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과 섭리를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사회」 여름호에 발표한 논문 '이야기로 그려내는 섭리와 자유'에서 가톨릭 교인이기도 한 톨킨의 작품 세계에서 나타나는 신의 섭리와 그것이 현실 세계에 던져주는 의의에 대해 소개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톨킨은 작품 세계를 통해 나름의 문범을 갖춘 "다른 세상"(Other World)을 만들었다. 톨킨이 동원한 창조 수단은 "요정 이야기"였으며 이 특이한 세계에서 마법 혹은 마술을 수단 삼아 현실적 가능성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 존재의 심연에 감추어진 내밀한 열망 혹은 욕망을 드러냈다.
권 교수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톨킨에게 있어 "요정 이야기"의 핵심은 "행복한 결말과 위안"이다"라며 "그가 "선-파국"(eu-catastrophe)이라 부르는 "갑작스러운 반전"에 감명받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경험은 그에게 있어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럽고 기적적인 은총"인데 이 선-파국은 "슬픔으로 채워진 세계의 벽을 넘는 기쁨(joy)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복음(evangelium)"으로 다가온다"고 밝혔다.
톨킨이 초월적 섭리는 이 세계 내의 존재가 바꿀 수 없다는 "전통적" 섭리 사상을 견지하고 있다고 보는 권 교수는 이어 『반지의 제왕』에서 톨킨이 창조한 '중간계'(the Middle-Earth) 역시 "창조자의 섭리로 지탱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창조 계획 초기부터 악한 발라 멜코르가 집요하게 반항하며 창조 및 창조계 유지에 심각한 긴장과 왜곡을 야기한다"며 "하지만 멜코르가 아무리 자기 음악을 고집해도 궁극적으로 절대자의 생각에서 나오지 않은 음악은 그 어떤 것도 연주될 수 없다. 절대자의 창조와 섭리를 방해하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더욱 깊고 웅장한 음악을 만드는 과정으로 용해될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명시적 종교는 없지만 종교적 색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반지』의 세계를 일컬어 "자연신학의 일신론적 세계"(a monotheistic world of 'natural theology)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도적 종교 이전이라는 점에서 먼 세계 같지만, 신의 섭리가 숨어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지』 속 선악의 투쟁 이야기는 마치 오늘 우리의 종교적, 신앙적 물음과 잘 공감한다"며 "이 작품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인기는 이런 판단이 빗나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권 교수는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반지』의 서문(Prologue)에서 톨킨이 말하듯, 빌보와 프로도 같은 무명의 호빗이 갑자기 중요한 인물이 된 것은 결코 "그들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었다. 사태를 주도하는 주인공은 따로 있는 것이란 설명이다. 그 역할도 제한적이다. 톨킨 자신의 설명처럼, 프로도는 우리의 찬탄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역할은 반지를 운명의 산으로 운반하는 데서 끝난다.
권 교수는 "이처럼 『반지』에서 신은 한 번도 이름이 불리지 않지만, 늘 거기 있다"며 "오이디푸스에게 작용하는 맹목적 "숙명"과 달리,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 선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인격"(one ... Person)이다"라고 전했다.
톨킨의 작품 세계에서 나타나는 악을 이기는 신의 섭리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권 교수는 "이 작품은 전체가 선과 악의 치열한 투쟁 이야기다. 게다가 종종 선한 이들은 하릴없이 가공할 악의 위력에 휘둘린다. 비평가들이 자주 지적하는 것처럼, 그래서 이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는 암울하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사우론의 초월적 악은 중간계 거주자들만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악의 상징물인 절대 반지는 사루만이나 간달프처럼 가장 강하고 지혜로운 자조차 타락시킬 수 있다"며 "이런저런 국지적 전투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맛보기도 하지만, 최종적 승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기든 지든, 아름답고 멋진 것들은 사라질 것이다. 사우론은 치명타를 입어도, 그 악을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다. 결정적 패배 후에도 샤이어를 망가뜨리는 사루만에게서 보듯, 선의 승리는 그야말로 "상처뿐인 영광"처럼 보인다"고 부연했다.
