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북리뷰] 믿음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에 대한 앎
로완 윌리엄스, 『신뢰하는 삶』(비아 간刊)

입력 Sep 04, 2015 11:29 PM KST
▲『신뢰하는 삶』 겉 표지.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점은 창조주 하느님, 그리고 그의 외아들 예수에 대한 믿음이다. 사도 바우로(바울)는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구원으로 이어진다고 적는다. 그러나 ‘믿음이란 이거다’하고 쉽고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특히 한국 교회는 믿음 그 자체를 믿으라고 강요하다시피 하는 분위기가 강해 더욱 혼란스럽다. 도대체 누구에게 찾아가 믿음의 정확한 의미를 물어야 할까? 

이제 소개할 로완 윌리엄스의 『신뢰하는 삶』은 이런 의문에 심오하면서도 명쾌한 답을 던져준다. 잠깐 저자에 대해 알아보자. 로완 윌리엄스는 영국 웨일스 출신으로 1978년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냈다. 잉글랜드 출신이 아닌 주교로서 캔터베리 대주교에 오른 건 그가 최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규정하면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 해설서다. 두 가지 신앙고백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개혁교회는 사도신경으로 ‘나’의 신앙을 고백하며, 성공회는 니케아 신조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밖으로 알린다. 그러나 로완 윌리엄스는 두 신앙고백의 역사적 배경이나 문자적 의미를 해설하는데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보다 자신의 신앙여정에서 우러나온 통찰을 통해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에 담긴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갱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가장 먼저 사도신경의 첫 문장에 담긴 의미를 들려준다. 사도신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하늘과 땅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그리스도교를 아우르는 모든 종교적 전통에서 ‘믿음’하면 얼른 초월적, 혹은 초자연적 존재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의미를 떠올린다. 저자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말하는 믿음은 사뭇 다른 차원이다.   
“요한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눈먼 사람을 고쳐 준 후 그에게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예수는 네스 호의 괴물을 믿느냐고 물어보듯, 사람의 아들이 존재하는 것을 믿느냐고 묻는 게 아닙니다. 예수가 이 질문을 통해 알고 싶은 것은 눈먼 사람이 사람의 아들, 즉 하느님 앞에 인류를 대표하는 자인 예수 자신을 신뢰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입니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은 ‘사람의 아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고 답하고 여기에 예수는 바로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다시 응답합니다. ‘나는 믿습니다’.” (본문 24쪽) 
믿음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먼저 ‘신뢰한다,’ 즉 나 외에 다른 사람이 내게 유익을 준다고 보고 그래서 ‘믿고 맡긴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초월적 존재가 실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대게 믿음의 의미를 두 번째에 둔다. 어디 기독교인뿐일까? 다른 종교들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독교 신앙으로 논의를 한정해 보자. 하느님은 우주만물의 창조자 되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시기에 일정 수준 초월적 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동시에 늘 인간과 함께 계시고 인간 탄생 이전에 선한 계획을 마련해 놓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는 분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신뢰의 의미가 강하다.   
기독교인들은 습관적으로 고백한다. 당신에게 우리의 삶을 ‘맡긴다’고. 우리가 하느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하느님을 향한 신뢰는 돈독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에서 늘 언급되는 믿음은 초월적인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신념이라기보다 하느님에 대한 신뢰의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 『신뢰하는 삶』은 이렇게 믿음에 대한 통찰로 독자들을 이끈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이 가진 미덕이자 탁월함이다.   
“‘나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라는 말은, 상상 속의 UFO나 유령처럼 ‘내 머릿속에 있는 어떤 관념과 상(像)’에 관한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이런 식의 물음은 저 일련의 의심스러운 존재들과 하느님을 같은 선상에 두는 것입니다. ‘나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라는 고백은 내가 내 삶을 어디에 단단히 붙들어 맬 것인지, 어디서 나의 근본, 본향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선언의 출발점입니다.” (본문 25쪽)   
세상에 만연한 악은 어떻게 설명할까?     
사도신경이나 니케아 신조를 통해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세상엔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무수히 많다. 지진,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 그리고 강대국의 침략과 착취, 정치·종파 분쟁 등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더구나 현대로 접어들면서 인간 삶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현대 세계에서 몇몇 근본주의를 기치로 내건 종교를 제외하고는 종교의 영향력은 현저히 약해지는 추세다. 이런 현상은 불확실성의 증대와 무관하지 않다. 이 와중에 하느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가? 또 과연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세상을 불안에 빠뜨리는 악을 없애지 않고 인간의 고통을 방관하는가?   
저자 역시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한다. 그러나 저자는 분명한 어조로 불확실한 세상에서도 하느님의 실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선포한다.   
“하느님이 만물의 핵심에 자리하고 계시고 모든 과정의 핵심에 활동하고 계신다면 우리가 겪는 고통과 재앙, 암과 쓰나미와 같은 일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중략) 사람과 동물이 그러한 재앙에 휩쓸리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피조물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자연법칙으로 일어나는 과정을 하느님이 중지시키는 세계를 진짜 세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세계가 그저 하느님의 실재를 위한 허울이 아니라면, 어떠한 연속성도 없는 현상들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면 이 문제를 통과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발견하게 하는 것은 왜 악이 일어나는가를 단번에 설명할 수 있는 논증이 아니라 두려움에 가득 찬 가운데서도 하느님이 실재함을 발견했던 사람들의 실제 경험입니다.” (본문 65~68쪽)   
이 지점에서 한국 교회를 되돌아본다. 한국 교회의 가르침은 너무 수준이 낮다. 자연재해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어딘가에서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불신의 결과로 치부한다. 이런 생각이 일반 평신도에 국한돼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대법관으로 재직 중인 모 판사는 대법관 임용 전 지은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이렇게 적었다.    
“지진이 발생한 인도의 구자라트주는 오리사주, 비하르주와 함께 주법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것은 그 지진을 통하여 복음의 문을 열어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당사자가 들으면 노여워하겠지만, 이런 주장은 기독교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반기독교적이다. 로완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가 악의 문제를 생각하는 이유는 쓰나미와 산사태를 두고 ‘그건 모두 아주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일입니다. 의심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런 태도를 보일 때 우리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생생한 고통과 슬픔에 무감각해지고 마땅히 가치를 두어야 할 우리 삶과 행복을 둘러싼 문제를 경시하게 됩니다. (중략) 신앙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의 고통도 하찮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의 고통도 한낱 통계로 매길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삶보다 덜 중요한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적인 관점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본문 65쪽)   
이 책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갓 입문한 초심자를 위한 해설서 형식으로 꾸며졌다. 그러나 인용한 본문에서 알 수 있듯 초심자가 이해하기엔 너무 심오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그보다 오랜 기간 믿음생활을 한 신도들이 더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차라리 초심자와 경력(?)신자들이 함께 읽으며 서로의 신앙을 점검하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의 성향을 지켜보면 도대체 예수를 믿는 것인지, 성직자를 믿는 것인지 헛갈릴 때가 많다. 또 목사들이 예수를 믿으라고 설파하는지, 믿음을 믿으라고 설파하는지 모호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참에 믿음이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깨닫고 가자. 이 책 『신뢰하는 삶』은 심오한 믿음의 세계로 안내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교는 하나의 메시지이기 전에 하나의 접촉이자 만남입니다. 하느님은 활동하고 계십니다.” (로완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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