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몰트만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희망의 신학'을 오늘의 세계가 직면한 분열과 기후위기, 시민사회의 문제 속에서 새롭게 읽어내는 자리가 마련됐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회 의장 하인리히 베드포드-스트롬(Heinrich Bedford-Strohm) 주교는 28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린 '위르겐 몰트만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맡아, 위기의 시대에 교회가 감당해야 할 공공신학의 과제와 에큐메니컬적 실천을 강조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버클리공공신학포럼센터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크리스찬아카데미, 칼바르트와공공신학센터, 한신대 종교와과학센터(CRS), 한국민중신학회, CBS 기독교방송 등이 협력해 마련됐다. '공공신학, 시민사회, 그리고 사회생물학'을 주제로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기독교회관과 한신대학교 서울캠퍼스 신학대학원에서 진행된다.
상아탑을 넘어 교회의 현장으로
베드포드-스트롬 주교의 기조강연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공공신학을 단순한 이론적 영역이 아니라 교회의 구체적인 실천과 연결해 설명했다는 점이다. 그는 독일 대학에서 오랫동안 칼 바르트의 신학을 가르치며 공공신학의 이론적 토대를 연구했지만, 독일 개신교의 지도자로 12년간 사목하면서 공공신학이 실제 교회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한계와 충돌을 만나는지를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신학적 사유가 대학이라는 공간을 넘어 목회 현장으로, 다시 세계교회협의회의 에큐메니컬한 현장으로 확장되면서 공공신학의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신학이 교회 내부의 담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그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신학은 세상의 구체적인 현실과 만나야 하며, 그 만남 속에서 자신이 말하는 복음의 의미를 다시 묻고 사회를 향해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포드-스트롬 주교는 오늘날 교회가 이해해야 할 '공공성'의 영역이 과거보다 훨씬 넓어졌다고 강조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뿐 아니라 생태계와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둘러싼 거의 모든 영역이 공공신학의 질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후변화와 생태적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교회의 공공적 책임은 인간 사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신학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 속으로 들어가 그 현실을 이해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독교적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교회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단순히 도덕적 당위나 종교적 선언을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각 분야의 전문성과 언어를 존중하면서도 기독교가 지닌 가치와 신학적 통찰을 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는 공공신학이 일방적으로 세상을 가르치는 신학이 아니라, 사회와 대화하면서 공동의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신학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분열의 시대, 교회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
베드포드-스트롬 주교가 공공신학을 강조한 배경에는 오늘의 세계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진단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는 정치적·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깊어지고 있으며,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적 위기 역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에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세상과 분리된 채 내부의 문제에만 집중한다면 신학의 공공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분열과 위기의 시대일수록 신학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피조세계의 신음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교회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직접 뛰어드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오히려 교회가 인간의 존엄, 평화, 생태적 책임, 공동체의 선과 같은 기독교적 가치에 근거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를 제기하고 대화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공공신학의 역할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몰트만의 '희망'을 오늘의 현실로
이러한 베드포드-스트롬 주교의 문제의식에서 중요한 연결고리가 바로 위르겐 몰트만이다. 몰트만은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한 '희망의 신학'을 통해 기독교의 종말론적 희망을 단순히 미래에 대한 개인적 기대가 아니라 역사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이해했다.
베드포드-스트롬 주교 역시 몰트만의 신학이 오늘의 교회에 여전히 중요한 이유를 이 지점에서 찾았다. 몰트만에게 희망은 고통받는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위안이 아니었다. 오히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고통과 죽음의 현실 한가운데서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는 신앙이었다.
따라서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은 오늘날 교회가 분열과 전쟁, 기후위기와 사회적 갈등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묻는 신학적 자원이 될 수 있다. 베드포드-스트롬 주교가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러한 몰트만의 신학적 유산을 현대 사회의 구체적인 질문과 연결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몰트만의 신학을 과거의 위대한 신학적 유산으로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사회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기독교의 공공적 응답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베드포드-스트롬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