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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6 09:27
7.4 공동성명에 나타난 민족대단결 원칙에 대한 신학적 평가
글쓴이 : 손규태

들어가는 말

1974년 남북한 정부에 의해서 합의된 7.4 공동성명서는 분단된 국토와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던 남북한의 국민들을 열광케 했다.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자주의 원칙이나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평화적 원칙은 남북한 국민들 모두가 자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반도가 비록 외세의 간섭에 의해서 분단되었지만 분단의 지속이나 심지어 통일을 달성하는 일에 다시 외세의 지배나 간섭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 군사력을 비롯해서 어떠한 형태의 무력을 통해서 통일이 달성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한 남북한의 통일을 위한 자주와 평화의 원칙들이 자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못했다. 역대 남북한 정부들이 부인하고는 있지만 북진통일론에 남한의 자본주의적 흡수통일론과 적화통일론에 기초한 북한식 사회주의적 통일론이 존재했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재편이라고 하는 새로운 상황변화와 더불어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여건이 성숙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적 모험주의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식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무력에 의한 통일의지는 현재의 매우 불안정한 군사적 정치적 균형이 깨어질 경우에 또는 이러한 새로운 신질서의 재편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힘의 공백에서 무력행사로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은 일방이 자기의 사상과 체제를 상대방에게 무력으로 강요하는 것을 의미한다.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은 사실상 남북한 정부들이 그동안 추구해온 것으로 알려진 통일방안들로서 바로 이러한 방법들로 인해서 아직까지도 통일이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런 방식들을 통해서 통일을 달성한 예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월남은 이른바 적화통일에 성공한 예요 독일은 흡수통일에 성공한 예라 할 것이다. 그래서 남한은 월남의 적화통일을 두려워하고 있고 북한은 독일식 흡수통일을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월남의 통일, 전쟁을 통한 통일과 이것이 가져다 준 엄청난 대가들을 잘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독일식 통일이 가져다 준 경제적 부담과 함께 동독이 달성했던 사회적 성과들의 희생을 보아왔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들 두 나라의 통일방식들을 우리의 모델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통일은 민주적이고 자주적 대단결의 정신에 기초한 정치적 해결방식을 통해서 달성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민족대단결을 통한 정치적 해결방식은 일련의 전제들을 내포한다. 이는 곧 민족적 이성에 근거해서 사고하고 민족적 목표를 향해서 행동하는 정치적 해결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민족이라고 하는 남북한 국민 모두가 포기할 수 없는 하나의 숙명적 실체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족이란 오랜 역사과정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어 온 사람들의 공고한 사회적 집단이며 사회생활의 기본단위로서 사회제도의 변화와 관계 없이 사람들의 생활이 영위되는 기본방식으로서... 사회생활과 역사창조의 가장 주되며 기본적인 단위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민족의 분단은 그 민족의 사회생활과 역사창조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게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식민지적 과거를 가진 아프리카의 민족들이 지금까지 가장 심각하게 내분과 함께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것은 현재의 국가형성이 종족이나 민족단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자들에 의한 분단선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식민지적 지배로부터 독립은 되었지만 민족은 분열되어 이리저리 찟어저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자주적이고 창조적이며 발전적인 삶을 장애하고 있다. 소련 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등장한 단위민족들의 독립국가 형성의 의지의 분출 역시 민족이라는 사회적 집단의 단위가 자신들의 사회생활과 역사창조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분단의 국가형성 나아가서 민족의 대단결이야 말로 그 나라의 생존과 자주 그리고 번영의 필수적 조건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주다.

사회적 정치적 제도 또는 이념은 역사발전과정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어느 나라는 자본주의 제도를 택하기도 하고 또 사회주의 제도를 택하기도 한다. 어떤 나라들은 이들 제도의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도 선택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제도로서 아직도 군주제도를 택하고 있는 후진적인 나라들도 있다. 그러나 민족은 선택할 수 없다.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시민권을 얻고 사는 사람들도 존재 하지만 그러나 자기가 태어나서 살았던 나라의 언어나 풍속 그리고 핏줄은 바꿀 수가 없다.

