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설교] 사랑으로 세우는 정의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입력 May 15, 2017 02:02 PM KST

신명기 15장 4-11절, 마태복음 20장 8-16절

[새 정부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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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김진한 기자)
▲한문덕 생명사랑교회 목사

지난 일주일동안 우리들 개인의 일상적인 삶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지만, 한국 사회는 새로운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을 겪고 두 달 만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문재인 후보는 2위 홍준표 후보를 557만표라는 역대 최대의 표차로 당선되었습니다. 11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따르면 제19대 대통령 선거 직후인 지난 10일 하루 동안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4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83.8%가 '문 대통령이 잘할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그만큼 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높습니다.

인수위도 없이 바로 직무를 수행하게 된 문재인 대통령이 요 며칠 사이 보여준 행보는 매우 파격적이고, 촛불 민심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연일 언론에서도 보도하고 있지만, SNS를 보면 지난 한 주간의 청와대 모습이 계속 언급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하던 첫날 윤창중 대변인은 밀봉된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 읽음으로써 내각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기자들 앞에서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임명하면서 이들을 임명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였고, 이러한 모습은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에 미국의 백악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청와대 비서관들과 함께 원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 들고 청와대 경내를 거닐며 산책을 합니다. 소탈한 경호를 받으며, 청와대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출근길에 국민들과 함께 셀카를 찍습니다. 대통령의 일정이 공개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업무 지시는 말이 아니라 일련번호를 매기고 직접 사인하는 문서로 이뤄집니다. 그 첫 번째 업무 지시가 "일자리 상황점검과 일자리 위원회 구성"이었고, 인천공항공사를 찾아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청와대 직제개편을 통해 정책실장을 부활시키고, 일자리 수석을 따로 둡니다. 국정교과서를 폐지시키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지난 6년 동안 부르지 못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도록 하고,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 문건에 대해서 재조사하게 합니다. 강대국 대통령들과 전화를 하여 한국 정부가 건재함을 만방에 드러내었고, 특히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정확하게 말합니다. 현 북한 문제와 외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에 각각 특사를 파견할 계획을 수립하고 발표합니다. 4대강의 보 수문을 열거나 몇 군데 보는 허물어서 죽어가는 강을 살리겠다고 하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핵 원전에 의존하는 기존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 전면 재검토를 지시합니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3-4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 한국은 대단히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그동안 대통령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일화들이 소개되고, 새롭게 임명된 이들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나옵니다. 문재인 후보 시절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아 갔을 때 어떻게 했는지, 정치적으로 어려웠을 때, 네팔로 여행을 떠났는데, 거기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민정수석 비서관으로 어떻게 지냈는지 등.

대통령은 그냥 개인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행정권을 담당하는 최고위 공무원으로서 그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입니다. 입법부인 국회와 사법부인 법원과 법률상 동격의 지위에 있지만, 국가 원수라는 점에서는 국회나 법원보다 약간 우월합니다. 미국은 엄격한 권력분립원리와 그에 따르는 견제·균형의 원칙이 중요시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긴급명령권, 헌법개정제안권, 국민투표부의권, 법률안제출권과 비상조치권 등 대통령의 권한이 상당히 막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을 만나서, 국민들이 자신의 대통령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당당할 수 있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세계가 주목하는 촛불 민주주의를 통해 뽑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을 때에만 성공한 정부를 만들 수 있고, 국민들의 참여를 통해서만 참된 민주주의,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는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고구마로 불렀던 문재인 대통령의 '사이다' 행보에 많은 국민이 현재 지지하고 있지만, 진정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위한 행정이 되도록 하는 과제는 또 다시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어느 한 개인을 우상시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 살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해야 합니다.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누군가를 지지하고 좋아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참된 삶을 살고 있는지, 올바른 행위를 하고 있는지, 바른 양심을 지니는지를 먼저 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들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본문 속으로: 이른 아침, 일꾼을 찾아 나선 포도원 주인]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복음서의 말씀은 여러분들이 익히 알고 있는 매우 유명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고자 이른 아침부터 인력시장에 나갑니다. 이른 아침에 처음 만난 일꾼들과 하루에 한 데나리온, 즉, 노동자가 받아야 하는 하루 품삯을 주기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원에 보냅니다. 그런데 오전 아홉시쯤 나가 보니 장터에서 빈둥거리며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게도 적당한 품삯을 주기로 약속하고 포도원으로 보냅니다. 열두 시에도, 오후 세시에도 주인은 또 그렇게 하고, 오후 다섯 시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서 주인은 물어봅니다.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 그들이 대답합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이렇게 해서 이 사람의 포도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과 오후 다섯 시에 일한 일꾼들 모두가 함께 일하게 됩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품삯을 받을 시간입니다. 주인은 관리인을 시켜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치르는데 모두 한 데나리온씩 줍니다. 그러자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이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말했습니다.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여. 나는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당신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

