 존속과 그 상대성을 승인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역사성을 주목한다면, 세상사가 역사적 시작이 있고, 따라서 그 끝이 있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의 역사성에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사의 역사성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때를 분간하고 실천하는 일의 중요성을 안다. 종말론적 관점에서 세상사를 보는 기독교인들은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서 세상이 하나님 나라에 투명한가를 분별하고 이에 따라 실천하는 책임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3) 손규태는 사회윤리의 대상을 인간의 사회적 구조로 보고 있다. 이 표현 역시 매우 포괄적이지만, 손규태의 여러 글들을 살펴보면, 인간이 살아가면서 형성하는 관계들이 제도화를 거쳐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취지에서 이 표현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책임사회론으로부터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을 위한 공의회 과정”(JPIC)에 이르는 에큐메니칼 사회사상의 전개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기독교 사회윤리학이 세상 가운데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들의 문제들을 책임 있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한국 신학계에서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를 양자택일의 관점에서 논의해 왔던 점을 돌이켜 보면, 손규태가 구조와 제도의 문제를 사회윤리의 과제로 명확하게 설정한 것은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개인주의적 패러다임에 묶인 기독교 인격주의가 한국 기독교의 윤리적 논의에서 주류를 이루어온 것을 감안하면, 개인의 도덕적 완성이 사회 제도의 구조적 악을 줄이지 못한다는 통찰을 강조하고, 제도를 규율하는 원칙과 지침을 제시하는 일을 사회윤리의 고유한 과제로 밝히고, 우리 시대의 제도 문제들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여러 영역들에서 일관성 있게 논의한 것은 한국 기독교 윤리학계에서 손규태가 이룩한 중요한 업적이다.

 

2. 사회윤리학의 방법

 

손규태의 사회윤리학이 갖는 세 가지 초점, 곧 형성의 윤리, 역사성을 고려하는 윤리, 제도와 구조의 규율을 중시하는 윤리는 그의 사회윤리학의 방법을 규정한다.

1) 윤리의 과제를 세상의 형성으로 규정한 이상,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형성할 것인가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윤리적 원칙들과 가치들을 정하는 일이다.

손규태는 이 원칙들과 가치들이 확정된 체계를 이루며 초역사적인 타당성을 요구한다고 보는 입장에 경계심을 보였다. 기독교 윤리학에서 이러한 입장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고 믿어지는 계명의 초역사적 타당성과 보편적 적용가능성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곤 했는데, 손규태는 설사 인간의 윤리적 행위를 이끌어가는 원리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 원리들은 신앙 안에서 받아들여지고 동시에 이성의 통찰에 의해서도 긍정되는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리의 원칙들을 규명하는 작업에서 신앙과 이성의 역할을 동시에강조한 손규태의 언명은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이 말에는 신앙의 요구임을 앞세워 비이성적이고 반이성적인 일을 서슴지 않는 열광적 행동주의의 맹목성과 우매성을 경계하는 뜻도 담겨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 보다 더 깊은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확실히 기독교 윤리의 법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따르겠다고 결단하는 것은 신앙의 과제요, 신앙고백의 문제임에 틀림없다. 손규태가 윤리적 원칙의 설정과 관련해서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신앙고백에 준하는 입지(status confessionis)라는 개념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신앙고백이나 신앙고백에 준하는 입지를 통해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지를 수용한다고 공언한다 할지라도 이 의지를 해석하여 행위를 규율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이다. 윤리를 신앙의 과제로 보아야 하는가, 이성의 과제로 보아야 하는가는 기독교 윤리학에서 중요한 논쟁거리이지만, 내가 보기에 손규태는 윤리적 원칙의 궁극적 근거를 신앙고백에서 찾되, 윤리적 판단과 행위의 원칙들을 규명하여 세상 속에서 실천을 조직하는 작업은 이성에 맡겨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같다.

형성의 윤리에서 이성의 역할을 강조해야 하는 까닭은 세상이 하나님 나라에 투명해야 한다는 신념을 반복해서 외치는 것만 가지고서는 불충분하고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서로 매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형성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며 세상의 자족성과 폐쇄성을 깨뜨리는 실천의 과제이다. 이 실천의 과제를 책임 있게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자족성과 폐쇄성의 구조를 인식하는 이성의 날카로운 분석 능력과 하나님의 요구를 세상에 구현하는 방법을 찾는 현명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사회윤리학을 구상하면서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 손규태의 관점은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2) 손규태는 어떤 문제를 설정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할 때 그 문제의 역사적 기원과 경과 과정을 철저하게 추적하여 문제의 역사적 성격을 파악할 것을 요구했다.

그의 논문들과 저작들은 그가 이러한 작업을 모범적으로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예를 들면, “환경파괴와 교회라는 짤막한 글에서 그는 세계관, 제도, 가치의 우선순위, 인간행동의 특징 등에서 환경파괴의 원인을 찾으면서 문제의 성격을 규정한 다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80년대부터 이루어진 여러 가지 시도들을 역사적으로 살핀다. 그 뒤에 환경파괴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책임의 신학적 근거를 밝히고, 교회의 실천을 위한 지침들을 제시한다. 이 글은 손규태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전형적인 순서를 보여주는데, 문제의 역사적 배경을 밝힌 다음에 문제의 구조적 성격을 분석하는 작업이 이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위의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러한 순서가 조금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어떤 문제의 역사성을 명확하게 인식하면, 현상유지를 위해 필사적 낙관주의에 빠지는 경우도 없고, “형이상학적 비관론이나 숙명론의 포로가 되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손규태는 어떤 문제를 다루든지 그 문제의 역사성을 지적함으로써 실천적 낙관주의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철벽처럼 여겨지는 현실의 벽 앞에서도 그는 현실 변혁의 역사적 조건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자 했다. “필사적 낙관주의형이상학적 비관론은 역사의식의 결여이다. 어떤 구조나 제도가 역사적 소임을 다하여 소멸하여야 하는데도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 역사적 잔재의 청산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만일 어떤 구조나 제도의 역사적 존속이 인정된다면, 그 존속이 필요 이상의 억압과 희생을 동반하지 못하도록 규율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삶의 역사적 조건들과 그 조건들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사회윤리학은 구조나 제도의 역사적 상대성과 가변성을 꿰뚫어봄으로써 구조나 제도의 초역사적 존속이라는 환상이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손규태가 이 점을 깊이 통찰한 사회윤리학자라고 본다.