우리가 중요시 하고 있는 계급도 한 사회 안에서 소유관계의 변동으로 인해서 달라질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원리를 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일용노동자가 부지런히 노력하여 많아 축적하면 계급상승을 할 수가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다. 그러나 계급은 바뀔지 모르지만 민족은 바뀔 수가 없다. 따라서 민족이야말로 가장 공고하고 가장 항속적인 인간의 삶과 역사창조의 기초단위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의 분열은 그 민족의 삶과 창조적 발전에 있어서 정치체제나 계층적 분열 보다 훨씬 더 해롭다.

그래서 사람들은 민족적 단결을 추구하고 또 민족적 목표들의 달성을 위해서 노력한다. 그런데 분단된 한반도에서는 민족적 목표가 왜곡되어 왔다. 이제까지 남한에서는 민족적 목표를 자본주의적 발전에 두어 남한만 잘살고 사회주의적 북한은 망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북한도 그 반대로 자본주의적 남한은 잘못 되고 자기들만 번영하는 것을 민족적 목표로 삼았다. 이것은 그동안 남북한이 서로 원수시하고 적대시하며 온갖 비방으로 상대방을 매도한 데서도 입증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적 목표는 이렇게 분단되고 적대시하던 남북한이 하나가 되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한편만 유익한 것은 민족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반민족적(半民族的)이며 이것은 상대방에게는 불리한 것이기 때문에 반민족적(反民族的)이다.

안보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제까지 남한에 안보가 되는 것은 북한에는 위협이 되는 것이고 북한에 안보가 되는 것은 남한에는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북한에 이롭게 하는 것은 남한에서 처벌을 받았고 남한에 이롭게 하는 행위는 북한에서도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상 남한에 안보가 되고 북한에 위협이 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민족적 안보는 아니다. 그리고 북한에 안보가 되고 남한에 위협이 되는 것은 반민족적인 것이다. 미군의 핵무기를 남한에 배치하고 핵우산의 보호 아래 안보를 말하던 어리석은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든다고 세계는 핵사찰을 요구하고 있다. 남한에 미군의 핵을 놓고 안심하는 것도 북한이 핵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도 모두에게 안보도 아니고 민족적인 것도 아니다. 이것 모두가 반민족적이다. 왜냐하면 민족이라는 우리의 통전적 삶의 단위인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을 안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민족적 차원에서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족적 통일의 목표에서 공동의 안보와 공동의 복리를 지향해서 행동해야 할 때다. 여기에 7.4공동성명에 나타난 민족대단결의 의의가 있다. 민족국가형성 이래 민족이라는 단위만큼 공고하고 항속적인 삶의 집단이 존재한 적이 없다. 동시에 이러한 공고하고 항속적인 집단의 파괴처럼 범죄적 행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과거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야만적 행태들에서 경험했다.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극복하고 민족이 자주하고 창조적으로 번영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통일과 대단결은 절실히 요구된다.

 

민족대단결의 목표로서의 자주화와 평화

 