자!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지금 제 설교를 통해서 이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은 포도원 주인의 대답과 맨 처음 일한 사람의 말 중에서 누가 더 공평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맨 처음 사람이 억울하겠다고 생각하시어 포도원 주인에게 더 주라고 말하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포도원 주인 편이 되셔서 "주인은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마태복음에만 나옵니다. 그리고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세 번이나 예고하시는 맥락의 한 가운데 등장합니다. 이 본문 앞에는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이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자기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나가는 장면이 있고, 오늘 본문 다음에는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 예고와 더불어 야고보와 요한이 그의 어머니와 함께 예수님을 찾아가서 하나님 나라가 올 때,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자신들을 앉혀 달라고 청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 말미에 첫째가 된 사람이 꼴지가 되고, 꼴찌가 된 사람들이 첫째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말씀이 첨가되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그 말씀이 첨가되며 세베대의 아들들의 요구에는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하고, 인자는 섬기러 왔다는 말씀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하는 일반적인 삶을 넘어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과감하게 참여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문맥 속에서 포도원 품꾼들에게 동일한 품삯을 준 이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를 읽어야 합니다. 제가 이 본문을 가지고 첫 번 설교를 한 것은 향린교회에서 청소년부 전도사로 사역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약 20명의 중고등학생들이 있었는데, 그 중 80%가 넘는 아이들이 전부 포도원 주인이 잘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맨 처음 일한 사람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공평치 못하고, 만약에 5시에 와서 6시까지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면, 이른 아침부터 와서 일한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편드시겠습니까? 아니 질문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공평합니까? 포도원 주인이 잘못했나요?

