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팬데믹 위기에서 교회와 하느님은 실종되었다!(스압주의)
최성철 은퇴목사(캐나다연합교회)

입력 May 16, 2020 06:33 AM KST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교회가 철저하게 믿었던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전지전능함은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하느님은 팬데믹의 오늘은 물론 내일을 모르며, 위태로운 상황에 함께 있기 보다는 외부에서 예배와 영광을 원했다. 일요일 예배의 헌금수입을 놓치지 않으려고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팔아먹던 장사꾼 교회와 여기 동조하는 정치꾼들의 실체가 드러났으며, 이들의 미래는 암담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킨 위기적인 상황에서 하느님의 역할은 너무나 보잘 것 없다. 우리의 삶에 무용지물의 하느님이 왜 필요하냐는 정서도 팽배해지면서 중보교회의 위상이 상당히 격하되었다.

이번 사태에서 교회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비단 세월호 참사 때에도 교회는 생존자 아이들과 가족들의 절망과 고통에 대해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 만큼도 한 일이 없었다. 이번 바이러스 팬데믹에서도 사람들은 의사와 간호사가 필요했지, 하느님이나 교회나 예배가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종교인들이 믿었던대로 하느님은 교회와 성당과 사찰 내부에만 안주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에 교회 밖 세속적인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온전하게 이루어 갈 수 있다는 좋은 경험을 통해서 하느님 없는 교회, 하느님 없는 종교, 하느님 없는 세상을 인식했다. 더욱이 사람들에게 거룩한 교회와 세속적인 세상의 분리가 확실하게 깨어지는 깨달음이 있었다.

참된 하느님(하나님)의 의미는 전지전능하거나 초자연적인 객체적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는 만병통치도 아니고, 우주세계의 불확실성에 대해 절대로 답할 수 없다. 그런 하느님은 전통적인 종교의 믿음체계가 만든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가짜 하느님이다. 지난 수세기 동안 종교단체들은 그런 하느님으로 사기행각을 벌려 사람들을 탄압하고 착취하여 부를 축적하고 불의한 권력을 휘둘렀다.

하느님은 우주 이야기의 창조주가 아니라, 우주 이야기가 출현한 한참 후에 만들어진 인간의 작품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하느님을 만들기 훨씬 전에 우주 이야기가 먼저 있었다. 138억 년 전, 태초에 우주먼지들이 응집하고, 빅뱅이 일어나면서 별들이 탄생하고, 은하계가 출현하고, 지구에서 살아있는 세포가 출현했다는 이야기보다 더 경이롭고 위대한 창세기는 없다.

nasa
(Photo : ⓒNASA 홈페이지 갈무리)
▲태양계의 모습.

또한 바다에서 인간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물고기들이 육지로 올라와 양서동물이 되었고, 파충류 동물이 새가 되었고, 포유동물이 바다로 들어가 고래가 되었다는 이야기보다 더 창조적인 이야기는 없다. 분명히 모든 전통적인 종교들이 과학과 조화를 이룬다면 자신들의 신앙과 신학을 버리지 않고 원초적인 우주창조 이야기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인식할 수 있다. 오늘 21세기에 초자연적인 하느님 없이, 자연의 법칙이 깨어지는 기적을 바라지 않고 참된 종교의 의미를 살아낼 수 있다.