『반지』의 세계관, 비극적 숙명론과는 달라
하지만 『반지』의 세계관은 비극적 숙명론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는 "악의 위력은 생생하지만, 종국에는 파멸할 것이다. 사실 악의 군주 사우론은 몸 없이 불타는 눈으로만 존재한다. 반지 악령들 역시 몸을 상실하고 "무"(nothingness)로만 존재한다"며 "악의 행동대원들인 오크는 건강한 종족들의 사악한 패러디다. 건강했던 스메아골은 반지의 힘에 눌려 골룸이라는 비존재로 쪼그라든다. 사우론의 파괴력은 대항 불가 수준이지만, 악은 특유의 오만 속에서 치명적 약점을 드러낸다. 악에 대한 톨킨의 이런 묘사들은 악을 선의 결핍 내지는 왜곡으로 이해하면서, 어떤 악도 신의 섭리를 피할 수 없다고 보았던 어거스틴 혹은 톨킨의 동료 루이스(C. S. Lewis)의 관점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톨킨은 "악이 선에 저항하고 선을 왜곡하지만 끝내 악이 신의 선한 섭리를 이길 수 없다고 믿는 일원론자다"라는 설명을 보탰다.
『반지』에 나타난 섭리와 자유의 대립과 갈등 상황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권 교수는 "『반지』 속에서도 다양한 수준과 모양으로 악이 위세를 떨친다. 따라서 이 세계 내 존재의 자유는 그 나름의 욕망과 공포에 뒤틀린다"며 "선한 뜻에 복종하며 이를 위해 자기 지혜를 발휘하는 발라르도 있지만, 자기 음악을 고집하며 신의 계획을 거슬러 불협화음을 만드는 멜코르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신의 섭리는 심지어 유한한 존재의 실수나 실패조차도 그 넓고 복잡한 무늬 속으로 받아들이며 궁극적 그림을 완성한다"고 밝혔다.
초월적 부름과 순종의 대명사인 프로도라는 인물에 대해 소개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는 "어쩌다 반지를 받기는 했지만, 그는 이 무서운 반지는 일개 호빗에 불과한 자기 능력을 벗어난다고 느낀다"며 "그러면서도 내내 "늘 예견했지만 끝내 피하고 싶었던 어떤 운명(some doom)의 선고"를 기다리는 듯 두려움에 시달리다, 결국 그 임무를 자청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반지』 초월적 부르심에 무게 중심을 둔 나머지 자유의지를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이러한 자유로운 선택의 원리는 다른 존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분석하며 "이런 점에서 『반지』가 그려내는 섭리는 오이디푸스를 정해진 운명으로 마구 몰아가는 결정론적, 비극적 숙명과 다르다. 갈라드리엘의 거울은 개인의 운명을 비춰주지만, 이는 아무리 피하려 해도 성취되고 마는 결정론적 미래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 밖에 『반지』가 자유로운 결단을 돕는 신의 섭리를 보여주고 있다고도 했다. 권 교수는 "성서적으로 은총과 겹치는 "선물"(gift)이라는 단어의 선택은 섭리를 말하려는 톨킨의 의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탈진 상태에서 프로도를 업는 불가능한 시도를 감행하는 샘처럼, 이런 특별한 "요행"은 도덕적 허공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며 "인과적 추론을 넘어가지만, 섭리의 손길은 늘 자기 임무를 받아들이는 결단의 상황, 적대적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조차 이를 수행하려는 선한 의지의 투쟁 속에서 그 존재감을 발휘한다"고 전했다.
이 대목에서 프로도가 손에 반지를 껴서 보르미르의 탈취 시도를 물리치는 장면도 곱씹었다. 손에 반지를 끼자 반지의 주인인 사우론의 의식에 포착된 프로도는 그를 향해 다가오는 "눈"(the Eye)에 압도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우론의 목소리에 잠식당하고 있는 그 순간 "다른 어떤 힘의 원천으로부터" 번쩍이듯 "또 다른 생각"이 그의 마음을 찾아오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사실상의 정신적 포로 상태에서 요행처럼 찾아온 섭리의 "목소리"는 사우론의 강력한 "눈"과 대결을 벌이며,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도덕적 비무장지대를 만든다. 이렇게 프로도는 자신의 의식을 되찾고, 자유로운 행동 주체가 되어 반지를 빼는 결단을 내린다"고 전했다.
이처럼 『반지』에서 나타는 섭리는 "개인의 자유를 무력하게 만들거나 이를 왜곡하지 않는다"며 "톨킨에게 있어서 신의 섭리는 개인의 자유와 경쟁하는 원리가 아니라 철저히 그 자유를 존중하며 그 자유와 더불어 작용하는 신비다"라고 주장하며 권 교수는 글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