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데스크시선] 애통하는 자를 위로해 주옵시고

입력 Apr 17, 2015 08:07 AM KST
하나님, 애통해 하시는 하나님, 인간의 고통을 체휼하시는 하나님,  
당신은 고난당해 아파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내가 압니다. 당신도 독생자 예수를 눈앞에서 먼저 보낸, 참척의 한을 겪으신 대로, 그 한 때문에 아파하는 우리 가운데 위로자로 와서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위로자이신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니]”(시편 30:2) 나를 고쳐주시옵소서. 나의 회개를 도와주시옵소서. 나는 부활의 계절에 절망을 가슴 속에 품으며 4월을 잔인한 달이라 되뇌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부활의 약속과 모순되는 현실 앞에서 운명을 당신의 자리에 놓아두었습니다. 
이사야를 통해 설파하신 대로 내가 정의와 공의를 저버렸음을 회개하고 당신께로 돌이켜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더 불편해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웃나라의 아베 수상이 역사적 사실을 호도하고 왜곡하려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정작 내가 그와 같은 짓을 하고 있음을 간과했었습니다. 세월호의 참사는 우리 인간의 죄악 때문에 발생했는데 그 진상을 알고자 하는 단계에서부터 나는 진상 규명을 지연시키고 회피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평소에 회개할 때 하나님 앞에서 나의 진상을 합리화하며 스스로 폭로하지 않으려 했던 습관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요?  
하나님, 현재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은 우리가 사회구조를 보다 정의롭고 공의롭게 만들어가기 위한 회개의 과정인데, 이 회개를 중보하는 목사님들과 성도님들까지 구속되는 등 회개를 방해하는 세력이 계속 생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다른 사람의 고난을 목격하면서도 달려가지 않고 안전한 해변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읊조리고 있었기 때문입니까? 관련된 사회적 갈등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내 생활 범주의 안정을 침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 서글픈 욕망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까? 
▲4월 16일(목)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해 광화문 광장을 찾은 한 추모객이 헌화에 앞서 기도를 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자애로우신 하나님, 나의 죄를 회개합니다. 나의 죄악의 진상을 바로 보며 애통해 하고 그 죄로부터 돌아서고 싶습니다. 당신께로 돌아서는 지난한 과정을 인내하게 하시며 그 가운데 나를 당신의 동역자(고린도전서 3:9)로 부르신 은혜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안정을 위한 논리에 따라 강도당한 사람을 외면한 자들이 되지 않게 하시고 그가 고난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먼저 간파하여 그를 위해 나의 시간과 돈과 기회를 바치게 하시며, 우리 사회에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아모스 5:24) 하는 일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회개가 살아 있는 자의 몫인 것을 압니다. 죽은 자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잠재워주시고, 당신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 약속하신 부활의 소망이 나의 삶 가운데 구현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나와 우리의 사회를 새롭게 하옵소서. 생명과 평화를 재물보다 우선하는 가치관을 갖게 하옵소서. 그리고 내가 먼저 부활의 약속을 지켜가려고 할 때 우리 사회에 정의와 공의가 흘러가게 된다는 사실이 나의 폐부 깊숙이 각인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현재 세월호 3법이 조율중에 있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세월호 관련 3법에 우리 사회의 실권자들의 회개가 반영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함께 하시사 지혜를 주시고 우리사회가 변화하는 계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법들이 눈가림에 그치지 않고 근원적인 해결책으로 입법되어서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회의 구조를 갱신하는 출발선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 하는 자”(이사야 33:15)들이 정치를 하고 우리 경제를 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세월호 참사의 애꿎은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 믿습니다. 이것이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에 대해 우리가 줄 수 있는 진정한 위로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우리가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는’(야고보서 2:22) 과정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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