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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13 18:56
아담 스미스의 思想의 神學的 哲學的 起源에 관한 硏究
글쓴이 : 손규태

  
       
I. 문제제기
 
지난 세기 말 蘇聯과 東歐圈의 沒落과 함께 미국을 頂點으로 하고 登場한 새로운 資本主義的 世界秩序, 즉 신 自由主義的 世界經濟秩序의 출현 혹은 世界化와 더불어 經濟學界에서 강력하게 제기된 문제는 “經濟와 倫理의 關係問題”라고 할 수 있다. 이성적 合理性에 기초한 市場經濟原理에서 倫理라고 하는 다분히 當爲의 原理가 오늘날의 經濟運營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도대체 이성적 合理性에 근거한 오늘날의 市場原理에서 뭔가 윤리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면 시장의 원리는 전적으로 인간의 理性的 合理性에만 맡겨둘 수 있는 것인가? 다른 말로 하면 오늘날의 사회경제적 삶에서 인간들 사이의 調和로운 삶을 위해서는 시장원리에 선행하는 뭔가 道德的 宗敎的 原理들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케인즈(J. M. Keynes)는 1926년 벨린에서 행한 “自由放任主義의 終末”(Das Ende des Laisser-faire)이란 강연에서 “國民經濟學者들은 오늘날 社會調和의 敎理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神學的 政治的 哲學者들과는 무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學問的 硏究들에서 그들은 더 이상 이와 유사한 결론들에 도달하지도 않는다” 라고 선언함으로써 國民經濟에 있어서 윤리적 基礎와 사회 技術的 形成 사이의 關係規定이 매우 골치 아픈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自由放任主義를 말하는 Laisser-faire라는 말은 政治와 宗敎의 분리를 주장하는 라이지스무스(Laizismus)와 그 어원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經濟硏究에 있어서 어떤 神學的 혹은 哲學的 論據를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自由放任主義는 경제활동에 있어서 어떤 政治的 干涉은 말할 것도 없고 道德的 倫理的 論據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그 배후에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自由放任主義라고 하는 經濟政策은 발전된 産業社會에서는 학문으로서 經濟學의 元祖라 할 수 있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와 經濟的 主體들의 자유로운 활동에 관한 이론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는 물음은 아담 스미스, 특히 그의 自由放任主義 經濟理論의 연구에 있어서 그의 理論的 設計의 기초적 조건들을 형성하고 있던 당시의 가장 중요한 神學的 哲學的 背景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아담 스미스의 經濟理論에서 신학적이고 종교적 背景들을 밝힘으로써 오늘날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經濟와 倫理의 관계의 문제를 해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물음을 제기하게 되는 것은 오늘날의 변화된 상황에서 세계 經濟秩序가 갖는 社會 倫理的 基礎를 찾는데 있어서 아담 스미스의 道德論이 그의 經濟理論의 틀과 진정한 의미에서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이며 거기에서 그의 自由放任主義로 해석되는 그의 경제이론의 새로운 解釋 可能性을 찾을 수는 없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미스의 自由放任主義 理論에 근거해서 시장의 自己治癒能力에서 윤리적 논거를 찾고 있는 학자들은 낙관적 입장에서 오늘날의 왜곡된 경제질서의 治癒法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예가 다음과 같은 주장에서 제기되고 있다. 즉 “社會的 弱者들은 貧困이라는 찌르는 가시를 철저하게 감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동시에 사회적 强者들은 자신들의 富를 숨김없이 드러내 보임으로써 가난한 자들이 勞賃의 생생한 상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주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는 아담 스미스의 市場理論의 개념과 그것과 연관된 自由放任主義라는 원리의 철학적 신학적 起源을 다루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담 스미스의 자유시장 경제의 원리에서 다시 道德 哲學的 基礎를 발견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시장 자체가 발전된 産業社會에서도 어떤 宗敎的 혹은 道德的 原理가 기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 윤리적 분석에서 요청되는 것은 우선 아담 스미스의 사상의 精神史的, 아니 宗敎史的 基礎들을 밝혀 내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국의 重商主義의 정치적 사회적 조건들의 分析, 아담 스미스로부터 20 세기말에 이르는 일련의 정신사적 발전들, 그리고 아담 스미스의 人間觀도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담 스미스에서 특히 그의 주저라 할 수 있는 道德感情論과 國富論 사이의 思想的 連續性 혹은 斷續性을 밝힘으로써 倫理學과 政治學 그리고 經濟學者로서의 아담 스미스를 全體的으로(in toto) 새롭게 해석해 보고자 한다. 간단히 말하면 아담 스미스의 經濟理論을 道德哲學적 觀點에서 해명해 보자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담 스미스의 世界觀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道德哲學 및 經濟學에서 당시의 理神論的 路線(deistische Linie)이 기타 다른 요소들과 나란히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이신론은 신학적 철학적 複合物로서 세계를 당시 종교의 전통적 교리와 世界觀으로부터 결정적으로 해방시킨 사상이며 운동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신론이 당시 인간들의 自由主義的 世界觀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신론은 전통적 신학에서의 신의 攝理에 대한 이해 즉 신이 자신의 계시를 통해서 直接的으로 이 세상에 관여하고 통치한다는 이론을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신론에 의하면 신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세계에 관여하고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計劃에 따라서 世界를 만들고 스스로 運行되도록 일정한 기계적 法則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 신학에서 신과 세계와의 관계가 目的論的으로 규정되어 있다면 이신론에서는 신과 세계와의 관계가 機械論的으로 규정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II. 종교개혁의 세계상의 기본성격들
 
