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성서는 옹졸한 책의 누명을 벗을 수 있나?(스압주의)
최성철 은퇴목사(캐나다연합교회)

입력 Jun 11, 2020 07:34 P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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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pixabay)
▲지난 100여년 동안 북미와 유럽의 주류 대학들의 인류학, 고고학, 신학, 종교학의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원초적으로 성서는 온 인류가 반드시 문자적으로 믿어야 하는 절대적인 경전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지난 100여년 동안 북미와 유럽의 주류 대학들의 인류학, 고고학, 신학, 종교학의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원초적으로 성서는 온 인류가 반드시 문자적으로 믿어야 하는 절대적인 경전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성서는 은유적으로 즉 신화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이의가 없으며, 오늘날 신학의 기초가 되고 있다. 여전히 세계를 큰 그림으로 보지 못하고, 이 공개적인 사실을 거부하고 낡은 과거의 패러다임을 고집하는 기독교인들의 억지주장과 설득력은 효력을 잃었으며 교회는 급속도로 죽어가고 있다.

특히 바이러스 팬데믹의 지구적 위기 상황에서도 생존의 안간힘을 쓰고 있는 믿음체계의 교회들은 비상식적인 말과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한편 외형적으로 그럴듯하게 크게 보이는 교회들은 내부적으로 거짓과 은폐와 부정으로 썩을때로 썩었으며 그 악취가 밖으로 흘러나올 정도이다. 필자는 신학사 과정을 캐나다 멕길대학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세계의 신학과 종교학을 선도하는 학자들로부터 성서에 대해 다시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방식을 배웠다. 무엇보다 예수에게 솔직할 수 있게 되었다.

구약성서는 고대 히브리인들이 주변 강대국들의 위협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민족의 단결과 힘을 얻기 위해 5백 년에 걸쳐 기록된 유대민족의 책이다. 그리고 1세기에 혹독한 로마제국의 통치와 이분법적인 성전종교의 착취 아래에서 민중들이 사람답지 못하게 사는 척박한 상황에서 예수가 등장했고, 그는 만인평등과 공정한 분배의 정의의 실현을 이 땅 위의 하느님 나라 운동으로 전개했다. 예수가 죽은 후에 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신약성서가 기록되었다. 불행하게도 성서는 지난 2세기 동안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문자적이고 직역적인 책으로 전락했으며, 인류역사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과 성적본능차별과 종교차별과 생태계파괴와 전쟁과 테러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다행히도 현대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일상생활에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우주진화 세계관이 모든 삶의 영역의 기초가 되면서 성서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성서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성서의 절대적인 권위는 설득력과 효력을 상실하고, 이것에 근거한 유신론적 하느님과 내세지향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러나 늦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은 은유적으로 기록한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는 직역주의에서 벗어나고, 과학이 발견한 우주진화 세계관에 기초하여 21세기의 언어로 재해석하면 모든 사람에게 통용될 수 있는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공개적으로 계시할 수 있다. 인간이 속해 있는 138억 년의 우주세계는 하나의 생명의 망을 이루어 상호의존관계 속에 존재한다. 이 세계에서 기독교인들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이고 부족적인 믿음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은 예수에게 솔직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성서가 기록되기 전의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이 아니었으며,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지도 않았다.

오늘 현대인들이 읽고 있는 성서의 모든 이야기들이 기록된 동기와 목적은 참 인간 예수의 우주적인 가르침과 그가 몸소 살아내었던 그의 정신이었다. 예수는 성전종교가 이분법적 하느님의 징벌과 심판으로 민중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는 것에 항거하여 자신이 깨달은 새로운 의미의 하느님을 선포하고 가르쳤다. 예수의 하느님은 제도적인 종교에 속한 사람은 깨끗하고 밖에 있는 사람들 더럽다는 이분법적 하느님이 아니었다. 예수의 하느님은 나를 믿어야 축복받는다는 옹졸한 하느님이 아니었다. 예수의 하느님은 유대인만 기독교인만 구원한다는 부족적인 하느님이 아니었다. 분명히 말해서, 예수의 하느님은 성전종교의 하느님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를 따른다는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철저하게 반대했던 내세주의와 황금만능주의와 빈부차별과 인종차별과 종교차별과 성차별을 핵심교리로 강요하는 성전종교의 하느님을 믿을 수 있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배반하고 성전종교의 하느님을 맹신하고 있다. 오늘의 교회 종교는 예수가 극심하게 반대하고 거부했던 성전종교와 너무나도 똑같다. 기독교인들은 예수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말의 뜻은 바로 이것이다. 성서는 예수의 신성과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기적과 죽은 후의 다른 세계에 대한 책이 아니다. 성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벌레만도 못한 더러운 것으로 폄하하는 성전종교의 하느님에 대한 책이 아니다. 성서는 그 성전종교의 하느님을 거부하고, 사람이 하느님이라고 선포한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기초로하여 기록된 책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삶의 핵심은 성서 속에 문자적으로 보이지 않게 숨겨진 예수의 우주적인 정신을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는 비록 삼층 세계관의 종교와 문화에서 태어났고 그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그는 부족주의와 민족주의와 이분법적 차별주의라는 좁은 우물 안에서 살지 않았다. 예수는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을 믿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지만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믿으면 교통사고 나지 않지만 믿지 않으면 위험하고, 믿으면 사업에 실패하지 않고 부자가 되지만 믿지 않으면 가난해지고, 믿는 사람은 선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죄인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삶은 우주적이고 통합적이고 현세적이었다.

