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교파들의 연합활동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돌봄 사역부터 시작해 대북지원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공동 협력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교파들의 연합정신. 그 근간엔 에큐메니컬 정신이 있었다. 에큐메니컬이란 말은 본래 그리스어인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비롯됐다. 신약성경에만 15회에 걸쳐 쓰인 오이쿠메네는 세계, 우주, 땅이란 뜻으로 여러차례 사용되기도 했다.
1910년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를 시초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에큐메니컬 운동은 우리나라에도 역시 영향을 미쳐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그 정체성을 형성해 갔다.
6일 에큐메니컬 운동의 권위자인 안재웅 박사(함께일하는재단 상임이사)를 만나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의 갈 길을 물었다. 안재웅 박사는 숭실대와 미국 하버드대 신학대학원, 장신대학원과 미국 에모리대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 안재웅 박사 ⓒ김진한 기자 |
안재웅 박사는 인터뷰 중 “에큐메니컬 운동을 ‘그리스도 몸의 한 지체’라는 기초위에서 이해해야 한다”며 에큐메니컬 정신의 각성을 촉구했고, 에큐메니컬 리더십 양성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 에큐메니컬 운동이란 무엇인가?
“갈라진 교파들의 교회일치와 갱신을 외치는 운동이라 하겠다. 교리를 내세워, 신학을 내세워 갈라진 교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자의식을 갖고, 연합하고자 하는 총체적인 활동을 일컫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더 나아가 교파들간 연합활동을 토대로 복음 전도, 즉 함께 선교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 것도 에큐메니컬 운동의 한 줄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밖에도 평화, 정의, 인권, 교육, 인종문제, 평등, 사회적 약자, 질병 등 각종 사회적 문제에 대해 교회가 함께 고민하고, 협력 방안을 찾아가는 것 역시 통전적인 의미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일 것이다”
- 에큐메니컬 운동이 한국교회에서 태동된 배경은?
“한국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시초는 1910년 에딘버러 대회에서 개최된 ‘세계선교대회’에 참가하면서 부터였다. 당시 피선교국 16명 중 우리나라 대표로 윤치호 선생이 참가했으며, 아시아 피선교국에서 온 대표들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의 교회나 피선교국의 교회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 하나이기에 우리 안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참석한 1,200명의 에큐메니컬 지도자들을 향해 당당히 외쳤다.
한국교회는 이처럼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의 시작과 그 출발을 같이했다. 이어 1948년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WCC 총회 참가했고, 1957년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기독교협의회인 CCA 창립총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세계기독교학생연맹 WSCF의 중요한 모임에도 여러 차례 참여하며 에큐메니컬 정신을 수용했다.
세계 대회에 참가했던 우리나라 대표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교회의 연합과 일치 활동을 벌였으며 이러한 활동을 기초로 한국적인 특수한 상황 속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정체성을 확립해 갔다”
- 한국교회의 초기 에큐메니컬 운동을 설명해 달라.
“초기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성서공회 등 초교파적인 연합기관을 결성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성경을 따로 따로 편찬하기보다 공동으로 번역하고 보급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성서공회의 운영이 에큐메니컬 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또 초교파적으로 학교를 세우고, 의료기관도 세우는 등 초기 이 같은 교회간 협력이 한국적 토양 속에서 에큐메니컬 씨앗이 배양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같은 연합과 일치의 노력의 결과물로 1924년 교단간 연합기구가 출범하게 되는 데 이것이 현재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다. 이 협의체의 결성은 향후 배양된 에큐메니컬 씨앗이 꽃을 튀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민주, 평화 통일운동에서 말이다”
“한반도 이념논쟁에 교회들도 역시 휘말렸다”
- 당시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인식은 어땠나.
“에큐메니컬 운동이 전 세계적인 네트워킹을 통해 탄탄대로를 걸을 수도 있었으나 당시 한반도 냉전 체제로 인한 이념 논쟁에 교회들 역시 휘말리는 바람에 큰 장애에 부딪히게 됐다. 당시 보수적인 교단들은 에큐메니컬 운동을 “용공”이라고 매도하며 이단시했다.
그러한 진통 끝에 NCCK에 가입한 교단 중 일부 탈퇴하는 교단이 발생하기까지 했다. 냉전 체제라는 상황 속에 교단들은 서로간 신학과 교리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하나 둘씩 분열되어 갔다.
특히 교단 분열에 있어 신학적 차이가 큰 영향을 끼쳤는데 다름아닌 복음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컬 신학의 대립이었다. 성경제일주의를 고수하며 정통신학임을 자부했던 복음주의 신학은 에큐메니컬 신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에큐메니컬 신학이란?