3) 손규태는 사회윤리학을 전개하면서 구조나 제도의 문제를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할 것을 요구했다.

구조나 제도에 대한 신학적 설명은 기독교 윤리학에서는 흔한 일이다. 신루터파의 창조신학이나 질서신학은 그 전형적인 예인데, 이 신학들은 특정한 역사적 구조나 제도의 신학적 재가를 시도한 바 있다. 그렇게 되면 특정한 구조나 제도의 역사성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 구조와 제도를 제정한 신의 뜻이 전면에 부각된다. 에큐메니칼 운동에 의해 촉발되고 독일 신학에 의해 발전된 사회윤리는 이러한 낡은 설명 체계를 버리고 구조나 제도에 대한 역사적이고 사회과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우리나라 신학계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도 구조나 제도의 사회과학적 분석을 기독교 사회윤리학에 매개하여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소수파의 견해였다. 그 당시 해방신학과 민중신학 진영에서 이와 같은 주장이 대두하여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견신학자로서 사회과학적 분석의 중요성을 공개적으로 강조한 학자는 손규태가 거의 유일했다. 손규태는 역사적으로 성립된 구조나 제도의 사회과학적 분석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고자 했고,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한국 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특히 민족모순, 계급모순, 분단모순을 극복하는 것을 기독교 사회윤리학의 과제라고 인식했다.

기독교 사회윤리학을 전개하는 데 사회과학적 분석을 매개할 것을 요구한 손규태는 어떤 문제를 다루든 그 문제의 구조적 성격을 드러내는 작업을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했다. 그는 어떤 특정한 사회과학적 방법을 고집하지는 않았고, 문제의 구조적 성격을 드러내는 데 적합한 방법을 그때그때 선택하였다. 이러한 유연한 태도는 그가 다루어왔던 사회윤리학적 주제의 다양성 때문에 도리어 생산적인 결과를 낳았던 것 같다.

구조나 제도의 문제에 대한 사회과학적 인식은 문제 해결을 위한 지침을 구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사회윤리학에 필수적이다. 사회윤리학은 신앙에 근거한 윤리적 원칙들을 견지하면서 구조나 제도의 변혁을 위한 행위의 지침들을 제시하여야 하는데, 이 지침들은 윤리적 원칙들로부터 직접 도출될 수는 없고 문제의 구조적 성격과 그 구조 변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가운데 책임 있는 최선의 방책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다.

 

3. 중간결산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나는 손규태가 사회윤리학을 어떤 관점과 방법에서 전개하고자 했는가를 밝히고자 했다. 그는 제도의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이 문제들의 역사적 배경을 밝히고 구조적 성격을 분석하는 일에서 출발하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대안의 원칙들을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신학적 근거를 밝히고자 했다.

그는 윤리하는 일과 관련하여 시간과 공간이라는 평범한 개념을 본격적으로 규명하여 사회윤리학의 인식론적 틀로 삼은 학자이다. 시간은 역사성의 범주이고, 공간은 구조의 범주이다. 손규태는 사회윤리학의 인식론적 틀만 논한 것이 아니고 역사적 현실의 구조를 변혁하는 데 참여하는 것을 사회윤리학의 실천적 틀로 받아들인 신앙인이다. 손규태는 강연을 할 때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예언자적으로 행동하라고 강조하곤 했다. 나는 이 말 속에 그의 신학과 윤리의 핵심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II. 독일 신학 전통과 한국 신학 전통의 수용

 

손규태는 1998년에 개신교 윤리사상사라는 방대한 저서를 발간한 적이 있다. 이 책을 살펴보면, 그가 종교개혁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독일, 영국, 미국, 한국에서 활동한 수많은 신학자들의 신학사상과 윤리사상에 대해 깊은 조예를 갖고 그 업적을 평가하고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수많은 신학자들은 손규태 신학과 윤리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가 특히 주목한 신학자들은 독일 신학 전통의 마르틴 루터, 칼 바르트, 디트리히 본회퍼였고, 한국 신학 전통에서는 김재준, 서남동, 변선환이었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개신교 윤리사상사에서 이 신학자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였고, 루터와 김재준에 대해서는 별도의 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편집한 본회퍼의 기독교 윤리를 번역할 정도로 본회퍼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졌으며, 그에 대해서는 여러 편의 소논문들을 집필했다. 바르트에 대해서는 한편의 논문을 저술하는 데 그쳤으나, 에두아르트 부에스, 마르쿠스 마트뮐러의 예언자적 사회주의를 번역해서 종교사회주의자로서의 바르트를 소개한 바 있다.

