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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식 칼럼] 하나님을 아버지로, 교회를 어머니로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입력 Sep 19, 2014 11:31 PM KST
▲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회장) ⓒ베리타스 DB
“하나님을 아버지로, 교회를 어머니로”라고 말한 사람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는 신실한 어머니 모니카의 사랑을 많이 받고 어릴 적부터 성경책도 읽었으나 어머니의 권고로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게 되어 세례를 받은 것은 그의 나이 33세 때였다. 그때까지 그는 젊어 방탕한 생활도 했고 철학과 마니교 등을 배우고 믿었으나 결국은 회심하고 교회를 찾아 들어온 것이다. 위의 말은 그가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를 어머니에 비유하여 한 말이다. 즉,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신생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 

예수 당시의 로마제국도 그 이전의 모든 제국들과 같이 황제나 원로원이나 군대나 모두 권력이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남성들은 그 권력을 탐하여 온갖 권모술수와 폭력으로 피비린 내 나는 권력투쟁의 역사를 만들어왔었다. 예수가 갈릴리 지방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다고 수많은 대중에게 설교할 때도 그를 따랐던 남녀노소 수천, 또는 수만 명은 베드로가 고백한 대로 예수를 그리스도, 곧 메시야 또는 왕으로 믿고 추앙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예수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멀리 갈릴리 지방에서 따라 온 무리들이 앞장서서 다윗의 후손, 메시야가 입성한다고 “호산나”를 외치며 그의 입성을 환영하고 소리쳤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갈릴리 지방에서 설교하면서 자기를 메시야로 부각시키지 않고 자기를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다’고 소개하면서 남을 나보다 낫게 생각하여 섬기고, 상좌에 앉으려 하지 않고 어린아이 같이 되라고 가르쳐서, 강자가 아니라 참으로 약자의 삶을 가르쳤다. 그리고 일찍부터 자기는 멀지 않아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예수가 어찌 다윗의 후손이 되겠는가? 게다가 예루살렘 입성 때도 어린 나귀새끼를 타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소개하던 그에게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의 개입도 없이 털 깎이는 어린 양처럼 반항도 못하고 십자가에서 죽어갔다. 
예수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갈릴리 사람들은 실망했을 수 있지만, 예수는 생시에 12제자들과 그밖에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집회, 곧 교회를 시작했고 그들을 전도자로 짝을 지어 멀리 보내는 선교 사업도 시작했고 고아와 과부와 병자와 소외된 사람들을 돕고 살피고 고쳐주는 사역도 시작하였다. 이것이 교회였고 오늘의 교회의 원형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교회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시작한 교회답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은 부권(父權)의 만유통치자이며 전능하신 분으로 믿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러한 하나님의 아들처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 아버지의 모성(母性)적인 사랑을 구현하였다. 그가 구현한 아버지 하나님의 모습은 이사야서에서 “나(야훼)는 숨이 차서 헐떡이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부르짖었다”(42:14), 또 “어머니가 어찌 자기 젖먹이를 잊겠으며 ...”(49:14-15)라고 표현되었듯이 모성적이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이 고요하고 평안하며 ... 이스라엘이 이제부터 영원히 야훼만을 의지하여라”(시편131:2-3)와 “내가 그(야훼)를 사랑하였고 ... 어린아이를 가슴으로 들어 올려 젖을 빨게 한 어머니 같았다”(호세아11:1-4) 등에서처럼 어머니의 이미지를 띠고 있다. 예수가 시작한 갈릴리교회는 이러한 성격의 사역을 하는 교회였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다 흩어져 예수의 교회는 흔적도 없어졌다. 그러다 그가 부활한 후 그의 나타나심으로 인하여 반신반의하던 중 그가 승천하신 후 그들이 더 허탈감을 갖고 있을 때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자기 아들들과 형제들을 집에 모아서 아들 예수를 기억하고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제자들과 신자들도 모여들어서 예수가 시작한 교회를 회복시키기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복구이며 연속이었다. 이것이 예수의 승천 후에 생긴 예루살렘 교회이며 세계만방에 있는 오늘의 교회의 모교회가 된 것이다. 
이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라고 부를 수 있지만, 또한 성모마리아 교회라고도 부를 만하다. 그 교회의 처음 신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드릴 줄을 몰랐을 것이고 아마 성모마리아가 그들을 대신해서 자기 아들 예수에게 기도, 곧 구할 것을 대변했을 것이며, 이것이 곧 오늘날의 중보목회기도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마치 예수 생전에 가나의 잔칫집에서 술이 떨어졌을 때 사람들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먼저 청원해서 그의 아들이 어머니의 청을 받아 이들에게 그 청을 들어주게 전달했던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오늘날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형식이 예루살렘 모교회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예수의 이 모성적인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화해의 교회가 권력을 행사하는 부성적 교회로 변해왔다. 중세기 교회시대에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바울이 “교회의 머리는 예수”라고 했는데, 그 머리에 교황이나 대주교나 신부, 감독들이 앉아서 영화와 권세를 향유해 왔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회들이 나라별로, 또 교단별로 나눠지면서 남성 감독과 목사 또는 교단장(총회장)들이 모성적인 예수의 교회의 머리 노릇을 하여 권력과 지배욕을 채우려고 권모술수와 금력과 파당과 지방의 힘 등을 휘둘러왔다.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우리 한국 개신교의 250여개나 되는 많은 교단의 총회장들이 금년에 교체되는 때가 되었는데 어떻게들 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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