7.4남북공동성명서에 나타난 자주의 원칙평화의 원칙이 단순히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의 범주에서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통일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통일은 민족의 자주화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통일 자체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나 또는 통일 이후에 민족의 자주화와 평화를 상실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통일은 국가의 주권은 물론 국민들의 주권이 신장되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때에 의미가 있다. 따라서 통일은 대외적으로 국가의 자주권이 확보되고 대내적으로는 국민의 주권이 보장되고 신장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민족대단결이 자주화와 평화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고 할 때 7.4공동성명서에 나타난 자주와 평화의 원칙은 수단이 아니라 목표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자주와의 윈칙은 통일된 월남의 예에서 볼 수 있다. 월남의 통일은 분단이후 남부의 탈식민지화와 민족자주화를 달성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월남은 통일을 통해서 프랑스와 미국에 의한 식민지적 지배를 청산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월남 통일의 의의는 무엇보다 외세에 의한 지배를 청산하고 자주권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남은 문제는 자주한 그들이 정치적으로 기본적 민주주의 질서를 누리고 경제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은 자주하게 되면 그들은 곧 창의성을 발휘하여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따라서 민족의 대단결은 민족의 자주화와 역사창조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7.4성명서에 나오는 평화의 원칙은 통일방법론서 뿐만 아니라 통일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바 있다. 만일 통일 과정에서나 통일 이후에 민족이 평화를 상실하고 민족 내부에서 극심한 갈등이나 내전에 휩싸인다면 분단 상태 그대로 있는 것 보다 못할 수 있다.분단국가였던 예멘은 통일 되었지만 극심한 종족갈등과 내전에 휘말리면서 오늘날까지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통일된 독일도 국토는 통일되었지만 사회는 분단되었다.”는 구호에서 준비되지 못한 채 성급한 흡수통일의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통일이야말로 우리가 염원하는 통일일 것이다.

우리도 1945년 해방 이후 민족적 목표를 세우고 민족의 자주와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기 보다는 냉전체제에 휘말려 이념적 대결을 앞세우고 민족이 분열되어 통일된 자주적 국가를 세우는데 실패했다. 민족통일 보다는 이념에 더 충성했고 민족적 목표보다는 당파적 목표에 더 열심이었고 민족의 미래보다는 정파의 이익에 더 관심했다. 이것은 한국전쟁의 참상을 낳았고 그 결과로 아직까지도 한반도에는 외국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민족의 대단결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국민들을 반민족적으로 사고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 선전의 강화로 나타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반이성적이고 반민족적인 것들이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들은 우리 민족을 비자주적으로 그리고 반평화적으로 이끌어 갔고 민족통일과 대단결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위에서 언급한 목표로서의 자주의 원칙평화의 원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상과 제도, 이념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고 하는 민족대단결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궁극적으로 민족의 자주화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사상과 제도와 이념의 문제는 국내정치적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동서간의 냉전체제 하에서의 외세와 관련된 문제였다. 따라서 민족대단결의 문제는 곧 민족의 자주화와 평화를 달성하는 핵심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주화의 실패는 민족의 단결을 깨뜨리고 나아가서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공동성명에 나타난 3대원칙들은 각기 독자적으로 성립되거나 실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이 세쌍둥이의 개념들은 삼위일체성의 연관성의 틀에서 사고되고 실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민족대단결을 위한 성서적 신학적 근거들

 

논제 1: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형태의 갈등으로 가득 찬 현실에서 화해를 위해서 부름 받고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고후 5,17-19).

이 성경말씀은 1969년 서독의 교회가 동서독의 분단고착화로 인해 양 독일 교회가 기구적으로 분립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발표한 동방백서“(Ostdenkschrift)에서 표제어로 사용한 것이었다. 국토가 분단되고 두개의 각기 다른 정치체지를 가진 정부들이 세워졌지만 독일민족은 하나고 교회도 하나라는 것을 그들은 이 백서에서 확인한 것이다.

