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

"정치적 국경이 신앙의 형제애를 갈라놓을 수 없다"

독일동아시아선교회 총무 한강희 목사에게 듣는다(1부)

독일동아시아선교회(Deutsche Ostasienmission·DOAM) 신임 총무로 한강희 목사가 선임됐다. 세계기독교학을 공부하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국제협력선교부에서 에큐메니칼 사역을 이어온 한 목사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동아시아 에큐메니칼 관계를 심화하는 새로운 사역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한 목사는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독일교회의 역사가 오늘의 한반도에 단순한 '통일 모델'로 적용될 수는 없지만, 정치적 국경과 이념의 장벽을 넘어 교회의 연대와 대화를 지속했던 경험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 교회의 평화기도회와 동서독 교회의 연대, 그리고 디아코니아를 통한 신뢰 형성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다시 살펴볼 중요한 유산이다.

본지는 독일동아시아선교회 총무로 새롭게 사역을 시작하는 한강희 목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신학적 여정과 독일교회와의 인연, DOAM의 역사와 사역, 독일교회의 분단 극복 경험, 그리고 이것이 오늘의 한반도 평화에 던지는 의미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1. 독일동아시아선교회 총무로 선임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이번 선임의 의미와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이번 직책을 맡게 되신 과정과 함께,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역의 방향과 비전을 소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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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한강희 목사 페이스북 갈무리)
▲종교개혁지 콘스탄츠를 탐방한 독일동아시아선교회 한강희 신임총무의 모습.

우선 독일동아시아선교회(Deutsche Ostasienmission, DOAM) 총무로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과 DOAM이사회 그리고 DOAM을 구성하는 독일개신교선교연대(Evangelische Mission in Solidarität, EMS)와 베를린선교회(Berliner Missionswerk, BMW)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DOAM 이사회는 지난 10월 9일 독일 슈미텐(Schmitten)의 아놀드샤인(Arnoldshain) 지역에 위치한 마르틴 니묄러 하우스(Martin-Niemöller-Haus)에서 정기모임을 갖고 저를 차기 총무로 임명해 주셨습니다. 진보적인 선교단체로 평가받는 DOAM은 1884년 창립 초기 복음화 선교를 위해 중국과 일본에 선교사를 파송했고, 1960년대 후반에는 한국으로 선교 사역을 확장하며 동아시아의 파트너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제 전임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EMS에서 아프리카 부서를 담당하고 계신 게오르그 마이어(Georg Meyer) 목사님이신데, 이분의 바통을 이어서 DOAM 총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DOAM 총무직은 DOAM의 중요 조직인 BMW와의 협의 속에서 실무 책임을 담당하게 됩니다. 원래 마이어 목사님 이전에 EMS 인도/동아시아 부서를 책임지던 남인도교회 출신의 솔로몬 벤자민(Solomon Benjamin) 목사님이 DOAM 총무를 잠시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담당하는 사역의 범위가 넓어 마이어 목사님이 맡으셨다가, 이번에 동아시아를 담당하는 제가 그 사역을 잇게 된 것입니다. 업무상으로 볼 때, 동아시아라는 공통의 사역 영역이 제자리를 찾은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부서와 사역의 일치에 대해서 DOAM 이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논의가 있었습니다.