이 절에서 나는 손규태가 독일 신학 전통과 한국 신학 전통을 소화해서 자신의 언어를 형성한 과정을 소상하게 밝힐 수는 없다. 아마도 그러한 작업은 신학자별로 별도의 논문을 써야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나의 관심은 손규태가 어떤 원칙들을 갖고서 독일과 한국의 신학 전통을 수용하였는가에 있다. 이 점을 밝히면, 손규태 신학과 윤리의 독특한 면모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수용의 원칙

1) 손규태는 해외 신학을 배우고 수용하는 일을 피할 수 없지만, 해외 신학과 우리 현실 사이에 가교를 놓으려는 노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믿었다. 해외 신학의 수용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것을 모색하려는 주체적인 노력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근본주의 신학자들이 선교사들의 신학을 맹종하며 교권을 추구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그가 한국의 토착화 신학 논쟁이나 민중신학의 전개에 큰 감명과 자극을 받았다고 실토한 것은 주체적인 신학 형성이라는 과제를 중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2) 손규태가 국내외 신학자들의 윤리사상을 정리할 때 세운 원칙도 흥미를 끈다. 그는 신학자들을 선택하여 연구하는 원칙을 두 가지 세웠는데, 하나는 교회적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었거나 그 전환점에서 새로운 신학을 제시하고 교회와 역사의 변혁을 위해 일했던 신학자들을 선택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복음에 충실한 신앙인들, 상황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제도적 교회들을 타파함으로써 그것들을 다시 복음의 정신, 즉 예수께서 가르치신 복음의 정신으로 되돌려 놓으려던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손규태는 복음에 충실한 사람들이 교회와 역사의 전환점을 만든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는 제도적 교회들의 현실 안주와 자기중심성이 예수의 복음을 가리는 것을 개탄했고, 특히 한국 교회가 탈정치화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민족과 민중의 문제에 대해서는 등을 돌리면서도, 식민지 지배에 영합하고, 독재정권을 방조하거나 용인하고, 스스로 자본주의의 화신으로 전락하고, 신보수주의의 든든한 지원세력 노릇을 하는 것을 보고 한탄했다. 그렇기에 복음에 충실한 신앙인들이 나타나 교회와 역사의 변혁을 주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배 신학자들의 윤리사상을 연구하여 이를 신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애썼을 것이다.

3) 위에서 말한 원칙들을 갖고서 손규태는 개신교 윤리사상사에서 유럽 대륙과 영미의 개신교 신학자들을 선별해서 그들의 생애와 윤리사상을 다루었는데, 여기서 그는 전기(傳記)와 신학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부분의 사상사는 문자 그대로 사상의 전개과정을 다룰 뿐, 그 사상을 발전시킨 사람의 삶의 흔적도 그 사람이 대결하고자 했던 시대사적 과제들도 밝히지 않아서 추상적이기 짝이 없는데, 손규태는 개신교 윤리사상사에서 전기와 신학을 연결하는 관점을 채택함으로써 자신이 세운 두 가지 원칙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전기와 신학의 연관을 추적하면서 그는 사회윤리학의 과제와 방법에서 설정하였던 두 가지 틀,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식론적 틀과 참여라는 실천적 틀을 놓고서 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검토하였다.

 

4)개신교 윤리사상사에서 독특한 점은 현대 신학자들의 윤리사상을 다룰 때 위르겐 몰트만, 죤 캅과 함께 한국의 김재준, 서남동, 변선환의 윤리사상을 분석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현대를 기독교 후기 시대로 규정하고, 기독교 후기 시대에는 신학적 지역화 내지 상황화가 주목되는 만큼 제3세계 신학자들을 다루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손규태의 지론에 따르면, 신학자의 과제는 그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역사적 과제와 대결하면서 신학하는 것이기에 신학의 지역화상황화는 제3세계 신학의 특징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지면 관계를 고려하면서 제3세계의 걸출한 신학자들 가운데 개신교 윤리사상사에서 다룰 적합한 인물들을 선별하다 보니 한국의 김재준, 서남동, 변선환을 꼽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 세 사람을 현대 신학자들의 윤리사상에 등장시킨 것은 한국신학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 전통의 수용과 해석

 

1) 김재준, 서남동, 변선환의 신학과 윤리에 대한 개신교 윤리사상사의 서술을 읽다 보면, 손규태가 어떤 기본관심사를 갖고서 사회윤리를 하는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가 이 세 신학자들의 신학과 윤리를 검토하면서 남긴 아래의 글은 그런 점에서 인용할 만하다.

 

“(...) (=김재준, 필자 삽입)는 그리스도교 사상을 한국의 역사적 (특히 정치적) 현실과 접맥시킬 뿐만 아니라 윤리적 판단 준거로 삼았던 한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고 믿고 있다. 그의 동년배 신학자들이 대체로 서구의 그리스도교 사상, 그것도 특정한 교리의 바벨론 포로가 되어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는 걸출한 학자일 뿐만 아니라 사상 세계에서도 자유인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예리한 학문적 통찰력과 성실성으로 서구 신학 사조들을 한국에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말년에는 고난받는 민중의 현실을 발견하고 그들의 현실에 뛰어듦으로써, 신학자며 교수로서 가진 모든 사회적 교회적 특권을 내어던지고 계급자살을 감행했던 죽재 서남동 선생님을 기억한다. 그 분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서구신학 소개에 바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과 우리 민족과 역사적 현실을 매개하는 민중신학연구에 많은 시간을 바치지는 못했지만 그의 학문적, 인간적 성실성은 모든 후학들에게 본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오랫동안 후학을 가르치셨던 일아 변선환 선생님을 기억한다. 그의 글에서 우리는 루터와 같은 열정과 칸트와 같은 예리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글에서는 예언자 예레미야와 같은 애증이 분출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윤리사상도 여기에 소개했다.

