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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도회 주일설교] 빛나는 유산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입력 Jan 19, 2021 07:20 AM KST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사사기 17장 1-6절, 시편 16편 1-8절, 사도행전 19장 11-20절

[깊은 슬픔]

2021년을 시작하는 1월 2일,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는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온 국민의 가슴을 찢어 놓고, 분노하게 만든 아이의 죽음을 다루었습니다. 바로 16개월 된 아기, 정인이의 죽음입니다. 정인이는 태어난 지 8일째 입양기관에 위탁되어 8개월 동안 위탁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밝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납니다. 그런데 양부모에게 입양된 지 8개월이 된 지난 해 10월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숨을 거두게 됩니다.

한 여린 생명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약 8개월의 시간동안 무려 4번(5월 25일, 6월 29일, 9월 23일, 10월 13일)의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고, 마지막 학대 신고 당일에 아기는 사망했습니다. 3번의 학대 신고는 양부모의 말만 듣고 모두 무혐의 처리 되었고, 대학병원 의료진에 의한 마지막 학대 신고로 부검이 실시되었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는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방송이 보여준 양 부모의 아기 학대는 차마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들이어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제가 이 사건을 설교에서 말하는 이유는 정인이를 입양한 양 부모가 모두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세상은 그 사람들을 악마로 낙인찍는 것으로 분풀이를 하고 분노를 표현합니다. 자연스러운 감정반응입니다. 그러나 끔찍한 사건이 터졌을 때 그 당사자 개인을 처벌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결국 같은 일이 반복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는 좀 더 다각적으로 이 문제를 살펴야 하고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정인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학대를 당하고 있는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는 구조적 현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만, 제 마음을 너무 깊이 후벼 판 것은 어떻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정인이를 입양한 양부모는 기독교 정신으로 이 시대의 인물을 길러낸다고 자랑했던 한동대학교 출신이고, 그들의 부모는 모두 침례교와 장로교의 목사입니다. 외면적으로 보았을 때, 이들은 누가 뭐래도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성서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정인이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하면서도 방송에 출연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준 행동들은 도저히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런 그리스도인들의 일탈 행위가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 지점에서 저는 너무나 괴롭고 슬픕니다. 아이를 입양하여 일종의 천사 코스프레를 했지만 실제로는 악마가 하는 행동을 했던 것이고, 이러한 이중성이야말로 우리가 좀 더 깊이 분석하고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 문제가 단순하게 정인이 양부모의 문제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람은 마땅히 저지른 죄에 대한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하고,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하지만, 동시에 오늘날 교회에 다니면서 자신을 스스로 교인이며,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이 과연 무엇이었나를 뼈저린 마음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타락]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사기의 말씀과 사도행전의 본문에는 타락한 신앙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 '미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돈 많은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사람인데 그의 모친은 돈으로 우상을 만들고, 미가는 자기 자식들 가운데 하나를 제사장으로 삼았다가 후에는 레위인 한 사람을 데려다가 제 멋대로 자기 집안의 제사장으로 고용합니다. 미가는 레위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으니 주님께서 틀림없이 자기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라고 적고 있는데, 여기서 왕은 권력자를 뜻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아들로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올바른 원칙을 세워주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세습 권력, 독재를 용인하던 왕이 사라진 시대, 즉 민주주의 시대에는 시민들 스스로가 각자 자신의 삶의 원칙을 가져야 하고 교인들 또한 저마다 제 힘으로 참된 신앙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오늘날도 이 미가처럼 제 멋대로 하고는 그것이 마치 신앙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미가 집안은 자신이 갈망하는 욕구,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제멋대로 써도 된다고 믿는 왜곡된 신앙으로 점철 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서 본 일이 없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와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삼손 같은 이도 자신이 하나님과 약속을 했다는 계약 종교적 개념이 거의 없었지만, 그는 적어도 자기 힘의 근원이 야훼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종교심으로 가득한 미가의 집안은 야훼 하나님에 대한 앎과 믿음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신성한 이름이 언급되지만, 그를 진정한 창조주나 주님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제 멋대로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야훼라고 부릅니다. 사적으로 신당을 짓고, 우상을 만들고,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은 제사장을 세우고, 멋대로 규칙을 만들어서 자신의 종교적 안전만을 꾀합니다.

