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중반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이 박정희의 폭압정치와 힘든 투쟁을 하는 동안 출현했던 민중신학과 민중교회 운동과 나란히 새로운 신학적 교회적 운동이 출현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보수적 교단들을 바릴론 포로로 사로잡아간 “교회성장론”이다. 이 이론은 60년대 미국의 세속화 과정과 종교적 냉소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에 몇몇 종교적 천재들, 예를 들면 빌리 그래함, 로버트 슐러 등과 같은 부흥사들에 의해서 고안된 것으로 그 밑바닥에는 미국자본주의의 철저한 경영논리가 깔려 있다. 말하자면 교회도 전통적 목회방식으로는 유럽의 교회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쇠퇴와 몰락의 길을 면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본주의적 경영논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철저하게 경영(자)이 되어야 하고, 설교도 과거처럼 복음의 선포(Proclamation)가 아니라 상품선전처럼 선전(Propaganda)이 되어야 하고, 교회조직도 과거처럼 신앙(은총)원리가 중심이 아니라 업적(성과)원리가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업적중심 혹은 성과중심의 대표적 기업체를 들자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암웨이(Amway)라는 다단계판매 회사일 것이다. 암웨이의 신입회원 훈련은 교회의 새 신자 훈련 프로그램들로 채택해서 그 내용과 언어만 다르지 그 형식은 동일하며, 이 단체의 조직운영과 교회의 (구역)조직운영도 출발점과 목표에 있어서 대동소이하다. 따라서 미국에서 발생하고 발전되어온 교회성장론은 철두철미 팽창과 성과(업적)를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본질과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교회성장론은 1970년대 순복음 계통의 교회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이 교단은 이 방법을 통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특히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급격한 성장을 이루고 그 여세로 다수의 지 교회(지점들)를 설립하자 한국의 전통적 개신교회들도 여기에 주목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1970년대로 말하면 박정희 정권 하에서 시작된 산업화와 함께 시작된 도시화로 인해서 다수의 농촌의 젊은이들이 도시 특히 서울로 이주해 옴으로써 도시교회들의 급성장이 있었으나 그 성장이 어느 정도 한계에 달하여 성장세가 점차 둔화되기 시작할 때였다. 이러한 개신교회들의 성장둔화기에 급성장을 계속하는 순복음 교회에 대해서 처음에는 무시하거나 이단시 하는 것으로 대처하려 했다. 그러나 이 순복음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무조건 무시할 수만 없는 상황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전통적 개신교회들에도 교회성장론이 서서히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각 교단들은 5천 교회운동, 1만 교회운동, 혹은 5만 교회운동 등의 프로그램을 조직함으로써 교회성장론의 신학을 실천 프로그램화 하게 된다. 교단마다 개척교회 위원회를 조직하고, 부흥사들의 조직을 이용하여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총동원주일과 같은 군사적 용어들이 비판 없이 교회에서 사용되었으며 새 신자를 교회에 데려오는 대가로 교인들 이름 아래에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이 하던 것처럼 별들을 달아주기도 했다. 심지어 기장 같은 진보적 교단마저도 이 프로그램에 동참하면서 정통주의에서 해방된 진보적 신학이 교회성장을 방해한다고 매도하고 비판하는 일부 보수적 집단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들에 의하면 진보적 신학교육이 교회성장에 가장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교회성장론자들이 교회의 신학과 리더쉽을 장악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정통주의와 경건주의 그리고 진보적 신학이 점차 그 힘을 잃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로교회에서는 선교사들이 전해준 교리중심의 정통주의 신학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부흥회적 교회성장론이 득세하면서 감리교회 같은 데서는 토착화신학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종교신학자들”이 수난을 당한다. 감리교 신학대학 학장이었던 종교신학자들은 성장론자들 즉 부흥사 집단에 의해서 교단과 신학교로부터 추방당한다. 이러한 종교신학이나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곱지 않은 눈초리는 보수적 장로교회 계통의 신학교들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신대학교와 같은 진보적 신학대학에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성장론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한국의 정치신학의 주요한 산물이었던 민중교회들 마저도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한다.