제가 향후 DOAM을 통해서 주요하게 판단하는 과제와 방향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DOAM의 학술적, 연구적 역할입니다. 약 143년의 DOAM 역사를 통해서 많은 독일 선교사가 한중일 지역에 파송해서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학술적으로 지역학 발전에 중요한 학문적 기여를 하기도 하며 일차 자료를 남겼습니다. 이 자료가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슈파이어(Speyer)에 위치한 팔츠 개신교 주교회 중앙 자료관(Zentralarchiv der Evangelischen Kirche der Pfalz)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현재도 자료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디지털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는 개신교 선교를 넘어서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 문화, 역사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데 중요합니다. 그리고 매년 10월경 DOAM은 연례학술대회(Jahrestagung)를 통해서 동아시아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논의하는 장을 갖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자료 연구과 활동이 가능하도록 기획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동아시아 기독교 단체들과의 지속적인 파트너십 구축입니다. DOAM이 관여하는 동아시아 기관으로는 일본의 도미사카기독교센터, 부라쿠해방센터, 일본NCC종교학연구센터가 있고, 한국에는 지금 관계가 소원하지만 한국신학연구소와 목포디아코니아자매회 등이 있습니다. 중국에는 EMS와 연계하여 애덕기금회나 중국기독교협회와도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또한 DOAM 내에는 한중일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지역 전문가 그룹이 있어서 위의 기독교 단체들로부터 선교적 전략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독일-동아시아 에큐메니칼 관계를 심화하고 현지 동아시아 기독교 단체들이 관심하는 과제를 독일교회와 협력해서 하나님 나라 운동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2. 목사님께서 독일교회와 동아시아 선교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동안의 목회와 선교 경험 가운데 오늘의 사역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준 만남이나 사건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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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한강희 목사 제공)
▲DOAM 임원단(좌로부터) - 카스텐 로스탈스키 목사(전임 DOAM 이사), 한강희 목사(신임 DOAM 총무), 게오르그 마이어 목사(전임 DOAM 총무), 카롤라 호프만-리히터 박사(DOAM 의장)

처음부터 독일교회와 동아시아 선교라는 구체적인 영역에 한정하여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 본래 저의 신학적 출발점은 동아시아 지역 회원교회들의 자립적인 목회자 양성과 현지 신학 형성에 있었습니다. 한신대학교 학부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세계기독교학(World Christianity)'에 깊은 매료를 느꼈습니다. 기존 서구 중심의 선교학이 탈식민주의 및 탈제국주의적 시선에서 성찰되고, 남반구와 아시아 중심의 기독교 지형 변화가 주목받던 시기였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세계기독교학의 본산인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 신학부로 건너가 학위 과정을 밟았습니다. 에든버러에서의 다문화적·다학제적 연구 환경은 저에게 동아시아의 신학적 위치를 글로벌 기독교 맥락에서 객관적이고 새롭게 바라보는 넓은 안목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특히 연구 기간 중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목사수련과정을 거치며 현지 성도들과 교류한 경험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아시아와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가진 서구 그리스도인들과 소통하면서, 역설적으로 한국과 동아시아가 걸어온 역동적인 신학적·역사적 유산을 '글로벌 에큐메니칼 시각'에서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귀국 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교육훈련원에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에큐메니칼 교육과 인문학 강좌, 신학생 연대 사업을 기획·운영했습니다. 개별 교단 신학교 안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교파 간 다원적 교류와 통합적 신학 교육의 장을 연합기구 차원에서 구축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한국기독교장로회(PROK) 총회 국제협력선교부로 사역지를 옮기면서 한층 넓은 국제적 차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전 세계 45개 이상의 파트너 교단 및 국제기구와 협력관계를 다지는 과정에서, 비로소 동아시아 선교가 가진 시대적·에큐메니칼적 과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기장 총회 국제협력 사역의 중심에는 바로 독일 EMS가 있었습니다. 기장 총회가 EMS를 매개로 전개해 온 평화통일, 생태환경, 청년 교류 사업은 독일교회가 축적해 온 통일과 정의, 자원 나눔의 선교적 유산과 깊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1972년 EMS가 창립된 이래, 기장(1974년)과 예장통합(1979년)이 일찍이 회원 교단으로 동참하면서 한국과 독일교회 간의 두터운 동반자적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1970~1990년대 엄혹했던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 EMS가 파송하거나 관계했던 파울 슈나이스, 빈프리트 글뤼어, 도로테아 슈바이처, 루츠 드레셔와 같은 에큐메니칼 동역자들은 한국 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의 현장에 함께하며 세계 교회의 연대를 몸소 실천해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학문적 훈련(세계기독교학)과 현장 경험(NCCK·PROK), 그리고 독일교회와의 역사적 연대의 유산이 쌓여, 오늘날 EMS 동아시아 사역을 이끄는 가장 든든한 신학적·선교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도움의 주고받음을 넘어, 동아시아와 유럽 교회가 글로벌 평화와 기후 위기, 생명 살림의 과제 앞에 동등한 파트너로서 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새로운 연대의 시대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3. 독일은 분단과 대립을 경험한 뒤 통일을 이룬 나라입니다. 독일교회는 분단 시기 동서독 간의 화해와 교류, 통일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했습니까? 특히 정치적 대립이 심했던 시기에 교회가 대화와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실천했던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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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한강희 목사 제공)
▲1970년대 후반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던 빈프리트 글뤼어(Winfried Glüer) 박사. 당시 EMS 동아시아 국장 및 DOAM 총무를 담당했다. (2026년 5월 11일 안스바흐 자택에서)

