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구미정 교수, 니체의 '초인'을 룻기의 '헤세드'에 잇대다

<기독교사상> '룻과 함께 아모르 파티' 연재 마무리..."자기 자신을 넘어 타자를 위한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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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구미정 교수 페이스북)
▲기독교윤리학자 구미정 협성대 객원교수(화성으로 간 책방 대표)

기독교윤리학자 구미정 교수(협성대 객원)가 《기독교사상》에 최근까지 연재해 온 '룻과 함께 아모르 파티'를 마무리했다. 얼마 전 발행한 8월호 마지막 글에서 구 교수는 룻기의 이야기를 니체의 '초인',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인간 이해, 시몬 베유의 사상 등과 연결하면서 자기 자신을 넘어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 그리고 절망과 폐허 속에서 생명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인간을 조명했다.

구 교수는 마지막 글의 제목을 '나의 새롭고 아름다운 종족'으로 붙였다. 여기서 '새로운 종족'은 혈통이나 민족적 구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기중심적 삶을 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너 자신을 넘어서라"

글의 출발점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인간 이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로 묘사한다. 구 교수는 이를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와 대비시키며 "너 자신을 넘어서라"는 말로 풀어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목적 그 자체로 삼지 않는 것이다. 구 교수는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말을 빌려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사실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징표로 해석한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절대화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안위를 숭배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초인' 역시 초능력을 가진 영웅이 아니다. 구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초인은 인간 내면의 욕망과 자기중심성을 직시하고 그것을 넘어가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목적'이라기보다 '다리'에 가깝다. 다리는 한곳에 머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건너갈 수 있도록 놓여 있다.

구 교수는 이를 복음서의 말씀과 연결한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 12:25)는 예수의 말씀처럼, 자신을 붙잡는 삶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삶에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룻과 보아스, '자기 자신을 넘어선 사람들'

이러한 관점에서 구 교수는 룻기의 '아무개'와 보아스를 대비한다. 룻기 4장에 등장하는 '아무개'는 처음에는 기업 무를 자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의 재산과 이해관계를 계산한 끝에 룻과 나오미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반면 보아스는 자신의 힘과 사회적 지위를 타인을 살리는 데 사용한다. 구 교수는 이를 가부장적 사회가 요구하는 전통적인 남성성에 대한 도전으로 읽는다.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대신, 약한 이들을 살리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그 힘을 사용할 때 비로소 새로운 인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룻 역시 마찬가지다. 모압 출신 이방 여성이었던 룻은 남편을 잃고 고향을 떠나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향한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룻 1:16)이라는 룻의 고백은 단순한 가족애를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결단으로 읽힌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모압 여성이 감당해야 했던 경계와 배제에도 불구하고 룻은 언약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고, 결국 이스라엘의 역사와 메시아의 족보에 이름을 남기는 인물이 된다.

'헤세드'가 폐허 속에서 새로운 길을 연다

구 교수는 룻기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 '헤세드'를 강조한다. 헤세드는 단순한 친절이나 호의를 넘어, 어려움 가운데서도 상대를 버리지 않는 사랑과 인애를 가리킨다.

룻은 무너진 나오미를 외면하지 않았다. 보아스 역시 룻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들의 선택이 연결되면서 기근과 죽음으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새로운 생명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구 교수는 이를 "폐허 속의 문"이 열리는 과정으로 묘사한다. 룻기는 처음부터 밝은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는다. 베들레헴의 기근, 모압 이주,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 그리고 빈손으로 돌아온 나오미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베들레헴에는 다시 풍년이 들고, 룻은 보아스와 만나며, 나오미의 삶에는 새로운 생명이 찾아온다. 결국 오벳이 태어나고,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가 되며, 다윗 왕의 계보로 이어진다.