우리는 이신론의 세계상을 다루기 전에 중세와 종교개혁자들의 셋P상을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中世紀에는 신학과 基督敎的 倫理가 인간들의 사회적 경제적 삶을 규정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의 종교적 救援 즉 영원한 나라에서의 삶이 인간의 모든 삶의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에 지상에서의 經濟的 삶이나 그것을 위한 秩序는 잠정적이었고 따라서 그것은 이래도 저래도 좋은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道德的-宗敎的 秩序가 세상적 삶이나 經濟的 必要들에 선행했다. 경제적 사고는 전적으로 종교적 질서 즉 종교적 가치들과 관습들에 철저히 從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중세적 사고는 르네상스(Renaissance)와 宗敎改革(Reformation)과 더불어 결정적 변화를 겪게 된다. 사람들은 과거와 전통의 束縛으로부터 未來 指向的이고 天上을 향한 삶에서부터 보다 地上的이고 現實的인 삶으로 그 방향을 바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形而上學的이고 宗敎的 祈禱(Ora)의 세계에서부터 現實的 祈禱와 勞動(Ora et labora)의 세계로 나오게 된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종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나 요한 칼빈(Johannes Calvin)같은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전환들을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다. 루터는 그의 召命(Berufung)을 職業(Beruf)과 결합시킴으로써 이 세상에서의 경제적 삶을 포괄하는 삶 자체가 구원을 위한 召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히 했다. 다시 말하자면 루터는 中世紀에서처럼 天上의 삶만을 窮極的 實在로 파악하고 현세적 삶은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 삶으로 간주하지 않고 此岸의 삶은 彼岸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것은 카톨릭 교회의 신학 특히 토마스(Thomas von Aquin)의 신학적 圖式 즉 自然과 恩寵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지상에서의 功勞(work)가 곧 天上에서의 삶을 위한 前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삶이 천상에서의 삶보다 못하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말하자면 지상에서의 삶의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서의 職業(Beruf)은 神의 召命(Ruf)과 같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改革敎會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칼빈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특히 그의 豫定論(Prädestinationslehre)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칼빈에 의하면 직업적 삶의 성공은 곧 종교적 豫定의 徵表라는 것이다. 칼빈은 그의 二重 豫定論을 통해서 인간은 전적으로 신에 의해서 救援으로 예정되거나 아니면 滅亡으로 예정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는 豫定을 신의 영원한 意志決定이라고 부른다. 그것에 의해서 그는 그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일어날 것을 스스로 결정하신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건 밑에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어떤 이는 永生에로, 어떤 이는 영원한 刑罰로 예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이 어떤 한 목적을 위해서 창조되었으므로 우리는 이 사람이 생명에로 혹은 죽음에로 예정되어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칼빈에 의하면 예정 혹은 選擇은 전적으로 신의 攝理의 영역에 속한 것이지만 附隨的 表徵(signa posteriora)을 통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수적 표징들을 입증하는 방식으로서 학자들에 따라서 칼빈의 實踐的 三段論法(sylogismus practicus)을 들고 있다. 이러한 논거는 막스 베버(Max Weber)에게 와서 칼빈주의적 예정론은 선택의 확실성을 신자의 勤勉性, 世界內的 禁慾主義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축적된 부가 資本主義 情神을 발현하게 하는 개신교 윤리의 기초가 되었음이 입증되었다. 성공적 職業活動이 신의 榮光을 드러나게 하는데 기여하며 따라서 여기서는 世上的 合理性과 宗敎가 이전처럼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의 경제적 활동의 기초가 곧 종교적 論據와 함께 종교적 意味를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주의의 目標는 내적 혹은 외적 解放과 서로 맛물리는데 그것의 목표는 개인의 종교적 자유와 함께 정치적 자유와 결합되어 있다. 말하자면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해방은 일차적으로는 종교적 自由에서 출발하며 그것은 나아가서 정치적 자유까지를 지향하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종교적 영역에서의 해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아담 스미스의 道德哲學에서의 새로운 윤리적 思想體系가 그의 經濟的 交換關係나 貿易關係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런 의미에서 아담 스미스가 경제학의 정신적 아버지로 불리는 것이다.
이러한 스미스의 시장 경제적이고 자유주의적 관점들의 근거가 되는 종교적 기초는 영국의 理神論(Deismus)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 경제적이고 자유주의적 관점들은 영국의 이신론의 자연법 사고에 의해서 기초지어지고 발전되었다.
 