우리가 독일교회의 평화적 역할을 고려할 때, 동독과 서독으로 정부가 갈라진 1949년 이후의 역사적 상황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이 정치적으로 분단된 후 동독 개신교회는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강력한 정치적 통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독일 사회의 정치적 분열이 곧 교회의 분열이나 동서독 교회 간의 단절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독일개신교회(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EKD)는 1948년 루터교회, 개혁교회, 연합교회를 바탕으로 20개 지역 주교회(Landeskirchen)의 연합체로 출범했습니다. 연합체 구조였기에 EKD는 이전보다 더욱 에큐메니칼적 지향을 강화하였고, 사회적 책임과 공적인 임무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분단 상황이 심화되던 1969년, 동독의 교회들은 동독 정권의 정치적 압박으로 인해 독자적인 조직인 동독개신교연맹(Bund der Evangelischen Kirchen in der DDR, BEK)을 창설했습니다. BEK는 1990년까지 동독 지역 개신교 주교회들의 연합체로 기능했습니다. 그러나 EKD는 BEK를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다른 신앙 공동체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치적 국경이 신앙의 형제애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원칙 아래 깊은 연대와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교회를 정치·이념적 분열의 도구가 아니라, 통제와 고통 속에 있는 동독 신앙인들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공동체로 이해한 것입니다.

이 시기 동독 개신교계 내부에서도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교회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려는 신학적 시도가 등장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디트리히 본회퍼의 제자로 알려진 알브레히트 쇤헤어(Albrecht Schönherr) 주교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사회주의 안에서의 교회"(Kirche im Sozialismus)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동독 정권의 압박 속에서 교회의 생존과 선교적 사명을 정교하게 정립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체제 순응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지만, 그의 교회론은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것도, 사회주의를 방관하거나 외면하는 것도 교회의 본모습이 아니다'라는 지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즉, 국가와의 긴장 관계 속에서도 세상과 이웃을 향한 교회의 책임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1980년대 들어 동독 정권의 탄압이 거세지자, 동독 교회는 반전·평화 운동의 든든한 보루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의 평화기도회는 동독 전역으로 번진 '월요 기도회'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1980년 성 니콜라이 교회에 부임한 크리스티안 퓌러(Christian Führer, 1943-2014)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1982년 9월 20일부터 청년들을 중심으로 매주 월요일 평화기도회를 정례화했으며, 이는 통일 이후까지도 평화의 상징적 장소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에어푸르트의 여러 교회 등 동독 전역의 교회들이 이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이 평화기도회는 1989년 10월 9일 거대한 '월요 시위'로 발전하며 독일 민주화를 향한 결정적 물결을 만들어 냈습니다. 비폭력 평화를 지향한 이 운동은 동독 사회 전역에 평화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파했습니다. 기도회에서 시작된 월요 시위에 한 달 만에 무려 4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참여하여 동독 권력의 불의를 고발했습니다. 이러한 비폭력 평화 운동의 물결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의 강력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분단 기간 내내 서독 교회는 정기적인 헌금과 구호물자를 동독 교회로 전달하며 평화적 연대를 지속해 왔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서독 교회가 동독 교회에 지원한 재정은 연간 수천만 마르크(한화 약 300~400억 원 규모)에 달했습니다. 이 지원금의 약 50%는 동독 교회의 유지 및 운영비로, 20%는 사회복지 사업(Diakonie)에, 그리고 30%는 청소년 사역과 교육 등에 할애되었습니다. 이러한 유기적인 신뢰와 실천적 연대에 힘입어, 1991년 BEK는 다시 EKD 체제로 복귀하며 신앙적 통합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4. 독일의 분단 극복 경험을 오늘의 한반도 상황에 적용할 때, 한국교회가 주목해야 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독일과 한반도의 역사적·정치적 차이를 고려할 때 단순히 모방하기 어려운 부분과, 그럼에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원칙을 함께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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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한강희 목사 제공)
▲1984년 라이프치히 미하엘리스 교회에서 열린 기도회. (사진 출처: 라이프치히 크리스티안 퓌러 유품)

