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설교] "넉넉한 교회"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입력 Aug 24, 2020 08:56 AM KST

- 신명기 15:7-10, 고린도후서 6:8-10, 마태복음 5:1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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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오늘 설교 제목은 제가 지은 것이 아닙니다. 1977년 9월의 마지막 주일에, 우리 대학교회 창립 40주년 기념 주일에 김옥길 선생님이 행한 설교의 제목입니다. 선생님은 1940년에 이화에 처음 입학한 이후 40년간 이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선생님에게 대학교회는 "이화를 지키는 힘"이었습니다.

"넉넉한 교회"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김옥길 선생님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를 인용하며 대학교회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교회"가 되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狀)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회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는 믿음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웃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선생님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 같으나 그런 교회가 바로 "넉넉한 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넉넉하다.' 듣기만 해도 참 좋은 우리 말입니다. 그 안에는 '살림이 풍족하여 여유가 있다'라는 뜻도 있지만, '마음이 넓고 여유롭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말한 "넉넉한 교회"는 후자입니다. 물질이 풍족하지 않아도 정신적 여유에서 오는 넉넉함입니다. 오늘 신약서신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린도전서 6:10)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바로 "넉넉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넉넉한 교회가 있으면 우리가 사는 이웃도 넉넉해질 수밖에 없고, 우리가 사는 이웃이 넉넉해진다면 이 사회와 이 나라와 이 세계가 다 넉넉한 세계가 될 것입니다"라고 그의 교회론을 확대했습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나만 좋고 내 몸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선생님은 "비열한 자아도취"라고 부르며 그걸 가장 경계하셨습니다. 하늘의 뜻을 헤아려야 하는 이른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하늘의 뜻은 결국 이웃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 살라는 것이라고 점점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이화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일제 식민지 수난의 시대에 대학 생활을 하며 선생님이 자아를 발견하고 나서 얻은 것은 "섬기고 봉사해야 할 이웃과, 사랑하고 지켜야 할 나라와 민족"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깨달음이 깊었습니다. 그래서 이화를 졸업할 무렵, 졸업생들이 종이 위에 한 마디씩 기념이 될 만한 문구를 적어서 서로 나눌 때, 보통 친구들은 '사랑으로'나 '젊음이여 빛나리' 등의 화려한 문구를 썼지만, 선생님은 거기에 딱 '우리'라고 한 마디만 쓰셨습니다. 그는 그렇게 항상 분명하게 '나' 아닌 '우리'를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화의 기독교학과 교수가 되었을 때 "자기를 위하여 살지 말고 이웃을 위하여 살자고 하는 참된 사랑의 운동이 이화동산에서부터 일어나 삼천리강산을 휩쓸게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가 이화여자대학교 제8대 총장으로 취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명연설 취임사의 맨 끝에 선생님은 자신의 평생의 신조는 "나는 이화를 위하여, 이화는 한국을 위하여, 한국은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라고 밝혔습니다. 이렇듯 선생님에게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한 개인이 아니라 '이웃'과 '나라'와 '민족'과 '세계'와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큰 틀 안에 있는 큰 자아였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말하는 '우리'는 개인이 전체를 위해 희생하는 강요나 강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우리'는 언제나 '나'의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걸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섬김의 즐거움"을 즐겨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이 억지로 하는 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괴롭기만 합니다. 남이 시켜서 마지 못 해서 하는 일과 제가 스스로 원해서 하고 싶은 일이 절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열이 40도나 되는 어린 자녀의 병을 간호하기 위해 밤을 새우는 어머니는 그 일을 조금도 괴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직 자식의 열이 떨어지고 얼굴에 예쁜 미소가 떠오르기만을 고대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섬기는 일은 사랑으로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섬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하는 일임에 분명하다"라고 선생님을 강조하셨습니다.