이 분들이 가진 공통점은 그리스도교 복음을 우리의 역사적 정황, 민중적 현실 그리고 문화적 환경과 매개하여 이 땅에서 복음의 새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가 이 책에서 이 세 분만을 선택해서 그들의 윤리사상을 소개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인용문에서 보듯이, 손규태는 그리스도교 복음과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서로 매개시키는 작업을 윤리의 기본 관심사로 삼고 있다. 이와 같은 매개의 윤리학의 관점에서 그가 김재준의 사회참여 신학, 서남동의 민중신학적 윤리사상, 변선환의 종교다원주의 신학과 윤리사상을 분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세 신학자들의 신학과 윤리에 대한 손규태의 분석을 여기서 자세하게 소개할 수는 없으나, 손규태가 각 신학자들의 전기를 한국 시대사의 전개 과정과 연결해서 살핌으로써 이 신학자들이 왜 그들 나름의 독특한 윤리 사상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밝힌 것은 전기와 신학의 연관을 추적한 매우 빛나는 시도였다는 점을 부연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전기 서남동과 후기 서남동을 구별해서 다루고, 민중신학 작업이 서남동을 서구신학의 포로상태에서 자주적이고 참여적인 신학자로 변모시킨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한 것은 손규태가 자신의 윤리학적 관점과 방법에 충실하게 매우 치밀한 분석을 하였음을 보여 준다. 변선환이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추구함으로써 창조적 이단자로서 교권의 추방과 박해를 감내한 과정에 대한 분석은 윤리학자이며 역사학자인 손규태가 이룩한 훌륭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2) 손규태는 특히 김재준의 신학과 윤리에 대해서는 따로 책을 한 권 썼다. 이 책은 김재준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모임들에서 발표한 강연 논문들을 모은 것이지만, 여기에는 김재준의 생애를 정리한 부분도 들어 있다. 이 논문들은 김재준의 신학사상, 정치신학과 윤리, 민족 이해, 사회-정치 이해, 이데올로기 이해 등을 소상히 분석하고 있기에, 장공의 신학사상과 윤리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가 될 것이다.

김재준의 신학사상과 윤리를 분석하면서 그는 예의 인식론적 방법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설정하고 실천적 방법으로서 참여를 설정하였다. 그가 이 틀에서 조명한 김재준의 신학사상과 윤리는 어떤 면모를 보이는가?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장공의 삶과 신학사상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준거개념을 통해서 규정해 볼 때 그의 윤리사상의 내용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 말을 좀더 쉽게 표현하자면 장공이 파란만장한 역사의 장, 다시 말하자면 숱한 사건들 가운데서 어디에 서 있었는가를 물을 때 우리는 그의 삶과 사상 특히 윤리사상을 더욱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는 한마디로 성서에서 외로운 투쟁을 전개했던 예언자들의 시간과 장소,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장소와 시간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면서 살아왔다.”

 

손규태는 바로 그 시간과 장소에서 장공이 세상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새 역사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구원 활동에 동참하고자 했다고 보았다. 참여는 진정한 신학을 수립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이다. 그리스도 사건에 참여하여 현실을 비판하고 변혁하지 않는 학문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신학일 수 없고, 죄의 역사를 새로운 구원의 역사로 바꾸기 위해 그리스도 사건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손규태는 장공이 바로 그러한 진정한 신학을 했고, 바로 그러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공의 신학과 삶을 돌이켜 보면서 이를 다음과 같은 명제로 남기고 싶어 했다.

 

따라서 역사의 참여자로서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자인 동시에 변혁자이다. 하나님의 역사경륜에 동참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숙명이다.”

 

장공의 윤리사상에 대한 손규태의 평가는 기독교 사회윤리학자가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아니면 시쳇말로 아니면 말고하는 식으로 제도의 문제를 다룰 수 없음을 되새기게 한다. 사회윤리학이 이성의 윤리를 표방한다 할지라도 그 이성의 윤리를 이끌어 가는 원칙들의 신앙적 근거를 밝혀야 한다면, 이성을 동원하여 역사의 조건들 아래서 실현가능한 최선의 방책을 택하는 윤리적 사유는 현실 안주나 현실 동화를 의도할 수는 없고, 하나님이 편드는 가장 보잘것없는 자들의 처지에서 나락을 뒤집어 하늘을 보는 힘을 허락받아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 십자가와 부활은 윤리를 심판하고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다. 손규태는 이를 증언하고 또 그것에 바탕을 두고 윤리를 하고자 했다.

 

3) 손규태는 신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부터 마르틴 루터의 신학사상과 윤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한국신학대학 대학원 신학과에 제출한 석사학위 청구 논문의 주제를 루터에 있어서 율법과 복음으로 잡았고, 그 뒤에도 루터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했다. 그 성과가 마르틴 루터의 신학사상과 윤리라는 책이다.