III. 英國의 理神論
1) 理神論의 槪念規定
 
 
18세기 중엽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理神論(Deismus)이란 개념을 일률적으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에 기초한 唯一神 信仰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유럽사회에서 이신론은 특정한 시대에 등장했던 사상으로 국한시키는 것도 곤란하다. 그런데 이신론 혹은 이신론자라는 현상은 특별히 近代的 槪念으로서 프랑스어권에서는 16세기 중엽에 이 개념이 언급된다. 이 말은 “神”(deus)이라는 최고의 존재를 사려깊이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한편으로는 모든 無神論者들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非寬容的 宗敎的 熱狂主義者들에 대립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敎條的 事故를 가지고 있는 敎會集團에서는 물론 이러한 理神論者들은 곧 僞裝한 無神論者들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이신론을 공격하는 대표적인 인물로서는 프랑스의 개혁교 신학자 삐에르 비르(Pierre Viret)를 들 수 있다. 그에 따르면 理神論者들은 創造主인 신이 한번 세상을 창조한 다음에는 世界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기독교의 信仰陳述들을 普遍的, ‘自然的’ 宗敎 즉 모든 歷史的 要素들, 특히 예수의 救援의 意味를 배제한 종교로 還元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요약하자면 이신론은 16세기 중엽에 改革敎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등장한 것인데 그것은 15세기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운동에 뿌리를 둔 人文主義者들의 종교적 改革思想을 새롭게 살려내려는 운동이다. 이신론은 文化史的으로 宗敎改革 자체의 자극들을 수용하고 있지만 宗敎改革이 남겨놓은 敎派들 사이에서 敎理的 對立들에 반대하는 要素를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르네상스를 “理神論의 어머니”로 간주했던 필립 멜랑톤의 논제는 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신론과 汎神論 사이의 關係를 살펴보면 17세기의 理神論이라고 불리는 것은 오늘날의 범신론과 다를 바가 없다. 17세기 말엽에는 이신론과 범신론 사이에 아무런 구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자 스피노자(Spinoza) 같은 사람은 그의 合理主義的이고 “汎神論的” 신 이해로 인해서 이신론자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리고 전형적인 영국의 이신론자인 톨란드(J. Toland) 같은 사람도 범신론자로 간주되었다.
프랑스의 디도레(D. Didoret 1713-1784)에 의하면 이신론(Deismus)과 人格神論(Theismus)이라는 개념들도 17세기말까지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고 그 구별은 단지 言語學的으로만 이루어졌었다. 전자는 라틴어에서 그리고 후자는 그리스어에 기원을 두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18세기 말엽부터는 이신론과 人格神論 사이의 구별이 시작되었다. 인격신론자는 신의 存在, 道德的 善惡의 實在, 靈魂의 不滅性, 彼岸에서의 刑罰과 報償을 확신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신의 계시에 대해서는 인격신론자들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여기에 비해서 이신론자들은 신의 存在와 도덕적 善惡의 實在를 인정하지만 啓示나 靈魂의 不滅 그리고 彼岸에서의 賞罰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人格神論者는 신을 인간의 정신적 存在에 比喩되는 自然神學 과정에서 본다. 따라서 人格神論者에게는 신은 최고의 知的 能力이다. 그러나 칸트에 의하면 이들 이신론자들이나 人格神論者들이나 모두 啓示를 排除하고 있다. 그들은 신 인식을 단지 이성으로부터 얻는다. 물론 人格神論者들은 (인간의) 본성의 유비로부터 신적 본질에 대한 관점을 얻고 있으나 이신론자들은 그것을 거부한다. 人格神論者들은 신에게다 뭔가 悟性, 自由, 自然的이고 道德的 世界秩序의 保證者의 자격을 부여한다. 그래서 칸트는 다음과 같은 논제를 제시한다. “이신론자는 하나의 신을 믿지만 人格神論者는 하나의 살아 있는 신을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칸트의 구분도 한 세기 이전 영국에서 발전되었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영국에서는 존재의 근거에 대한 초월적-존재론적 물음은 전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에 의하면 이신론자들의 신은 時計工과 비교할 수 있는데 그가 “世界라는 時計”를 만든 다음에는 스스로 돌아가고 있는 그 시계에 다시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2) 理神論의 登場背景
 
첫째 중세말기 스콜라주의 신학에서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옥캄의 윌리암(William of Occam) 등의 神學思想인 唯名論(Nominalismus)이 후에 영국의 經驗論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유명론은 “보편적인 것이 개별적인 것 앞에 존재한다”(universalia ante res)라는 명제를 주장하는 實在論(Realismus)과는 달리 보편적인 것이 개별적인 것 뒤에 존재한다(univeralia post res)라는 명제를 주창하는바 種의 개념들은 이른바 이름(nomina)의 단순한 抽象들이라는 입장을 가진다. 따라서 참된 것은 개별적인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입장은 결정적으로 카톨릭의 神學思想에 나타난 普遍主義와 교황을 중심으로 한 制度的 全體主義를 해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전체적인 것이 참되다는 실재론의 주장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교황을 머리로 한 전체주의적 토대를 뒷받침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붕괴시킨다.
여기에 반해서 唯名論의 개별적인 것의 강조는 결과적으로 프로테스탄티즘의 救援論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말하자면 인간의 구원은 전체교회에 所屬員이 된다든지 또는 성직계급에 의한 媒介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單獨者로서 오직 신앙을 통한 신과의 人格的 만남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체를 중요시하는 사상은 그후 사회 정치적 영역에서도 개인의 尊嚴性 즉 개인의 人權思想의 토대가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유명론은 이신론의 역사에서 죤 록크(John Lock), 대뷔드 흄(David Hume)과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둘째 영국에서는 14.15세기 이래로 죤 위클리프(John Wyclif)의 聖書主義的 思考에 기초해서 생겨난 시민들 사이의 信仰的 對立들을 극복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성서주의는 신앙적 진리는 로마 카톨릭의 주장처럼 어떤 敎理나 교회의 傳統에서 구하지 않고 오직 聖書 自體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의 문제 역시 어떤 聖職者나 敎會가 媒介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서에 나타난 眞理 즉 예수 그리스도와의 직접적 인격적 만남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 15.16세기에 지도적 人文主義的 學者들이 등장하는데 콜렡(John Colet), 에라스무스(Erasmus), 토마스 모어(Thomas More), 피셔(Fisher) 등과 함께 후에는 자유주의적인 聖公會의 廣敎會主義(Latitudinarism)가 이신론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모어의 책 유토피아(1516년)는 합리적 신 신앙의 標準 段階들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17세기에 와서야 宗敎的 寬容과 敎會와 國家의 관계문제가 전면에 등장한다. 종교에 대한 檢閱制度가 폐지된 18세기로 넘어와서 처음으로 聖書批判과 신앙의 합리적이고 道德的 淨化가 이루어진다. 영국의 이신론의 저자들은 대부분 신학자들이나 교회의 직무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일반 市民들이 이러한 종교적 문서들의 저자가 되었다. 이들 문서들은 학자들에 의해서는 매우 낮게 평가되었었지만 후에 와서 성서해석 등에서 결정적 내용을 담은 것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신론의 등장배경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것은 기존의 宗敎 혹은 敎派의 絶對的 自己主張을 拒否하기 위해서 등장한다. 특히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의 分裂過程에서 信仰告白의 차이에 따라 교파주의자들은 매우 排他的으로 자신들의 敎理의 絶對性을 강조하고 다른 신앙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거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적 眞理의 多樣性을 인정함과 동시에 종교의 절대적 自己主張을 거부하는 이들은 주로 理神論의 입장을 취했다.
둘째 이신론자들이 등장한 것은 앞서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寬容과 良心의 自由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국가가 일정한 종교의 後見人이 되거나 반대로 일정한 종교를 박해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宗敎的 自由는 동시에 政治的 自由도 내포하고 있다.
세 번째로 이신론자들은 유대교, 基督敎 그리고 이슬람 종교들이 모두 참된 경건 혹은 신앙이라는 同一한 價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宗敎多元主義者들이라고 할 수 있다.
네 째로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合理的으로 神을 禮拜하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섯 째로는 超自然的 啓示에 대한 신앙은 부분적으로는 거부되지만 부분적으로는(인간의 미성숙으로 인해서 올바른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을 경우)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여섯 째 이신론자들은 敎條的 傳統들이나 종교적 機關들과 무관하게 종교의 모든 대상들에 대해서 자유로운 생각을 가졌다.
일곱 째 그들은 모든 종교들의 本質的 內容을 道德的-倫理的 領域에서 찾으려했다. 그들은 성서를 부분적으로는 역사적으로 부분적으로는 자연과학적으로, 부분적으로는 도덕적 비판을 가함으로써 그것이 가진 합리적 의미를 찾아내려 했다. 여기에서 성서의 역사비판학이 시작된다.
여덟 째 그들은 신을 哲學者들이나 形而上學에서 말하는 신과 유사한 존재로 파악했다.
아홉 째 그들은 보편적 基督論이나 三位一體論을 거부했고 당시 이단으로 알려졌던 소찌니안주의(Sozzinianismus), 유니타리안주의(Unitarianismus), 아리안 주의(Arianismus) 등을 승인하려는 경향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이신론자들은 제도적 교회를 거부하는 脫敎會化를 시도하거나 그것을 전제로 활동을 했다.
이러한 이신론의 特徵들은 그것이 근대적 啓蒙主義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세력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트뢸치(Ernest Troeltsch) 같은 신학자는 理神論을 가리켜 “啓蒙主義의 宗敎哲學”(die Religionsphilosophie der Aufklärung)이라고 말한 것은 타당한 판단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신론과 같은 매우 복잡한 내용을 가진 개념을 정의한 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매우 힘들다. 그래서 레흘러(Lechler) 같은 사람은 다음과 같이 이신론을 정의하고 있다. “理神論은 그 개념에 따르면 思考를 통한 자유로운 檢定에 근거해서 자연적 종교를 모든 실증적 종교의 규범과 규율로 올려놓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신론은 합리적 수단을 통해서 계시 宗敎의 최고 정점에 도달하려는 시도며 따라서 종교개혁 이래로 유럽에서 계시 종교를 믿는 다양한 信仰形式들로 인해서 발생한 社會的 葛藤들의 원인들을 비판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IV. 17.18세기 英國에서 理神論의 登場과 意味
 
