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인간을 성적 쾌락의 노예로 만드는 성의 자유화
김균진 연세대 명예교수·혜암신학연구소 소장

입력 Oct 07, 2020 09:49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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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김균진 연세대 명예교수(조직신학)

자유에 대한 헤겔의 사상과 현대 성혁명의 자유에 대한 성찰(3)

4. 인간을 성적 쾌락의 노예로 만드는 성의 자유화

오늘의 성 혁명 운동가들은 다음의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다. 아니, 보면서도 보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곧 성의 자유화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쾌락의 노예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처럼, 성적 쾌락에 빠진 사람은 아무리 깊은 성적 쾌락을 경험해도 만족할 줄 모르고, 더욱 더 깊은 성적 쾌락을 탐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깊은 쾌락을 경험하기 위해 계속 성적 파트너를 바꾸며 기괴한 성적 행위를 하게 되고, 마약에 취하여 집단 혼음을 하는 일도 일어나게 된다. 더 깊은 쾌락에 빠지기 위해 더 높은 강도의 마약을 복용하는 악순환 속에서, 한 번밖에 없는 자기의 인생을 망치는 일도 일어난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끝없는 성욕의 노예 상태라 말할 수 있다. 모든 속박과 제한에서 자유하기 위해 성적 자유를 취했는데, 이 자유가 오히려 인간을 끝없는 성욕의 노예로 만드는 결과가 초래된다. 곧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파괴하는" 결과가 일어난다(가브리엘 쿠비).

그 배면에는 인간의 죄성 곧 죄된 본성이 숨어 있다. 헤겔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처럼 영적 존재, 곧 "정신적 존재"이다. 이와 동시에 현실의 인간은 끝까지 자기 자신을 추구하는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자연적 의지는 있어야만 하는 그런 의지가 아니다." 그의 "의지는 본성상 악하다(von Natur böse)." 인간의 무한한 소유욕과 성욕의 뿌리는 여기에 있다. 끝까지 자기 자신을 추구하는 악한 본성이 무한한 소유욕과 무한한 성욕으로 표출된다. 무한한 소유욕과 무한한 성욕에 아무런 제동 장치가 없을 때, 그것은 이웃을 희생시킬 뿐만 아니라, 사실상 자기 자신의 생명을 파괴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함께 살아야 할 공동체를 파괴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오늘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무한한 소유욕과 무한한 성욕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그 자신의 노예로 만든다. 곧 아무리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르는 돈의 노예, 아무리 깊은 쾌락을 누려도 만족할 줄 모르는 쾌락의 노예로 만들어 끌고 다니는 마술적 힘을 가진다.

5. 자연질서를 깨뜨리는 돌연변이적 존재인 인간

- 동성애와 타 종들과의 성행위가 없는 동물의 세계

룻소는, 인간은 "타고나면서부터 자유롭다"고 말한다. 곧 인간이 태어날 때 가지고 있었던 자연상태(Naturzustand)는 자유의 상태라는 것이다. 오늘날 일련의 성 혁명론자들은 룻소의 생각을 따른다. 인간은 본래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그는 본성상 자유로운 존재다. 따라서 그의 자유는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자신의 성 문제에 있어 그는 자유로워야 한다. 성적으로 자유로운 그것이 인간의 자연성이다.

헤겔은 룻소의 이 생각을 반대한다. 인간의 자연상태는 자유의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부자유의 상태이다. 인간의 의지는 "그 본성상 악하기" 때문에, 그의 의지는 타고나면서부터 욕정에 붙들려 있다. 어릴 때 그것은 잘 보이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젊은 성적 파트너를 찾는다. 그러므로 헤겔은, "욕정의 의지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룻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치지만, 인간의 "자연성은 존재해야 할 바의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아야 할 바의 것이다. 그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의 문제가 인간 자신에게, 그의 자유에 내맡겨져 있다." 따라서 인간의 참 자유는 자연성으로 돌아가는 데 있지 않다. 자연성으로 돌아가서 자연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오히려 부자유, 곧 악의 노예가 되는 것을 뜻할 뿐이다.