한국개신교의 신학적 실존
앞서 언급한대로 대부분의 보수적 장로교단들에서는 여전히 1세기 전 선교사들이 가져다준 교리적 정통주의 내지 근본주의 신학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따라서 이들의 신학대학들은 바빌론 포로들처럼 교권주의와 교리주의에 굴복당해 있다. 특히 근대의 성서비판학은 거의 소개되지 못하고 성서학은 교리학의 시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교단들도 대부분 겉으로는 정통주의 혹은 근본주의 신학을 내세우고 있으나 70년대 교회성장 프로그램들을 계획하고 수행한 다음부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교회성장론이 실질적으로 그들의 신학적 방향을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통주의와 달리 신앙의 경험을 중시하는 경건주의 노선에서 토착화 신학, 종교신학, 문화신학 등을 통해서 독특한 한국적 신학을 발전시켜온 감리교 계통의 교단도 교회성장론을 추종하는 부흥회적 교권집단에 의해서 종교신학자들 추방당한 이후 신학의 학문적 자유가 매우 위축되었고 따라서 신학교육은 교권이 제시하는 척도에서만 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런데 이 교단의 교권들도 어느새 성장론자들이 장악했고 따라서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경건주의 운동은 성장론에 치어서 그 본래의 종교적 가치를 상실하고 만 것으로 보인다. 정통주의의 교리주의적 족쇄에서 해방되었던 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학도 이전의 신학적 자유는 일부 보수적 성장론자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도전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장로회가 급속한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군소교단으로 전락한 것은 자유로운 성서해석과 진보적 신학들을 주로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성장론자들은 공공연히 비판한다. 따라서 정통주의적 장로교단들이건, 경건주의적인 감리교단이건, 아니 신학의 자유를 외치고 출발한 기장이건 교단을 장악하고 있는 첫 번째 되는 신학적 방향은 “교회성장론”이라고 규정해도 크게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교회성장론이 가져온 폐해는 무엇보다도 신자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적” 업적주의 성과주의자들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의 대표적 예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New-conservatives)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의 신학적 배경은 자본주의적 업적주의를 그들의 주된 원리로 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17세기 혹은 18세기의 개신교 정통주의 혹은 경건주의를 일반적으로 통칭해서 구보수주의(Old Conservatism)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갖는 특성들과 오늘날 미국과 한국의 신보수주의의 특징들을 다음 세 가지 범주에서 고찰해보자.
첫째 구보수주의는 당시의 계몽주의 즉 특히 과학적 진보사상에 대해서 극단적 반감을 보였었다. 단적인 예로 다윈의 진화론과 같은 과학적 성과들은 신앙과 대립되는 것으로 강력한 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한마디로 과학적 진보사상에 대해서 구보수주의는 강력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오늘날 신보수주의자들, 즉 네오콘들은 그 반대로 과학적 성과만이 인간의 미래를 보장해 주며 이것 없이는 앞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과학기술에 대한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대기업의 운영자들이 하나같이 과학기술을 신봉하는 신보수주의자 된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폐해를 말하는 사람들은 보수적 신앙인들이 아니라 오히려 진보적 환경론자들이다.
둘째 구보수주의는 당시 진보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낙관주의와 거기에 기초한 쾌락주의에 대해서 반대하고 철저한 금욕주의를 내세운다. 특히 칼빈주의적 개신교에서뿐만 아니라 감리교적 경건주의자들도 금욕주의를 가장 중요한 기독교적 덕목으로 내세웠고(Max Weber, 개신교주의와 자본주의 정신) 그들이 땀 흘려 얻은 축복들은 가난한 이웃들과 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윤리사상을 가졌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자본주의적 업적주의를 내세움으로써 그 성과들을 자기 개인의 것으로 향유해야 한다고 생각함으로써 금욕주의는 더 이상 기독교적 덕목도 타인과의 나눔을 위한 이상도 아니다. 오늘날 신보수주의자들에게서는 금욕적 가치는 실종되었고 오히려 진보적 기독교인들이 미래세대를 위해서 자원을 아껴야 한다는 금욕주의적 정신이 발견된다.
셋째 구보수주의자들은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서 거리를 두는 정책을 취했다. 이것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두 왕국론”의 영향이 크다고 말할 수 있으나 인간의 정치라는 것은 속된 것이고 타락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부소주의자들이 정치를 향해 강하게 요구한 것은 정치의 도덕성이었다. 그러나 신보수주의자들(특히 미국의 네오콘들)은 정치와 종교는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하며 따라서 정치는 본질상 타락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향해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오늘날 부시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네오콘들에 의해서 추동되고 있는 멀리는 쿠바침공, 니카라과의 소모사 독재정권지원, 한국의 박정희 독재정권 지원, 파나마 대통령 노리에가 체포 작전, 그리고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전혀 도덕성을 찾아볼 수 없는 행동들에서 잘 나타난다. 이러한 기독교 네오콘들의 정치적 행위에서는 도덕적 정당성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자본주의적 팽창원리와 성과원리만이 관철되고 있다.
이러한 네오콘들은 세계 각국에서 보수적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친미적, 자본주의적, 반공적인 동맹체를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근래에 활동으로 보아 한국기독교 총연합도 이러한 네오콘의 활동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시청 앞 광장에서의 성조기 데모). 그들은 정치의 도덕성을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네오콘들이 지향하는 친미주의와 반공주의를 행동의 준거로 삼아 진보적이고 사회적이며 공동체적 세력들을 공격한다.