“에큐메니컬 신학이란 하나님, 인간, 자연을 가장 신학적으로 잘 표현해 낼 수 있도록 연구한 학문을 말한다. 에큐메니컬 신학의 근본 정신엔 인간과 자연의 고통을 함께 분담하는 ‘아파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등의 속성이 있다.
때문에 인간의 부정과 부패에 맞서는 혁명신학이라든지 고통의 신학, 희망의 신학, 세속화 신학, 평화의 신학, 생태계 신학 등 다양한 의제를 성경적으로 잘 다듬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 다듬는 일 또한 에큐메니컬 운동의 성격을 띈다. 서로 다른 신학적 배경을 가진 신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아파하는 과정을 거쳐 가장 중심을 이루는 주장들을 잘 다듬어 신학적 체계를 만들어 나갔다.
에큐메니컬 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이러한 신학의 흐름은 한 때 시대적으로 각광을 받았던 민중·해방 신학, 정치신학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에큐메니컬 신학은 이슈 중심의 신학”
- 현재 한국교회에서 에큐메니컬 신학은 복음주의 신학에 비해 비중있게 다뤄지지 못하고 있는데.
“에큐메니컬 신학이 이슈 중심의 신학이기 때문에 그 속성상 한 때 각광을 받기도 하지만 한 때는 조명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들쑥날쑥한 신학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적인 과제에 발 빠르게 대응해 시대의 특수한 상황에 맞는 신학을 창안해 내는 과정은 에큐메니컬 운동의 흐름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기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민중신학을 보라. 80년대 민주화 운동당시 일각에서 큰 성장을 보였다가 90년대 들어선 잠잠해졌지만 요새 다시 집중 재조명 되지 않는가?”
- 에큐메니컬이 이슈 중심이라 했는데, 현재 필요한 에큐메니컬 신학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생태신학이다. 지구 온난화 문제 등 환경 문제는 인류가 초래한 전 지구적 위기이며 이에 대한 한국교회적 차원의 문제의식 공유가 시급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개교회 성장에만 관심이 있지 이러한 녹색 운동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에큐메니컬 신학자들이 하루 빨리 생태 신학의 체계를 수립하고 확산시키는 일을 통해 한국교회가 한국사회 나아가 전 지구적 공동의 문제를 안고 씨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한국교회 내 에큐메니컬 운동을 저해하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교회가 개교회주의라는 병에 걸려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때문에 그리스도의 한 지체인 에큐메니컬 운동을 마치 지체 밖에 있는 것처럼 취급한다. 에큐메니컬 연합기구가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한국교회는 당장 이윤을 낼 수 없는 ‘에큐메니컬 운동 지원’이라는 모험을 기피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전폭적인 지원은 향후 에큐메니컬 지도력 양성에 큰 기여를 할 것이며 에큐메니컬 리더들은 교회와 사회 등 각자의 영역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며 교회가 못하는 사회적 책임을 도맡아 할 것이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은 결국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신뢰도 회복에도 기여할 것이며 복음 전도, 선교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외국의 교회들은 교회와 선교회의 사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교회가 선교회를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는 체계를 수립해 왔다. 때문에 서방의 선교국들은 이러한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선교사를 양육하고, 각 선교지로 파송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선교회와 역할 분담 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실정이다. 때문에 교회는 비대해지고, 그에 비해 선교회는 축소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생각해 볼 때 젊은 리더들의 양성을 위해서라도 교회와 선교회의 역할 분담 그리고 교회의 선교회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 한국교회에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한국교회가 시대적 사인(sign)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대적 사인에 따라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기 주장만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낡은 이데올로기, 낡은 사상, 낡은 이념의 옷을 갈아입고, 새 시대에 맞는 옷을 걸쳐 입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안재웅 박사(68)는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총무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을 역임했고, 홍콩에 주재하면서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 아시아 태평양지역 총무와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무를 역임하는 등 평생을 에큐메니컬 운동에 종사하고 정년 은퇴했다.
현재 (재)함께일하는재단 상임이사로 있으며 호서대학교 초빙교수로 『에큐메닉스』 『아시아교회와 선교』 『비교종교론』 『한국교회와 사회』 등의 과목을 맡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바른 선교를 위한 제언』, 『God in Our Midst, God Who Matters』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농민신학』(Charies Avila), 『제3세계와 인권운동』(Linda H. Jones), 『신을 기다리며』(Simone Well)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