섬김은 다른 말로 '봉사'입니다. 영어로 봉사는 '서비스'(service)입니다. 그런데 그 단어는 '예배'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봉사한다는 것과 예배드린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같은 것입니다. 봉사도 예배도 다 그 바탕에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선생님은 이야기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한평생 가르치고 실천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이고 봉사입니다. 제자들과 같이 저녁을 잡수실 때 주님은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기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입니다. "이웃의 발을 씻는 일은 괴로움이 아니라 즐거움입니다. 섬기는 일은 고통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사랑 때문에 하는 일이 어째서 기쁨이 아니겠습니까?"(1979년 7월 15일, 대한적십자 발간 <봉사의 메아리> 기고). 사랑 때문에 하는 일이 고통이 아니라 온전한 기쁨이란 걸 우리 모두 체험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려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화가 이화 된 보람을, 우리는 남을 섬기는 봉사의 생활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한 분이 신학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 준비를 할 때, 그는 "하나님을 공부할 사람이라면 [먼저] 사람을 섬기는 일부터 배워야 한다"라고 충고해주신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런 신앙과 정신을 가진 김옥길 선생님에게 그러므로 교육이란 "사명감 있는 사랑의 행위"이어야 합니다. 실로 윤후정 선생님의 회고처럼, "선생님의 70년 생애는 여성 교육자라는 큰 획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의숙 선생님의 회고처럼, 선생님은 "글만을 가르쳐 주셨던 그러한 스승이 아니라 본바탕과 다움을 일깨우쳐 주신 큰 스승이셨습니다." 총장으로서 김옥길 선생님은 "이화는 지식에 앞서 인격을, 기술에 앞서 사랑을 가르치는 배움의 집"이라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물론 대학은 '학문의 전당'으로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는 곳입니다. 하지만 지식이 반드시 유익하다고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예리한 칼의 주인"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날카롭게 설명하셨습니다. "칼은 예리할수록 좋은 것이지만, 그 예리한 칼이 누구 손에 있느냐 하는 문제는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의사의 손에 쥐어진 예리한 칼은 환자의 중병을 고치고 생명을 구할 수도 있지만, 강도의 손에 쥐어진 예리한 칼은 남의 돈을 빼앗기 위해서 혹은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을 풀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knowledge is power)입니다. 하지만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그 지식을 가진 사람의 인격과 품성에 달려 있음을 선생님은 꿰뚫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화여자대학교는 지식의 힘을 최대로 키워주는 동시에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높은 수준의 교양"을 가르치는 교육의 전당이 되어야 한다고 선생님은 총장으로서 소신을 밝혔습니다. "높은 수준의 교양"이 무엇입니까? 공자님은 그것을 '인'(仁)이라는 단어로 설명했지만 선생님은 그것이 우리 시대에는 '휴머니즘'(humanism)이라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휴머니즘입니까? 선생님은 그것을 "사람과 사람의 정당한 관계"라고 이해하셨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정당하게 대해야 합니다. 흔히 머리가 좋고 똑똑하다는 사람들 가운데 남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이 모든 사회적 비극의 원인으로 보았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지식만이 으뜸이 아니요, 지식만이 교육의 전부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스승 김옥길 선생님의 교육철학이고 지론이었습니다. 지식도 진실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그물에 걸립니다. 식자우환, '학식이 있어 도리어 우환을 일으킨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지식보다 더 위대한 것은 진실이며 진실한 사람이 끝내 성공한다고 선생님은 확고하게 믿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그의 어머니에게서 받은 교육적 영향이었습니다. 김옥길 선생님의 어머니는 어떤 경우에도 자녀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억지나 강제로 막지 않았고 학교에서 1등을 하기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기미년(己未年) 독립 만세의 열풍이 삼천리강산을 휩쓸고 지나가고 아직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1921년 봄, 김옥길 선생님은 평안남도 맹산이라는 깊은 산골에서 평범하고 건실하고 정직한 한 부부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이 조그마한 마을 한끝에 있는 초라한 보통학교에서 선생님은 초등교육을 받았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학교에 가는 게 어린 옥길의 특색이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는 학교에 늦지 않으려고 조반도 안 먹고 달려갔다가 교문이 닫혀 있어서 그냥 집에 돌아온 일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만큼 배움의 열정에 불타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이의 어머니는 두 개의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는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이었습니다. 1930년대만 해도 딸자식을 학교에 보내는 일은 드물었고, 더욱이 가난한 집에서 그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공장에라도 보내서 한 푼이라도 집안 살림에 보태게 해야지 학교는 무슨 학교냐"라고 이웃이 빈정댈 때마다 어린 옥길의 어머니는 "누구는 돈을 쌓아 놓고 공부시키나요"라고 말하며 조금도 굽힘이 없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어린 옥길은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며 돈독한 신앙심을 키웠습니다. 가족이 평양으로 이사했을 때 어머니를 따라 나간 교회는 평양에서 유명한 장대현교회였습니다. 