[왜곡된 마음]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성을 가지고 차근차근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포도원 주인은 잘못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마 여러분들은 맨 처음부터 일한 사람의 마음에 동조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같은 상황이라면 이 사람처럼 주인에게 따졌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오늘 제 설교를 듣고 여전히 맨 처음 사람을 지지한다면 제 설교가 아무 소용이 없겠지만, 제 설교를 듣고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 이해되고, 그 마음이 다시 여러분의 마음이 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 비유는 분명히 하늘나라, 즉, 하나님 나라의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자! 포도원 주인의 말을 다시 한 번 새겨들어 봅시다. "친구여, 나는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우리 성경에는 "이보시오"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친구여"입니다. 즉, 포도원을 함께 경영하는 동료를 이 주인은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꾼들은 이 주인과 모두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이미 계약했습니다. 만약 맨 처음 온 일꾼들이 제일 먼저 한 데나리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면 이 사람은 주인에게 불평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원래 약속한 대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사람이 불평을 하게 된 이유는 5시에 와서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았고, 자신도 그와 똑같은 한 데나리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남과 비교하여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그것으로 인해 원래 합의했던 한 데나리온보다 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고,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자 불평이 나온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람이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원래 주인과 합의했던 것을 기억하고 거기에서 만족하였다면 불평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많은 스트레스와 불평과 불만은 일반적 삶의 원칙에서 어긋나는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 상당수는 지금 이 사람처럼 남과 비교하고 거기에서 비롯된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벨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카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은 일로 인해 아벨을 죽여 버리는 형제 살인을 저지릅니다. 만약 카인이 혼자 제물을 드렸는데,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면 자기가 잘못한 것이 없는지를 먼저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카인이 아벨을 사랑하는 동생으로 생각하고, 한 가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했다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은 것에 대해 기뻐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 형제가 드린 제물 중 하나라도 하나님께서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카인은 상대적 박탈감, 열등감, 자신은 용납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수치심 등이 발동했고,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을 잘 몰라, 하나님의 천사가 경고했음에도 자신의 형제를 죽이고 맙니다.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오늘 제 말씀을 경청하셔야 합니다. 귀를 열고 잘 들어야 합니다. 마음을 집중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속에서, 그것도 특히 돈의 많고 적음의 비교 속에서 사는가? 나의 삶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 진지하게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으로 세우는 정의]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만약에 주인이 엄청난 부자이고 다섯 시에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고, 이른 아침에 온 사람에게 열 두 데나리온을 줄 수 있다면 좋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일한 만큼 받는 것이 공평한 것이라고 여기는 우리들이 볼 때 좋은 결말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 포도원을 경영하면서 얻을 수 있는 재화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구는 유한한 행성입니다. 지구에서 무한한 재화가 나올 수는 없습니다. 가진 것이 유한하면 그것을 잘 나누어야 합니다. 물건은 몇 개 없는데 한 사람이 다 차지하면 나머지 사람은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인은 자기 포도원에서 일한 모든 노동자에게 그 사람이 하루 동안 살아갈 때 필요한 적정한 임금을 주고자 합니다. 한 노동자가 하루를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한 데나리온이 필요했고, 그래서 비록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는 품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지급한 것입니다. 즉, 포도원 주인은 선한 일을 하였습니다. 품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기의 재산을 내어 주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른 아침에 온 사람의 불평을 수용하여 그 사람에게 열 두 데나리온을 주었다면, 일하고 싶지만 아무도 일을 시켜 주지 않아서 일하지 못하는 열 한명은 고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하루 종일 굶어야 하고 비인간적이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약에 포도원 주인이 맨 마지막에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기 때문에 그보다 더 일찍 온 사람들에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였다면 포도원 주인은 파산하고 그 뒤로는 아무도 그 포도원에서 일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곤궁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불평한 사람은 자기가 자신의 노동력에 합당한 품삯을 요구했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기준은 원래 합의한 것이 아니라 상대와 비교 속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 사람의 욕망의 반영이며, 전제가 잘못된 정의와 공평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만을 생각하지만 지금 이 포도원 주인은 마을 전체 공동체를 살리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부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삶을 누리도록 고민하면서 자신의 포도원을 가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제이고, 사랑에서 비롯되는 정의입니다.

