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을 열기가 조심스럽다. 자칫 수고한 제작진에게 누가 될 수 있어서다. 또 이토록 미욱한 주장이 신천지에게 힘을 실어줄 위험도 다분하다. 그러나 신천지 같은 사이비 종교집단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 특히 젊은 영혼들을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마음 단단히 먹고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CBS TV가 지난 3월16일(월)과 17일(화) 양일간 방송한 <관찰보고서 ―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이하 <관찰보고서>)이 다룬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다. 부모 앞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부모와 함께 한 25년의 시간보다 신천지에서 있었던 6개월의 시간이 더 행복했다”고 고백하는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젊은이는 어머니를 향해 ‘아줌마’라는 말을 태연히 내뱉고 이단 상담소를 빠져 나갔다. 교리의 신학적 타당성 여부를 떠나 종교적 교의를 내세워 부모-자식 사이의 인연마저 부정하게 만드는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그럼에도 뒷맛은 개운치 않다. 종교에 빠져 천륜마저 부정하는 사람들을 비단 신천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까? J목사나, K목사 같은 ‘큰 목사님’의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긴 나머지 가정을 등한시한 성도들은 주위에 흔하다. 신천지와 다른 점이라면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관찰보고서> 2부 ‘청춘’편은 “신천지들이 주로 노리는 전도대상은 부모의 간섭이 덜하고 시간적 여유가 많은 젊은 대학생들이며, 이들은 기성 교회에서 채우지 못한 성경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 때문에 신천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한다”고 지적했다. 구리 초대교회 신현욱 목사는 <관찰보고서>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젊은이들은 신천지의 성경해석을 접하면서 평소에 궁금했거나 이해 안 되는 부분을 다 긁어주는 듯한 시원함을 느낀다”면서 “성경에 대한 접근 방향과 시각이 잘못됐음에도 자신의 궁금한 것을 긁어준다는 느낌 때문에 신천지에 빠져든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사이비 종교집단의 유혹에 노출돼 있음은 분명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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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월)부터 CBS를 통해 방영된 <관찰보고서 –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 CBS가 2012년부터 기획한 관찰보고서는 8부까지 방영될 예정이다. ⓒ출처= CBS 방송 화면 |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신천지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논리는 기성교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신천지 피해자 청년들의 모임 회원인 이지수 씨(가명)는 신천지가 “일꾼을 뽑아야 한다. 할머니들을 전도하면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로 전도를 독려한다고 전했다. 젊은이들이 점차 줄어드는 기성교회들도 이와 비슷한 명분을 내세워 젊은이들의 전도에 앞장서고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또 젊은이들이 신천지에 빠져드는 이유도,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이 성추문 전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홍대새교회로 몰려드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단·사이비, 정통엔 없을까?
단언컨대, 이단·사이비는 밖에 있지 않다. 종교적 신념을 내세워 상식과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를 공공연히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교의가 바로 이단·사이비다. 이런 이단·사이비는 비단 신천지뿐 아니다. 소위 정통이라고 자처하는 교회에서도 이단·사이비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ㅇ교회는 초창기 시절 이단 시비에 휘말렸지만, 엄청난 세를 등에 업고 ‘정통’으로 추인 받았다는 사실은 꽤 의미심장하다. Y목사가 담임목사로 시무하는 또 다른 ㅇ교회 역시 비슷한 사례다. 이 교회는 지난 2013년 5월 해당 교회를 출석하다 떠난 성도들이 교회 인근에 김밥집을 개업하자, 이들을 신천지로 낙인찍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묘하게도 이들 두 교회는 CBS TV <관찰보고서> 제작 지원업체로 이름을 올렸다.