1990년대 이후 한국 에큐메니칼 개신교 진영에서는 독일의 통일 과정과 그 속에서 이뤄진 독일교회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적용을 활발하게 모색해 왔습니다. 독일교회가 분단 현실에 직면해 있던 한국교회의 통일 담론과 실천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독일교회가 한국교회와 깊은 연대를 이어가는 핵심적인 교류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분단 극복 경험을 오늘의 한반도 상황에 무비판적으로 직접 적용하는 것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릅니다. 더욱이 현재 독일은 지리적 통일을 이루었을지라도, 내면의 심상지리(Mental Geography)에는 여전히 깊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경제적·문화적·이념적 층위에서의 분단 경계는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최근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을 비롯한 보수 정당들이 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가는 현상 역시 일시적인 사태라기보다는, 독일 사회가 안고 있는 분단의 암울한 유산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과 독일은 역사적·정치적으로 현격한 구조적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분단의 배경과 원인의 차이입니다. 독일의 분단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에 따른 승전국들의 분할 점령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한반도의 분단은 동일한 민족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거치며 극심한 이념적 적개심과 상호 트라우마가 고착화된 결과입니다.

둘째는 교류와 소통의 차이입니다. 동서독은 분단 상황 속에서도 서신과 전화, 방송 시청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반면 남북한은 일시적인 이산가족 상봉이나 스포츠 교류 등을 제외하고는 미시적인 정보와 인적 교류가 철저히 차단된 극단적 폐쇄 구조 속에 놓여 있습니다.

셋째는 각 체제 내 교회의 존립 양상과 에큐메니칼 파트너십의 차이입니다. 이는 기독교 평화통일 운동에서 매우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동독의 경우 사회주의 체제의 통제 속에서도 교회가 조직으로서 존립하였고, 평화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적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북한은 종교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어, 북한 당국이 인정하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차 정권의 간섭과 영향 아래에 있어 남북 교계 교류에 구조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특히 최근의 적대적 두 국가 체제 국면 속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조선그리스도교련맹 간의 관계마저 사실상 와해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은 지속 가능한 에큐메니칼 관계를 후퇴시키는 부정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와 현실적 차이 속에서도, 독일교회의 경험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중요한 통찰과 실천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합니다.

첫째는 이념을 초월하는 교회의 본질적 역할입니다.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의 이면에는 이념적 진영 논리가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전후부터 부상한 반공주의는 정치적으로 악용되며 교회 내부의 일치마저 가로막아 왔습니다. 그러나 동서독 교회가 증언했듯, 그리스도교 신앙은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여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지향해야 합니다. 남북 관계를 바라볼 때 역시 이념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평화적 비전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공의로운 실천이 절실합니다.