이러한 오늘날의 신학적 실존가운데서 그 동안 세계교회협의회의 신학적 방향들과 한국의 진보적 교단들과 그 신학운동을 지원했던 한국교회협의회의 변용에 대해서 교회성장론과 함께 친미적 기독교와 반공주의를 목표로 한 한기총의 등장과 활동들과 비교하면서 간단한 관찰을 필요로 한다.
세계 에큐메니칼 창설초기부터 운동은 영미교회의 신학적 방향을 대변하는 아버레히트(Aberecht)의 “실용주의적 현실주의”(Pragmatic Realism) 즉 “교회일치”와 대륙교회들의 신학적 방향을 대변하는 칼 바르트로부터 시작되어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프로그램을 창안한 울리히 두크로(Ulrich Duchrow)의 “정의로운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라는 두 방향에 의해서 이끌려왔다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이 운동을 주로 “교회일치운동”이라는 화해와 통합이라는 방향에서 보았고 후자는 이 운동을 지상에 정의와 평화의 실현으로 보아왔다. 에큐메니칼 총회의 주제들과 각 부서의 프로그램들을 일괄해 보면 이 두개의 노선이 밀접하게 서로 얽혀 있다. 근래의 한국에서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에서도 이와 같은 두개의 운동방향들이 잘 나타나 있는데 6.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는 사회정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라고 하는 대륙의 에큐메니칼 방향이 김관석 총무시절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전 세계교회의 주목과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1987년 이후 한국사회가 본격적으로 민주화되면서부터 이 운동의 성격은 바뀌기 시작했고 점차 영미적 운동의 방향 즉 “교회일치”를 내세우면서 실용주의적 현실주의가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교회일치를 내세운 실용주의적 현실주의는 세계교회들의 재정적 지원이 급격히 줄어들어서 그것을 한국교회 안에서 충당해야 하는 처지에 직면해서 더욱 가속화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교회협의회는 규약을 바꾸어 각 회원교단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각 교단의 총회장이나 주교나 감독들을 회장으로 추대함으로써 그들의 (재정적) 참여를 극대화하려고 했다. 동시에 교회일치의 명분을 내세워 그 동안 일부회원교단에서는 이단시 하던 순복음교회를 회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순복음 교회는 한국 개신교회 안에서 그 동안 시달리던 이단시비에서 벗어나 “정통성”을 확보했다. 이것은 성서적으로 비유하자면 에서처럼 KNCC가 팟 죽을 위해서 장자의 권리를 내준 것에 비교된다. 말하자면 그 동안 KNCC가 쌓아온 사회정의와 평화실현을 통한 지상에 하나님 나라 실현이라는 대의가 사라진 것이다. (칼 바르트가 영미의 외교적이고 교회일치운동을 타협주의로 간주하고 이 운동에서 탈퇴하면서 한 밀이 기억된다.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타협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타협, 타협, 타협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언젠가는 마귀와도 타협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일치를 내세우는 실용주의적 현실주의가 KNCC의 정체성을 훼손했다면 여기에 대항해서 신보수주의적 개신교들이 만들어낸 “한국기독교총연맹”(한기총)도 KNCC의 전통과 조직을 약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기총의 소속교단들은 개신교를 세계적으로 대표하고 정의실현을 통한 하나님 나라운동을 전개해온 KNCC의 신학노선을 거부해 왔으나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체성 혼선이 드러나자 급속하게 보수적 개신교들을 통합해서 여기에 대항하여 세력화 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 동안의 한국개신교의 신학적 방향이 “교회성장론”에 의해서 장악되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한기총은 현재에 와서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과 결속되고 한국 안에서 하나의 개신교 정치세력화 됨으로써 앞으로는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도 형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친미반공주의 노선이 민족통일과 공동체 현성에 큰 장애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 동안 한국개신교회들의 신학적 변용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 문제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들이 필요하다고 보여 진다. 여기서 분명한 신학적 문제들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한국 개신교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해도 교회성장론이라고 하는 자본주의적 원리에 사로잡혀 있다. 2. 이 교회성장론은 자본주의적 업적원리에 기초하고 있어서 “믿음만”(sola fidei)이라고 하는 종교 개혁적 복음의 원리에서 이탈하여 가톨릭의 업적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3. 이 교회성장론은 인간을 공동체적 “관계적” 인간에서 이탈시켜서 사익만을 추구하는 사회적 경쟁자들로 만들어서 사회통합에도 거침돌이 되고 있다. 4. 특히 교회성장론자들은 친미적이고 반공. 반북한적 이데올로기로 무장되어서 앞으로 민족 자주와 민족통일에 커다란 장애로 나타날 수 있다. 5. 이들 교회성장론자들은 자본주의적 업적원리를 신봉하기 때문에 정치적 영역에서도 그들의 정의와 도덕성을 문제 삼지 않고 정치와의 불건전한 타협과 유착을 가져올 수 있다.
손규태(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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