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늘 말하듯이 그리스도교에서의 예수는 우리를 대표합니다. 천직에 순직(殉職)한 자는 장소 여하를 불문하고 교리가 있건 없건 독생자로서 십자가를 진 사람입니다. 결코 편협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만 ‘외아들’입니까? 하나님의 씨를 타고나, 로고스 성령이 ‘나’라는 것을 깨닫고 아는 사람은 다 하느님의 독생자(獨生子)입니다…내가 독생자, 로고스, 하느님의 씨라는 것을 알면, 그러니까 이것에 매달려 줄곧 위로 올라가면, 내가 하늘로 가는지 하늘이 나에게 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늘나라가 가까워집니다. 영생을 얻는 것이 됩니다. 사람마다 이것을 깨달으면 이 세상은 영원히 명망하지 않습니다. 영원을 영(靈)으로 보면 참 사랑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독교 정통교리에 입각해 볼 때 도가 지나칠 정도로 예수의 신성을 끌어내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 글들은 모두 다석강의, 다석일지 등에 기록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다석의 생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성령을 받은 예수가 메시야가 되었듯이 성령을 받은 우리도 메시야가 될 수 있다는 과격한 주장을 한 다석. 그의 그리스도관을 집중 분석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11일 올해 첫 씨알사상 월례모임에 강사로 나선 정양모 신부(다석학회 회장)는 ‘다석 유영모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했나?’는 다소 어려운 주제로 다석의 그리스도론을 살펴보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 11일 씨알재단이 주최하는 씨알사상 월례모임에서 정양모 신부가 강의하고 있다 ⓒ베리타스 |
다석은 신약성경에 따라 성령을 하나님의 신령한 기운으로 이해하고 순수 우리말로 얼, 어김, 얼줄이라고 불렀다. 정양모 신부에 따르면 다석은 성령을 받아 사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라고 했고, 예수 뿐 아니라 예수처럼 사는 신앙인들도 전부 그리스도라고 했다.
이것만 해도 예수의 인성만이 아닌 신성도 동시에 강조하는 기독교 정통 교리 입장에선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인데 다석은 한술 더 떠 “예수의 죽음을 대속의 사건이 아니다”라는 주장까지 했다.
다석은 그의 글에서(다석강의 732∼733쪽)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건을 “천직에 순직한 자”라는 표현을 인용해 가며 누구든 “천직에 순직한 자는 교리가 있건 없건 독생자로서 십자가를 진 사람이다. 결코 편협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이밖에도 다석은 ‘독생자’ 예수를 부인하기도 했다. 다음의 글에서 잘 나타난다. “그런 예수만 ‘외아들’ 입니까? 하느님의 씨를 타고나, 로고스 성령이 ‘나’라는 것을 깨닫고 아는 사람은 다 하느님의 독생자입니다…”(다석일지 848쪽)
이 같이 다석의 예수 그리스도관을 짚어 본 정양모 신부는 준비해둔 촌평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예수는 얼 사람이다”라며 얼 사람 모두를 그리스도라고 했던 다석의 그리스도관에 정양모 신부는 “(성령을 일컬어 얼, 얼줄, 얼김 등)이런 표현들은 죄다 사람 깊숙이 내재하는 신성(神性)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다석은 사람 속에 있는 신성의 깨달음을 강조했다. 이는 마음공부를 역설한 동양사상과 잘 어울리는 반면, 죄와 속죄를 상론하는 서구신학과는 거리가 있다 하겠다”고 했다.
이어 “예수의 죽음은 대속죄 사건이 아니다”라는 다석의 주장에 대해 “온 인류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대신 속죄코자 예수께서 죽임을 당했다는 선심은 오늘날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정양모 신부는 전했다. 그는 특히 속죄와 관련, “수세기 동안 교리를 위해 강조해 온 ‘집단인격사상’은 현대 이르러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정양모 신부는 “(기독교 정통교리에는)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또 한 조상 예수는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니고 집단인격이라는 사상이 전제되어 있다”며 “집단인격사상 때문에 아담의 죄벌과 예수의 대속이 온 인류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러나 한 세기 전만해도 곧잘 먹혀들어가던 집단인격 사상이 개성을 중시하는 오늘날에는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끝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다”는 다석의 평에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너무도 존경하고 사랑한 나머지 그를 신으로 추대했겠지만, 지나친 공경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다석은 생각했을 것”이라며 “이제나 저제나 그리스도인들 절대 다수는 다석의 이처럼 대담한 예수 이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거니와 앞으로 세계 신학계와 종교학계는 다석에게 점점 더 주목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