자연성으로 돌아가 자연적 존재로서 사는 것을 우리는, 동물처럼 자연적 본능을 따르며 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자연의 동물들처럼 자연적 본능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곧 자연성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성으로 돌아가서 자연적 존재로 살 때, 그는 동물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자연성을 완전히 깨뜨리는 돌연변이적 존재로 변모한다. 자연의 동물들은 번식기에만 성관계를 가진다. 그들의 성관계는 종족 번식에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번식과 관계없이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성관계를 갖고자 한다. 그의 성관계는 종족 번식을 지향하기보다 자신의 순간적 쾌락을 지향한다. 자신의 더 깊은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해 종족 번식을 막아버리는 일도 사양하지 않는다. 이것은 동물의 세계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인간만의 돌연변이적 행태이다. 자연적인 일이 아니라, 완전히 비자연적인 일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우리는 일부다처의 현상은 볼 수 있지만, 인간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집단 혼음의 현상은 볼 수 없다. 성 파트너를 바꾸기는 하지만, 일대 일의 성관계를 가진다. 한 마리의 수컷 개가 여러 암컷과 동시다발적으로 혼음을 하는 일은 없다. 어떤 동물은 한 명의 파트너와 일생을 같이 한다. 매우 가까운 근친상간도 동물의 세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동성 간의 성관계, 다른 종들과의 성관계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아무리 사나운 사자일지라도, 늑대나 여우와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 이것이 동물의 세계의 일반적 자연질서이다.

그런데 오늘의 성 혁명은 자연질서를 깨뜨린다. 그것은 동물의 세계에서 볼 수 없는, 기상천외의 모든 성적 행위의 자유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모든 성적 규범을 깨뜨리고 자유롭게 사는 인간, 곧 자연상태에서 사는 인간은 결코 자연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질서를 깨뜨린다. 그는 아주 가까운 근친상간(부모와 자식, 형제지간의 상간)과 동성 간의 성관계는 물론, 다른 종들과의 성관계, 곧 짐승들과의 성관계도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들의 성관계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공간 내에서 이루어짐에 반해, 인간의 성관계는 국경을 초월한다. 참으로 인간의 성욕은 동물들의 그것에 비해 무서울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한 마디로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적으로 사는 인간은 참으로 자연질서에 따라 사는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자연질서를 무너뜨리고, 무서운 마력을 가진 성욕의 노예가 되어 살게 된다. 혼음, 타 생물의 종들과의 성 행위나 포르노가 없다는 사실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6. 하나님의 보편적 의지와 일치해야 하는 인간의 성적 자유

- 초월적 규범이 없는 성적 자유의 문제성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참 자유는 국가의 보편적 의지 곧 하나님의 의지와 일치해야 한다는 헤겔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자유에 대한 헤겔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의지는 개인의 자유가 지켜야 할 기본적 기준 내지 규범을 제시한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의 보편적 의지의 기준 내지 규범을 따라야 한다. 이 기준 내지 규범을 거부할 때, 인간의 자유는 지켜야 할 초월적 기준 내지 규범이 없는 자유가 되어버린다.

현대 성혁명 운동이 주장하는 자유의 심각한 문제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켜야 할 기준과 규범이 없을 때, 자유는 방향성을 상실하고,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채워주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지켜야 할 기준과 규범이 없는 자유, 그것은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성적 욕망의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욕망의 노예가 된 인간 세계의 공동체성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다. 자신의 비윤리적 행위가 공동체를 파괴하고, 공동체의 멸망을 초래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비윤리적 행위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오늘 자본주의 사회의 심각한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주의에 반해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허용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자유로운 창의력과 경쟁에 기초한 자유로운 시장경제질서를 가진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는 지켜야 할 기준 내지 규범이 없다. 국가의 법이 그 기준 내지 규범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 기준 내지 규범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 권위를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법의 적용을 최대한 피하면서 교묘하게 자기의 사적 욕망을 채우는 일들이 사회 도처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 앞에서 국가의 법은 사실상 무력하다고 말할 정도이다. 법도 결국은 힘 있는 자들의 것이라고 야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전유죄라는 속어가 유행한다. 한계를 알지 못하는 무한한 욕망의 자유로 인해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가 더욱 심화된다. 한 편에서는 아파트를 백 채 이상 가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거리의 노숙자들이 추위로 얼어 죽는 일이 일어난다.

