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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비판에서 신앙성찰로(1):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을 중심으로
글 · 파울로 연세대학교 신학박사(Ph. D.)

입력 Aug 04, 2021 07:15 AM KST

1. 서론: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 그리스도교의 자기 우상화 성향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미증유 재난 속에 한국 개신교회는 정부 당국의 비대면예배 지침에 따라 사상 초유로 예배당에서의 대면예배가 아닌 유튜브 등 방송 매체를 활용한 디지털 예배, 즉 비대면예배를 드리고 있다. 유행의 정도에 따라 예배당 출석 인원이 제한되고 완화되기를 반복하자 어느 교회는 선제적으로 비대면예배로 전환하는가 하면 또 다른 교회는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당국에 저항해 대면예배 지침의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기도 한다. 사태가 장기화되자 대면예배 강경파가 나와 정부의 방역 지침을 어겨가며 대면예배를 강행하는데 이들 중 일부는 온라인 예배자들을 일종의 배교자로 취급하며 정죄하기까지 한다. 예배당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만이 유일하고 참된 예배이며 온라인 예배는 참되지 않은 임시적인 예배이자 불완전한 예배에 불과하다는 의식이 이들의 종교적 심성에 똬리를 틀고 있기에 그렇다. 

예배당에서의 예배만이 유일하고 참된 예배라는 고착화된 의식은 급기야 예배당을 절대화 아니, 우상화하는 경향으로 나타나는데 그 심각성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가 결국 자기 신념 또는 믿음을 우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꼴, 즉 예배당에서의 형식적인 예배 전통 내지는 문화로부터 자유로우신 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익숙한 교회 전통 또는 관습으로 낯선 하나님을 길들이고 일상화 시키는 종교적 행위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처럼 종교적 안전성을 추구하는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이 그려낸 신을 가리켜 의심의 대가 포이어바흐는 "자기 투영의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일찍이 포이어바흐는 이러한 종교적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의 심성을 지성,의지,감정의 요소로 나누어 살피면서 믿음의 꼴로서의 종교 형식이 갖는 종교의 비밀을 누설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한국 그리스도교에서 변함없이 나타나고 있는 종교적 심성, 즉 자기 우상화 성향에 대해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적 통찰이 지니는 함의를 분석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변혁과 교회 개혁이라는 과제 앞에 실천 가능성을 담보하는 믿음의 길을 모색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2. 반종교 시대의 아들 포이어바흐의 자리매김

"신학은 인간학이다." 고·중세를 주름잡던 '있음'의 형이상학이 막을 내리고 인식의 주도권을 내세워 급기야 '앎' 주체가 신격화 되기까지 하는 인식론의 시대가 지나간지 오래다. 고대. 중세, 근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 비로소 '있음'과 '앎'의 지배 아래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던 '삶'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데 단연 그 중심에는 언제와 어디서로 구성된 누가, 즉 '살과 피'를 가진 육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연구가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형이상학에 대한 반동으로서 반형이상학의 기조를 띤 유물론의 대두였다. 이러한 유물론의 등장에 있어서 그 초점을 인간에게 맞추어 '인간학적 유물론'을 형성시킨 포이어바흐는 독일 고전 철학의 정점인 헤겔 철학에 도전해 새로운 철학의 여명을 밝혔으며 신학의 반성에 있어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헤겔의 '절대정신'이란 개념 속에 갇힌 신의 허상성을 환상이라고 주장한 그의 종교비판은 신 개념을 마치 신 자체로 착각하고 사는 당대 기독교인들을 헛된 망상에서 깨우는 선지자적 외침에 다름 아니었다. 포이어바흐의 이 같은 통찰은 오늘날 자기가 믿고 싶은 하나님과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 사이의 간극을 좁히다 못해 일치시키며 자기 우상화된 하나님과 성서가 가리키는 하나님을 혼동하고 사는 현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겠다.

포이어바흐의 새로운 철학의 목표는 헤겔이 자연을 절대정신의 외화현상으로 치부하는데 반기를 들고 오히려 자연, 존재, 물질을 기초로 철학을 재정립 하려는 데 있었다. 이는 헤겔 철학이 순수하게 사유에 기초한 철학이었다면 사유의 기초가 되는 자연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철학의 등장을 말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존재가 사유에 의존하는 헤겔 철학에 반동을 꾀하므로 도리어 사유가 존재에 의존한다는 새로운 철학의 기획이었던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의 유적 본질이 영원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이러한 본질을 절대화시킨 것이 신이라고 주장하는데 헤겔은 인간의 신에 대한 의식을 신의 자의식으로 말한 반면 포이어바흐는 오히려 신에 대한 의식이 인간의 자의식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말하자면 헤겔의 철학을 거꾸로 세우고 있는 셈이었다. 특히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은 기독교의 철학적 분석을 통해 관념론 위주의 기존 철학에 도전하는 동시에 기독교의 본질을 인간심성의 본질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통해 신학과 더불어 사변적인 종교철학까지도 포괄적으로 비판한다

