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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독교는 문화를 야만에서 문명으로 끌어올리는 엔진”
국내를 대표하는 지라르 연구자 정일권 박사 인터뷰 – 1부

입력 Mar 28, 2016 06:44 AM KST

※ 1부에서 이어집니다. 이번 순서에서는 정일권 박사가 니체가 포스트 모던 철학에 끼친 영향에 대해 심도 있게 풀이해 줍니다. 특히 니체, 하이데거의 사상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Q : 고신 교단의 경우 지라르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거부감이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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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정일권 박사

꼭 그렇지는 않다. 2015년 천안에 위치한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르네 지라르 강의도 했다. 개혁주의 신학을 협소하게 정의하고 보는 일부 사람들은 너무 방대한 지라르 이론을 소화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겠다. 그러나 르네 지라르는 신화의 수수께끼를 풀고 십자가의 승리를 재차 변호하는 당대 가장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다. 독일어권에서는 지라르가 기독교를 다시 구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독일 유력 일간지인 <디 벨트>지는 "신들은 잔인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시다. 지라르가 기독교를 구했다"라고 제목으로 그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또한 네덜란드 자유대학교는 1985년 지라르에게 최초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참고로 이 학교는 고신교단에서 위대한 3대 개혁주의 신학자로 평가하고, 내가 학부과정에서 직접 번역해 논문을 발표하고 출판하기도 한 아브라함 카피어가 설립한 학교다. 네덜란드 자유대학교를 중심으로 1980년대 초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네덜란드 지라르 연구회가 주도해 이를 성사시켰다. 가장 먼저 형성되기 시작한 지라르 학회로서 지금도 가장 왕성하게 연구하는 모임이 바로 네덜란드 지라르 학회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국제 지라르 학회도 네덜란드에서 개최되었고, 2012년에는 ‘지라르의 미메시스 이론 여름학교'도 네덜란드에서 개최되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이라면 보수신학에서는 동시대적이고 현대적 사상과 사유에 대한 접촉을 기피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20세기 후반 풍미했던 현대 사유들이 많은 경우 반기독교적 혹은 후기기독교적 사조였기에, 이러한 사실은 어느 정도 이해할만한 하다. 그럼에도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est)"라는 개혁주의 구호처럼 개혁주의 신학이 보다 창조적이고 동시대적이고 현재진형형의 개혁적 사유를 배제하지 않았으면 한다. 신학자가 아닌 조직신학자로서 지라르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바로 이 같은 창조적 가능성을 지라르의 이론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라르는 소통과 변증의 두 지평을 모두 열어준다. 지라르는 현대 주류 인문학과 소통하면서도 기독교를 보다 세련되게 변호한다.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지라르를 많이 읽었으면 한다.

Q : 니체 철학이 100년 동안 지적 세계에 남긴 유산이라면? 그리고 그의 철학 가운데 어떤 면이 극복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첫째, 니체와 하이데거, 반유대주의, 나치즘과 정치적 파시즘이다.

나는 이미 니체와 지라르를 화두로 『우상의 황혼과 그리스도, 르네 지라르와 현대사상』에서 이 질문에 대해서 답하고자 했다. 이 책은 국내 한 전문서평자의 서평 대로 니체의 ‘우상의 황혼'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전복해 읽은 책이다. 즉, 니체의 우상의 황혼/반그리스도를 지라르의 우상의 황혼/그리스도의 의미로 새롭게 읽고 전복하고자 했다는 말이다. 니체는 프랑스 포스트모던 철학의 대부다. 니체는 대체적으로 100년의 철학의 역사를 변화시켰다고 한다. 니체철학의 100년의 유산을 앞으로 올 100년을 변화시킬 것으로 평가받는 지라르의 이론으로 재조명하고자 했다.

니체 철학이 남긴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과 정치적 파시즘과의 관련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니체와 그의 후계자인 하이데거는 전후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즘과의 깊은 연관성 때문에 금기시됐다. 르네 지라르도 오래전부터 니체와 하이데거를 ‘신이교주의자'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프랑스의 데리다, 이탈리아의 바티모, 미국의 리처드 로티 등은 전후에 하이데거를 전후에 복권시켰고, 이후 니체와 하이데거는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의 계보학에 자리잡게 됐다. 물론 데리다도 후기에는 종교적 전환을 해 유대교로 근접하고 있고, 바티모도 지라르와의 학문적 만남을 통해서 회귀해서 기독교적 사유, 기도 등을 철학적으로 재발견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 특히 최근 르네 지라르를 언급하고 있는 위르겐 하버마스는 오래전부터 니체와 하이데거의 새로운 신화학에 대해서 비판했고, 오래전부터 하이데거가 나치였음을 용감하게 지적했다.

두 번째, ‘왜 인도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베스트셀러인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2014년 ‘검은 노트(Schwarze Hefte)'로 불리는 하이데거의 친필원고가 공개된 이후로 니체-하이데거 철학과 나치의 반유대주의와의 깊은 관련성이 더욱 더 깊이 드러나고 있다. 독일어권의 가장 유명한 철학방송인 스위스 국영 SRF방송의 ‘Sternstunde Philosophie'에서는 "철학과 나치즘 : 그 위험스러운 동맹?"이라는 제목으로 니체·하이데거 철학과 독일 나치즘, 그리고 정치적 파시즘과 폭력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이 방송 중에는 왜 인도에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베스트 셀러인지 묻는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책이 기독교가 모든 아리안적 가치들의 전도이자, ‘찬달라적'(인도의 불가촉천민) 가치들의 승리라고 비판하며 초인(위버멘쉬)과 금발의 야수를 인간사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니체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방송은 지적하고 있다.

