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학 전 한신대 교수가 「한국여성신학」 2025 여름호(제101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 전통에서는 마리아를 오늘날까지도 '동등한 사도'로 보고 있다며 막달라 마리아의 제자도를 새롭게 조명해 눈길을 끌고 있다.
먼저 부활의 첫 증인으로서 마리아 갖는 위상에 대해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십자가의 길을 예수와 함께 걸은 갈릴리 여성들의 집단과 그들의 대표자인 막달라 마리아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그들은 십자가 처형을 당한 예수의 죽음, 매장 그리고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증인들이다.
이에 이 전 교수는 "그들은 부활 이전의 예수와 부활 이후의 예수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그들의 제자도는 부활 이후의 그들의 사명과 증언으로 이어졌다. 사복음서는 모두 공통적으로 막달라 마리아의 헌신적인 제자도와 탁월한 지도력을 일관되게 증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수의 쳐형을 지켜본 여성들, 그의 매장을 지켜본 여성들, 그의 무덤을 찾아간 여성들 그리고 그의 위임을 받고 부활을 선포한 여성들의 이름이 나열된 각각의 명단에서 수와 이름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항상 있고 또 항상 맨 앞에 위치한다"고 이 전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이어 "이는 어떤 위계적 집단의 서열과 달리, 예수운동에서 나타난 탁월한 헌신과 지도력에서 비롯된 막달라 마리아의 권위가 초기교회의 기억 속에서 가장 두드러졌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부활한 예수를 최초로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와 동료 여성들은 아직 남자 제자들이 두려움에 빠져 용기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처음으로 증언하고 그의 전언을 전달하고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죽음으로 와해된 예수운동을 재건하고 흩어진 "그의 추종자들"을 다시 모으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활동을 계속함으로써 초기교회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전 교수는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명확하게 제자나 사도로 불리지는 않는다. 예수운동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여성들의 집단의 대표자로서 베드로와 버금가는 위치에 있었지만 사도행전에서 배신한 유다를 대신하는 사도 보궐 선출에서 그녀는 성별 때문에 제외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방교회는 막달라 마리아를 '큰 죄를 참회한 여자 죄인'으로 보았다. 반면에 동방교회는 예수의 부활의 첫 증인인 막달라 마리아를 오늘날까지도 '동등한 사도'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막달라 마리아를 재조명한 이 전 교수는 끝으로 마리아에 대해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주체성을 되찾고 사명의식과 여성의식 그리고 민족의식을 키운 믿음의 여성이다"라며 "그녀는 자기 결정적이고 용감하고 지도력이 있는 매력적인 여성이며 또한 자신의 슬픈 감정을 통곡과 눈물로 표현한 사랑이 깊은 여성"이라고 했다.
또 "막달라 마리아는 모든 한국교회 여성들의 자매"라고 말한 이 전 교수는 "막달라 마리아는 오늘날 평등한 교회와 사회를 위해 가부장주의, 남성중심주의, 그리고 성차별주의에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 젠더정의, 경제정의, 생태정의, 여성주의 성경해석, 생명운동, 평화운동, 통일운동,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국교회 여성들을 위한 성서적 롤 모델이자 정체성의 상징인 것"이라고 전하며 글을 맺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