21세기 우주진화 세계관의 현대인들은 수천년 전 삼층 세계관의 내세 종교들의 교리와 공식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그대신 현대과학이 발견한 공개적 계시 즉 생명과 인간이 출현하게 된 138억 년의 우주진화 이야기에서 생명과 인간과 자연의 심층적인 의미를 자율적으로 깨닫는 것이 오늘 하루를 의미있게 자유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힘과 지혜가 된다. 다시 말해, 우리 이성적인 인간은 지난 수세기 동안 과학이 발견한 우주 이야기에서 종교와 사상의 경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 즉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과 윤리관을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서 어떠한 불행과 절망에서도 죽음의 두려움과 생존의 이기적인 욕심없이 자유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과학이 발견한 우주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담하게 대하는 표층적인 삶과 우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친밀하게 대하는 심층적인 삶의 차이는 마치 두려움에 빠져있는 불안한 삶과 신뢰로 가득한 행복한 삶의 차이와 같다고 밝혔다. 과학이 우주진화를 발견한 것은 인류에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진화의 기쁜 소식으로 우리는 최후의 심판과 죽은 후의 다른 세계 즉 내세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우주세계에서 또한 하루하루 급속도로 변해가는 지구촌에서 내세적인 종교와 초자연적인 하느님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심층적인 내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인류구원의 새로운 대안으로써의 진화영성(Evolutionary Spirituality)은 이론적인 담론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실제적으로 적용하며 살아갈 수 있는 현실적인 지혜이다. 진화영성은 죽음 후의 다른 세계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 몸과 마음으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며 표현이다. 우리는 내세의 천국을 염려하고 꿈꾸지 않아도, 지금 여기에서 생명과 자연과 우주를 신뢰하고 의미있게 만족스럽게 자유하게 살아갈 수 있다. 참된 하느님의 나라는 역사적 예수가 가르친대로 죽음 후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모든 관계들을 통합적으로 살아내는 삶의 방식이고 표현이다.

백년 전까지만해도 원자가 별들의 중심에서 탄생했으며, 태양은 첫번째 별이 탄생한지 3-4 세대가 지난 후의 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한 별들이 모여 은하계를 형성한다는 것도 몰랐다. 비단 1990년 허블 우주망원경이 지구 상공 610km 궤도에 올려질 때까지 우리는 은하계가 수백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몰랐다. 더욱이 우리의 우주 이외에 또다른 우주가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했다. 우리의 조부모님들은 판구조론(Plate Tectonic) 즉 지구표면은 여러 개의 대륙판들로 짜맟추어져 있고 이것들이 서서히 수평이동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지질학자들의 발견과 유전자 정보가 이중 나선형 모양의 분자 내에 저장되어 있다는 생물학적인 사실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공룡들이 멸종한 원인은 외계로부터 지구에 침입한 혜성의 큰 충격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최근에 알려졌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138억 년 동안 별들이 탄생하고 폭발해서 사라진 후 또다시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우주 이야기를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고 인식하며 살아간다. 우주 세계는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의 현장이다. 인류의 역사가 펼쳐지는 이 우주 이외에 또다른 세계는 없다. 물질세계와 분리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거짓말을 잘못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 원인은 플라톤과 데카르트가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킨 이원론때문이다. 21세기의 주류 과학계는 영적 세계란 사람들의 두뇌 속에서 작용하는 상상의 세계일뿐이라고 밝힌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우주 세계 이외에 또 다른 우주들이 있지만, 우리의 세계는 눈앞에 보이는 것 오직 하나뿐이다. 만일에 지구 이외에 다른 별들에 어떤 생명체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의 우주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들도 포용한다. 왜냐하면 생존하는 모든 생명체들과 만물은 우주의 개체들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 우리의 우주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난다해도 항상 우주는 다음의 다섯 방향으로 진화적 확장을 계속한다. 다시 말해, 불확실성의 우주의 본질은 다음과 같다.

(1) 확장하는 다양성: 우주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욱 다양해지고 더욱 새로워진다.

(2) 확장하는 복합성: 개체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고, 작은 전체들이 모여 큰 전체를 이룬다. 즉 원자가 모여 분자를 이루고, 분자가 모여 유기체를 이루고 더 나아가 다세포의 유기체들을 이룬다. 이러한 과정은 인류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고대의 군주제도가 현대의 민주주의로 변천하고, 비과학적 세계관이 양자물리학의 세계관으로 발전, 그리고 첨단과학의 발전으로 위성통신과 인터넷의 확장으로까지 발전했다.

(3) 확장하는 인식력: 세월이 흘러갈수록 생물들의 인식력은 더욱 확장되고 있다. 예를 들자면, 거북이의 인식력은 아메바(단세포 원생동물)보다, 인간의 인식력은 말(언어)보다 더욱 발전되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인식은 수백 년 전의 고대인들의 부족적인 삶의 인식보다 더욱 확장하여 세계적인 인식으로 발전했다.