1) 이신론의 內容
 
이러한 이신론의 등장은 당시 영국의 政治的 狀況과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여기서는 이 점에 대해서 잠시 논해보자. 영국에서는 宗敎改革의 결과로 발생한 사회적 갈등들과 이신론적 문서의 등장이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영국의 이신론은 17.18세기 영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영국에서 聖公會와 改革敎會的 長老敎, 이른바 淸敎徒(Puritan)들 사이의 대립은 1637/8년 크롬웰(Cromwell)의 民主主義的 革命과 거기에 근거한 1689년의 저 寬容法(Tolerance Act)을 탄생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하면 迫害받던 改新敎徒들의 종교적 자유가 곧 민주주의 혁명을 수반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대립은 사실상 영국에서 理神論을 탄생시키는 溫床이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영국의 이신론 사상의 출현은 이렇게 종교적 자유와 함께 政治的 自由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바 있다.
이들 理神論者들이 목표했던 것은 무엇인가? 영국의 이신론자들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에드와드 헬베트(Edward Herbert of Cherbury)는 오랫동안의 정치적 활동을 했었다. 그는 政治活動에서 은퇴한 후 敎派들 사이에서 信仰告白의 차이로 생겨난 국민들 사이의 심각한 葛藤들에 주목하고 그것들의 克服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다. 그는 이것의 극복을 위해서는 眞理認識에서 새로운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의 주저라 할 수 있는 “眞理”(De veritate)를 1624년에 출간하는데 거기에 따르면 宗敎的 眞理란 영원한 理性의 眞理의 領域에 속하는 것으로서 感性的 對象들과 일치해야 하는 經驗的 眞理들의 영역과는 구별된다는 것이다.
교파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들을 自然法 思想을 통해서 극복하려 했던 네델란드의 크로티우스(Hugo Crotius)와 같이 헬베트도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成立된 宗敎形式들의 배후에 있는 뭔가 자연적 原 宗敎(Ur-Religion)로 추구해 들어갔다. 여기서 자연적인 것이라고 할 때 기독교에서 말하는 뭔가 超越的이고 啓示的인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生來的으로 公有하고 있는 종교적 經驗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超越的인 것이나 超自然的인 것을 宗敎經驗의 기초로 삼기 때문에 敎派가 생기고 서로 對立鬪爭하게 됨으로 그것을 떠나서 뭔가 인간들이 자연적으로 所有하고 있는 共通의 것, 즉 原宗敎를 발견하자는 것이다. 헬베르트에게서는 여기서도 새로운 宗敎史的 理論의 定着化가 문제가 아니라 실제적 정치적 프로그램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는 모든 종교의 영원한 이성적 핵심이 되는 것 다섯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 최고의 神이 存在한다.
2) 그는 마땅히 敬畏되어야 한다.
3) 德性과 敬虔은 禮拜의 本質的 部分이다.
4) 罪는 懺悔와 悔改를 통해서 解決되어야 한다.
5) 신의 선하심과 正義로부터 時間과 永遠에서나 報償과 刑罰이 초래된다.
 