이 문서에서 서독의 교회는 이념적 대립에 의한 독일 민족 내부의 분열과 적대감의 극복은 말할 것도 없고 동구라파에 있는 사회주의권 국민들과 교회들과의 화해사업도 하나님이 주신 가장 시급한 위탁이라는 것을 확인했었다. 왜냐하면 동서독의 분단은 전범국으로서의 죄책을 걸머지는 성격을 가진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서의 이념적 갈등의 희생물이라는 인식이 점차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어 갔던 것이다. 특히 60년대 이후부터 강화된 동서간의 냉전체제는 이데올로기의 절대화에 기초한 군비경쟁과 이로 인한 민족적 삶의 황폐화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비정상적인 동서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를 이루는 일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시급한 선교적 과제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화해를 위한 노력에는 특히 이봔트(Joachim Iwand)와 골비처 같은 선구적인 신학자들의 공헌이 있었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과 화해해야 했다. 이것은 개혁교신학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왕권통치“(Königsherrschaft Christi)의 확립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과 우주의 진정한 주님과 통치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인물이나 제도 그리고 체제도 상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라는 말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하고 하신 하나님의 제1계명이 실천될 때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화해가 모든 지상에서의 인간들 사이의 화해의 전제가 된다. 이것은 실천적으로 말하면 주어진 역사적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정의가 실천되는 일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의 교회사를 회고해 보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깊은 반성과 성찰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해방 후 한반도에서 정치적으로 민족분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을 때 남한의 장로교회는 거기에 대해서 초기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194512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열린 이북 5도 연합노회에서는 총회의 헌법은 개정 이전의 헌법을 사용하되 남북통일 총회가 열릴 때까지 그대로 둔다.“고 했고, 1946612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모인 남부총회도 헌법은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개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고 함으로써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달성하려는 교회의 의지를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1947년 대구에서 열린 제2회 남부총회는 일제하에서 해체되었던 장로교회 총회를 단독으로 계승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북한의 교회의 존재를 무시한 채 독립은 단행했다. 1948년 남북한이 각기 분열된 정부를 세우기도 전에 교회가 먼저 분단을 고정화 하는 일을 감행한 것이다. 이것은 통일된 조국과 하나의 교회라는 본래의 기독교 정신을 망각한 것이었다.

또 남한의 교회는 역대정권 하에서 반공 및 반북한 이데올로기를 맹목적으로 대변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기초해서 반소련 및 반중국 선동선전에 앞장섬으로써 그리스도의 왕권통치라고 하는 개혁교회의 정치 신학적 전통으로부터 이탈했고 복음의 자유를 정치적 이념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교회는 친미반공주의를 복음의 본질인양 왜곡함으로써 진정한 하나님과의 화해는 물론 남북한의 극단적 대립투쟁을 앞장서서 해결하는 일을 막아왔던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변천과정에서 우리는 옛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소련과 국교를 맺고 상당량의 경제 원조를 제공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전히 사회주의 이념에 충실하고 있는 중국과 국교를 위해서 반공의 보루로 알려진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모든 사태발전은 그동안의 동서 이념대립도식이 순전히 두 강대국의 권력투쟁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칼 바르트). 이렇게 볼 때 오랜 역사를 지닌 한 민족인 남북한이 화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현재의 남북한의 대립반목은 전혀 민족적이거나 이성적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교회가 감당해야할 역사적 과제 즉 민족화해의 과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남북한의 교회들은 더 이상 이념적 왜곡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민족의 장래를 책임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함으로써 민족의 통일과 화해를 달성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논제 2:그리스도인들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도록 부름받고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 5,43-44).

산상설교의 이 명제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화해하며 살 것을 요청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종교적 선민의식을 가지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이교도와 이단으로 멀리했다. 그리스인들은 문화적 선민의식을 가지고 다른 민족들은 야만인들로 생각하고 멸시했다. 로마인들은 정치적 선민의식을 가지고 다른 민족을 지배와 통치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 가운데서 그리스도는 원수사랑을 제창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는 제물을 드리기 전에 우선 원수된 것이 있으면 화해할 것을 권하고 있다. 예수에게서는 종교나 제사보다 인간 사이의 화해가 선행한다.