르네 지라르는 니체와 하이데거를 새로운 이교주의자로 파악한다. 한편 칠레의 역사가 빅토르 파리아스는 지속적으로 하이데거의 철학 자체에 매우 깊이 나치의 사유와 반유대주의적 사유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왔다. 그는 1987년 『하이데거와 나치즘』이란 책을 냈는데, 이 책이 출판되자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하일 히틀러'와 비견되는 ‘하일 하이데거'(Heil, Heidegger)라는 헤드라인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또 <르몽드>지는 이 책을 ‘폭탄'이라고 비유하는가 하면, 하버마스는 이 책의 독일어판 서문을 쓰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철학방송에서는 최근 독일 하이데거 학회 회장이 하이데거의 블랙 노트 출판에 등장하는 입장을 지지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회장직을 내려놓았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2015년 일본 독일문화원(괴테 인스티튜트)에서 개최된 하이데거 강좌에서도 니체적 하이데거 철학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반유대주의적이고 나치적인 지평이 비판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은 니체-하이데거 철학에 대해서 그 어떤 나라보다 깊이 관심을 가졌었다. 그런 일본에서도 최근 하이데거 철학이 뿌리깊게 반유대교적이었고 나치적이었음을 비판적으로 성찰되고 있는 것이다. 니체-하이데거 철학과 독일 나치, 그리고 일본 군국주의와 일본 교토학파의 종교철학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나의 책 『붓다와 희생양, 르네 지라르와 불교문화의 기원』을 참고하기 바란다.

끝으로 독일 낭만주의 운동, 정치적 파시즘 그리고 새로운 신화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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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정일권 박사 제공 )
▲정일권 박사는 2005년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 지라르 학회(Colloquium on Violence and Religion)에서 지라르와 만나서 힌두교 시바 신화에 대한 학문적 대화를 나눴다.

나의 책 『우상의 황혼과 그리스도』에서 문화의 기원으로서 희생양 메커니즘을 폭로하고 계몽하는, 전복이자 폭발적인 진리로서 기독교라는 스캔들이 문명 속에 가져온 우상의 황혼의 의미를 묻고자 했다.

십자가에 달리신 자의 수난이 폭력적인 성스러움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이제 신들은 죽었다. 왜냐하면 기독교를 통한 희생제의적 메커니즘의 불안정화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이후 이미 죽은 신들의 귀환과 이교주의로의 복귀를 원했던 이들이 있었다. 니체와 하이데거는 이런 사상가에 속한다.

우상들의 황혼과 신들의 황혼으로 인해서 하늘이 텅 비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그것을 다시 채울 것인가? 지라르에 따르면 이 질문은 또한 니체가 『즐거운 학문』 아포리즘 125번에서 제기한 질문이기도 하다. 니체의 『즐거운 학문』아포리즘 125번에 등장하는 ‘신은 죽었다'라는 문장 뒤에는 ‘신은 살해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이데거만큼 이 니체의 아포리즘에 깊이 심취한 학자가 없었다. ‘신은 죽었다'는 언명은 이후 현대 무신론과 사신신학으로까지 나아가 유행되었지만, 니체의 본문은 신에 대한 집단살해를 말하고 있다.

니체의 『우상의 황혼』은 십자가에 달리신 자로 말미암은 우상들의 황혼과 그 텅 빈 하늘을 디오니소스의 귀환으로 다시 채우고자 했던 낭만적 시도였다. 그런데 이런 시도는 다시금 화산으로 뛰어들어가는 것과 같다. 지라르가 지적하고 있듯, 디오니소스는 하데스(지옥)이고 심연이다. 니체 이후의 포스트모던 철학은 포도주의 신, 극장의 신, 가면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너무 쉽게 미학화한다. 그러나 본래 디오니소스는 희생양을 살해하는 군중의 폭력을 대변한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카오스의 심연으로의 추락을 의미한다. 낭만주의는 기초의 심연, 곧 모든 세계 신화들이 은폐하고 있는, 숭고한 동시에 무시무시하고 무차별화된 군중의 마그마를 어렴풋이 보았다.

독일정신에서 낭만주의 운동은 정치적 파시즘과 관련되게 된다. 십자가에 달리신 자로부터 디오니소스로의 후진운동은 위험한 퇴행이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자가 야기한 우상들의 황혼에 대한 낭만적 반대운동을 넘어서 인류에게 요청되는 건, 이제 보다 복잡해진 현대성 속에서의 묵시록적 성숙성과 합리성이다.

니체는 2000년 유럽전통의 유대-기독교적 가치를 전복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는 문화를 야만적 단계에서 문명적이고 문화적인 단계로 끌어올리는 엔진이었다. 니체는 유대-기독교적 가치의 계보학과 고고학에 대항하는 반대운동을 철학화했으나 그 결과는 결국 퇴행적이었다.

니체는 나름대로 유대-기독교적 전통에 대한 이중적 자세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자에 대항하는(gegen) 디오니소스를 자신의 신으로 택한다. 하이데거는 니체 아카이브를 관리했던 니체철학의 후계자였다. 독일 낭만주의 이후의 새로운 신화학의 르네상스와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하버마스의 논의 포함)은 출판 준비 중인 『르네 지라르와 포스트모던 사상가들. 미메시스 이론, 후기구조주의 철학 그리고 해체주의 철학』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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