헬베르트에 의하면 宗敎的 眞理가 뭔가 超自然的 啓示에 완전히 의존할 수는 없지만 그것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배제할 수 없다. 그에 따르면 종교적 眞理認識을 확실하게 만드는 것은 超自然的 啓示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삶의 共同體가 生來的으로 가지고 있는 것(ideae innatae, notitiae communes)이며 또 모든 민족들 가운데 共通的으로 존재하는 宗敎的 陳述(consensus gentium)이다. 이것들은 自然法에도 상응한다. 따라서 그것은 理性的이고 普遍妥當한 眞理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超自然的 眞理란 신의 靈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의 淨化를 경험한 사람에게나 주어지고 그런 사람에게나 타당한 것이다. 그런데 헬베르트에 의하면 종교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墮落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葛藤의 원인이 되는데 그것은 곧 “司祭들”과 그들의 祭儀 및 敎理들 때문이다. (啓示) 宗敎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시간이 경과하면 制度化되고 그 과정에서 司祭들간에 權力鬪爭이 일어나고 勢力을 掌握한 자들이 교리를 만들어 反對勢力을 제거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종교들에서 항상 진리에 거역하는 것이 역사적 과정에서 생긴다. 그것을 그는 종교의 “墮落原理”(Principle of depravation)라고 했다. 헬베르트의 이러한 이론은 기독교 神學 一般에서는 큰 反響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으나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종교를 사회적 關係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주목을 받았었다.
특히 17세기에 들어와서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와 존 록크(John Locke)는 헬베르트의 프로그램에 대한 代案들을 만들어낸다. 홉스는 그의 책 레비아단(Leviathan)을 통해서 理神論에 대한 反對 立場을 분명히 밝힌다. 거기에 따르면 종교간의 平和는 자연적-이성적 原宗敎로 되돌아가는 것에서가 아니라 철저한 國家敎會(State Church)를 발전시키는데서 가능하다고 했다. 국가 權力이 종교의 權力을 掌握해야만 다양한 방향을 가진 교파들 사이의 분열과 다툼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홉스의 사상은 그의 人間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즉 그는 인간을 늑대로 보고 自然狀態에서 인간은 萬人對 萬人의 鬪爭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이를 통제할 유일한 수단은 국가뿐이다.  홉스는 종교의 葛藤들 이러한 人間本性에서 파악했기 때문에 대립하고 투쟁하는 성직자들을 國家機關의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國家敎會制度”(Staatskirchentum)를 그는 해결책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헬베르트가 종교의 “自然的 起源들”에서 뭔가 완전한 것을 찾으려 했다면 홉스는 歷史的이고 政治的인 것에서 最上의 것을 찾으려고 했다. 홉스에 의하면 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자연적 상태가 아니라 歷史的으로 그리고 政治的으로 발전된 形態다. 초기 인간들의 종교들은 自然現象들에 대한 不安과 恐怖의 산물이며 그것들의 起源과 原因들을 파악하기 위한 초기 단계의 과학적 노력들이었다. 기적이나 계시에 대한 신앙은 그와 같은 원 종교의 틀에서 보면 “學問的” 연구를 포기한 것의 표현에 불과하다.
여기에 대해서 죤 록크는 홉스와는 정 반대로 생각했다. 敎派들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고 종교간의 싸움을 막기 위해서는 國家와 敎會는 완전히 區別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의 캐롤라이나 주의 憲法制定을 위탁받았고 그가 만든 헌법이 1669년에 발효된다. 거기에 따르면 모든 住民은 교파들 가운데 하나의 構成員이 되어야 한다. 또 7-8명 이상의 구성원을 가지고 있을 때 宗敎團體는 교회로서 인정된다. 그 교회의 構成要件은 1) 한 분 하나님을 믿으며 2) 하나님은 공적으로 예배되며, 3) 또 정부가 요구할 때 주민들은 信仰告白을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宗敎的 集會를 방해받거나 종교적 견해나 예배방식으로 인해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즉 국가는 宗敎活動에 일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죤 록크가 쓴 종교들 사이의 “寬容에 관한 편지들”(1685/6, 1690, 1692, 1704)은 커다란 사회적 반응을 불러왔다. 그는 편지 서문에서 “宗敎的 寬容은 참 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표식으로 간주한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록크는 寬容의 자세를 국가에서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았으며 이것을 게을리 함으로서 사회적 不平和와 戰爭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신학적으로도 敎理가 사회에서 갈등을 초래하게 될 경우 전통적 교리를 피해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는 헬베르트와 같이 종교적 眞理의 相對化를 주장하고 있다.
죤 록크는 첫 편지에서 교회와 국가의 다양한 課題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교회는 永生을 얻기 위해서 신을 자기의 방식으로 예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단체다. 모든 교회 법들은 이것에 국한해서 제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市民的 그리고 세상적인 것의 소유와 관련된 것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 또 국가는 시민들의 일반적 관심을 보살피며 특히 물질적 행복을 위해서만 노력해야 하고 종교에 대해서 간섭해서는 안 된다. 홉스와는 달리 록크에 의하면 국가는 종교적 사안에 대해서 간섭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국가는 종교적 활동들에 대해서 관용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시민적 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들에 대해서만 퇴소한으로 관여해야 한다. 따라서 록크에 있어서는 “基督敎的 國家”란 생각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록크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政敎分離 사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죤 록크는 生來的 思考(ideae innatae)라는 헤르베르트의 생각을 거부하고 신의 존재는 생래적 사고를 통해서 인식할 수 없고 經驗的 理性에 의해서 우주의 존재로부터 밝혀진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도 사실상 理神論者였다. 록크는 경험적 이성을 종교적 인식원천의 척도로 본다는 점에서 이신론자다. 그래서 록크는 경험적인 것에 추가되는 것으로서의 계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죤 록크는 “성서에 나타난 것으로서 基督敎의 合理性”(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 as delivered in the scriptures=1695)에서 토마스 홉스가 “예수는 메시아다”를 유일한 신앙항목으로 주장한 것을 받아들인다.
 
