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5)

    소래 마을의 김좌수 김성섬은 일찍이 깨어난 사람인데도 여전히 옛 습관을 벗어나지 못한 점이 있었나보다. 그의 후처 안씨가 그 집 자녀로써는 열 번째로 아이를 낳게 되었다. 김성섬은 아들 낳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딸을 낳은 것이다. 크게 실망한 김성섬은 홧김에 막말을 하였다.
  • [이충범의 길에서][9][영암 사람들]

    [이충범의 길에서][9][영암 사람들]

    4세기에 일본의 정신사를 세팅해준 왕인박사, 그가 영암출신이었다. 화랑도가 단순히 육군사관학교가 아니듯이 박사 역시 단순히 관직명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일본서기』는 그를 단순히 박사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다른 책에는 그를 왕(王)이라 묘사하면서 우이고수라고 부른다. 우이(宇爾)…
  • [이충범의 길에서][8][아, 아, 월출산]

    [이충범의 길에서][8][아, 아, 월출산]

    정말 맛있게 늦은 점심을 실컷 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왠지 불안, 불안했는데 식당을 나서자마자 정말 반갑지 않은 님을 만났다. 이제까지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막바지 장마철이라 나대지 않던 해님 때문이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서자 그간 태양을 솔찬히 가려주던 …
  • [이충범의 길에서][7][혼자놀기의 고수와 만나다]

    [이충범의 길에서][7][혼자놀기의 고수와 만나다]

    나는 이런 도보여행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상하지 못했다. 해남에서 강진으로 오는 길은 위험한 도로였지만 그래도 길과 농토가 맞닿은 꼬불꼬불 국도였다. 그런데 새로 확장 개통된 2번 국도는 차만 쌩쌩 달리는 불쑥 솟은 자동차 전용도로였다. 조선시대 어르신들이 살아 돌아오셔서 삼남대로가 …
  • [이충범의 길에서][6][뿌연 물빛의 정체]

    [이충범의 길에서][6][뿌연 물빛의 정체]

    어릴 때 시골택시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비포장도로를 무서우리만치 달리는 그 속도 그리고 기사님이 브레이크라도 밟으면 무릎에 앉힌 내가 택시미터기를 들이 받을까봐 한손엔 미터기, 다른 손엔 내 머리를 감싸시던 아버님이 생각났다. 그렇게 달리면서도 기사님은 나에게 이것저것 물으셨다. 질…
  •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4)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4)

    김규식은 호가 우사(尤史)로서 강원도 홍천의 유서 깊은 청풍 김씨(淸風金氏) 양반의 후예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김지성이 동래부사 종사관으로 재직중에 민씨 정권에 대하여 일본 정권에 대한 사대주의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미움을 사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3년 만에 객사하고, 김규식이 6…
  • [이충범의 길에서][5][시골다방의 추억]

    [이충범의 길에서][5][시골다방의 추억]

    계획을 변경하든 뭘 하든 주변에 사람이 있고 인적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갑자기 조상님들의 길을 바꾸어 버린 인간들이 미워졌다. 지금 걷고 있는 55번 국도는 조선시대에 살던 조상님들이 걷던 길이다. 그러나 지금은 국도로 바뀌었고 차만 쌩쌩 다닐 뿐 그 어느 누구도 걸어서 여행하지 않는다. 그…
  •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3)

    우리나라 최초 7목사의 한분인 서경조는 형 서상륜과 함께 소래 마을에 소래교회를 세웠다. 이 일에는 그 지역의 유력자 인 김성섬과 그의 장남 김윤방의 전적인 후원이 있었던 사실은 이미 말한 바와 같다. 언더우드 목사는 이 지역 인사들과 친숙해 져서 소래교회를 자주 방문하여 교인들에게 세례를 …
  • [이충범의 길에서][4][또 한 분의 작은 예수]

    [이충범의 길에서][4][또 한 분의 작은 예수]

    조수석 유리창을 내리고 내게 묻는 사내에게 나는 북일면으로 간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내는 여기서 북일면이 어딘데 걸어가려고 하느냐며 나보고 차에 타라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여러 번 사양을 했지만 이 사내는 막무가내로 버티며 차에 타란다. 순간 머릿속에서는 과거의 한 장면과 불안한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8)

    헨리 마틴(Henry Martyn, 1781~1812)은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일반 선교사들이 인도 식민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고 있었을 때 이 회사의 목사로서 인도에 와서 선교에 힘썼다. 그는 가난한 한 광부의 가정에서 태어난 허약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적이 우수하였고 15세 때 옥스…
  •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2)

    광산김씨 제 2대인 김성섬 김좌수에게서 첫 부인이 아들 셋을 낳고 죽었다. 세 아들의 이름은 첫째가 김윤방, 둘째가 윤오, 셋째가 윤렬이다. 재취로 들어온 안(安)씨 가문 여인의 첫 아들이 김필순(金畢淳)이고, 그 다음 첫째 딸이 김구례(金求禮), 둘째 딸이 김노득(金路得), 둘째 아들이 김인순(金仁淳), …
  • [이충범의 길에서][3] 화려한 어머니의 옛날이야기

    [이충범의 길에서][3] 화려한 어머니의 옛날이야기

    한눈에 봐도 이상야릇한 분위기다. 화려하지만 아주 촌스러운 리본이 달린 큰 챙모자로 가려진 얼굴은 새빨간 립스틱과 떡분칠로 변장을 했어도 족히 70 가까이 돼 보였다. 블라우스와 치마는 울긋불긋하다. 게다가 빨간 양말에 비닐 뾰족구두다. 큰 가방을 벤치에 턱 하고 던지시면서 내가 앉은 벤치 끝…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7)

    인도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선구자는 영국의 침례교인 윌리엄 캐리였다. 그는 가난한 한 영국성공회 교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여 구두 만드는 제화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면서 독서의 기회를 만들어 남의 책을 빌려 독서하였다. 빌린 책 한 권은 영어로 쓰인 것이 아니어서 그것을
  •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6)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66)

    제1차 대각성운동의 결과로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의 4개 주에서만도 인구 30만명 중 4만명 가까운 결신자가 생겨났고, 150여개 교회가 신설되었다. 중남부 지방에서도 수만 명의 결신자가 생겨났고 사람들의 개인생활과 가정생활의 변화와 함께 도덕적 기풍이 쇄신되었다. 그러나 부흥운동을 반대하는 학…
  • [이충범의 길에서][2] 피할 수 없는 세상

    [이충범의 길에서][2] 피할 수 없는 세상

    7월의 첫 주말이었고 주말은 평일과 뭔가 달라도 달랐다. 방학 중인 내가 요일감각이 무뎌져서 그만 경계심을 늦추고 말았던 것이다. 기도하던 중 잠들어 버린 나는 깊이 잠들기도 전에 큰 소음에 깼다. 야식 배달원의 쿵쾅거리는 발소리, 다른 투숙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큰 목소리와 웃음소리,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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