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프라하 기행] 성지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
체코의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체취를 찾아

입력 Jun 12, 2014 07:24 AM KST
▲프라하 관광의 중심지인 구시가지 광장.  
▲구시가지 광장의 관문인 화약탑.

‘성지(聖地)’란 낱말의 사전적 정의는 ‘각 종교에서 신성시하는 도시 혹은 지역’이다. 이 같은 정의를 따른다면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의 성지다. 프라하를 이렇게 정의하는 게 비약일수도 있다.

프라하는 특정 종교의 성지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얀 후스(1372년?~1415년)는 프라하에서 수학하며 자신의 개혁사상을 발전시켰다. 한편 신교와 구교의 알력이 전쟁으로 비화된 사건인 30년 전쟁도 프라하에서 촉발됐다. 이렇게 보면 프라하는 개신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지이기는 하다. 

얀 후스의 체취는 구시가지 광장에서 찾을 수 있다. 구시가지 광장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늘 인산인해를 이룬다. 화약탑, 시민회관, 틴 성당, 구시청사 등 프라하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시가지 광장의 역사는 비단 먼 과거에만 한정돼 있지 않다. 1968년 반체제 운동 당시 소련군 탱크가 진입했었고, 1989년 공산주의 체제의 종식을 선언한 ‘벨벳 혁명’도 이곳에서 선포됐다. 그 광장의 중심에 얀 후스 동상이 자리해 있다. 
 
▲구시가지 광장의 명소인 고딕 양식의 틴 성당. 틴 성당의 두 첨탑은 아담과 이브로 불린다. 
▲얀 후스 동상 앞에선 연일 길거리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얀 후스는 영국의 종교개혁가 존 위클리프(1320년경~1384년)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전한다. 위클리프는 로마 가톨릭의 교권주의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특히 가톨릭교회가 참된 교회와 거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얀 후스는 이런 개혁사상에 깊이 감명을 받아 그의 저술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개혁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어 설교와 저술 활동을 펼치며 교회가 타락을 청산하고 초기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파했다. 한편 라틴어 성경을 체코의 토착 언어인 보헤미아어로 번역해 사제가 성경지식을 독점하던 구조를 타파하려 했다. 
체코는 얀 후스 출생 이전부터 로마 교황청의 입김이 강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아예 보헤미아어로 공중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교서를 내리기도 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얀 후스의 행보는 로마 교황청의 권력에 대한 정면도전이나 다름없었다. 
 
▲얀 후스 동상 앞에선 연일 길거리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얀 후스 동상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곽교회 정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내건데서 시작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그러나 얀 후스의 개혁행보는 이보다 한 세기를 앞선다. 실제 얀 후스의 개혁 사상은 알프스 이북의 종교 개혁가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결국 종교개혁으로 화려하게 피어났다. 
얀 후스의 저항 정신, 여전히 살아 숨 쉬어 
얀 후스는 1414년 스위스 콘스탄츠에서 열린 종교회의에 참석했다가 체포돼 다음해인 1415년 화형 당했다. 구시가지에 자리한 그의 동상은 그의 서거 500주년이 되던 해인 1915년 세워졌다. 묘하게도 그의 동상은 틴 성당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두 개의 첨탑이 인상적인 틴 성당은 프라하를 대표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얀 후스는 이 성당에서 설교하기도 했다. 
 
▲틴 성당을 바라보는 듯한 얀 후스 동상. 얀 후스는 틴 성당에서 설교하기도 했다. 
▲틴 성당을 바라보는 듯한 얀 후스 동상. 얀 후스는 틴 성당에서 설교하기도 했다.   
▲얀 후스 동상에서 군무를 추는 터키 청년들. 

그의 동상 앞에선 늘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마침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땐 터키에서 온 일군의 청년들이 군무를 추고 있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거리의 예술가들이 그의 동상 앞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마음껏 과시하며 관광객들의 눈길을 유혹한다. 이런 광경은 흡사 로마 교황청의 교권주의에 맞섰던 얀 후스의 자유로운 정신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일깨우는 듯하다.  
성지는 특정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의 성격이 더 강하다. 즉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뤄진 장소, 바로 그곳이 성소이고 성지다. 얀 후스의 체취가 살아 숨 쉬는 구시가지 광장은 그래서 프로테스탄트의 성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사진=지유석 기자, 장비지원=소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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