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강남빌딩 사는 것이 도대체 뭐라고
박충구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입력 Feb 05, 2020 08:38 AM KST

정경심 교수가 지인과 나눈 카톡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의식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엉! 뭐 이런 분이었어... " 하는 사람과 "민주사회에서 뭐 그런 생각도 못하냐?"라는 반응, 그리고 "봐라 이런 탐욕스러운 여자야 봤지...라고 개인의 카톡 메시지를 세상에 까발리는 검사"도 있다. 자한당 부류, 적대적 단순형은 사안을 일반화하여 탐욕스런 인간의 드러난 진면목으로 보고, 복잡형은 사안을 개인의 단순한 감정 표현으로 본다. 이 경우 비난하는 이들은 진영논리에 빠진 벌레의 견해 정도로 비하한다. 하지만 나는 검찰의 의도에 더욱 주목한다. 인간의 내면을 난도질 하고 그 인간을 가장 추악한 방식으로 재현하는 기술이다.

공권력을 가진 집단이 해서는 안 될 참으로 무섭고 사악한 일이다.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며 사람을 잡는 일, 히틀러가 했던 짓을 지금 검찰이 하고 있다. 검사라는 공직 수행자가 고등학교 시절 여학생의 내면이 담긴 일기를 압수해 갔다는 이야기부터, 자장면 난동, 소환없는 기소, 조중동을 나팔수로 앞세우며 상습적으로 정보 흘리는 검찰, 조중동의 악의적인 수십만 건의 보도를 통한 공격행위 - 이런 배경이 깔려 있는 사건이다. 공권력이 개인의 내면이 담긴 기록을 염탐해서 공공의 세계에서 폭로하는 비열한 행위를 묵인 방조하는 자한당 부류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나는 절대 동의할 수, 아니 해줄 수가 없다.

거대한 국가 공권력을 가진 집단이 이런 방식으로 개인을 공격하게 위한 목적으로 "까발리는 행위"를 두고 항간에 말이 많지만, 나는 검찰이 움켜쥐고 있는 피해자의 무수한 언급과 글 중에서 오로지 피해자를 공격하기 위하여, 검찰이 정교하게 취사선택한 "강남빌딩"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검찰이 의도하는 것과 피해자의 언표 방식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검찰의 의도에 말려 피해자를 재차 조롱 가해하면서 "나나 내 자식은 순결해" 라며, 그 조롱과 비열함의 논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나는 피해자를 가해할 수 있지만 나를 비난할 근거는 없어"라는 이중적 변명이다.

혐의를 두고 있는 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검찰의 눈은 정직하고, 진지해야 하며, 법적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힘은 신중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검찰 역시 공권력의 수행자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진지함과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윤석렬 검찰은 우리의 기대나 희망에서 너무나 뒤떨어진 집단이다. "법과 원칙"이라 하지만, 제 맘대로 사안을 취사선택하며 고무줄처럼 늘어지기도 하는 그들의 원칙 자체가 그들의 비열한 본색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몇 페친들이 검찰의 비열함 속에 감추어진 의도, 개인의 정신세계에서 건져낸 몇 개의 단어로 한 개인의 인격과 삶을 싸잡아 비난 하라는 검찰의 사주에 너무나 쉽게 말려들고 있다.

검찰의 비열함을 따라가면 비열한 자가 된다. 검찰의 폭로를 따라 마치 한 여성이자 교수를 다 파악한 듯 단언하며 심판하려 드는 행위는 지식인으로서 경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에 의하여 공공의 세계에서 벌거벗기어진 여인의 내면의 언어를 두고 비아냥거리는 신중치 못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타인의 눈은 지옥이 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레비나스는 타인으로 존재하는 우리는 대타적 환대의 의무도 있다고 했다. 나는 작금에 온 가족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대한민국 검찰의 기이한 행태에서 사르트르의 지옥의 외눈만 달려 있다는 데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검찰의 눈은 사르트르의 눈이지만, 교양인의 눈은 레비나스의 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판단에 따르면 정교수는 일방적으로 몰려 있는 피해자고, 검찰은 악의를 가지고 한 가정을 풍지박산 내려는, 증오로 검게 물든 눈을 가진 가해자 모습이다. 한 개인의 남다른 자식사랑, 욕망, 가진 자의 의식.... 이런 사생활 영역에 대해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대한민국 검찰의 악의와 수구 언론의 침소봉대를 통한 것이다. 이런 자료는 도덕적 판단을 위한 적법한 자료가 아니다. 아니 도덕적으로 정당성이 결여된 오염된 자료다.

tvchosun
(Photo : ⓒTV조선 화면 갈무리)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내 목표는 강남에 빌딩을 사는 것"이라고 동생에게 말한 사실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사진은 이를 보도하고 있는 TV조선 화면 갈무리.