미가가 이렇게 타락한 신앙을 갖게 한 근원에는 그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돈을 사랑한 이 여성은 자신의 은돈 천 냥이 없어졌을 때, 그 돈을 가져간 사람을 시시때때로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도둑이 바로 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자 태도가 돌변합니다. 잘못된 행동을 한 아들을 꾸짖기는커녕, 혹시 아들에게 저주가 내릴까봐 그 돈으로 우상을 만들고 그것으로 재앙을 피하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미가는 자라났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사사기의 이 이야기를 한 집안의 이야기로 얘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날 신앙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이어가야 할 모든 그리스도인 집안의 모습을 성찰하는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 여러 외래 종교들이 이미 토착화된 방식으로 존재했고, 한국인들의 깊은 심성에는 샤머니즘적 성향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씨앗은 바로 그런 토양에 뿌려졌습니다. 나라는 망해가고, 일본에 잡아먹히고,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싸움질을 해대며 가난에 허덕이던 세월을 살아야 했던 지난 100년의 역사 속에서 많은 한국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를 자신의 종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 받아들인 그리스도교가 진정으로 참된 그리스도교인지, 아니면 오늘날 미가가 보여준 것처럼 겉으로는 야훼 하나님 이름을 부르면서 족보도 없고 전통도 없고 올바른 태도와 내용도 없는 제 멋대로 만든 그리스도교였는지 살필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다같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다같은 교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를 죽게 만드는 내부의 암덩어리는 반드시 도려내야 합니다. 가난했던 한국 민중들에게, 약하고 힘없던 이 땅에 백성들에게 그리스도교는 미국의 옷을 입고 다가오면서 잘 살게 해 주고, 돈 벌어 주고, 자신들을 보호해 주고, 힘을 얻게 하는 도구로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닌지 이제는 성찰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극우개신교 집단의 아이콘 전광훈 씨가 활개를 치는 모습이나 코로나 상황에서도 상주의 BTJ 열방센터 같은 곳에서 모여서 코로나 확산의 원산지가 되는 모습은 복음의 본질이 왜곡되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기를 겪고 있는 이 땅에 개신교가 들어 왔을 때 야훼 하나님 신앙은 압제받는 약자들에게 희망이었습니다. 구약성서의 출애굽 이야기는 민족의 해방을 염원하는 이들의 자양분이었고, 3.1 독립만세 운동에서 개신교는 이 사회와 민족의 종교로 우뚝 서지만, 3.1 운동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식민통치의 가속화를 불러온 일제 말기부터 한국 개신교는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해방 후 외세에 의한 분단과 한국 전쟁, 개신교인 장로 대통령인 이승만 정권을 거치면서 한국 개신교는 미국을 우러러보며, 권력과 유착되고 반공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자신들의 신앙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갖게 됩니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마치 하나님 나라의 이상인 것처럼 여기게 되었고, 박정희 시대의 경제 성장주의는 교회의 성장주의와 맞물리면서 물질적 성공이 하나님의 축복인 양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번영하게 해 주는 기계'로 둔갑시키고 싶어 하는 충동이 없었던 시절은 없습니다. 지난 세월 교회 성장주의에 매몰되고 번영 신학을 추구했던 한국 개신교인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부와 건강과 행복을 반드시 보상받는다고 선동해 왔고, 거기에 골몰하게 하였습니다. 소나기처럼 퍼부으시는 하나님의 축복만을 간절하게 기도하며 외치는 사이,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방치하고, 도덕성을 상실했으며, 자신의 종교적 욕망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동일시하면서 무엇이 참된 신앙인지를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웃을 멸시하고,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대하며, 자신들만이 참인 양 생각하던 오만과 교만이 결국 정인이 사건과 같은 극악무도한 형태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비윤리적인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은 겉으로는 선한 척 하면서 나쁜 짓을 하고도 떳떳한, 비양심적인 인간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사도 바울이 비상한 기적들을 행하자, 몇 몇 유대 사람들이 바울 일행을 모방하여 예수의 이름을 이용해 귀신을 내쫓으려는 시도가 벌어진 일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도의 내용에서 우리가 몇 가지 주목해 볼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 성서는 바울이 일으킨 기적들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명시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빌어서 비상한 기적들을 행하셨다."

잘못된 신앙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손을 이용하려고 하지만,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 사람들의 손과 발을 쓰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지금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고 계신 전국의 성도 여러분! 지금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이용해 자신의 안위를 보장 받으려는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주님의 뜻을 이루자는 것이었습니까?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한국 개신교가 사회적 신뢰를 얻을 때에는 주님 앞에서 정직했습니다. 교회는 올바르지 못한 교인들을 정확하게 치리했습니다. 저도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 누군가를 내치고 벌주고 혼내주는 일은 잘 못합니다. 그래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 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분의 삶과 가르침을 재현하고 싶어서 생긴 곳이지, 내가 잘 되려고, 좀 편하게 살아보려고 나오는 곳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는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믿음의 식구들에게 최대한 좋은 곳이 되고자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바로 그런 곳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앎과 믿음과 행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자신을 위한 도구가 되고, 믿음이 자신의 종교적 욕망을 위한 수단이 되는 순간 교회는 타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바울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몸에 지니고 있는 손수건이나 두르고 있는 앞치마를 가져다가 앓는 사람 위에 얹기만 해도 병이 물러가고 악한 귀신이 쫓겨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 때에도 그 누구도 바울을 우상시하거나 높이거나 찬양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이름 대신 교회의 목사나 장로, 유력 인사가 떠받들어지고 있다면 타락의 징조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지만 가만 보면 교회의 주인이 사람이 되었을 때 교회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찾아갈 때만 교회는 올바로 설 수 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서 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유대 사람들이 바울이 행했던 일들을 흉내 내고,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 보았지만, 결국 모두가 들통이 나고, 그들 스스로 악귀를 이겨내지 못해 더 큰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에는 흉내가 없습니다. 믿거나 안 믿거나 이고, 잘 믿거나 못 믿거나 입니다. 적당히 믿는 것 그런 것 없습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정확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귀신 축출하는 사람들이 바울 흉내를 내다가 엄청난 고난을 당하자 에베소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기적을 바라고 예수 믿었던 사람들이 전부 사도들 앞에 나아와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마술을 부리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비결을 적은 책을 모두 가지고 나와서 불살랐는데, 그것이 은돈 오만 닢에 맞먹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돈으로 하면 3억 4천 5백 24만원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엄청난 돈을 투자하면서 기적을 쫓아다니고 행운을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이 보고하는 바에 따르면 이들은 바른 믿음을 얻기 위해 기존의 자신이 의존하던 것들을 모두 불살랐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습니까?