이신론의 목표들
 
우리는 여기서 이신론의 登場背景과 그 目標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신론의 등장배경은 간단히 말해서 16세기 宗敎改革을 통해서 등장한 개신교들 사이의 敎理的이고 敎派的 葛藤과 對立이 등장하면서 유럽 사회가 심각한 分裂 양상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종교를 계시나 교리의 範疇로 해석하지 않고 “理性的이고 合理的”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로서 이신론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면 당시 이신론자들의 주된 관심사 혹은 목표들은 어떤 것일까?
첫째 이신론의 주된 목표는 신의 본질을 해명하는 것과 함께 특별히 신과 世界와의 關係를 규정하는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이신론자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헬베르트에 따르면 종교적 眞理認識은 超自然的 啓示로부터 주어질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의 共同體가 生來的으로 가지고 있는 것(ideae innatae, notitiae communes)으로부터 즉 민족이 共通的으로 가지고 있는 宗敎的 陳述(consensus gentium)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헬베르트이 주장하는 이신론에서는 “원 종교”(Ur-Religion)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더 이상 종교적 진리를 어떤 초월적인 계시에서 찾지 말고 이 원 종교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 다양성들을 승인하는데서 피차간의 조화를 발견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민족에게서나 공통으로 갖고 있는 共通的 宗敎的 陳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自然法에도 상응한다. 따라서 그것은 이성적이고 보편 타당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적 진리인식은 어떤 초자연적 신의 역사내의 개입과 그의 계시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고 생래적 경험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렇게 볼 때 신은 세계와 모든 인간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고 볼 수 없으며 세계는 그가 창조 후에 부여한 일정한 법칙에 따라서 운영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과 세계의 직접적 連續性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世界運營의 法則을 제공한 時計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초자연적 진리 즉 계시의 종교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感知할 수 있는 사람이란 마음의 “淨化”를 경험한 사람에게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시적 종교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制度化되면서 그 주도 세력인 聖職者들이 權力鬪爭에 몰입함으로써 타락하게 되어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당시 개신교파들 사이의 敎理鬪爭을 빙자한 權力鬪爭의 實體라는 것이다.
따라서 헬베르트의 이신론에 따르면 直接的으로 오늘도 歷史에 개입해 들어오는 인격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이 세상을 창조하고 일정한 법칙을 부여한 신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成熟하고 啓蒙된 인간은 더 이상 超自然的 啓示나 奇蹟 같은 것을 믿지 말고 세계의 운영을 신이 부여한 일정한 법칙에 따라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헬베르트의 생각이다. 여기서 이신론은 傳統的 神으로부터의 인간의 자유를 선언하고 나선다. 이렇게 볼 때 서구에서의 古典的 自由思想은 그 뿌리를 멀리는 그리스 哲學思想과 스토아주의에서 찾을 수 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近世에서 인간의 自由思想은 理神論에서 말하는 신으로부터의 자유에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둘째 정치적 寬容과 결합된 종교적 관용이 또 하나의 주된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敎理宗敎와 성직자 중심의 종교에서 발생한 교리로 인한 葛藤과 성직자들의 權力鬪爭으로 생기는 싸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신론이 제시하는 조건은 종교들 간의 관용이다. 이러한 교리상의 갈등은 啓示宗敎가 내세우는 진리에 대한 絶對的 主張에서 생긴다. 그러나 이성적 종교관에 따르면 어느 민족이든지 生來的으로 종교적 진리와 의식들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특정한 종교의 것이 더 우수하다거나 진리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종교의 교리나 제의를 통해서 다른 종교들의 것들을 排除하거나 敵對視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신론은 종교간의 관용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서구 특히 영국에서 이러한 종교적 관용은 정치적 관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되어 왔다.
이렇게 이신론은 垂直的으로는 신으로부터의 인간의 자유와 함께 水平的으로는 특정 政治勢力 혹은 宗敎勢力으로부터 인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신학적 구호로 사용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자유는 곧 近代的 民主主義에서 추구하는 정치적 자유의 뿌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근대적 민주주의에서 추구된 자유가 곧 경제적 자유의 근간이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V. 아담 스미스의 思想의 宗敎的 뿌리들
 
