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범종교적 에큐메니즘 실천한 신학자 고 한스 큉
오강남 박사, 한스 큉 타계에 과거 글 통해 애도

입력 Apr 18, 2021 04:00 P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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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오강남 박사 페이스북 갈무리)
▲타계한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신은 존재 하는가』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남긴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이 지난 6일 독일 튀빙겐 자택에서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가운데 오강남 박사(리자이나 대학 종교학 명예교수)가 과거 종교간에 평화를 위해 애쓴 한스 큉을 조명했던 자신의 글을 회상하면서 애도의 마음을 표시했다.

오 박사는 "한스 큉은 수없이 많은 그의 저서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새롭게 전달하는 일, 세계의 여러 종교가 서로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 서로 배우고 돕는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권장하는 일, 특히 세계 모든 종교인들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세계종교 공통의 윤리를 기초로 하는 '글로벌 윤리global ethic'를 실천함으로써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자고 독려하는 일 등에 전념하고 있는 신학자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스 큉은 로마 교황청 그레고리안 대학교)Pontifical Gregorian University)에서 1955년까지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1957년까지 파리의 소르본 대학 등에서 공부했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개신교 신정통주의 신학의 대가 「칼 바르트의 칭의론稱義論에 대한 가톨릭적 성찰」이었다.

오 박사에 의하면 이 논문에서 한스 큉은 칭의에 대한 바르트의 주장과 가톨릭의 가르침이 여러 면에서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가톨릭과 개신교를 비롯해 교파간의 작은 차이들은 지엽적인 문제들이며 이런 사소한 문제로 원수처럼 갈라져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이 논문은 후에 영어로 번역이 되었는데 번역본에는 바르트가 큉의 논문을 읽고 자신의 신학을 잘 이해했다며 보내온 편지도 함께 수록돼 있다. 그는 1954년에는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한스 큉은 1960년 독일 튀빙겐 대학 신학 교수가 되었으며 1966년 그의 제안에 따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된 요제프 라칭거Joseph Ratzinger가 튀빙겐 대학교 신학 교수로 올 수 있었다. 한스 큉은 또 1962년 교황 요한 23세로부터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위한 신학 분야 전문 자문단의 한 사람으로 지명되어 1965년 공의회가 끝날 때까지 가톨릭 신학의 대가 칼 라너Karl Rahner와 함께 가톨릭 신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오 박사는 "큉은 1971년에 나온 그의 저서『무류無謬? 미해결의 탐구』라는 책을 통해 교황 무류설은 인간이 만든 교리일 뿐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 1974년에 나온『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통해 예수의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우리에게 '생물학적 사실'을 말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전해주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여성 사제 제도를 금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관행이라는 것 등 전통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배격하고 이를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한 노력 때문에 교황청으로부터 바티칸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바티칸에 간다면 16세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섰던 자리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이상 이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로마 가톨릭 신학자로서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했다. 1979년 12월 18일의 일이었다"면서도 "그러나 교회로부터 파문당하거나 신부직을 박탈당하지는 않았다. 튀빙겐 대학 내에 있는 에큐메니컬 연구소에서 1996년 명예교수로 퇴직할 때까지 계속 연구하고 가르치며 세계 여러 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강의나 강연을 했다. 필자가 있었던 캐나다 대학교에 와서 강연할 때도 "바티칸 면허증으로 운전할 때보다 에큐메니컬 면허증으로 운전하니 더 자유스럽고 좋다"며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한스 큉은 그리스도교회의 일치를 주장하는 좁은 에큐메니즘 울타리를 넘어서 세계의 모든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과 상호 존중을 주장하는 범종교적 에큐메니즘을 주장했다. 오 박사는 "그는 그리스도교가 전통적으로 견지해오던 배타성이나 우월 의식 같은 것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고 본다. 어느 한 종교가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진리를 독점하거나 전매특허를 받았다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종교는 서로 협력할 뿐 결코 경쟁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고 했다.

한스 큉은 특히 그리스도교와 선불교와의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 박사에 따르면 1986년에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있는 퍼듀Purdue 대학교에서 열린 '제3회 불교-그리스도교의 신학적 만남'이라는 모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선불교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가 한쪽으로 너무 치우쳤음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망각되고 사장된 요소들을 재발견하게 하는 데" 특히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선불교에서 강조하는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를 중요시하고 있다.

한편 지난 2005년 큉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제2차 바티칸공회의의 결의에 충실하겠다고 공언하므로 세상이 모두 변화와 쇄신과 대화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 기대를 저버리고 "회복, 지배, 순종 같은 말로 현대화, 대화, 에큐메니즘 같은 말을 대치"시키면서, 오히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으로의 복귀를 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로마 가톨릭의 지도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오 박사에 의하면 한스 큉은 "교회 지도부를 지명하는 기준이 전혀 복음의 정신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상부 정치는 교회 지도부의 도덕적이고 지적인 수준을 위험한 수위 이하로 떨어뜨렸다. 진부하고 경직되고 보다 보수적인 지도부가 이 교회의 영속적인 유산이 되고 말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한편 1990년 이후부터 한스 큉은 종교인들의 '지구적 책임global responsibilities'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글로벌 윤리를 향하여: 시안적 선언」이라는 문서를 작성해서 이를 19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의회(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에서 발표하고, 세계 여러 종교 지도자들의 서명을 받아 채택되게 했다. 1995년에는 '글로벌 윤리 재단'을 창설하고 그 회장직을 맡았다.

오 박사는 "큉은 지구적 책임을 위해 지구적 윤리를 실천하는 일을 위해 모든 종교는 우선 자기 종교를 절대시하는 대신 스스로를 비판적 시각에서 볼 줄 알아야 하고 남의 종교를 무조건 배척하는 배타 정신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우리가 인간인 이상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념을 절대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 어디에서나 종교적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폴란드에 있거나 남아프리카, 필리핀 혹은 남미에 있거나 어디에 있든 종교들은 그것이 촉발될 수 있기만 하면 어디서나 지구의 얼굴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영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고 전했다.

한스 큉은 50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 『그리스도교와 세계종교』, 『신은 존재하는가?』, 『프로이트와 신의 문제』, 『이슬람』, 『유대교』, 『새 천년을 위한 신학』, 자서전인 『자유를 위한 나의 몸부림』, 『나는 왜 아직도 그리스도인인가?』 등을 저술했으며 이 밖에도 강연이나 TV 대담의 동영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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