이렇게 의도적으로 오염된 자료는 직접적 판단 자료로 사용해서는 안 될 매우 불량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우리 근대사에서 검찰이 벌였던 무수한 기획수사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 우둔한 시민들을 선동하기 위하여 없는 적을 조작해 내세우고, 심지어 사형까지 받게 했던 악마들의 집단이 우리나라 검찰이다. 나는 조국 전 법무장관을 향한 윤석렬 검찰의 공격은 검찰 개혁을 구호로 외치며 등장한 문재인 정권을 적대하여, 온갖 비열한 수단을 동원해 저항하며, 개혁 세력의 부도덕성을 과대 포장 폭로함으로써 민심의 거대한 이반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왕정 시대라면 역모에 가까운 일이다.

비열한 세력은 엉뚱하게 "표창장 위조"라는 건으로 전 국민이 가지고 있는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을 비틀어 개혁이 아니라 위선적 개혁자라는 이미지를 덧 쒸우고, 정경심의 사모 펀드 투자로 부풀려 없는 자들의 분노를 자극하며, 강남빌딩을 향한 회화적 표현을 집요한 욕망으로 확장 폭로 함으로써 개혁 정권의 개혁이 저들만의 욕망 충족을 위한 것으로 포장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교묘한 선전전, 대국민 심리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4. 15 총선에서 민주시민은 사실의 정확한 정보를 얻어 종합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다만 개인이 느끼는 호 불호의 감정을 따라 투표하게 될 것이다.

윤석렬 검찰이 벌이고 있는 5개월 간의 어줍지 않은 난동은 문재인 정권을 향한 국민의 호감을 비호감으로 바꾸려는 데 목적이 있다. 검찰 본연의 책무, 곧 정의 실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강남빌딩을 사고싶다는 표현에서 범죄의 동기를 찾는 검찰의 방식으로 오늘의 현실을 바라본다면, 광화문에는 전광훈이를 내세워 굿판을 벌이고, 자한당 사람들은 언론에 나와 저주의 주술을 외고 있으며, 검찰은 조국 가족과 청와대 참모들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돌팔매질 당할 자들이라고 고발하며 역모를 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지 4. 15 총선 전에는 가려질 리가 없다. 공정한 선거를 위하여 흑색 선전을 하는 자들을 찾아 벌해야 할 검찰이 흑색 선전의 선두 주자 노릇을 하고 있다.

검찰이 지난 9월부터 벌이고 있는 정말 "하찮은 사건"들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국기를 흔들 정도의 중대성을 가진 엄중한 사건이거나 진실을 가려야 할 컨텐츠가 없다. 기껏해야 우리에게 누군가의 "강남빌딩 욕망"을 과대 투사시켜 없는 자들이 박탈감을 느끼며 가진 자를 조롱하게 만듬으로써 국민의 정서가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이탈하여 "호감이 비호감으로 변질되도록" 집요하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여고생의 프라이버시를 박탈하고 일기장까지 들여다보는 검찰이 정말 합리적 판단을 중시할 수 있겠는가? 저들이 합리적이라면 대통령을 향하여 온갖 막말을 늘어놓는 전광훈이를 몇 달째 풀어 놓을 리가 없고, 법의 경중을 아는 합리적 검찰이라면 저렇게 유치한 죄목을 찾아 연일연야 조야한 게임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광화문에서는 전광훈이의 굿판이 연일연야 이어지고, 서초동에서는 기레기들을 동원한 검찰의 선전선동이, 국회에서는 자한당의 저주의 주문이 되뇌어지는 이상한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나는 이 어지러운 정황이야 말로 비판적 합리성을 떠난 여론전의 현장이며 누군가에 의한 심리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의혹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기획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행태들로 미루어 보아 민주 시민을 또다시 기만하고 속여먹으려는 수작이 분명하다. 저들은 멀리는 제주 4.3 사건, 5.16 구데타를 칭송하고, 5.18 광주 민주시민 학살도 저질렀던 세력의 후예다. 민주시민이라면 또다시 사악한 자들의 선전 선동에 휘둘리지 않도록 예민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 이 글은 박충구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피니언

기고

신천지와의 인연

"제가 언젠가 '신천지야 오라 변론하자'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지요. 기억하실 분들이 계실 겁니다. 사실, 저는 그때까지 약간 낭만적인 입장이었어요. "신천지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