이처럼 막스, 니체, 프로이트와 더불어 의심의 대가로 손꼽히는 종교비판가의 맏형격인 포이어바흐에게 당대는 물론이거니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조차 '교회 파괴자'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는 게 현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포이어바흐의 사상이 유신론과는 양립 불가능한 '유물론'에 기초해 무신론을 주장하고 있기에 그를 교회의 존립을 뒤흔드는 반기독교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와 철학의 통일을 꾀하며 합리화된 신학 체계를 완성하려는 헤겔 철학에 시종일관 반신학적 태도를 보인 포이어바흐가 펴낸 <기독교의 본질>이 기독교 비판서적으로 분류돼 일종의 금서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포이어바흐가 정신 보다 물질이 앞선다고 하고 '신은 인간의 자기대상화의 결과'라고 하니 그의 주장은 가히 신성모독으로 들렸을 법 하다.

그러나 필자는 포이어바흐가 '있음'과 '없음'의 구도로 엮어진 다분히 실체주의적 입장에서 신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논의를 새롭게 구성해 보고자 한다. 즉, '무신론자'라고 불리는 포이어바흐가 고전 형이상학의 테두리 안에서 신 존재 증명 따위를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포이어바흐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주요 연구 대상을 신이 아닌 신을 내세워 신 뒤에 숨은 인간으로 설정하고 인간의 심성에 관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그러면서 인간의 '살과 피'를 말하며 신체와 욕망의 문제를 꺼낸다. 이러한 중요한 키워드는 포이어바흐가 '있음'의 차원에서의 신 존재 증명 따위에 애당초 관심이 없었고 그의 연구의 주된 대상이 인간이었음을 웅변해 준다.

이에 필자는 포이어바흐가 말하는 신을 실체주의적 관점이 아닌 의미론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포이어바흐의 의도에 더 부합하다고 본다. 신의 존재 유무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철지난 고전적 무신론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차라리 신 부재 체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예언자적 외침으로 들을 때 그 진의가 드러날 것이라 전망한다. 포이어바흐는 신에 대하여 있음과 없음으로 판명이 되는 '무엇'을 묻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따지는 '왜'를 묻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포이어바흐는 '있는 그대로'의 신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인간이 믿고 싶어하는 신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결국 신 자체가 아닌 신에 대한 관념, 즉 신관을 말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살과 피'로 이뤄진 인간이 신체 특성상 제한된 조건, 즉 유한성을 넘어서려는 원초적 종교성에 기인해 무한을 동경하던 끝에 자기 욕망을 투영해 만든 것이 신이었음을 폭로하고자 함이었다. 이는 신관에 불과한 것을 신 자체로 여기며 자기무의식적으로 자기 욕망의 투영의 산물을 신이라고 호칭하며 자기 믿음을 우상화하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반성과 성찰의 기회마저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포이어바흐의 종교비판은 또 전통 형이상학에서부터 시작해 근대 칸트에 이어 헤겔에 이르기까지 독일 고전 철학의 관념론에서 신화처럼 떠받들어진 '같음' 혹은 '동일성'에 대한 '다름'의 반동으로도 새겨 볼 수 있다. 헤겔에 의해서 집성을 이룬 '있음과 앎의 같음', 다시 말해 사유와 존재의 일치로서의 인식론적 형이상학이 정반합의 변증법을 통한 자기동일성의 보편적 확장이라면 불가피하게 개체 인간의 '삶의 다름'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있음과 앎의 같음'으로서의 종교는 '삶의 다름'으로 엮어진 이 세계를 부정하고 '있음과 앎의 같음'이 그려내는 저 세계만을 바라보게 하는 유토피아적 허위의식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낳기에 이른다.

종교와 정치의 야합이 위험한 까닭은 이같은 허위의식이 피지배 계층으로 하여금 못 가진 자가 받는 억압의 상황을 숙명으로 포장하여 가진 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붙들린 못 가진 자가 스스로를 노예화 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지배 계층에 의해 종교가 가진 자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봉건잔재 청산을 바라던 포이어바흐는 이미 종교 이데올로기화된 헤겔의 '있음과 앎의 같음'으로서의 진리 추구에 반기를 들며 이러한 객관적 관념론이 현실과 괴리된 이상 내지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삶의 다름에 터해 갖가지 모순들이 부딪히는 현장으로서의 삶을 직시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이 글에서는 '삶의 다름'이 배제된 '있음과 앎의 같음'으로 설정된 종교 이데올로기의 비판과 더불어 인간 자신의 욕망을 종교적으로 포장해 신이란 이름 뒤에 숨어서 신이 아닌 인간 자기 자신을 절대화하는, 이른 바 인간의 자기우상화의 비밀을 누설하는 포이어바흐의 종교비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또 투사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포이어바흐의 종교비판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예배당 우상화를 비롯해 종교적인 허위의식으로 둘러싸인 고착화된 교리주의 등 종교 이데올로기에 침식된 오늘날 한국교회의 변혁을 위한 신앙성찰까지를 목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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