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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2-08 14:34
후회와 참회: 진정한 참회를 모르는 한국인
글쓴이 : 손규태

신학자 윌리엄 버클레이(William Barclay)는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이나 잘못한 것을 뉘우칠 때 그 내용을 후회와 참회로 두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우회하고 어떤 사람은 잘못을 참회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후회와 참회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후회는 자기의 잘못된 행동을 마음으로부터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된 행동이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된 것을 뉘우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후회란 그 잘못된 행동을 잘 은폐하지 못해서 사람들에게 들통 나게 된 것을 억울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한 잘못된 행동을 좀 더 세련되게 남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해치웠다면 들통이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곧 후회이다. 예를 들면 공금을 취급하는 공무원이 공금을 횡령했는데 그것을 감사하는 사람이 파악하지 못하도록 세련되게 일을 처리했더라면 그는 들키지 않고 상당한 액수의 공금을 사사로이 사용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일을 세련되게 처리하지 못해서 공금유용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감사관에게 적발되었고 그는 그렇게 해서 퇴직을 당하고 착복한 공금도 물어내게 되었다. 이 때 그 공무원은 자기가 좀더 세련되게 공금을 착복하지 못하고 감사관에게 적발되어 망신을 당하고 금전적으로도 손해를 보게 된 것을 생각하여 좀더 완벽한 범죄를 하지 못한 어리석은 자기의 처신을 탓하는 것을 우리는 후회라고 한다.

그러나 참회는 후회와는 달리 자기가 한 잘못된 행동을 깊이 마음속으로부터 뉘우치고 거기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마땅한 보상을 하고자 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따라서 참회는 자기의 행동이 어리석고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사람들 앞에 고백하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려고 하는 자세이다. 참회는 자기의 범죄행위가 잘못해서 사람들 앞에 드러나게 된 것을 후회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이 그런 잘못된 행위를 한 것 자체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뉘우치는 것을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한국사회 특히 공직사회에서는 고위공직자들 사이에서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서 참회하는 자세는 사라지고 오직 후회하거나 아니면 변명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매우 걱정스러운 풍토가 만연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시대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하거나 성공하려는 풍조와 더불어 전통적 윤리적 준거가 사라진 사회에서 성공이 모든 것을 정당화해주는 사회적 재가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고위공직자뿐만 아니라 하위공직자들이나 일반인들도 자기가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질책을 받으면 거기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거나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온갖 종류의 핑계들을 늘어놓거나 아니면 이치에도 맞지 않는 변명을 대면서 그 자리를 회피하려고만 한다. 당당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참회하는 용기 있는 사람을 보고 싶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녀교육을 위해서 위장전입을 하고 있단다. 대개는 자녀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학부모들의 자식사랑이 사람들로 하여금 위장전입이라는 것을 한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동양의 자식교육철학을 잘 익히고 살아오는 우리로서는 위장전입이라도 해서 자식을 잘 가르치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열성을 이해할만 하다. 맹자의 어머니는 자녀교육을 위해서 세 번씩이나 이사를 다니지 않았던가! 따라서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한편으로는 별 것 아닌 것 같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갸륵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위장전입은 현행법제도 하에서는 엄연한 범죄행위다. 그것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또 거기에 따른 처벌조항도 엄격하다. 따라서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들은 물론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범죄행위이다.

김대중 정부시절 국무총리 후보자 두 사람은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서 낙마한 일이 있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그들의 국무총리 임명을 동의해 주지 않았고 그들은 좀 억울하지만 총리가 되지 못했다. 그러한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서도 한나라당은 그 잣대를 그대로 적용했었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그러한 도덕적 잣대적용에 공감을 표시했었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이러한 엄격한 도덕적 잣대는 대체로 전통적 보수당들이 적용해 온 것이 유럽의 전통이기도 하다. 그래서 과거의 유럽의 전통적 보수정당들은 정치와 도덕의 분리를 용납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보수적 정당인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사정은 어떠한가? 이명박 정부는 고위관료들을 임명함에 있어서 이전 한나라당 시절에 요구했던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의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위장전입은 필수이고 병역기피, 부동산거래에서 탈세, 부동산투기 등은 선택과목이란 말까지 하고 있다. 고위공직자후보들은 국회청문회에 나와서 위장전입사실에 대해서는 죄송하다고는 하지만 매우 당당하게 말한다. 심지어는 위장전입사실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야당의 과장된 정치공세라고까지 적반하장의 주장을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과대한 도덕적 잣대가 사용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법적 책임을 물어서 고위공직자에 임명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명박정부에서는 문제 삼지 않고 고위직에 임명되는 것은 어떤 도덕적 잣대가 사용되고 있는데 기인하는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도덕적으로 관대한 사람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의 도덕적 수준이 낮기 때문에 자기의 수준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고위직에 임명하는 것일까? 이명박대통령은 BBK사업과 같은 사람들이 매우 부도덕한 행위로 돈을 번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의 BBK사업은 대통령 선거 당시 TV를 통해서 전 국민에게 방영된바가 있다. 한국의 검찰은 그 사업을 같이 한 김병준이라는 사람에게는 유죄 판결을 내려서 감옥에 보내고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어서 의심스러운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사람들은 이 때부터 검찰도 믿지 않고 이 대통령도 믿지 않고 있다. 약자는 벌을 받고 강자는 벌을 피한다는 말 즉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앞으로 있을 역사적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낮은 수준의 도덕 감정을 가진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의 장관들의 위장 전입한 것과 같은 잘못된 행위는 지극히 사소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닐까? 심리학적으로도 진짜 큰 죄를 지었던 사람이 적은 죄를 진 사람들에게 관대하다지 않은가? 그러면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의미에서 관대한 사람인가?