차라리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성추문, 사랑의교회 오정현 담임목사의 논문표절 및 공금유용 의혹,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편법 세습, 세월호 참사 이후 기독교계 인사들의 잇단 망언 등등 기독교계가 안고 있는 현안을 먼저 공론화 시킨 뒤 신천지를 정조준 했다면 흐름이 매끄러웠을 것이다. 물론 이런 현안에 대해 CBS가 침묵을 지킨 건 아니다. CBS는 2012년 11월부터 1년 11개월 동안 <크리스천 NOW>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폭로했다. 그러나 이번 <관찰보고서>와는 별개의 기획이고, 또 두 기획 사이에 공백이 존재해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
더구나 최근 CBS의 보도는 다소 실망스럽다. 지난 해 말, 한국교회의 부조리를 꼬집은 다큐멘터리 영화 <쿼바디스>가 외압 논란에 시달렸을 때, CBS는 이를 한 줄도 다루지 않았다. 예장합동 평양노회에서 전병욱 목사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을 때에도 재판국 출석 사실만 다뤘을 뿐 심도 있는 분석은 나오지 않았다. 심각성을 따지자면 전 목사 사건은 신천지와 막상막하다. 관련 소식통에 따르면 데스크가 전 목사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공감을 못했다고 한다.
CBS의 기획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신천지를 다루기에 앞서 한국교회를 향해 활발하게 감시견 역할을 수행했다면 파장이 훨씬 더 컸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기독 언론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선배 기자들에겐 송구스럽다. 그러나 광고주인 대형교회의 눈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관찰보고서> 방송 시점에 불거진 전태식 목사 설교 방송 논란은 이런 현실의 한 단면일 것이다.
아직 두 편만 방송됐기에, 위에 적은 주장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그리고 섣부른 판단이기를 바란다. 신천지의 이단성을 고발함으로써 한국교회의 빛과 소금됨을 권면하는 에피소드가 전파를 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불거졌던 신천지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유착 의혹, 또 새누리당과 신천지와의 관계 등 세간의 의혹을 사고 있는 쟁점도 명쾌하게 밝혀 주리라 기대한다.
끝으로 <관찰보고서> 방송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방송의 제작진들이 원래 기획의도가 여론에 제대로 전달됐는지 되돌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이번 <관찰보고서>는 오는 23일(월), 24일(화) 3편과 4편이 방영될 예정이다. 8편까지 방송을 마친 후, 본지는 이에 대해 한 번 더 다룰 것이다.
“신천지를 때린다고 해서 개신교가 살진 않는다. 지금 개신교 울타리 밖의 사람들은 ‘아 예수 믿다 미치면 신천지처럼 되는구나’ 정도로 생각한다. 지금 한국 개신교의 위기는 교회에 세계를 해석하는 관점도, 희생의 실천도 없는데서 기인한다. 그저 펄펄 신나서 날뛰는 콘서트 영성, 바깥 세계와 소통이 불가한 제3외국어 방언만 가득한 한국 개신교에 누가 발을 들이겠나. 차라리 성서라도 인용하는 신천지라도 있는 게 이따위 한국 개신교한텐 천만 감사한 일이다. 예수가 준 칼은 자기 자신을 찌르라는 뜻이다.” (페이스북 ID ‘김**’)
“예전 경남 어느 지역의 수천 명 모이는 교회에서 신천지가 활동해서 500여명 이상 성도가 신천지에 빠졌고, 교회에서 그들을 축출하자 신천지에 빠진 성도들이 자신들이 낸 헌금을 돌려달라고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교회가 제대로 된 성서공부와, 공동체성만 가지더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성서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분들이 짚어 냈을 테니 따로 적진 않을 것이다. 교회란 것은 단순 조직이 아닌 ‘공동체’다. 교회 공동체란 예수를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고. 저 허무맹랑한 신천지 나부랭이 소리에 교회 내 성도들이 움직이는 건 단순히 ‘성서적 수준’이 없어서이기보다, 교회에 ‘공동체성’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트위터 아이디 ‘@good*******’)
“미국 정부의 후원을 받아 제작한 탈레반 다큐멘터리 같다.” (트위터 아이디 ‘@Kind*****’)
“CBS가 과연 전병욱, 조용기, 김홍도에 대해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이단이라는 게 멀리 있는 게 아닌, 하나님 말씀을 제 멋대로 해석해서 사욕을 채우는 거 아닐까? 언론을 동원한 개신교의 밥그릇 싸움으로만 보인다.” (트위터 아이디 ‘@ys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