손규태는 캘빈보다는 루터에게 더 큰 매력을 느꼈는데, 그것은 개신교 신학의 뿌리를 캐보겠다는 그의 독특한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그가 보기에 캘빈은 루터가 발견해 놓은 뿌리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학자에 불과했다. 개신교 신학의 뿌리를 캐보겠다는 발상이나 캘빈에 대한 평가는 사실 손규태의 독특한 신학하기와 관련되어 있다. 앞에서 사회윤리학의 과제와 방법에 대한 손규태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는 문제에 대한 역사적 분석과 체계적 분석을 중시하는데,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미 신학 훈련 시기에 태동하였던 것 같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갖고서 신학하는 사람에게는 분명 루터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루터는 캘빈처럼 신학적 주제를 논증적으로 전개하여 매끄러운 신학 체계를 제시하지 않고 그때그때 부딪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신앙적 열정과 이성적 분별력을 갖고서 자신의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터의 신학을 연구하면서 어떤 신학적 논제의 체계를 제시하려는 시도는 많은 경우 루터의 생각을 왜곡시키기 십상이다. 루터의 생각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의 주장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시된 것인지를 면밀하게 따져서 그 주장의 타당성 요구의 한계를 인식하여야 한다. 문제지향적이고 상황제약적인 주장을 일반화해서 도그마로 굳히는 일은 루터 연구에서는 금물이다. 손규태는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루터 연구에서는 역사적-논쟁적방법을 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루터의 신학사상과 윤리에 대한 손규태의 연구에서 나는 두 가지 중요한 업적을 본다. 하나는 루터가 생각한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고, 또 하나는 두 왕국론에 대한 해석이다. 우선, 손규태는 루터가 율법의 제3용법을 염두에 두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매우 면밀한 답변을 준비했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한 루터의 생각을 연구해 온 신학계에서는 루터가 율법의 신학적 용법과 정치적 용법만을 인정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손규태 역시 루터에게서 율법의 권면적 용법이라는 관념이 성립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루터가 인의에 근거하여 성화의 길을 걷는 신자들에게 율법이 갖는 의미를 깊이 고려했다고 해석했다. 루터에게서 율법과 복음은 대립적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 손규태의 독특한 생각이다. 율법과 복음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루터의 통찰은 교회가 값싼 은혜의 덫에 빠지지 않게 하고, 복음의 율법화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다. 손규태는 바로 이러한 복음과 율법의 변증법적 긴장이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다음, 루터의 두 왕국론과 관련해서 손규태는 한국 기독교가 전제하는 정교분리주의가 루터에게서 기인하였다는 통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루터에게서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의 통치의 두 방식이고, 서로 구별되기는 하지만, 서로 분리될 수는 없다. 교회와 국가가 서로 혼동된다든지, 서로 융합된다든지 하는 것은 인정될 수 없지만, 둘을 분리해서 별도의 영역에 배치하려는 생각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정교분리주의를 내세워 교회의 정치적 책임을 도외시하거나 세계의 형성을 위한 교회의 책임을 부정하는 입장은 루터의 두 왕국론의 빛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루터의 두 왕국론에 대한 손규태의 이해가 한국 기독교에서 루터의 정치신학과 정치윤리를 처음으로 제대로 소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손규태의 루터 해석은 루터 신학과 윤리의 전영역을 망라하고 있으나, 루터 해석에서 그가 이룩한 독특한 업적은 우리의 상황에서 교회와 역사의 변혁을 염두에 두고 루터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이룩되었다고 본다.

4) 손규태가 본회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국 기독교가 교회의 정치적 책임을 의식하면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나서면서 본회퍼가 본격적으로 소개된 사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본회퍼가 한국 교회에 소개된 내력을 소상하게 밝히는 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본회퍼의 수용은 1960년대 증반 이래로 기독교인들의 정치투쟁을 위한 영감과 힘을 주었다고 했다.

손규태는 본회퍼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저작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개신교 윤리사상사에서 본회퍼 신학과 윤리의 개요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깊은 공감을 숨기지 않은 채 본회퍼의 생애를 간략하게 정리하였으며, 본회퍼가 궁극적인 것과 궁극 이전의 것을 구별하면서 자연적인 것의 개념을 기독론과 종말론의 빛에서 구축하고, 이에 근거하여 형성과 책임의 윤리를 전개하고,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책임을 지는 차안성의 윤리를 구축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손규태가 본회퍼 신학과 윤리의 탁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우리의 상황에서 주체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본회퍼는 비종교적인 시대에 윤리의 가능성을 타자를 위한 존재에서 찾았지만, 손규태는 한국 민중 현실을 염두에 두고 본회퍼의 타자개념을 음미하면서 그 개념의 추상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손규태는 본회퍼 신학에서 영성해방의 모티프를 살피기도 했는데, 이 모티프들에 대한 해석도 독특하다. 그는 본회퍼가 말하는 영성을 ()으로서의 영성”, “사귐으로서의 영성”, “참여로서의 영성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고 말하고 나서, 본회퍼의 영성 이해에서 한국 교회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반성하면서 새 역사를 열어가는 방향을 읽어내고자 한다. 나는 이에 관해 손규태가 한 말을 인용해서 그가 본회퍼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읽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다.

 

따라서 영성은 재물, 특권 등과 같은 것을 포기하는 것과 함께 불의한 권력구조들에 대한 결연한 투쟁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돌보는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만일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육신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성은 아니며 따라서 삼위일체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영성은 아니다.

이 성육신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성은 우리를 죄와 악에서 해방시키고 사귐에로 해방시키며 그리고 봉사에로 해방시킨다. 이 영성이야말로 교권주의와 교파교회들의 분열과 반목으로부터 해방하게 하며 이 영성이야말로 자본주의적 자기 추구와 자기 주장에 자족하고 있는 교회를 해방할 수 있다.“

5) 몇 가지 단편적인 언급을 제외하면, 칼 바르트의 신학과 윤리에 대해 손규태는 한편의 논문을 남긴 셈인데, 그는 우선 전기 바르트가 펼친 변증법적 신학과 그것에 바탕을 둔 윤리사상을 19세기 독일 윤리학, 20세기 초의 창조신학과 질서신학, 종교사회주의 운동에 대비시켜 성격화했다. 그 다음, 그는 후기 바르트가 해석한 율법의 제3용법에 주목하고, 관계의 유비를 사용하여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논한 바르트의 입장을 분석했다.

