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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6-17 10:34
인간이란 무엇인가?
글쓴이 : 손규태


인간이란 무엇인가?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말해보라,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시를 통해서 인간에 대한 물음을 처음부터 차단하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저 하늘별들 저편에는 누가 살고 있나? 그 답을 기대하는 자는 바보다.” 시인 하이네는 인간의 의미를 묻는 것 자체를 부정하기 보다는 인간에 대해서 어떤 대답 같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고 또 거기에 대해서 어떤 정답 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아마도 이렇게 노래 한 것 같다. 그렇지만 많은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은 나름대로 인간에 대해서 말했었다. 인간은 죽음으로 운명 지어진 존재라든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든지,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이성적 존재라든지, 또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 혹은 사회적 동물이라든지. 이렇게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인간을 정의하고 규정했었다. 따라서 우리도 인간에 대해서 뭔가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삶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선 8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 인간이란 주제로 글을 써본 적은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이나 삶의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해서 라기보다는 이 주제가 너무나 명백한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광범위하고 복잡하고 난해한 주제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주제로 어떤 학술적 논문을 쓴다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편집자의 요청에 따라 필자의 삶의 경험을 통해서 얻고 느낀 바를 평이하게 써 보라는 주문에 용기를 내어 감히 몇 마디 적어본다

인간에 대해서 우리는 다양한 관점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철학적 관점, 종교적 관점, 생물학적 관점, 문학적 관점 등 그 밖에도 수많은 관점에서 인간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신학자로서 종교적 관점에서 인간을 말해보고자 한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의해서 창조된 존재지만, 창조주를 멀리하고 타락해서 지금은 죄 된 존재로 살아오고 있기 때문에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할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죄된 삶은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는 교만, 동료 인간들을 속이려는 기만, 약한 인간들을 돌보지 않으려는 태만의 형태로 나타난다(칼 바르트). 그래서 사회는 인간들의 권력욕, 명예욕, 금전욕으로 인해 싸움터로 변하게 되고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가리켜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존재라고 보다 실존적으로 규정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건강한 젊은 시절이 지나가고 나면 늙어간다. 늙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들고 마침내 그 질병으로 고통 가운데 죽는다. 노인들은 건강하고 힘이 넘치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 시절이 너무나 순식간애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삶을 허송세월한 것을 후회하고 잘못한 일들을 참회하기도 한다. 결국 이렇게 늙고 병든 노인이 된 인간은 죽음이 찾아와 조용히 데려간다.

인간은 청소년 시절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사회에 나와서 자기성취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요즘 같이 미래의 준비기간이 길어지고 또 빨라진 은퇴의 시간을 맞게 된 사회에서는 활동적 삶의 시간은 정말 짧게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 사함들은 어느새 늙고 병든 몸으로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격리된 채 긴 노년기를 쓸쓸히 보내야 된다. 노년기에도 큰 질병들이 없이 자식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이다.

 

18세기 독일의 저명한 시인이며 신학자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Mathias Cludius)도 그래서 인간을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놀랍게도 여자에게서 잉태되고 양육되어,

그는 와서 보고 듣고, 그리고 쉽게 속임수에 빠진다.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며 그리고 적은 눈물도 흘린다.

경멸하고 존경하고 기뻐하고 위험을 느낀다.

믿고 의심하고, 공상하고 가르친다.

어떤 것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참되다고 받아들인다.

건설하고 파괴하며 늘 자기를 괴롭히고,

잠들고 깨어나고 성장하고 먹어치운다.

갈색과 회색의 머리칼을 지닌 채

80이 되어도 모든 것은 계속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선조들 곁에 눕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시인도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노래했다. 인간은 젊은 시절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며 살아간다. 젊어서는 건강하고 힘이 넘쳐서 꿈을 갖고 뭔가를 계획하고 그것을 달성할 때 기쁨을 갖는다. 삶에서 뭔가 실패하고 좌절할 때 분노도 느끼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늙어지면 분노와 함께 기쁨이나 즐거움은 사라지고 오히려 슬픔만 남게 된다. 그리고 병들고 죽어서 조상 곁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시인 클라우디우스도 인생의 덧없고 무상함을 노래했다. 그러나 시인은 죽음에 대해서는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는 친구와 같은 것으로 묘사한다.

 

죽음. 그대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손을 주게

나는 친구요, 벌하러 오지 않았다네.

용기를 갖게, 나는 막돼먹은 자가 아니지.

나의 품에서 편히 잠들게.”

Der Tod:

Gib deine Hand, du schön und zart Gebild!

Bin Freund, und komme nicht, zu strafen:

Sei gutes Muts! ich bin nicht wild,

Sollst sanft in meinen Armen schlafen

죽음은 원수와 같은 것이 아니며 인간에게 벌을 주러 찾아오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은 두려움을 주는 막돼먹은(wild) 존재도 아니기 때문에 용기를 갖고 그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부드러운 품에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서가 말하는 대로 만일 죽음이 인간의 죄의 결과로서 오는 것이라면 우리에게 죽음은 원수요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타락과 죄로 하나님을 멀리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음에로의 존재지만 죽음 그 자체도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서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하나님의 생령이 떠나면 결국 흙으로 돌아갈 운명에 있다. 따라서 죽음 그 자체가 죄의 결과로 오는 형벌이 아니고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필자는 기독교와는 무관한 전총적 유교가정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나 신앙을 갖고 신학공부까지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질병으로 1년 동안 고생하는 동안 거의 매일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 중에 신학을 공부하라는 하나님의 소명이 왔다. 물론 교회목사님의 권유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명행위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내 직업의 선택도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나 기관들의 부름에 응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었다. 대학졸업 후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일하게 된 것도 당시 독일교회의 지원으로 신학연구소설립 중이던 안병무 박사 부름에 응해서였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유학 중 라인마인지방 독일교회의 선교와 에큐메니칼 담당 목사와 동시에 한인교회의 담당목사로 일하게 된 것도 그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된 것도 현재 경기도 교육감으로 계시고 당시 그 대학 총장이었던 이재정 총장의 요청에 응한 것이었다. 필자는 하나님의 소명에 응해서 신학공부를 하고 또 직업도 친지와 기관의 요청에 따라서 수행한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에서 자기실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생활에서다(Max Weber). 사람은 태어나서 교육받고 나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패와 행복과 불행이 판가름 난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의 소명과 인간의 직업이 일치할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직업윤리에서 갈파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서 동료인간들의 부름(직업)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도 자기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인이의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을 섬기러 왔다고 갈파한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인간을 섬기는 자가 가장 으뜸이 된 자라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소명과 세상의 직업의 일치는 우리 삶에서 위로부터의 하나님의 소명(Ruf)과 동료인간들의 부름(Beruf)에 응하여 하나님을 섬기듯이 인간들에게 봉사하는 것이었다. 필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소명과 내 직업에서 한 일들이 다소나마 일치되었던 것은 가장 큰 축복이고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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