노무현정부 말기에도 그랬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공무원과 공직자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이권에 개입하고 또 공금을 축내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비교적 깨끗한 곳으로 여겨졌던 교육계에서조차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다. 과거에는 선생들이 학부모들로부터 적은 액수의 촌지를 받는 일은 있었지만 요즘처럼 교장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온갖 종류의 이권에 개입해서 뇌물을 챙기는 일은 없었다. 이러한 부패한 풍토는 비단 무원들이나 공직자 사회에만 퍼져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인들 특히 대기업인들 사이에도 만연해 있다. 그들은 이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권력기관에 뇌물을 먹여서 타락시킨다. 무엇보다도 대기업에 불리한 법을 제정하려는 국회의원들을 회유해서 법률안을 제출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 통과를 무산시킨다. 그리고 자신들을 감독할 정부 관리들에게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정상적 감독과 감시활동을 무력화시킨다. 또 자신들의 부정과 부패가 드러나거나 수사를 받게 되면 검사들에게 뇌물을 써서 무마하거나 혹은 재판까지 가게 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판사들을 매수한다. 요즘 언론에 크게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는 저축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비리의 온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감독해야 할 기관들이 금품을 받고 그들과 한 패가 되어 있다. 고위공무원 하던 사람들은 퇴직해서 특정한 기업이나 감독받아야 할 단체에 취직함으로써 그들의 비리를 덮어주고 그들을 지원하는 세력군단을 이루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이제는 법을 지키며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바보라는 인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팽배해지면서 전 국민이 불법을 저지르거나 거기에 대해서 둔감해지고 있다. 요즘 신문을 보거나 방송을 듣자면 어느 한 구석도 부패하지 않은 곳이 없다. 인술을 베풀어야 할 의사들도 리베이트를 주지 않는 회사의 약은 처방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사들과 제약회사들의 유착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비리는 결과적으로 약값을 비싸게 만들고 그 피해는 모두 환자들, 즉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농산물 경매시장도 마찬가지다. 타락한 경매사들에게 돈을 쥐어주지 않으면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농산물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모두 소비자들 즉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어느 땐가부터 부패의 물결이 온 나라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대한민국은 큰 도둑으로부터 적은 도둑이 활개를 치는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전반적 타락현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것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적 경쟁체제의 사회가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성과주의 내지는 승리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부터 이러한 불법과 불의가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1960년 이상만의 독재체제가 학생들의 혁명에 의해서 붕괴되면서 한국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에 차 있었다. 우선 그들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민주정부 수립에 대한 이상을 가졌었고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조국을 통일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4월 혁명에 성공한 학생들은 참된 민주주의 정부 수립과 함께 남북한의 대화를 통해서 통일을 실현하는 운동에 매진했었다.

그러나 혁명 후 1년이 지나서 박정희가 군사 구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국민들과 학생들의 민주주의와 통일의 열망은 사라지고 그때부터 군사정권의 억압통치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불법적인 군인들의 정권장악이 “성공한 구테타는 합법이다”라는 논리로 합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당화됨으로써 불법의 합법화가 도덕적 가치관을 일거에 파괴해버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달성하기만 하면 그것은 승인되고 합법화되고 나아가서 정당화되기까지 한다. 그래서 구테타를 주동했던 박정희는 여전히 그에게 혜택을 입었던 일부 지역이나 사람들에 의해서 국민적 영웅, 산업화의 아버지로 추앙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그를 추모하는 기념관을 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리고 감영삼정부에 들어와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억압하고 수많은 생명을 학살한 전두환과 노태우를 심판대에 세웠을 때도 그들은 전혀 참회하지 않았다. 그들은 집권 시기에 강압수단으로 엄청난 치부를 한 것을 국가에 반환하도록 판결을 받았음에도 전두환은 거의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그들은 탈법으로 정권을 찬탈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법의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참회하지 않았다.

따라서 박정희의 군사구테타로 시작된 탈법적 정권탈취로부터 시작된 불법과 탈법으로 인한 타락현상은 승리주의로 합법화되었고 결국은 이러한 탈법화가 권력층에서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오염시켜서 나라 전체가 타락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렇게 불법에 오염된 국민들은 모두 범죄행위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거나 핑계를 대거나 아니면 자기정당화를 하면서 결국은 참회라고 하는 도덕적 성품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참회의 상실은 청소년들에게서 수치를 모르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은 무감각과 뻔뻔함의 문화를 낳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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