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쓰 목사에게 있어서, 토마스 목사가 순교한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선교의 사명감은 절대적이었다. 지금은 조선 왕실의 국금(國禁)에 의하여 길이 막혔지만,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건 처음부터 기독교를 받아드린 곳은 없었다. 그러나 주의 뜻을 따라 길을 찾고, 문을 두드리면 언젠가는 닫힌 문이 열릴 것이다. 그 날을 위하여 조선말을 배우고 성경을 조선어로 번역하려면 먼저 어떻게 해서든지 조선 사람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 그는 선교부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형제여, 우리에게 조선말을 가르쳐 줄 사람을 좀 만나게 해 주실 수 없을까요?”
“선교사님, 여기서 가까운 [고려문]이라는 곳은 조선인 인삼 장사꾼들이 많이 와서 중국 비단과 교역을 하고는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형제께서 그 곳에 가서 우리의 조선어 교사가 될 만한 조선 사람을 찾아주십시오. 우리가 응분의 사례를 해 드리겠습니다.”
“아, 예. 저희들이 알아보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중국인 몇 명이 고려문으로 가서 수소문하게 되었다.
의주 청년 이응찬(李應贊)은 한약재 상인으로서 고려문을 왕래하며 우리나라의 홍삼과 중국의 비단을 무역하였다. 자연히 그는 중국어도 배우게 되었다. 그는 생활방편으로 장사의 길에 들어섰으나, 학문에의 열의가 있는 청년이었다.
어느 날 이응찬이 장사할 물건을 배에 싣고 중국의 안동을 향하여 압록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기가 사나워지고 풍랑이 일기 시작하더니 결국 배가 파선되고 무역할 물건은 몽땅 잃어버린 채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 겨우 건너편 중국 땅에 도달하였는데 거기서 그는 한 중국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로쓰 목사에게 조선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받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응찬을 안내하여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가 상품을 몽땅 잃고 난감한 상황에 빠진 것을 알고 그를 권하였다.
“여보시오, 지금 영국 선교사 한분이 조선어를 배우기 위하여 조선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고 있소. 그분의 어학 교사가 되어보는 것이 어떻겠소?”
“아이구, 나야 지금 살 길이 막막해 졌는데 그러한 길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 그래요, 잘 됐습니다. 나를 따라 오시오. 내가 그분에게 안내하겠소.”
그렇게 하여 그는 로쓰와 매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요청에 의하여 그들의 어학교사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도 동양보다 발전한 서양 학문을 배우게 되었다. 로쓰 목사도 어느 정도 중국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의사소통은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응찬이 로쓰 목사에게 공부를 하다 보니 수학이나 물리, 화학, 지리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물안 개구리와 같아서 여지껏 알지 못하던 새로운 지식에 접하게 되어 말로 할 수 없는 만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드디어 조선말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응찬은 고향에 두고 온 부모처자에게 자기의 현실을 알리고 싶고, 보고 싶기도 하여 로쓰 목사에게 양해를 얻고 귀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향에 돌아오니 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이응찬이 선교사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니까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게, 응찬이. 그들은 나라에서 금하는 야소교(耶蘇敎)인이 아닌가? 그런 사람과 관계하다가 괜히 큰 일 날려구 그러나?”
“아니야, 염려할 것 없어. 우리가 야소교에 빠지지 않으면 됐지 뭘. 그리고 그분들이 가르쳐주는 학문은 여지껏 우리들이 알지 못하던 놀라운 세계를 알려줄 것이네.”
“그래 사실은 우리들도 여지껏 공자 왈, 맹자 왈 하고 공부해 왔지만 지금 다른 나라들은 놀라운 발전을 하고 있는데 그들을 따라가기에는 너무나 뒤떨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야. 우리들도 자네를 따라가서 그 새로운 학문과 세계를 접해보세.”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사람을 만드실 때에 몸은 흙으로 빚었으나 그 안에 하나님의 모습과 닮은 영을 불어 넣어 주셨다. 육신은 성장하기 위하여 밥이나 떡을 먹지만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의 양식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영혼이 없는 짐승은 영혼의 목마름이나 굶주림을 느끼지 못하지만 사람은 밥과 떡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진정 사람다운 사람이라면 영혼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느끼지 못한다면 참된 인간이 되지 못한다. 이들은 생계를 위하여 때로는 농사꾼, 때로는 장사꾼이 되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목말라 하던 조선의 젊은이들이었다.
이렇게 하여 그들 일행은 중국을 향하여 떠나게 되었다. 그들의 이름은 백홍준(白鴻俊), 이성하(李成夏), 김진기(金鎭基) 등이었다. 이들은 우장(牛莊)에서 3년간 영어와 서양 학문을 배웠다. 매킨타이어 목사는 이들에게 전도를 하려고 조급하게 서둘지 않았다. 그는 주님의 때가 이르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것을 확신하며 목마른 영혼들을 꾸준히 지도해 나갔다. 언어의 교재로써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작품을 읽을 정도 까지 이끌고, 또한 성경을 읽게 하였다. 그러는 중에 이 네 사람의 영은 서서히 눈을 뜨게 되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낮아가는 목자]
날이 가면 갈 수록 이들의 마음은 어떠한 감동이 일게 되었다. 그리고 두 선교사는 그 감동이 성령 하나님의역사임을 일깨워 주었다. 1876년 어느 날 김진기를 위시하여 한 사람, 한 사람 세례를 받았다. 이들은 소래 마을과 직접적인 관련이 적기 때문에 여기서 자세한 기록은 생략하지만, 이들은 이어서 이들과 합류하게 되는 [서상륜]과 함께 우리말 성서를 번역하는 효시(嚆矢)가 된다.
고려문 주변 참고도
글: 박종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