예수 당시에 이분법적이고 제도적인 성전종교와 군사적인 로마제국은 98%의 민중들을 혹독하게 탄압하고 착취했다. 인간답지 못하게 가난과 질병과 절망의 암흑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던 대다수의 민중들에게 종교와 정치는 거짓과 은폐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생선비릿내가 풍기는 바닷가와 악취가 나는 장터와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는 들판에서 참된 인간됨과 사람답게 살아가는 온전한 삶과 지금 여기에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에 대해 가르친 예수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에게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었고, 생기와 맛를 잃은 삶의 소금과 같았다. 따라서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삶의 모습에서 민중들은 자신들의 비겁함이 용감함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무의식이 인식으로 변화되는 것을 체험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가 죽은 후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후대에 전승되도록 기록했다.

원초적으로 성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참된 인간과 온전한 삶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참 사람 예수의 정신은 혼미해지고, 그대신 예수가 철저하게 반대했던 이분법적, 부족적, 민족적, 국가적 차별주의와 배타주의에 물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오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원초적인 성서 원본에서 수십만의 필사본들이 만들어졌고, 이 사본들에는 역사적 예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퇴색하고 변질되고 왜곡된 예수가 등장했다. 이 만들어진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초자연적인 하느님이였다. 오늘 교회에는 성전을 멀리하고 민중들의 삶의 현장 속에 살아있던 참 사람 예수는 실종되었고, 거룩한 성상의 자리에 앉혀진 하느님 예수가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통제하고 이분법적으로 차별하고 있다. 더욱이 21세기에 교회가 만든 예수는 과학을 무시하고, 인도주의적 사상을 배척하고, 민중의 고통과 절망을 못본체하고, 종교적-정치적 권위에 대한 절대복종과 만들어진 교리에 대한 수동적인 믿음을 강요하고 있다. 예수가 오늘 살아있다면 그는 우주진화 세계관의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사상과 공정한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일 것이다.

고대 유대인들이 기록한 신구약 성서의 원초적인 핵심 사상은 보상과 징벌, 천당과 지옥의 이분법적 구원론이나 축복론이 아니다. 1세기에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깨닫고 자신들의 생애가 180도로 변화된 초대 교회의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의 삶이 고통과 절망 속에 빠지더라도 예수가 가르치고 몸소 살아내었던 것처럼 살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예수가 죽은 후에도 이 땅 위의 하느님 나라 건설운동을 계속했으며, 예수의 하느님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참 인간의 의미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깨달음과 삶의 체험을 성서로 기록했다. 다시 말해, 성서 저자들은 참되고 온전한 인간이 되는 길을 탐구했으며, 지금 여기에서 우주적이고 조건없는 사랑을 신뢰하고, 통합적이고 공정한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는 인간적인 삶의 여정을 은유적으로 기록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삼층 세계관의 고대인들이 고백한 하느님의 의미를 문자적으로 읽기보다 21세기의 우주진화 세계관에 적용할 수 있는 언어로 재해석해야 성서는 진실한 책이 된다. 성서근본주의는 17세기에 계몽주의의 부산물로 생겨났으며, 단지 19-20세기의 소수의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에 의해서 주장되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설득력과 효력이 없다. 근세기에 등장한 성서근본주의는 원초적인 성서의 핵심사상이 아닐뿐만 아니라, 종교와 과학을 분리시킴으로써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 경계선을 그었다. 이것은 지극히 비성서적이다. 성서는 교리적인 믿음의 책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안내서이다. 성서는 자율적인 깨달음의 참 인간이 되는 길을 안내하는 지혜서이다. 역사적 예수의 성서는 인종과 종교와 사상의 경계 넘어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계시가 된다.

※ 이 글은 전 지질학자인 최성철 은퇴목사(캐나다연합교회)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외부필자의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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