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한국信연구소 이은선 소장이 최근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논란이 일고 있는 영화 <암살자(들)>을 관람한 뒤 자신의 SNS에 관람평을 올렸다. 이 소장은 영화에 대한 찬반 논쟁 자체에 머물기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사실적 진실과 정치 권력의 관계'라는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소장은 4일 SNS에 올린 글에서 "사실적 진실을 지켜내고 전하기 위해 고투하는 사람들의 헌신과 그 지난한 과정을 다시 한번 목도했다"며 "깊은 존경과 감동의 마음이 일었다"고 밝혔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영화의 역사적 소재를 둘러싼 현재의 논쟁이 특정 인물의 책임 여부에 지나치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장은 "허진호 감독의 이 영화는 요사이 한국사회에서 폭풍처럼 일고 있는 보수·진보 사이의 논쟁처럼 고(故) 박정희 대통령 개인의 관련 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닌데, 왜 그쪽으로만 자꾸 논의가 몰리는지 안타깝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보다 근본적으로 제기하는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사실로 기억하고, 그것을 누가 어떻게 전달하며, 권력과 정치적 이해관계는 사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있다고 해석했다.
아렌트의 '진실과 정치' 떠올려
이 소장은 영화 관람 과정에서 독일계 미국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에세이 '진실과 정치(Truth and Politics)'를 떠올렸다고 밝혔다.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한 뒤 출간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둘러싼 거센 논쟁을 경험하면서, 정치적 영역에서 사실적 진실이 어떤 방식으로 위협받을 수 있는지를 성찰했다. 특히 사실에 관한 논쟁이 단순히 서로 다른 의견의 충돌에 그치지 않고,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단계로 나아갈 때 공동체가 현실을 이해하는 능력까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 아렌트의 문제의식이었다.
이 소장은 이러한 아렌트의 논의를 영화 <암살자(들)>과 연결했다. 그는 영화 속 인물들이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하며 전달하려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위험을 두고 "바로 그 정치와 진실 사이의 적대와 충돌과 쟁투에서 일어나는 것들"이라고 바라봤다.
특히 "사실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서 행위자들에 의해서 탄생한다"며 사실이 형성되고 전달되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에게 영화 속 '사실'은 단순히 과거에 존재했던 하나의 정보가 아니다. 여러 행위자들의 증언과 기록, 판단과 기억을 통해 현재의 공동체에 전달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권력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은 사실의 맥락을 바꾸려 하지만..."
이 소장은 영화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점으로 권력에 의해 과거의 사실과 맥락이 재구성될 가능성을 들었다. 그는 "그 맥락성을 바꾸어 보려고 폭력과 거짓과 의견이라는 강력한 행위들이 있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을 이 영화는 다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이 소장은 과거의 사건이 후대 사람들의 사유와 토론을 통해 다시 소환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당시뿐 아니라 이 영화 덕분에 오늘 영화를 보고난 우리와 같은 후세대의 관객들이 다시 사유하고 성찰하고 논리를 따지고 의견을 내면서 진실을 찾아가는 행보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암살자(들)>이 단순히 과거의 한 사건을 재현하는 영화에 그치지 않고,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사회가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할 것인지 질문하는 문화적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같은 평가는 영화가 제시하는 역사적 재현과 실제 역사적 사실을 동일시하기보다, 영화라는 문화적 형식이 과거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현재의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지를 중심으로 한 관람자의 해석이라는 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감독과 배우 향한 높은 평가
▲영화 <암살자(들>의 한 장면.
이 소장은 허진호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내렸다. 그는 "한국 영화가, 허진호 감독과 배우들이 이와 같은 정도로 정치와 진실, 존재와 그 유동성, 권력 앞에서의 사실과 과거의 나약성, 그러나 그것을 다시 밝히고 지켜내려는 시대의 위대한 인격들을 이처럼 섬세하고 뛰어나게 표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배우 박해일과 유해진을 언급하며 "박해일 배우가 더욱 좋아졌고, 유해진 배우의 진실성과 지속성에 다시 치하를 드린다"고 밝혔다. 영화 속에서 사실을 좇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한국 사회의 폭력성과 권력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사실' 둘러싼 논쟁, 영화 밖에서도 계속돼
<암살자(들)>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개봉 이후부터 사실관계와 영화적 재현의 범위를 둘러싼 논쟁을 낳고 있다. 특히 특정 인물과 사건의 관계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영화적 각색이 역사적 사실을 어느 정도까지 해석할 수 있는지 등을 놓고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 때문에 영화에 대한 평가 역시 두 가지 차원에서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했는가라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가 과거의 사건을 오늘의 관객에게 어떤 질문으로 제시했는가라는 문화적·철학적 문제다.
이은선 소장의 관람평은 후자에 무게를 둔다. 그는 영화의 역사적 재현에 관한 각각의 논쟁에 직접 답하기보다, '사실적 진실'이 정치와 권력, 기억과 해석의 과정 속에서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그가 인용한 한나 아렌트의 '진실과 정치'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뒷받침한다. 아렌트는 사실적 진실이 정치적 논쟁 속에서 쉽게 취약해질 수 있으며, 사실을 체계적으로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일이 반복될 경우 사람들이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의미를 읽어내는 능력 자체가 훼손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은 영화가 제시하는 해석에 동의하느냐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가 과거의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하며 다음 세대에 전달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어디까지 창작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지, 관객은 영화적 서사와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구분해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필요한 이유다.
이은선 소장은 글을 마무리하며 아렌트의 '진실과 정치'에 나오는 문장을 소개했다. 정치적 현실에서 사실을 둘러싼 태도는 사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사실을 부정하고 조작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다.
결국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 역시 어느 한쪽의 해석을 서둘러 확정하기보다, 영화가 제시한 이야기와 역사적 기록, 서로 다른 평가를 함께 살펴보며 사실과 기억, 권력과 책임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질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영화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거세질수록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해석을 곧바로 배제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이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이고 무엇이 영화적 해석이며 무엇이 관객의 판단인지를 구분하는 태도일 것이다. <암살자(들)>이 던진 질문은 결국 극장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판단하는 방식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