둘째로 진정성 있는 디아코니아의 실천입니다. 분단 시기 동서독 교회는 디아코니아 사역을 통해 인류애와 신앙적 형제애를 실천했습니다. 서독 교회는 동독 주민들의 피폐한 삶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지속적인 물질적 후원과 연대를 통해 이웃 사랑의 복음 정신을 삶으로 증명해 냈습니다. 이러한 순수한 인도주의적 교류와 실천은 남북 교계의 관계를 진솔하게 엮어주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셋째로 평화의 복음을 위한 공적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성 니콜라이 교회의 평화 기도회가 월요 시위로 발전하며 시민적 공감과 연대를 끌어낼 수 있었던 바탕에는 교회의 공적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복음의 공공성을 놓쳤다면 독일 사회의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에 대한 의식은 결코 꽃피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독일교회는 평화를 기도하는 안전지대를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공적 사명을 다했습니다. 이는 한국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국교회는 이념 갈등을 부추기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복음에 기초한 평화의 사도적 역할을 강화하고 거룩한 공론장으로서의 공적 본질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5. 오늘날 독일교회는 한반도의 분단과 남북 간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독일교회와 유럽 교회협의체,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국제 에큐메니칼 공동체에서 한반도 평화 문제가 어느 정도 관심과 우선순위를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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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한강희 목사 제공)
▲EKD가 2025년 발표한 평화 문서 《혼돈 속의 세상 – 정의로운 평화의 모색(Welt in Unordnung – Gerechter Friede im Blick)》

현재 독일개신교회(EKD)를 비롯한 유럽 교회와 제네바의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국제 에큐메니칼 공동체는 한반도 평화 이슈를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만, 1970~90년대의 뜨거웠던 관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현장과 정세 측면에서 몇 가지 명확하고 현실적인 이유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유럽 및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안보 위기 집중 때문입니다. 현재 독일과 유럽 교회의 역량은 당장 자국 및 유럽 대륙의 안보·사회 문제와 직접 직결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특히 독일교회는 오랜 기간 중동 등지에서 유입되는 난민을 향해 디아코니아적 돌봄을 실천해 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체류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넘어, 분쟁 지역의 평화 재건이라는 복음적 책무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최근 독일 전역에서 극우·보수화 경향(AfD의 확장 등)이 강화되면서 이주민과 난민 배척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부상함에 따라, 독일교회는 내재적 민주주의와 포용적 가치를 수호하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쏟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집약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독일교회 내 평화 윤리의 변화와 현실정치(Realpolitik)의 투영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독일교회 내부의 담론 변화 역시 주된 원인입니다. EKD가 발표한 평화 문서 《혼돈 속의 세상 - 정의로운 평화의 모색(Welt in Unordnung - Gerechter Friede im Blick)》은 인간 세상이 에덴이 아니라 구속을 필요로 하는 '깨어진 세상'임을 직시하며, 인간 본성의 폭력성과 현실정치의 냉혹함을 신학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이 문서가 '폭력으로부터의 보호(Schutz vor Gewalt)'를 평화의 최우선적 기본선으로 놓은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생명과 영토가 직접 침해받는 현실 속에서는 추상적 가치나 무조건적인 무장 해제(탈군사화)가 오히려 불의와 폭력을 방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부 교계 및 신학자들은 장기화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독일 연방군의 대규모 재무장 기조 속에서, 교회가 국가의 무력행사와 군사력 강화를 정당화해 주는 '종교적 승인자'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제기합니다. 이처럼 독일교회 내부에서 평화 윤리의 전환을 두고 가열찬 논쟁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한반도보다는 자국과 유럽 내부의 안보·평화 윤리 정립에 담론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내 DOAM, EMS 혹은 WCC와 같은 에큐메니칼 네트워크는 한반도 분단 문제를 결코 유럽과 단절된 지역적 사안으로 보지 않으며, 지구적 평화를 좌우하는 '인계철선'으로서 그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2024년 6월 북한과 러시아가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제4조(한쪽이 무력 침공을 받을 경우 지체 없이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조약에 근거해 북한의 군사적 지원이 러시아로 유입되고 있는 현실은, 향후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즉, 한반도 평화는 더 이상 동아시아만의 고립된 이슈가 아니라, 유럽의 안보 및 전 지구적 평화 구조와 톱니바퀴처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DOAM과 EMS 내의 독일교회 회원들 역시 이러한 지구적 연결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한반도 문제에 대한 기존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접근법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독일교회와 에큐메니칼 기구는 유럽 현장에서 평화교육과 공공 담론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가 곧 유럽과 세계의 평화와 직결되어 있음을 지속적으로 환기하고, 어두운 현실주의에 갇히지 않는 통전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구적 평화 패러다임을 에큐메니칼 공동체에 꾸준히 제공하고 연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6. 독일동아시아선교회는 어떤 역사와 설립 목적을 가진 기관이며, 현재 주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사역은 무엇입니까? 동아시아 지역의 교회 및 기독교 단체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한국교회와의 협력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소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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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한강희 목사 제공)
▲DOAM 소식지 . 연간 2회 발간되며 DOAM의 주요 사업과 소식을 전하고 있다. DOAM 홈페이지(https://www.doam.org/)를 통해서 다운받을 수 있다.