참된 신앙을 추구할 마음이 있습니까? '아멘'이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아멘이라고 대답한다고 해도 실제로 그 길은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잘못된 믿음의 습관이 여러분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갈아엎고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수요사경회나 또 다른 강의 현장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다 보면 사람들이 깜짝깜짝 놀라고 큰 충격을 받는 모습을 간혹 봅니다. 어떤 사람은 듣도 보도 못한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이 또 정말 이상합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쳤단 말인가? 또 한국의 교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요?

갓난 아기 때에는 엄마 젖이나 우유를 먹습니다. 조금 자라면 미음을 먹고 이유식을 먹기 시작합니다. 더 자라면 밥과 반찬을 먹지요. 더 자라면 밥과 반찬을 만듭니다. 더 자라면 밥과 반찬을 만들어 가족과 이웃에게 나눕니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 교인들은 수십년 교회를 다니면서도 여전히 이유식만 먹고 있었던 것이고, 그것도 몸을 망치는 단 것으로 가득 양념을 한 이유식만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신앙의 년 수가 쌓였다면 단단한 음식을 먹을 준비를 해야 하고, 단단한 음식을 먹을 줄 안다면 남도 먹일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빛나는 유산]

오늘 시편 저자는 오로지 주님만이, 야훼 하나님만이 자신이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주님만이 자신이 받을 유산의 몫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신들에게 제삿술을 바치지 않으며, 자신의 입에 다른 신들의 이름을 올리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안전, 자신의 탐욕, 자신의 생각, 자신의 평안, 자신의 행복이라는 신들을 섬겨왔습니다. 주님의 뜻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제 멋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사사 시대와 같았던 것입니다. 이제는 진정한 왕이신 예수를 제대로 모실 때입니다. 코로나 19는 바로 그것을 위한 도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교단의 여신도회 주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여섯 살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수많은 믿음의 어머니들을 통해서 저의 신앙을 키워 왔습니다. 지금도 고향 교회에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비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목회자가 되어 주님의 일을 하도록 이끌어 준 그 밑바탕에는 바로 여신도들의 헌신과 기도, 사랑하는 마음, 돌보는 정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 주 화요일 새벽 4시 쯤 저는 교회에 와서 당일 녹화하는 수요사경회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의 나이 지긋하신 여성분이 교회에 들어와 제게 녹차를 주시면서 "목사님이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그렇다고 했더니 "기도하고 가도 되나요" 하시길래 "물론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모습이 이 분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허락받지 않았지만 제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과연 이 분은 이 새벽에 어떤 기도를 드리고 계셨을까요?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오늘 시편의 저자는 자신이 빛나는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유산을 물려받았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자식들에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다음 세대들에게, 지구를 지키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미래의 인류에게 우리는 어떤 빛나는 유산을 물려 줄 수 있을까요?

오늘 이 시간 추한 과거를 떨쳐 버리고 빛나는 유산을 간직하자고 단단히 마음먹읍시다. 예수님의 진리, 하나님의 거룩하심, 성령의 능력은 우리 인간들이 좌지우지하는 그렇게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 교우 여러분! 빛나는 유산을 간직하십시오. 헛된 것에 마음 쓰고, 거짓된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날마다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의 교훈이 있기를, 밤마다 여러분의 가슴에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길 빕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세상의 모든 유혹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모신다고 하면서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 앞길을 밝히고, 주님의 계명에 충실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참된 유산을 얻게 하시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빛나는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게 하여 주소서. 오늘 우리의 삶의 흔적들이 헛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온전히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들의 삶이 의미를 얻게 하여 주소서. 거룩한 주일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 모두 참된 신앙을 간직합시다. 진정으로 빛나는 유산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줍시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거룩한 친교가 굳건한 신앙으로 세상 풍조에도 흔들림 없이 살아가려는 생명사랑교우들과 이 시간 함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아픈 세상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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