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전염병, 민족 그리고 교회
채영삼 백석대 교수

입력 Mar 17, 2020 04:22 PM KST
corona
(Photo : ⓒ 사진 = 이활 기자 )
▲대한성공회 정동 주교좌성당에선 지난달 23일 사목단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전례를 진행하고 있다. 위 사진은 해당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고난을 통해 무언가 배우고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그런 고난은 잘 지나가도,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일으킨 파장은 사회와 민족 전반 뿐 아니라, 교회에게도 진지하고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단지 예배를 어디서 보아야 하며 예배란 무엇인가 뿐 아니라, 교회는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무거운 질문까지 포함한다.

사회에서는 자택근무 등, 근무방식이 혁신적으로 유연해지고 있다. 학교는 원격수업을 일상화해야 할지 모른다. 전염병 사태는 이번 한 번만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 지구 환경은 더욱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이 민족이 가는 길은 마치 큰 파도를 타고 떠밀려가듯, 무언가 세계 국가와 민족들 가운데 지도적 위치로 가는 듯 하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 BTS나 기생충, 그리고 최신기술에서뿐 아니라, 정치나 경제, 그리고 잠시 멈추고 있는 남북의 관계에서도 장기적으로는 무언가 큰 흐름을 타고 있다.

교회를 돌아보아야 한다. '예배당이 성전이 아니라'는 복음의 회복, '성전건축은 사실상 성도의 건축'이라는 반론은 이제 조금은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전통을 아름답게 보존하면서도, 조금 더 전향적으로 교회론을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니고 싶어도, 일요일에 일해야 하기 때문에, 월요일이나 주중에 하루가 쉬는 날이기 때문에 원치 않게 '주일성수'가 안 되는 청년들,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고, 주께서 나와 당신 같은 버러지 죄인을 찾으러 하늘에서 그 영원한 시간을 버리고 이 땅, 여기까지 찾아오신 사실을 알고 있다면, 교회는 찾아오는, 찾아야 하는 죄인들을 위하여 얼마든지 변화되어야 한다.

또한, 이렇게 전체로 모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언제 다시 모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이참에 성도의 역량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떨까. 목회자가 성도에게 보다 많은 목회의 권한과 보람을 느끼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입으로는 개혁주의라 하면서, '전(全)성도가 제사장'이라는 종교개혁의 주장을 은연중에 묵살하고, 소수의 전문 사역자를 중심으로 교회를 구성하고 이끄는 그런 자세도 변혁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성도를 더 작은 목회자들로 세우고 돕는 사역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빙하기에 공룡들이 멸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살아남게 된 것은 곤충들이었다. 이 재난의 때에,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유연하고, 각각은 작고 독립적이지만, 함께 떼로 모여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기민한 기동력을 갖춘 그런 교회를 상상해야 하는 때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민족은 자의든 타의든, 기술적으로든 지정학적으로든, 세계 가운데 떠오르고 있다. 때가 그러하다. 문화, 예술, 스포츠뿐 아니라, 첨단기술과 이제는 정치체제, 방역체계까지 그 투명성과 합리성 민주성과 시민의식에 있어서 세계인들을 선도할만한 자리에로 이끌려가고 있다.

교회가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변해야만 할 것이다. 전후 시대에 갇힌 이념적 신앙이 우리의 민낯이다. 복음을, 신앙을, 그렇게 이념적으로 싸워 지켜왔고, 이념적으로밖에는 순교적 정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말씀을 시대와 경험에 가두어버리는 그런 작은 기독교로는 장차 이 민족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아직 경계해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공산주의와 맞물린 독재체제는 이 민족이 선택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걸맞지 않다. 교회가 반대하지 않아도, 지금의 이 민족은 그 길로 가지 못한다. 이미 시민의 자유와 자발성을 보장하는 민주체제가 공산주의 독재체제보다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검증하지 않았나.

교회는 더 큰 것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신학의 폭을 말씀의 폭과 깊이만큼 넓혀야 한다. 은혜만큼이나, 의와 공의도, 내 구원만큼이나 세상의 회복과 재창조의 소망도 얼마든지 설 자리가 있는 신학과 설교 강단, 성도의 삶을 세워나가야 한다. 중국과 북한의 교회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연대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신학적으로도, 성경적이며 교회 전통에 충실한, 동시에 한국 교회의 정황과 답변을 보편화하는 한국교회의 신학을 펼쳐야 한다. 이제 한국은 세계의 중심에 서고 있다. 한국교회도 긴장하고 변해야 한다.

※ 이 글은 채영삼 백석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본보는 앞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신앙성찰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글을 게재키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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