그는 율법의 제3용법에 대한 바르트의 해석이 독특한 창작물이라고 평가했다. 루터에게서 나타난 율법의 제3용법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 그 자신의 신학적 관심을 고려해 볼 때 복음과 율법의 관계에 대한 바르트의 해석은 손규태의 눈길을 끌었음 직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하나님의 절대성과 세상의 상대성,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관계를 규정하는 한 방식으로서 후기 바르트가 전개한 유비 이론은 매우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이론은 한편으로는 플라톤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세상의 유비 능력(Gleichnisfaehigkeit)과 유비의 필요성(Gleichnisbeduerfnis)을 함축한 역동적 이론으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아무튼 손규태는 윤리학의 근거를 기독론에 두고자 할 때 윤리적 규범들의 역사적 상대성의 문제를 해결하여야 하는데, 바르트의 유비 이론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놀라운 신학적 도식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이 신학 도식이 기독교 전통이 미약한 제3세계의 윤리학 형성에서는 적지 않은 문제들을 내포할 것이라고 보았고, 특히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남성을 하나님의 대변자로, 여성을 남성이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은 유비의 구조가 부딪칠 수밖에 없는 필연적한계라고 보았다.

손규태는 바르트의 신학과 윤리에 대해 몇 차례 단편적으로 언급한 바 있는데, 하나는 전기 바르트가 강조한 하나님의 전적 타자성과 관련된 언급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 대한 심판임을 강조한 바르트의 신학이 하나님 나라의 절대성과 세상의 상대성을 매개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이러한 바르트적인 상거적 입장은 사회윤리학적 연구에 자극을 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또 하나는 동서 이데올로기 갈등에서 어느 한편에 서지 않은 바르트의 입장을 평가하는 언급이다. “바르트는 동서갈등이 갖는 이데올로기적 허위성을 폭로하고 그 어느 하나에 동조를 강요당하는 것을 뿌리치는 것이 바로 평화에의 길임을 확신했었다는 것이다.

III. 민족과 평화의 담론

 

손규태는 사회윤리학자로서 참으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가장 독특한 언어는 민족과 평화를 기독교 사회윤리학의 주제로 다루는 대목에서 드러났다고 본다. 이를 각각 살피기로 한다.

1. 민족 문제에 대하여

 

앞의 II장에서도 드러났지만, 손규태는 신학하기에서 주체성의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주체성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지만, 그는 기독교 복음이 매개되고 침투되는 역사적 단위로서 민족을 생각하고 바로 이 맥락에서 민족적 주체성의 문제를 신학의 문제로 인식했다.

 

기독교 복음이 매개되고 침투되는 역사적 단위로서 우리는 민족을 하나의 단위로서 들지 않을 수 없다. 즉 우리는 어느 한 민족 구성체의 일원으로서 민족적 주체성(Identitaet)을 가지고 나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주체성, 즉 하나의 특수한 주체성을 갖는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태어나고 그리고 기도교인이 되는 것이지 기독교인이 되고나서 한국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인용문은 손규태가 신학하기에서 토착화 신학자들이나 민중신학자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신학의 지역화 내지 상황화가 기독교 후기 시대의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보았다. 그는 복음과 문화의 문제를 다루는 토착화 신학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분단 현실에서 민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민중신학의 의의에 주목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토착화 신학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중신학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확신한 것 같다. 1989<크리스챤 저널>에 발표한 짤막한 글에서 따온 아래의 인용은 이를 잘 말해 준다.

 

현 단계에서 기독교 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구 문화와 옷에 싸여 있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의 발견과 그것을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현실에서 복음의 핵심을 찾고 또 복음의 빛에서 우리의 현실을 발견하는 신학적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제한 다음에 손규태는 한국 기독교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호흡을 같이하고 기독교 문화의 정착을 위해기독교 윤리학자로서 두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갈등을 동서(이념) 갈등보다는 남북(빈부) 갈등에서 파악하고 정의사회실현을 위해서 진력하여 한국 땅에 진정한 뿌리를 내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 민족의 시급한 과제들 가운데 하나인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손규태는 민족 주체성을 갖고 신학하기를 강조했지만, 민족지상주의나 국수주의, 더 나아가 국가주의를 경계하고 이를 혐오했다. 냉전이 해체되고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도 민족주의 문제가 사그라지지 않으리라고 전망하면서도 그는 개인을 민족에 해소시키거나 전통주의적 경향을 보이거나 대중 동원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민족주의의 함정을 지적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민중신학이 민족의 실체를 부정하고 이를 민중으로 해소시키는 데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상황에서 손규태는 우리 사회에서 민족모순, 계급모순, 분단모순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민족을 민중으로 해소시키는 입장을 가지고서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얻을 수 없다고 보았다. 민중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서 사회정의와 참여가 실현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주성을 확립하고 민족분단을 극복하여야 하는데, 민족 문제를 마치 실체가 없는 것처럼 여길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손규태는 우리의 역사에서 민족주의가 외세에 저항하는 민족의식의 형태를 취하고, 근대적 의미의 국민주권적 민족의식의 형태를 취하는 역사적 경로에 주목했다. 그는 우리 민족이 저항적 민족주의의 동력을 갖고서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시민사회와 공화제 국가를 수립하고자 했던 궤적을 추적하고, 바로 이 경로에서 개신교 민족주의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다. 따라서 선교사들이 주동이 되어 대부흥 운동을 벌이며 개신교에서 싹트고 있었던 민족주의와 이에 근거한 정치화된 교회를 청소한 것을 놓고서 손규태가 날카로운 비판과 격렬한 분노를 표명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는 정치화된 교회의 전통은 선교사와 그 동맹세력에 의해 제도권 기독교에서 단절되어 정교분리주의로 무장한 탈정치화된 기독교가 지배적인 세력이 되고 말았지만, 이 전통은 면면히 이어지다가 1960년대 중반 이래로 반외세자주화 운동과 반독재민주화 운동의 동력이 되고, 다시 민중해방 운동과 결합되어 민중적 민족의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변화된 역사적 상황에서 개신교가 민족의식을 갖고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민족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시대의 과제에 충실한 일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손규태는 토착화 신학이나 민중신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민족 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독특한 언어로 제시했다. 민족 문제에 대한 그의 언어는 물론 시대적 제약을 갖고 있다. 오늘의 상황은 손규태가 민족 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에 비해 크게 변했다. 경제의 지구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네트워크 경제와 네트워크 권력이 형성되고, 문화간 다중접촉과 충돌 내지 습합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제국주의와 그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제국의 도래가 운위되는 상황에서 민족 문제의 설정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만일 의미가 있다면 그 문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는 앞으로 더 논의해 보아야 할 것이다.