(4) 확장하는 변화의 속도: 오늘날 창조적이고 비약적인 발전은 과거보다 더욱 신속하게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진화과정은 더욱 비약적인 발전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화과정은 원자의 진화로부터 분자, 생명, 광합성(지구상의 생물이 빛을 이용하여 화합물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화학 작용으로, 지구상의 생물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화학 작용의 하나), 다세포질 동물, 척추동물, 포유동물, 영장류 동물, 인간, 농업, 산업,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발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약적인 발전으로 전진하는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다. 어느 한 개체도 정지하거나 과거로 후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변화의 가속화는 진화하는 우주의 본질이다. 그러나 한편, 변화의 가속도가 혼돈과 불안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놀랍도록 빠르게 변화하는 우주에서 질서와 평안을 찾을 수 있다.

(5) 확장하는 자율적 친밀성: 최초로 눈이 생기고, 귀가 생기면서 우주는 스스로 보고 듣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우주의 자율적 친밀성은 더욱 확장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이라고 하면 대개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러나 진화의 원리에 그렇게 냉혹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포함하여 생명체들은 다른 개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다른 개체들과 협력하면서 유전자를 후대에 남긴다.

이 다섯 가지에 대한 좋은 예로, 자궁 안의 수정란 접합자를 생각해 보자. 원자에서 분자로, 분자에서 세포로 진화한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화합하여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새로운 세포가 된다. 이 세포는 두 배로 되고 또다시 두 배로 되는 배가를 계속한다. 어떤 세포는 눈세포가 되고, 어떤 세포는 귀세포, 콩팥세포, 뼈세포, . . 가 된다. 몇 개월이 지난 후 태아는 어두움과 빛을 구별하게 되고, 태어난 아기는 자라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구별하게 된다. 이때에 우리는 '아기의 귀가 혹은 귀세포가 목소리를 듣는다' 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대신 우리는 세포들이 진화하여 인간이 된 '아기가 소리를 듣는다' 고 말한다. 우주의 한 개체인 아기의 탄생은 우주진화 이야기이다. 우리의 우주 전체는 한 몸이다. 따로따로 분리된 조각들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의 망이다.

우주는 138억 년 전, 한 에너지에서 시작되었으며, 개체들의 다양성과 복합성과 인식력과 친밀성으로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으며, 변화의 속도는 증가하고 있다. 자궁 안의 수정란이 아기로 진화하듯이 우주는 초자연적인 힘의 개입없이 미래를 향해 자율적으로 다섯 가지 방향의 확장을 계속한다. 이 자연적인 우주의 법칙은 어떤 중개인 즉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간섭하여 중단시키거나 변경시킬 수 없다. 따라서 예측할 수 없이 확장하는 우주의 불확실성에 대해 하느님도 절대로 답할 수 없다.

하나의 생명의 망으로써의 우주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개체들은 과거에는 물론 현재와 미래에 타자(他者) 즉 초자연적인 하느님의 개입없이 자율적으로 서로 친밀하게 협력하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확장한다. 교회가 믿는 하느님은 우주의 내일을 모른다. 하느님이란 우주의 불확실성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의 법칙을 깨트리고 멋대로 조정하는 전지전능한 힘이 하느님의 의미가 아니다. 하느님은 모든 문제의 백과사전적인 해답이 아니다. 내일을 모르는 하느님을 전지전능하고 초자연적인 힘으로 맹신하는 삶은 시간낭비이며, 오리려 인류사회의 발전에 장애물이 되며 대단히 위험하다.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하느님이란 말의 심층적인 의미를 탐구해야 한다. 하느님은 교회에 가야만 찾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하느님 없는 종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불확실성의 우주에서 타자로서의 하느님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율성과 창조성과 가능성과 잠재력을 온전히 인식하고 사는 것이 참된 인간의 본성이다. 오늘처럼 가정과 사회가 큰 위기에 빠질때에 동학농민혁명의 정신대로 사람의 생명과 삶이 하느님이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타자인 하느님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권리와 책임이 있다.

※ 이 글은 전 지질학자인 최성철 은퇴목사(캐나다연합교회)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외부필자의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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