독일동아시아선교회(Deutsche Ostasienmission, DOAM)는 1884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스위스 개신교 목사인 에른스트 부스(Ernst Buss) 등에 의해 설립된 일반개신교선교회(Allgemeiner Evangelisch-Protestantischer Missionsverein)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DOAM은 1885년부터 동아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는 에른스트 파버(Ernst Faber)와 리하르트 빌헬름(Richard Wilhelm)이, 일본에는 빌프리트 슈피너(Wilfried Spinner)와 에밀 쉴러(Emil Schiller) 등이 초기 선교사로 사역했습니다. 이들은 동아시아의 종교와 문화에 깊은 조예를 지닌 학자적 기질을 바탕으로, 이후 서구의 중국학과 일본학 형성에도 중요한 학술적 토대를 놓았습니다.

이처럼 DOAM은 설립 초기부터 일방적인 복음 전파를 넘어 현지 문화와의 토착화, 학술 교류, 그리고 평화적 대화를 핵심 가치로 삼아왔습니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오늘날에도 DOAM은 동아시아 사회가 직면한 평화, 인권, 생태, 민주주의의 과제에 깊이 응답하며, 연례 학술대회(Jahrestagung) 개최와 학술 출판, 연구 지원 및 에큐메니칼 네트워크 사업을 주요 사역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의 교회 및 기독교 단체들과는 과거의 시혜적 관계를 벗어나, 시대적 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동등한 에큐메니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한국과의 인연은 196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70년대 DOAM의 의장이었던 페르디난트 한(Ferdinand Hahn) 교수를 비롯해 하르트무트 알브루샤트(Hartmut Albruschat), 파울 슈나이스(Paul Schneiss) 등이 지도부로 활동하며 한국의 민주화 및 평화운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한독 교회 관계의 핵심적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안병무 교수는 한국 측 대변인으로서 DOAM 등 독일 교회의 협력을 끌어내어 한국신학연구소를 설립하고 공고히 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지역별 협력 현황을 말씀드리면, 중국의 경우 현재 중국기독교협회 및 애덕기금회(Amity Foundation)와 같은 기구들을 중심축으로 인도주의적 지원과 협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도미사카기독교센터, 부라쿠해방센터, 일본NCC종교학연구소 등과 연대하여 일본 기독 지식인들과의 학술 교류 및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한 연대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DOAM 의장인 카롤라 호프만-리히터 박사님은 과거 남편과 함께 십여 년간 일본에서 EMS 파송 선교동역자로 사역하셨습니다. 당시 일본 내 차별받는 소수자 집단인 '부라쿠'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활동하셨으며, 이 경험은 귀국 후 독일 내 신티·로마(Sinti & Roma) 등 이주·소외 공동체를 향한 사역으로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DOAM은 부라쿠-민중-달릿-신티·로마로 이어지는 소외받는 이들을 향한 국제적 연대와 인권 사역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입니다.(2부에서 계속)

김진한 편집국장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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