1. 이신론에 의한 世界와 人間解釋
 
앞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自由主義의 目標는 개인의 宗敎的이고 政治的 解放에 있었다.  이러한 인간의 해방은 經濟領域에서도 宗敎的 政治的 틀로부터의 인간의 自由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이러한 經濟學的 關係들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經濟學의 정신적 아버지로서 아담 스미스에게서는 경제학적 관계들 자체는 사실상 어떤 直接的 形而上學的 起源이나 論據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의 경제학 發展過程에서 중요한 것은 自律的인 經濟의 相互關係들의 分析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스미스의 展望에서 보면 經濟的 현상들은 그렇게 自律的인 것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그의 自由市場 經濟的 觀點들은 英國의 理神論이 가지고 있는 自然法的 思想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의 사상은 그것을 배경으로 하는 經濟倫理的이고 經濟神學的 背景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經濟倫理와 經濟神學的 背景을 이루고 있는 사상은 바로 영국의 理神論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18세기 중반에 등장한 영국의 理神論은 기독교의 信仰陳述을 뭔가 보편적이고 ‘自然的’인 것, 즉 역사적 요소들로 還元시킴으로써 基督敎가 가지고 있는 계시라고 하는 超越的 次元의 독특한 구원의 의미를 解體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신론이 가지고 있는 核心思想은 신은 天地를 창조했으며 그것의 窮極的 目的은 인간의 幸福에 있다는 것이다. 創造主 신은 時計工과 같아서 세계를 機械附屬品과 같은 것들로 組立해서 그것들이 秩序와 調和를 이루어 돌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世界는 하나의 機械며 그것은 신이라는 엔지니어에 의해서 최고의 被造物인 인간의 幸福을 위해서 돌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우주라고 하는 巨大한 체제를 움직이게 하고 또 理性的이고 感性的 存在들의 普遍的 幸福을 돌보는 것은 따라서 인간의 일이 아니라 신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신론적 세계관은 이미 아담 스미스의 초기 작품인 “道德感情論”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주의 곳곳에서 우리는 그것이 달성하려는 目的에 아주 適合하도록 최고의 技巧로 조정된 수단들을 발견한다. 우리는 식물 또는 동물 신체의 구조 속에서 모든 것이 개체의 存在와 種族의 繁榮이라는 두 가지의 위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너무나 잘 고안되어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들뿐 아니라 그와 같은 모든 對象物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운동과 조직에 있어서 目的動機(final cause)와 作用動機(efficient cause)를 구별한다....
“시계의 톱니바퀴들은 모두가 時計가 만들어진 목적, 시간의 가리킴을 위해 훌륭하게 조정되어 있다. 각 톱니바퀴들의 모든 다양한 움직임들은 가장 精巧한 방식으로 이 效果를 창출하도록 協力하고 있다. 설령 그것들이 이 효과를 창출할 所願과 意圖를 부여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더 잘 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같은 어떤 所願 또는 意圖도 시계의 톱니바퀴들에 돌리지 않고 시계공에게 귀속시킨다. 우리는 시계가 용수철에 의하여 작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것이 일으키는 작동은 톱니바퀴의 그것들처럼 그것이 의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洗練되고 啓蒙된 理性이 우리에게 권하는 것으로 보이는 저 目的들을 자연의 衝動을 통해서 추구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목적들을 달성하는 데 사용되는 우리의 감정과 행위들을 이 목적들의 作用動機로서의 세련되고 啓蒙된 理性의 탓으로 돌리 버리고 그것이 사실은 신의 智慧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혜라고 생각하기가 대단히 쉽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신에 의해서 의도된 것이라는 말이다. 사물의 본성에서 신의 計劃과 意志를 발견할 수 있다. 거대한 宇宙에서부터 그 안에 살고 있는 동물이나 식물에게서도 이러한 작동 원인으로서 움직이고 있는 신의 의지와 계획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운행은 하나의 機械的 自然原因(Naturkausalität)에 종속된다. “世界는 機械作動의 手段과 더불어 규정된 體系와 더불어 움직이는 물질이며 人間도 여기에 편입되어 있다.” 당시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생겨난 모든 것은 완전하고 合目的的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사람들은 자연적인 것에서 이성적인 것의 理想을 보았었다. 인간은 창조물 가운데서 가장 완전한 존재로 보호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自然主義는 理性主義와 一致했고 이러한 一致性은 宇宙를 神의 理性의 表現으로서 간주하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세계는 신의 예술품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사물의 자연적 운행은 인간의 노력들을 통해서 완전히 제어될 수 없다.”
아담 스미스에 의하면 인간 사회의 混亂과 苦痛들은 신이 원하는 질서들을 파괴하는데서 온다. 말하자면 신의 창조의 세계가 인간의 罪로 인해서 無秩序에 빠진다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자연적 時計作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의 行爲의 法則들, 社會의 法則들을 제시할 수 있고 거기에 따라서 理性的으로 행동할 수 있다. 사물의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신이 원하는 自然의 法則이다. 사물의 운동을 자연의 흐름에 맡겨두면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 즉 신의 손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은 自然法則들에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自由放任의 原理는 곧 신에게 영예를 돌리는 것을 의미하며 “보이지 않는 손”이 사물들을 그 자연적 運行에 맡겨두는 곳에서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신이 만든 자연의 원리이기 때문에 신이 원하는 것(das Gewollte)이다. 따라서 세계는 機械的 必然性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體制며 신과 신에 대한 信仰은 理神論的 思考에서는 이러한 自然的 體制가 방해받지 않고 잘 돌아가게 하는 것에 대한 보증이다. 개인들의 자율적 자기이해가 자신들의 능력과 경쟁이라고 하는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서 사회 전체의 調和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이러한 사고는 신의 섭리를 통해서 모든 사물들이 잘 정돈되어 있어서 전체의 행복이 달성될 수 있다는 理神論的 思想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그 사상의 보다 깊은 뿌리는 고대 스토익 사상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토익 사상에서는 “불같은 이성”(die feurige Vernunft)이 문제가 되는데 그것은 世界理性(Weltvernunft)으로서 세계와 사물에 貫通되어 있어서 그 법칙성에 따라서 만물이 움직인다. 사람들은 이러한 법칙성에 따라서 행동하게 되면 상호 調和를 이루고 따라서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과 그가 창조한 세계에 대한 기계론적 이해는 神學思想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강력하게 등장한 이른바 가유주의 신학의 발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 자유주의 신학의 기수라고 할 수 있는 슐라이엘마하(Friedrich Schleiermacher)는 인간의 본성에서 종교의 기원을 찾고 있다. 그에 의하면 그것은 곧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絶對依存의 感情”(die schlechtinnige Abhängigkeitsgefühl)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칸트학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릿츨(Albrecht Ritschl)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道德性의 완성이 종교의 궁극적 목표며 이것이 가능하게 될 때 神國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창조주의 역사적 계시와 그의 “보이는 손”에 의한 攝理에 기초한 傳統的 神學에서와는 달리 인간의 자연적 본성 즉 신의 창조를 통해서 이미 주어진 것들(die Gegebenheiten)에서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을 감지하려는 것이 곧 자유주의 신학의 기초라고 할 때 이것은 아담 스미스에게 영향을 주었던 이신론의 발전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것이 그 본성이 인간의 의존적 감정이건 도덕성이건 그것의 깊이를 추구하면 종교적 원리를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달성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기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이신론적 경제원리와 윤리사상
 