바울도 그리스도가 오셔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다”(2:14)고 했다. 원수사랑의 가르침을 바울은 좀 더 부연해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원수를 친히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마끼라.”(12:17-20)고 했다. 이것은 종교가 다르다거나 사상이 다르다거나 아니면 종족이나 민족이 다른 것으로 인해서 서로 원수가 되어서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통일을 향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게 된다. 이것은 현재 사상과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고 있는 남북한 정부 및 민족구성원들이 어떻게 통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서 필자는 통일이란 하나의 사상, 하나의 체제를 절대적으로 하나의 것으로 만드는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남북한에는 각기 상이한 이념과 체제가 존재하고 또 이것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 전망이다. 따라서 한 제도는 완전히 포기되거나 없어지는 통일은 불가능하며 또 비현실적이다. 두개 혹은 그 이상의 사상과 체제들이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 보는 것은 보다 건설적인 통일을 위해서 필요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사회주의적 사상과 자본주의적 사상 혹은 그것의 중간형태를 가진 사상들이 서로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념적 공존은 서구 선진 국가들에서는 이미 경험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따라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한에 사회주의적 정당이 허용되고 북한에는 자본주의적 정당이 용인되어 이들 정당들이 민주적 큰 틀 안에서 경쟁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는 정당이 집권하는 방식이다. 남한에서나 북한에서나 모든 국민들이 사상의 자유에 따라서 정치적 체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다.

이러한 사고의 출발점은 앞서 인용한 성서들에도 근거하고 있지만 개신교 종교개혁의 전통과 민주주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말하자면 개신교 전통에 따르면 다양한 형태와 방향을 가진 교파들이 존재하며 이것은 그리스도교적 전통을 더욱 풍요하게 하는 것이다. 개신교인이 되기 위해서 꼭 루터교인이 되거나 장로교인이 될 필요는 없다. 종교적 다원주의와 함께 정치적 다원주의도 오늘날의 일반적 추세이다. 하나의 사상, 하나의 정치체제만을 지지하고 따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나의 사상이나 하나의 체제만을 강요하는 것은 곧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요 이는 곧 독재다.

따라서 우리의 통일은 과거에 원수 되었던 사람들 그리고 현재에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기술이라 할 것이다. 통일을 같은 사상 같은 체제로 모든 것을 획일화하겠다는 사고는 비성서적일 뿐만 아니라 비민주적이고 개신교 전통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따라서 통일은 이념을 달리하고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고도의 정치적 기술이며 삶의 과정이라고 파악해야 할 것이다.

 

논제 3: 통일은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그 목표로 해야 한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대사람과 이방사람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라지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대사람과 이방사람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 하셨습니다.”(에베소서 2:14-16: 1990420일판 조선기독교련맹편 성경전서에서 인용).

평화의 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업은 갈라져서 원수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민족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시는 일이다. 이 일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과제이기도 한다. 이 일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예수는 서로 원수가 되게 하는 율법조문들과 규정들을 모두 폐지했다고 했다. 이 세상에는 사상과 제도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수많은 법들과 규정들이 있어서 이것들이 인간을 갈라놓고 원수가 되게 하고 있다. 동서냉전시대에는 서로 상대방을 원수되게 하는 수많은 율법들과 규정들이 장벽을 만들게 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동서독을 가르는 벨린 장벽이었습니다. 이 장벽을 넘거나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목숨을 잃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 장벽은 문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남북한에 서로를 원수가 되게 하는 수많은 율법조문들과 규정들이 있어서 우리를 가로 막고 화해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남한의 국가보안법이나 북한의 사회안전법 등이 이런 법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법들은 국가안보라고 하는 명분들을 가지고 제정되었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오용되어 온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민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법들이 폐지되고 서로 신뢰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일 것이다.

인간을 원수 되게 하는 법적 제도적 장벽들을 없이하는 일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통일운동의 사명은 그동안의 갈라졌던 민족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게 하는 선교적 사명이라고 저는 믿고 있다. 현재 남한 사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인간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적 가치에만 몰두함으로써 본래 하나님이 주신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은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성과 연대성을 상실한 남한의 인간들을 통한 남북의 통일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통일된 독일에서 동독지역을 서독인들의 투기장으로 만든 것만 보아도 잘 예측할 수가 있다. 북한에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서는 인간개조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그 곳 실정을 잘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거기에도 보다 높은 수준의 자유와 창의력을 가진 인간들이 요청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통일을 단순히 경제적 통합이나 정치적 통일을 넘어서서 새로운 민족의 대단결 즉 새로운 민족의 출현을 달성하는 보다 높은 수준의 통일이다. 저는 이것을 도덕적 차원의 통일 아니 우리 민족 전체가 구원을 받고 세계민족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종교적 차원의 통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성서에 보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인간이 된다고 했다. 이것이 바울의 세계선교의 궁극적 목표였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면 새로운 인간이 되는데 어찌 갈라진 한 민족이 하나가 되는데 새로운 인간의 출현이 불가능하겠습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인간의 출현이 가능한 조건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성서는 둘이 하나 된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다음과 같이 전망하고 있다.

