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운데 신학계에서도 인간과 자연, 창조와 구원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다시 묻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조직신학논총』 제83집에 실린 남기강·박완석의 논문 「인류세 이후 물질 신학적 사유의 요청과 응답 - 창조론, 인간론, 종말론의 물질 신학적 재구성」도 이러한 질문을 정면으로 다뤘다.
"인간은 정말 세계의 중심인가?" 저자들에 따르면 '인류세'란 인간의 활동이 지구 시스템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기존의 안정적인 생태적 순환에 균열이 발생한 현실을 가리키는 담론이다. 논문은 이를 단순히 기후변화나 환경오염을 설명하는 용어로만 보지 않았다. 인간을 유일한 행위 주체이자 지구 역사의 주인공으로 생각해 온 근대적 세계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로 읽었다.
논문에 따르면 인류세의 문제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해 생각해 온 사고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간은 세계를 바라보고 통제하는 주체가 되고, 자연은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돼 왔다. 저자들은 데카르트적 이원론과 근대의 기계론적 자연관, 자연의 탈신성화 등을 이러한 분절적 세계관의 주요 특징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인간은 자신을 자연 바깥에 있는 존재처럼 생각하게 됐고, 자연이 지닌 능동성과 생명력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게 저자들의 지적이다. 저자들은 결국 인간 중심주의와 자연의 대상화가 오늘날 인류세의 위기를 낳은 중요한 사상적 배경 가운데 하나라고 지목했다.
논문의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창조론에 대한 재구성이었다. 전통적인 창조론은 하나님을 창조의 절대적 주체로, 세계를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로 이해해 왔다. 하지만 논문은 이러한 이해가 자칫 창조 세계를 수동적인 대상으로 이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저자들은 필립 헤프너의 '피조된 공동-창조자(created co-creator)' 개념에 주목했다. 흥미로운 점은 헤프너의 논의가 인간만을 공동-창조자로 보는 초기 관점에서 더 나아가 창조 세계 전체의 능동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질과 비인간 존재들 역시 창조의 과정에 일정한 방식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논문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 세계가 단순히 수동적인 물체라고 보지 않는다. 물질의 창조성과 능동성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일하시는 방식을 새롭게 이해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는 한 번 완성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피조 세계가 관계를 맺는 가운데 새로운 것이 출현하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재해석된다.
"아담"은 결국 "아다마"에서 왔다
인간론에 대한 논문의 접근은 더욱 흥미롭다. 저자들은 창세기 2장 7절의 인간 이해를 통해 인간을 '땅에 묶여 있는 존재', 즉 earthbound 존재로 바라본다. '아담'(adam)이 '흙' 또는 '땅'을 의미하는 '아다마'(adamah)와 연결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저자들은 인간은 처음부터 땅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인간은 흙으로부터 왔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논문이 사용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호모 후무스(Homo humus)'다. 이는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관점에서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흙에 속한 인간'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이해는 인간을 피조세계의 정점에 세우는 기존의 사고 방식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인간의 몸은 토양과 물, 공기, 미생물 등과 끊임없이 물질을 교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생태계 밖에 존재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생태적 관계망 안에 있는 존재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논문은 기독교 신학에 상당히 불편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다른 피조물을 지배할 권리를 의미하는가?"이다. 논문은 인간의 독특성이 지배와 특권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인간에게 주어진 독특한 의식과 책임 능력은 더 큰 책임과 응답을 요구한다고 보았다.
전통적인 죄의 담론도 확장했다. 인간의 죄는 인간에게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브리 성서에서 인간의 타락과 심판은 인간 개인이나 공동체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의 죄는 땅의 황폐화와 연결되고, 반대로 회복 역시 인간과 땅이 함께 새로워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를 통해 성서의 구원이 인간 영혼만을 물질세계에서 끌어내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인간과 땅, 동물과 자연이 함께 회복되는 통전적인 구원의 비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저자들은 종말을 단순히 미래 어느 시점에 일어날 최종적인 사건으로만 바라보는 접근에서 벗어나, 오늘의 물질세계와 생태적 현실 속에서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캐서린 켈러의 논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켈러는 도나 해러웨이의 '공-산(sympoiesis)' 개념에 '신'을 결합해 '테오포이에시스(theopoiesis)'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하나님과 세계,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관계적으로 얽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신학적 사유를 의미한다.
논문이 말하는 종말론적 시간은 이미 결정된 미래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품은 시간이다.
저자들은 이를 '시작(inception)의 시간성'이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과 피조세계의 다양한 행위성이 관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