이렇게 理神論에서는 智慧와 선하심으로 세계를 창조한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신이 만들어 놓은 法則들과 機械論들에서 자기의 幸福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토니는 이렇게 말한다. “따라서 神과 自然은 일반적 틀을 만들었고 자기사랑과 사회적 사랑이 같은 것이 되게 했다.” 이런 의미에서 스미스에게서는 道德的으로는 否定的으로 評價되는 방식으로 자기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곧 타인의 이해를 損傷시키거나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많은 경우 매우 칭찬 받을 만한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사랑, 즉 자기의 利害貫徹은 스미스에 의하면 인간의 唯一한 衝動이 아니며 따라서 인간은 같은 수준으로 타인의 幸福을 위해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이 부여한 本性 혹은 自然法에 따라서 행동하면 그것이 저절로 자기와 타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이러한 세계에 대한 機械論的 自然法 理解가 그의 國民經濟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機械論的 存在論과 人間論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罪性이나 利己的 自己滿足을 향한 행동이 저절로 이타적인 결과로 나타난다고 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비관적이고 부정적 측면을 간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 전통, 특히 改革敎(장로교) 전통에 따르면 인간은 전적으로 墮落한 存在며 따라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동은 불가피하게 죄의 결과로 나타난다고 보고 신의 “恩寵”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경험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타적 존재라고 말할 수 없으며 동시에 이기적인 행동이 저절로 타인에게 이타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호소하는 것은 곧 이타적인 결과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와 인간을 자연에 부합한 過程들의 機械論에 굴복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機械論的 存在論과 人間論으로부터 主體가 喪失된 必然性으로부터 생겨난 “競爭社會와 市長社會”가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위에서도 간략히 언급한바 있는 自由主義者들이 범했던 치명적 오류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인간은 기계론이나 숙명론적으로 행동한다고 본 理神論의 人間觀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로텔담의 에라스무스에 의하면 인간은 “自由意志”를 가진 존재며 인간의 결단에 따라서 선을 행할 수도 악을 행할 수도 있는 존재로 파악된다. 따라서 세계와 인간에 대한 기계론적 이해는 인간의 本性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아담 스미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이 단지 利他的으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이타적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본성에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명령 혹은 신적 계명 나아가서는 “증언적 명령”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유일한 신의 행동원리만이 이타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같은 不完全한 被造物은 자기의 存在의 保存을 위해서 많은 外的인 것들을 필요로 하며 이 때는 다른 活動原因들 가운데서 행동해야 한다.” 인간들은 자기의 生存과 保存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보다 確固하게 하기 위해서 타인의 생명을 해치기도 하고 타인의 재산을 탈취하기도 한다. 사실상 서구의 역사는 인간과 인간의 투쟁의 역사며 토마스 홉스가 지적한대로 “인간은 인간에 대해서 늑대”로 활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악한 인간성을 순화하기 위해서 종교가 존재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역기능을 했을 때 국가라는 수단을 통해서 그 일을 하게 했다.
따라서 케인즈가 그의 책 “자유방임주의의 종말”에서 지적한대로 18세기 중엽의 “樂觀主義的 自由放任主義” 사상은 19세기 초반에 와서 “悲觀主義的 自由放任主義”로 전환된 것이다. 이미 고전적 국민경제의 두 번 째 단계에서 신과 인간 사이의 조화라고 하는 낙관적 신앙은 당시의 모순적 사회발전의 과정에서 무너지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18세기의 살롱종교"(Salonreligion)였던 이신론이 그 빛을 상실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친구이자 동시대인인 흄(David Hume)이 커다란 공헌을 했다. 흄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신의 전체 상을 상대화하고 정의와 재산에 관한 규율의 정당성을 직접 합의와 유용성이라는 논거에다 두고 있다. 이러한 정의와 재산에 관한 규율이 신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고 그것의 有用性을 통해서 논거 지어짐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철저한 轉換過程이 시작된 것이다.
 
결      론
 
이제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아담 스미스는 당시의 종교적 세계관 즉 이신론의 원리에 따라 그의 도덕철학 이론을 발전시켰고 이러한 도덕철학의 이론적 기초에서 그의 경제이론을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출발점은 따라서 도덕적 사회적 주체로서의 개인이며 동시에 자기이해에 기초한 경제적 주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개체를 철두철미 일정한 자연적 원리들에 따라서 기능하는 인간공동체의“선한 질서”(gute Ordnung)와의 상호관계에서 보고 있다. 이러한 공동체는 사회적 성숙도에 따라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조직되며 따라서 개인들도 거기에서 다양한 발전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사상가인 스미스에게서는 개인의 자유가 중요했고 그 결과 오늘날 신고전주의적 경제학의 주된 조류와 방법론적으로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스미스에게서 “선한 삶”(das gute Leben)에 대한 문제는 곧 자유를 통한 개인의 도덕적 자기실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사회정의라고 하는 범주들의 엄격한 존중에서 가능하다.  정치적 혹은 국가적 행위는 시민들 사이의 사회적 책임성을 통한 정의의 실현을 통해서 그 합법성과 정당성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시장 이전의 법”이라고 하는 도식은 곧 정치적 상황하에서의 경제적 제약이라고 하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학은 윤리학과 정치학의 제약 가운데서만 시민들 사이에서 행복을 증진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스미스의 생각이다. 스미스의 정치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여대를 발전시키고 조정하는데서 개인의 자유도 실현되고 경제학의 의미와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인간조건의 무조건적 보전이야말로 스미스가 윤리적으론 정치적으로나 가장 깊이 생각했던 사안이다.
이러한 스미스의 사상은 그의 도덕철학의 배경이 되고 있는 이신론적 세계관과 인간관을 통해서도 입증된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우리는 스미스의 경제이론을 그의 도덕철학과 정치철학과의 연관성에서 해명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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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r Wohlstand der Nation, dtv, München
Arnold Meyer-Faje, Peter Ulrich(Hrgs.), Der andere Adam Smith, Beiträge zur                        Neubestimmung von Ökonomie als Politischer Ökonmie
H. Sautter, Wie moralische ist der Markt? Mit Adam Smith gegen                      angebotsorientiertes Wirtschaften, In: Ev. Kommentare
Johan. Calvin, Institutues of the Christian Religion,
Wilhelm Niesel(이종성역), 칼빈의 신학, 대한기독교 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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