 

2. 평화 문제에 대하여

 

평화는 손규태가 중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핵심 주제이다. 그는 1983년 뱅쿠버 총회 이후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추진한 정의, 평화, 피조물의 보전”(JPIC)을 위한 공의회 과정을 동행하면서 평화의 문제에 주목하였고, 1980년대 초 이래로 활성화된 기독교의 통일 운동에 이론가로서 참여하면서 평화에 대한 탁월한 견해를 밝혔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화윤리를 정립하기 위하여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 따르면, 평화는 그 자체가 목적 개념이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개념이 아니다. 이러한 통찰은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를 두고 있다. 평화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여타 피조물,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바르게 이루어져 있음을 전제하고, 이 모든 관계에서 존재의 충만함을 뜻한다. 관계가 바르게 이루어져 있는 것을 가리켜 성서는 정의롭다고 말하고, 하나님이 이 정의로움을 주도한다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하나님의 정의라는 말을 쓴다. 따라서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다.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 손규태는 긍휼과 진리가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맞춘다는 시편 8510절을 인용하면서 정의와 평화의 관계에 대한 성서의 깊은 통찰에 주목한 바 있다. JPIC 공의회 과정에서 부각된 평화 개념은 바로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에 충실하다.

물론 JPIC 공의회 과정 이전에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탱가능한 사회”(JPSS)에 관한 논의에서 강조된 메시아적 정의 개념도 불의한 세계에서는 여전히 타당하다. 성서의 정의 개념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돌린다는 원자적, 분배적 정의 개념과는 다르다. 손규태는 권리적 의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성서가 말하는 정의는 약자가 강자에 대하여 요구하는 권리였음을 부각시켰다. 당연히 이러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마치 정상적인 것처럼 여겨져 온 질서가 깨지지 않으면 안 된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부자들의 착취에 대해 예언자들이 비판했을 때, 그들은 권리적 의를 전제했다.

평화가 정의의 열매라면, 평화 운동은 왜곡된 관계를 바로 펴는 일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바른 관계를 비틀리게 하고 깨뜨리는 구조들과 요인들에 대한 거부와 투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급 차별, 인종 차별, 성 차별, 생태계 파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군사주의 등 정의를 파괴하는 구조들과 요인들은 평화를 깨뜨리고 마침내 생명을 파괴하기에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은 이것들에 대해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따라서 평화를 파괴하는 것들에 대한 부정과 거부는 기독교인들에게 신앙고백에 준하는 입장의 천명을 요구한다.

손규태는 성서의 가르침과 에큐메니칼 운동의 전통을 수용하면서 평화가 공동체가 추구하여야 할 목표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는 평화의 신학과 윤리를 전개하면서 독일의 재무장에 대한 반대 운동과 1980년대의 평화운동을 꼼꼼하게 분석하기도 했고, 한반도 분단 상황의 극복과 통일에 관한 견해를 표명하면서 평화가 민족공동체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는 민족 통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시기에도 통일 자체가 목표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1992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남노회 평화통일위원회에서 행한 강연 “7˙4공동성명에 나타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대한 신학적 평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주의 원칙평화의 원칙이 단순히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의 범주에서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통일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통일은 민족의 자주평화를 가져다주는 방편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용문에서 자주와 평화가 동시에 목표로 설정된 것은 “7˙4공동성명에 나타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대한 신학적 평가라는 강연 주제 때문이기도 하고, 민족 문제에 대한 손규태의 독특한 관점의 발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민족 자주를 지키는 가운데 우리 민족이 추구하여야 할 목표는 평화라는 것을 분명히 천명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신학적 근거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1) 기독교인은 갈등으로 가득 찬 현실에서 화해를 위해서 부름을 받고 있다, (2) 기독교인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과 같이 살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3) 통일은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인간성의 출현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근거들은 모두 평화의 수립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특별한 임무를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의 통일 운동에서 평화가 통일의 목표이지, 통일의 방편이 아니라고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손규태이다. 이남과 이북의 평화 공존을 주장하는 것은 현상을 고착시키는 일이라고 비난받던 시기였던 만큼 통일의 목표를 평화라고 주장하고 통일이 평화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손규태는 용기 있게 평화를 민족공동체의 목표라고 천명함으로써 자신의 신학적 입장과 윤리학적 제안을 명확하게 밝혔다.