그 교회가 선생님의 삶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컸다고 선생님을 회고하십니다. 가난으로 고생하면서도 어머니는 늘 명랑하셨습니다.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쓸겠느냐"라고 하시며 언제나 태연자약(泰然自若)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신앙을 선생님이 물려받았습니다. 가난은 자랑이 될 수는 없으나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법을 어머니에게 배웠습니다. 부정직하게 부유한 것보다 정직하게 가난한 것이 훨씬 더 자랑스럽다는 것을 익혔습니다. 어머니는 남의 집 빨래에서 삯바느질, 떡장수, 학생 하숙에 이르기까지 안 해 본 일이라곤 없으셨습니다. 밤에는 침침한 전등불 아래서 한 죽을 꿰매야 겨우 10전을 받는 양말 코를 꿰는 일로 밤을 지새우셨고, 삼복더위에도 손이 부르트도록 재봉틀을 돌리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고생 속에서도 어머니의 입에서는 감사의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어머니는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교육철학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독실한 신앙심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셨습니다. 확실히 한 인간의 삶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이는 어머니입니다. 김옥길 선생님의 뼛속 깊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확고한 교육관은 누구에게 강요받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온 '불멸(不滅)의 모태신앙'입니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부지런했습니다. 유년 주일학교 시절에는 두꺼운 성경책을 혼자 다 읽기도 했습니다. 그때 어른들이 남달리 총명한 그를 보고 "너는 장차 커서 무엇이 되겠느냐?"라고 물으면 곧잘 "나는 잔칫집으로 시집가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하필 잔칫집이냐?"라고 다시 물으면, "음식을 많이 차려 놓고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광경이 즐겁기 때문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도 길 가던 걸인에게 상을 받쳐 점심을 대접하라시던 아버지, 그리고 되도록 못 사는 사람, 어려운 사람을 불러서 먹여야 한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가르침과 영향이었습니다. 늘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선생님의 따뜻한 휴머니즘은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대 후문 건너편 대신동 김옥길 선생님의 집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습니다. "우리 집 대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방싯하게 열려 있지도 않고, 반만 열려 있지도 않다. 우리 집 대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라고 선생님은 썼습니다. 대문을 열어놓고 사는 풍습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가르치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선생님은 '냉면 한 그릇의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평안도 산골에서 자라 아기자기한 식단을 꾸밀 줄도 모르고, 음식의 가짓수를 무한히 늘려서 손님의 눈을 어지럽게 하진 못했지만, 선생님은 오직 냉면과 빈대떡으로 사람들을 융숭히 대접했습니다. 이 간단한 메뉴로 나라 안팎의 온갖 유명 인사와 가난한 친구들을 한결같이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찾아오는 학생이나, 외국 대사나, 국무총리나, 학교 수위나, 선생님의 집에서 음식으로 차별대우 받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선생님 집 냉면과 빈대떡은 국무총리의 메뉴도 되고 그의 운전수의 메뉴도 되었습니다. 일 년에도 천 명에서 이천 명이 다녀갔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의 친구들은 총장을 그만두면 '옥길면옥'을 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열린 대문과 냉면 한 그릇'은 누가복음 14장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의 큰 잔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시며 언제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사랑의 식탁 공동체를 베푸셨습니다. 큰 잔치의 비유를 드시면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 그리고 마을의 경계선인 "길과 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누가복음 14:16-23)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소외되고 연약하고 배제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경험하는 이 땅의 천국입니다. 이대 후문 건너편 대신동 골목 입구에 자리 잡은 선생님의 '열린 대문과 냉면 한 그릇' 집은 그런 천국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초대되어 차별 없이 대접받는 곳이었습니다. 거기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큰 잔치가 벌어지는 은총의 집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미리 맛보는 천국이었습니다.

사실 선생님의 여러 별명 중 하나는 '식천재'(食天才)입니다. 선생님은 잘 먹는 사람으로 명망이 높았습니다. "[나는] 하여간 입맛이 좋아서 무엇이나 잘 먹는다"라고 실제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즐거움을 정말로 좋아하셨습니다. 산해진미(山海珍味)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음식을 나누며 가지는 '친교의 아름다움'을 아셨습니다. 사실 '인심이 좋다'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풍부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넉넉해서일 것입니다. 선생님의 마음은 언제나 여유로웠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단돈 한 푼도 아까워 쓰질 못했지만 남을 돕는 데는 조금도 인색하지 않고 쌈짓돈도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절약 정신은 몸에 배어 있으셨고 물질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넉넉한 그 마음이 하나님의 넉넉한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읽은 구약성서의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고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명기 15:7-8, 10).