1) 일차적으로 인간들 사이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복지를 가져올 수 있는 인간들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까지 온갖 외세 의존적이거나 자기이익 추구에 몰두했거나 군사력에 호소한 옛 인간들과 그들의 사고행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사실상 이러한 엣 인간들이 통일을 가로막고 있으며 또 통일을 오용하고 있다. 또 통일을 특정집단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권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7.4공동성명서에 나타난 세 가지 원칙을 수용하고 민중우선의 원칙을 첨가한바가 있다. 민족의 대동단결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민중의 우선적 참여와 그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통일이 가능해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인간의 출현의 구체적 징표가 되는 것이다. 즉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 되어야 진정한 민족의 대단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 “새로운 인간의 출현은 하나님과 화해한 인간이라는 것은 이미 말씀드린바가 있다. 모든 이념적이고 인간 숭배적이고 물질숭배적인 요소들이 극복되고 하나님께서 홀로 우리의 주님이시고 우리는 모두 그의 자녀들로서 자매와 형제가 되는 종말론적 전망이 통일된 나라의 살림살이의 모습이어야 한다. “하나님과의 화해”(2:16)는 종교적으로는 그에 대한 예배와 찬양을 의미하며 정치적으로는 모든 이념과 체제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상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이념과 체제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인간들을 원수로 만드는 율법들이요 규례들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화해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화해를 통해서만 온갖 정치종교와 이념의 우상화를 극복할 수 있다. 새로운 인간이란 이러한 모든 인간들의 우상에 대해 비판적인 인간, 민중과 더불어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해 가는 인간들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인간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이 새로운 인간들은 바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들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일을 완수했기 때문이다.

 

 

 

결 어

 

남북한 정부는 199112월 제5차 고위급회당을 통해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이하 기본합의서라 한다)를 채택한바 있다. 이 합의서의 전문이 지적하고 있듯이 이러한 합의는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기초를 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문서 제1장은 남북화해를 위한 기본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는바 상대방의 체제인정과 존중으로부터 시작해서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려는 일체의 행위 중지는 물론 국제무대에서의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해서 공동노력할 것을 확인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의 온 겨레의 통일운동의 빛나는 성과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민족의 대단결을 달성할 기본적인 틀을 마련한 셈이다. 필자는 남한의 정부가 주장하고 있듯이 금년은 이러한 민족대단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원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구체적으로 이러한 화해운동을 가로 막고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제거하는 일이다. 남한이나 북한에 현존하고 있는 반북한 그리고 반남한적인 안보 법들을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화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런 법제도로 인해서 수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전복하거나 파괴하려는 일체의 행위들을 중지해야 한다. 그리고 군사연습이나 군비증강과 같은 상대방을 두렵게 하는 행동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군비를 축소해서 대다수의 국민들을 위한 복지에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통일을 논의하고 이를 위한 운동을 전개하는 일들이 방해받지 않고 지원되어야 한다.

불가침과 같은 군사적 문제나 교류와 협력 같은 경제문제 등은 별도의 전문분야를 맏아서 일하는 분들이 더욱 열심히 일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진정한 민족통일의 핵심이 되는 화해의 분야는 우리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점은 남북한 정부 모두가 바로 인식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차제에 동서독이 비교적 갈등이 없이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양 독일 교회들의 역할이 중차대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분단 이래 지속적으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온갖 수난과 고통을 무릅쓰고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 주셨고 또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고후 5:16).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남북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19921020일 동경 일본(재일대한기독교회가 주최한 통일 세미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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