통일 운동의 열기가 식은 오늘에도 나는 평화라는 주제가 여전히 호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쟁에 대한 공포가 인류를 엄습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평화의 수립은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반대말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는 그것을 교란하는 요인들과 구조들에 의해 쉽게 깨뜨려질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계급 차별, 인종 차별, 성 차별, 생태계 파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군사주의 등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사람들 사이에, 인간과 자연 사이에, 민족과 민족 사이에 평화는 수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평화는 앞으로도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핵심 주제로 남을 것이다.

나는 손규태가 평화를 목표 개념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진지하게 연구하여 성과를 내어 놓은 것이 그의 중요한 업적이라고 본다.

 

IV. 한국 기독교 사회윤리학의 발전을 위한 손규태의 공헌 - 결론을 대신해서

 

한국 기독교 사회윤리학의 발전에 손규태가 큰 공헌을 하였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로도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

 

1. 손규태는 사회윤리학의 과제와 방법을 놓고서 매우 명확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절대성과 세상의 상대성을 매개하는 기독교 윤리의 가능성을 기독론과 종말론의 틀에서 확립하였고, 세상이 하나님 나라에 투명해지도록 세상과 역사를 형성하는 것을 사회윤리학의 과제로 설정하였고,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역사적 분석과 사회과학적 분석을 사회윤리학적 성찰 과정에 매개하는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너무나도 평범해서 흔히 간과하고 마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범주를 사회윤리학의 인식론적 틀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 동참하는 결단으로서의 참여를 사회윤리학의 실천적 틀로 삼았다.

2. 그는 자신이 고안한 사회윤리학의 관점과 방법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삶의 다양한 영역들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포착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윤리적 제안을 제시하였다. 교회 개혁, 인권, 민주주의, 민족주의, 민중 해방, 사회정의, 평화, 민족통일, 생태계 보전, 토지 분배, 과학기술문명, 스포츠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그의 글쓰기는 그가 자신의 관점과 방법에 일관성을 보였음을 증명한다.

 

3. 그는 매우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외 신학 전통과 국내 신학 전통에 속한 수많은 신학자들을 연구했다. 그는 그 신학자들의 연구가 오늘의 교회와 역사에 전환점을 준비하는 일에 기여하기를 바랐고, 복음에 충실한 신앙인을 훈련시키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그는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교회와 역사에 전환점을 가져왔거나 그 전환점에서 새로운 언어를 제시한 신학자들을 선별하여 연구하였다. 그는 이러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전기와 사상의 연관성을 밝히는 방법을 실험하고 그 실험이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전기와 사상의 연관성을 추구하는 방법은 이미 시간과 공간참여를 씨줄과 날줄로 엮은 그의 사회윤리학 방법론이 준비해 둔 것으로 평가된다.

 

4. 그는 오늘의 한국 상황에서 신학을 한다는 뚜렷한 주체 의식을 갖고서 신학 전통들과 그 유산들을 섭렵하고 그것들에 대해 자신의 독특한 해석을 가했다. 그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는 마르틴 루터, 디트리히 본회퍼, 칼 바르트, 김재준, 서남동, 변선환의 신학사상과 윤리는 그의 주체적 신학하기를 통하여 독특한 언어로 걸러져 나왔다.

 

5. 그는 민족과 평화의 문제에 관해서 매우 독특한 언어를 가졌던 사회윤리학자였다. 민족 문제에 대한 그의 발언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한국 신학계에서 특이한 목소리였다. 민족모순, 계급모순, 분단모순의 중첩된 모순구조 속에서 그는 민족 문제를 민중 문제로 단순히 해소시킬 수 없음을 역설했다.

그는 평화를 공동체의 목표로 설정하였고, 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편으로서 통일을 생각하여야 한다는 대담한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평화의 문제를 매우 포괄적인 틀에서 제시했다. 그는 평화에 대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 학자로 기억될 것이다.

 

이상은 이미 앞에서 말한 것을 요약한 것에 불과한데, 한국 기독교 사회윤리학를 위한 손규태의 공헌은 물론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는 두 가지를 더 덧붙여야 그에 대한 평가가 좀 더 공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손규태는 21세기를 내다보면서 네 가지 과제들에 집중할 것을 제안하고 스스로 이와 관련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1) 에큐메니칼 사회윤리의 천착, (2)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경제윤리, (3) 탈근대주의와 탈식민주의 논리를 추구하는 문화윤리, (4) 한국 교회의 사회선교를 뒷받침하는 사회윤리의 정립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면 관계상 이와 관련된 손규태의 글들을 분석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지만, 나는 그가 현대 사회윤리학이 다루어야 할 주제들을 잘 제시하였다고 생각한다.

 

2. 손규태가 이룩한 업적은 사회윤리학과 관련된 많은 도서들을 독어에서 한글로 번역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위에서 말한 번역서들 이외에 사회윤리학과 관련된 도서로만 그리스도냐 프로메테우스냐, 새로운 세계를 향한 용기, 개신교 사회론 입문, 그리스도교와 미래를 책임지는 경제활동, 그리스도인과 국가: 로마서 13장 연구, 해방신학을 말한다, 샬롬, 평화윤리,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대안 등을 번역했다.

요즈음 번역을 학문적 업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렇지, 연구와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한 도서들을 번역하는 것은 학자들의 과제이다. 나는 손규태가 사회윤리학 연구에 필요한 좋은 도서들을 선정하여 몸소 번역해서 본격적인 연구의 기반을 준비한 것을 그의 큰 업적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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