구 교수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개인의 행복을 회복하는 데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룻기의 이야기는 한 여성과 한 가족의 회복을 넘어 새로운 공동체와 새로운 역사, 그리고 장차 메시아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계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내게 오는 것은 시련도 축복이다"

구 교수는 고난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룻과 보아스의 삶에서 고난은 타자를 향한 사랑과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된다. 자기 안위만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고난은 피해야 할 것이지만, 타자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사람에게 고난은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구 교수는 헤셸의 통찰을 연결한다. 행복을 자신의 만족과 안위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에서 찾는 것이다. 룻은 자신을 위해 나오미를 이용하지 않았다. 보아스 역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룻을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한 사람의 선행은 또 다른 사람의 선행으로 이어지고, 개인의 삶은 공동체의 회복으로 확장된다.

룻의 선택이 가져온 '베들레헴의 봄'

구 교수는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하는 아슬란의 이미지를 룻기의 이야기와 연결한다. 영원한 겨울이 계속되는 나니아에 아슬란이 등장하면서 봄이 찾아오는 것처럼, 룻기의 세계에도 죽음과 기근의 시간이 생명과 풍요의 시간으로 바뀐다.

그러나 봄은 저절로 찾아온 것이 아니다. 타자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계절이 시작됐다. 룻이 나오미를 떠나지 않았고, 보아스가 룻을 받아들였으며, 공동체가 이들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다.

구 교수는 이를 '헤세드'의 힘으로 설명한다. 타자를 위한 사랑이 한 사람의 삶에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때, 그 사랑은 공동체의 질서를 바꾸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각자의 길을 걸으며 함께 가는 길동무"

글의 후반부에서 구 교수는 '길동무'의 의미를 강조한다. 니체에게 진정한 친구는 상대에게 종속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길을 살아가면서도 서로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구 교수는 이를 예수의 제자도와 연결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길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는 모두를 똑같이 만드는 곳이 아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단순히 '인간이라는 종의 한 견본'이 아니다. 각각 고유한 이름과 삶을 가진 존재다.

룻 역시 '모압 여인'이라는 집단적 이름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선택과 사랑으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구체적인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개인의 고유성이 공동체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를 새롭게 만든다.

"죽음 대신 생명을, 저주 대신 축복을"

룻기의 마지막 장면에서 베들레헴 여인들은 룻을 "아들 일곱보다도 더 나은 며느리"라고 칭송한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오벳'이다. 오벳은 '섬기는 자'라는 뜻을 지닌다.

구 교수는 이 이름에서 장차 이 족보를 통해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바라본다. 룻기는 룻과 나오미의 행복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오벳과 이새와 다윗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연결된다.

따라서 룻기의 마지막 족보는 단순한 가문의 기록이 아니다. 한 사람의 작은 사랑과 헌신이 더 큰 역사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생명의 통로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죽음으로 끝날 것 같았던 이야기가 생명으로 이어지고, 이방 여인으로 배제될 것 같았던 룻이 언약의 계보에 들어간다. 구 교수는 이를 죽음 대신 생명을, 저주 대신 축복을 선택한 룻의 결단으로 해석한다.

"다시 태어나도 이 삶을"

연재의 마지막에서 구 교수는 니체가 던진 질문을 꺼낸다. "너는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 니체는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아모르 파티', 곧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로 표현했다. 구 교수는 이를 룻기의 이야기와 연결한다.

룻에게 주어진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이방인이라는 신분, 남편의 죽음, 시어머니의 절망, 낯선 땅에서의 생존이라는 현실이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룻은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타자를 살리는 길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나오미의 삶을 변화시켰고, 보아스와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으며, 오벳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생명의 계보는 다윗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진다. 구 교수는 니체가 말한 '새롭고 아름다운 종족'을 바로 이런 사람들로 바라본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넘어서는 사람, 고난 속에서도 타자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을 살리는 통로로 내어놓는 사람이다. 그것은 혈통이나 국적, 성별이나 사회적 지위로 구분되는 새로운 종족이 아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넘어 생명과 사랑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구 교수는 연재의 마지막을 전도서의 말씀으로 맺는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은 언제나 한결같다. 거기에다가는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 기근과 죽음에서 시작된 룻기의 이야기가 풍년과 출산, 그리고 새로운 족보로 끝나는 것처럼,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는 인간의 계산을 넘어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간다. 그리고 그 길에는 룻과 나오미, 보아스처럼 자기 자신을 넘어 타자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지수 기자 libertas@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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