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송건호 선생이 중앙대학교 유인호 교수와 함께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하여 몇 일간 필자의 집에서 지냈다. 1970년대 초 “한국민족주의의 탐구”라는 그의 책을 필자가 근무하던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출간할 때 필자는 송선생을 처음 만났다. 나는 그 책을 통해서 역사학의 주제인 민족주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개념이 나의 학문과 삶의 도정에서 하나의 지표로 삼게 되었다. 특히 그가 민족의식을 주자학적 전통에서 보려는 사대주이적 민족주의와 그것을 극복하려던 실학파의 자주적 민족주의 거기에 뿌리를 둔 동학적 민족주의 등으로 분류한 것은 필자가 전공하던 윤리학에서의 가치판단이론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민족의식은 윤리학에서도 개인의 인격적 에토스와 집단의 사실적 에토스의 형성과 판단의 준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학자인 나는 일생동안 보편적 세계주의를 말하는 기독교와 민족을 우선시하는 민족주의의 상관관계가 구체적 역사적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의 신앙인격형성과 사회참여운동에서 어떻게 상호 작용했는가를 탐구하고 있다. 필자는 송선생님이 몇 일간 프랑크푸르트 머무는 동안 민족문제와 관련된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문제 등에 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필자는 한인교포들의 요청에 따라 프랑크푸르트교회에서 송건호선생을 모시고 강연회를 개최했다. 많이 알리지도 못했는데 약 200여명의 한국교포들이 모여들었다. 스위스 취리히와 프랑스 파리에서까지 여러 명이 참석했다. 강연의 주제는 남북한의 통일문제였다. 송선생님은 한반도의 분단의 외적 원인은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외세에 의한 강대국들의 헤게모니 쟁탈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 후 분단고착의 내적 원인은 해방 후 한국역사에 깊이 내재하는 사대주의의 의존적이고 비자주적 세력과 외세 사이의 결탁에 의한 비정상적 결과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분단된 남북한의 재통일은 남북이 합의한 1972년도 7.4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대로 외세의 간섭을 물리치고 민족자주 세력의 단결된 힘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요즘 한반도를 둘러싸고 핵전쟁의 위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북한은 자위수단이라며 다수의 핵무기와 운반수단인 장단거리 로켓을 개발하여 실전배치 하고 있다. 미국은 신형 전폭기들을 한반도 상공에 띠우고 항공모함을 동해에 보내 북한을 위협하고 있다. 북미간의 군사적 대결은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핵전쟁의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북미간의 핵전쟁의 위기에 남한에서는 무기력한 채 정파 간 안보논쟁만 벌리고 있다. 진보진영은 북미간의 대화를 통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북협상을 통해 통일로 나아감으로써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이루자고 한다. 보수진영은 한미동맹의 강화로 북한을 군사적 경제적 압박을 통해 굴복시킴으로써 남한의 안보확보를 주장한다. 보수진영은 남북의 화해나 통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이런 논쟁들 사이에서 국민들은 불안하기만하다.
강연회에서 송건호 선생은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협에 대해서도 경고했었다. 당시 냉전시대 마지막 단계였던 1980년대 한국과 독일에서는 핵전쟁의 위협이 지배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꾸준히 핵무기를 개발해 왔었고 거기에 대응하여 1970년대 중반부터 남한 박정희정부도 은밀히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미국은 핵 확산금지조처에 따라서 미국은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고 남한을 미국의 핵우산 하에 두기로 했다. 핵무기를 개발하든 핵우산 밑에 살던 남북한 사이에는 핵전쟁의 위협이 상존했었다.
유럽에서는 1980년대 초 소련이 동독에 다단계핵탄두를 단 SS 20 로켓을 대량 배치했고 거기에 대항하여 미국은 서독에 Pershing 2 핵탄두 로켓을 배치함으로써 동서독은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나아갔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대대적인 핵전쟁 반대운동이 전개되었고 수십만 명이 서독의 수도 본에 모여 평화대행진을 했었다. 독일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면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폐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송건호 선생은 분단된 한반도와 독일에서의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하고 한국도 대결적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통일을 위해서는 안보가 아니라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예로서 서독은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으로 양 독일이 화해와 평화정책을 추구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한미동맹을 내세워 남북한 사이의 대결을 부추기는 안보정책을 추구하한다고 비판했다. 한국도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는 안보가 아니라 평화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송건호선생이 주장한대로 동방정책을 통한 평화정책을 추구하던 독일은 1990년에 통일되어 평화를 누리고 있고 안보정책을 추구해 대결을 추구하는 한국은 통일은커녕 오늘날 핵전쟁의 위협가운데 있다. 안보는 대결하게 하고 죽이며 평화는 화해하게 하고 살린다.
송건호선생은 다음과 같은 유언 아닌 유언으로 강연을 마감했다. “한반도에서는 진짜 핵전쟁이 날 수도 있습니다. 핵전쟁이 나면 한반도에 살던 모든 사람들은 다 죽게 되고 폐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디 해외에 사는 여러분들이 자녀들을 많이 나아 길러서 그들이 돌아와 한반도를 재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송선생은 눈물을 닦으셨다. 오늘날 한반도의 위급한 핵전쟁의 위협에서 그의 유언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손규태(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