선생님은 이 복을 받으셨습니다. 성서가 가르치는 가장 큰 복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는 찬송과 기도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시편 23편의 노래가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시가 되었습니다.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찬송 216장)가 그가 가장 사랑하는 찬송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뉘게나 베풀게 하옵소서"라는 가사가 그의 평생의 실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위한 담대한 기도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오늘의 공동기도처럼, "간구하옵나니 외롭고 혼자 섰다고 생각하는 이웃을 위하여 하늘의 위로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눈에서 눈물을 거두어 주시옵고 저희들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그리스도를 향해서 저희들이 담대하게 설 수 있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게 도와주소서"(1976년 5월 12일, 이화여대 신앙강조주간 예배시간의 기도)가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기도가 되었습니다.

"너는 세상의 빛이라... [그러므로]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13-16). 오늘 주시는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 구절은 선생님이 즐겨 인용하시던 성경 말씀의 하나입니다. 실로 선생님은 그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의 '착한 행실'은 진실로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고 섬기는 세상의 빛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다른 설교입니다. "빛은 무엇입니까? 빛은 스스로 태우는 것입니다. 촛불 하나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초가 그냥 있으면 아무 빛이 없습니다. 하얀 초나 색색의 초에는 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두면 아름다운 초는 될 수 있을지언정 빛을 발하지는 못합니다. 그 심지에다가 불을 붙였을 때에 비로소 그 심지는 타고 초는 녹아내리며, 찬란한 빛이 나는 것입니다. 빛은 자기를 태우지 않고는 빛이 될 수가 없습니다"("빛을 비추는 사람," 1976년 5월 2일, 대판한인교회). 선생님은 자신의 존재를 불태워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사실 선생님에게 '빛'과 '사랑'은 동의어였습니다. 사랑도 스스로 태우는 것입니다. 자기를 태우지 않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자신을 불태우는 사랑이 그리 어렵지 않음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언젠가 선생님이 스위스 제네바의 한 섬에서 창문도 없는 캄캄한 건물 안에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무섭도록 어두운 그곳에 어디선가 밝은 빛이 쏟아졌습니다. 자세히 보니 바늘귀만한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선생님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빛은 아무리 적더라도, 큰 어둠을 이길 수 있다는 교훈을 거기서 얻었습니다. 다시 선생님의 설교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내가 혼자서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적은 빛을 모을 때에 더 큰 빛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어떠한 원망도, 어떠한 미움도, 어떠한 저주도 이 조그마한 선과 사랑과 공의를 베풀고자 하는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적은 공의가, 적은 선이, 적은 사랑이 큰 어둠을, 저주를, 미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경애하는 이화의 대학교회 교우 여러분, 그리고 이화의 가족 여러분, 이 나라 근대 여성사의 여걸(女傑)이신 김옥길 선생님은 이화 대학교회의 자랑스러운 신앙의 선배요, 이 시대의 스승이며, 우리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의 그리스도교 신앙은 넉넉한 신앙이었습니다. 사람의 편을 가르고 편견의 벽 속에 가두는 인색한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분열과 차별의 장벽을 허물고 이념과 국적을 초월한 보편적 사랑, 차별 없는 사랑, 하나님의 따뜻한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넉넉하고 풍요로운 신앙이었습니다. 동생 김동길 선생님의 회고처럼, "누님의 삶은 항상 넉넉하고 떳떳하였는데 아마도 그 마음이 항상 맑고, 깊고, 넓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생활은 검소하게, [하지만] 생각은 고상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땅에 발을 딛고 서서 가난한 사람들을 겸손하게 섬기며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영원한 푯대를 바라보며 사셨습니다. 그분에게는 하늘과 땅이 하나였습니다. 그는 그 둘을 잇는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사도였습니다. 명징한 휴머니즘과 숭고한 신앙을 한 몸으로 사신 그분의 삶이 오늘 너무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 땅에서 육신을 지고 감당하신 모든 고생을 다 마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 영원한 천상의 평화를 누리신지 땅의 역사로 만 30주년이 되는 오늘, 여전히 좁은 '나' 안에 갇혀 무지와 편견과 차별과 혐오와 이기심과 탐욕으로 병들어 죽어가는 이 나라와 교회가 김옥길 선생님이 보여주신 그 '담대한 믿음'과 '진취적인 소망'과 '포용적인 사랑'으로 치유를 받고 다시 생명과 평화의 길을 걷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그분의 삶과 신앙을 따라 이 땅에서 넉넉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비추는 빛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아멘. (20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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