자본주의 사회의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일련의 지식인들은 사회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사회, 경제적으로 평등한 세상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는 또 다른 문제점을 가진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 내지 통제하고, 소수의 지배층, 곧 공산당원들이 모든 것을 통제 내지 지배하는 전체주의 체제, 독재체제를 초래한다. 공산당원들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를 추구하는 이기적 본성을 벗어날 수 없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무서운 부패와 빈부격차, 당과 인민의 계급체제, 당에 의한 개인의 자유의 억압, 체제 비판자 및 요주의 인물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와 테러와 언론통제가 자행된다. 비판적 인물들이 소리 기척 없이 납치되어 사라져버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사회주의 체제의 사회적 부패는 자본주의 체제의 부패보다 더 심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부패는 언론에 공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부패는 언론통제로 인해 공개되지 않고, 내적으로 더 악화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의 이같은 현실은 하나님 없는 인간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근대의 인권운동, 자유운동은 타당하다. 그것은 종교적 독재, 왕권 독재에서 인간을 해방하고, 인간의 기본 권리인 자유를 회복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 자유가 하나님의 계명을 통해 주어지는 초월적 규범을 상실할 때, 인간의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맺 는 말

인간의 자유, 그것은 참으로 귀중한 인간의 기본 권리이다. 자유가 없는 생명은 죽은 생명과 같다. 자유의 억압은 인간의 존엄성의 파괴이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인간의 자유는 인간을 소유욕과 성욕의 노예로 만들 수 있는 마력을 가진다. 이 마력 앞에서 인간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양심과 이성이 그를 지킬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소유욕과 성욕의 그 신비스러운 마력 앞에서 인간의 양심과 이성은 너무도 쉽게 무너져버린다.

헤겔의 말대로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는 "영적 존재", "정신적 존재"임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동물의 세계에는 종교와 법과 학문이 없다. 그것은 정신적 존재인 인간만이 가진 정신적 현상이다. 이와 동시에 인간은 유한하고 제한되어 있는 존재이다. 그는 이기적 본성을 버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는 세계정신의 현존 및 현상양태인 동시에, 사적인 욕구와 충동을 벗어날 수 없는 자연적이고 감성적인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이성적 실존을 하나님의 보편적 의지, 곧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찾아야 한다. 그의 자유는 하나님의 보편적 의지의 규범 안에 있어야 한다. 그는 자신의 개별적 관심과 특수한 욕구를 버리고, 국가의 법이 명시하는 하나님의 보편적 의지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의 법이 명시하는 보편적 의지에 대한 개인의 복종을 헤겔은 "보편적인 것의 실존을 위해 필연적인 첫째 계기"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의 법이 하나님의 보편적 의지를 반영하는 한에서이다.

헤겔에 의하면, 인간이 "윤리적 존재"(sittliches Wesen), 참된 의미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길은, 모든 기준과 규범을 폐기하는 데 있지 않다. 모든 규범과 사회적 consensus를 부인하는 자유에 있지 않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보편적 의지, 곧 하나님의 계명을 자기의 규범으로 지키는 데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거기에 인간의 참 자유가 가능하다. 인간의 성적 자유도 하나님의 계명을 그 규범으로 가져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참 자유는 모든 도덕적, 윤리적 규범을 폐기하는 데 있지 않다. 아무런 도덕적, 윤리적 규범이 존재하지 않을 때, 인간은 자유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무한한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을 더 많은 돈, 더 깊은 쾌락을 삶의 최고 목적, 최고 가치로 가진, 그래서 끝없는 욕망에 끌려가는 비참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이것을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사회에서 여실히 보고 있지 않은가! 참 자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 있다. 그것은 더 많은 돈을 가지며 더 깊은 쾌락에 빠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을 내어주는 사랑에 있다. 인간에게 참 자유를 주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한히 많은 돈, 무한히 큰 힘과 자기 명예, 무한히 깊은 성적 쾌락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자기의 삶을 바치는 사랑과 헌신에 있다. "주님의 영" 곧 사랑의 영이 있는 곳에 참 자유가 있다(고전 3:17).

※본 글은 김균진 연세대 명예교수(혜암신학연구소 소장)가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젠더주의기독교대책협의회 출범 기념 학술포럼에서 '자유에 대한 헤겔의 사상과 현대 성혁명의 자유에 대한 성찰'이란 주제로 발표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3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해당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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