개인별로 저마다의 장점이 있고, 또 같은 일이라도 능력에 따라 성과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훨씬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고, 능력에 따라 훨씬 더 많이 벌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평균 연봉이 3000만원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상위 1프로는 일 년에 6억을 가져갑니다. 즉, 소득수준이 20배가 차이가 나지요. 게다가 순자산으로 따지면 한국의 상위 1%는 평범한 국민보다 35배가 많습니다. 이것은 평균적으로 따진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하면 빈부의 차이는 훨씬 더 심각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수십 배가 넘는 재화를 가지게 된 것은 정말 그 사람의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수십 배나 뛰어났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한 집안에 형과 동생이 있습니다. 형은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았고, 동생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형은 맏이로 가족의 기대를 얻어 온 가족의 지원을 통해 공부도 하였고, 그래서 대기업의 임원으로 엄청난 부를 소유했는데, 동생은 그러지 못해 하루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면서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한 삶을 이어갑니다. 누군가 바깥에서 이런 이 집안을 보면 뭐라 할까요? 형은 동생보다 자산이 35배나 많고, 소득도 20배나 됩니다. 그럴 때 만약 이 형제의 아버지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큰 아들의 재산을 나누어 둘째에게 주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맏이가 불평하겠지요. 나는 저 놈보다 더 능력이 많아서 내 노력으로 이만큼 온 것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연 그랬던 걸까요? 땅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사람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누가 생명을 주었으며, 누가 일할 능력을 주었으며, 누가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주었으며,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했습니까? 사람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사랑하라는 명령]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우리 교회에 어떤 교인은 가진 것과 능력이 많고, 어떤 교인은 가진 것과 능력이 없어 이 두 교인의 생활수준의 차이가 수십 배 난다면, 만약에 가난한 교인이 최저생계비에 이르지 못하는 돈으로 하루를 어렵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일까요? 정의는 무엇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사랑으로 세우는 정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저는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사랑으로 정의를 세우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모두 자신의 능력, 아니 하나님이 주신 여러 가지 선물과 기회와 능력으로 열심히 벌고 생산물들을 내어서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는 그런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2006년 여름, 저는 서울노회에서 4개 교회를 모아 청소년 연합 수련회를 기획하고 실행한 적이 있습니다. 분반공부 시간에 제게 속한 여덟 명의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넌 꿈이 뭐니?,"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요즘 청소년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다수는 "잘 모르겠다"고 하고, 왜 공부를 하냐고 물으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그냥이요," "부모님이 하라니까요," "좋은 대학에 가려고요"라고 답하거나, 우물쭈물 얼버무리기 일쑤입니다. "넌 꿈이 뭐니?"라는 저의 질문에 한 학생이 "전 인도네시아에 갈 겁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학생의 특이한 답변에 "어 그래! 왜 인도네시아에 가려고 하는 거니?"하고 되물었습니다. 혹시 선교사로 간다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이 친구의 원대한 뜻이 있나? 내심 속으로 잔뜩 기대를 하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인도네시아는요, 우리나라보다 훨씬 땅값도 싸고 물가도 싸대요!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땅을 많이 사서 좀 여유롭게 살아 보려고요!"

이런 청소년을 누가 키운 것일까요? 저는 순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는 씁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잘못 살고 있는가를 이 학생의 한 마디 대답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구약성서는 가난한 동족에게 무조건 베풀라고, 가난한 이웃에게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히 꾸어 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 않겠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니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명령을 내리신 건가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통령 한 사람이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는 먼저 사랑함으로써 우리들의 공동체를 바꿀 수 있고, 우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일하고 싶어도 일감을 주지 않아 일하지 못하고 그래서 하루의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이른 아침부터 찾아간 포도원 주인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그건 사랑입니다. 능력은 좀 안 돼도, 배운 건 없어도, 때론 실수해도, 변화하는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해서 뒤처진다 하여도, 그런 사람도 하루를 온전히 인간답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정의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곳입니다. 한국이 언제 그런 사회가 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우리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당장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포도원 주인의 마음을 지닌다면 말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의 편을 들겠습니까? 이른 아침에 와서 일했지만, 그것이 기쁨이 되지 못하고 불평이 된 사람을 편들겠습니까? 아니면 한 사람이라도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력하는 포도원 주인을 편들겠습니까? 저는 포도원 주인을 편들 것이고, 그 분의 마음을 본받겠습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더욱 더 사랑하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게 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게 하소서. 효율성을 따지고, 소유욕에 기초한 정의가 아니라 사랑으로 이루는 정의를 지니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 생명사랑 공동체가 언제 어디서나 하늘나라를 만들고, 구원을 이뤄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여기에 들어가시면 설교 음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SoulLoveCommunity/UkVO/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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