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감신대 교수 ⓒ베리타스 DB |
본지가 미리 입수한 발제문에 따르면, 이 교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종교의 두 집단은 이념에 따른 정책 문제로 대립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고 주장한다. 통일정책(흡수통일/연방제통일), 경제정책(성장/분배), 복지정책(선별적 복지/보편적 복지), 환경경책(개발/보존), 교육정책(규제/자율) 등 모든 정책에서 종교적 보수·진보 집단이 대립각을 세우며, 사회 양극화 현상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정책 등이)서로 다르면 다른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틀린 것이기에 이들 집단 사이에 중도 통합의 길이란 찾기 어려웠다. 이러한 두 집단의 양상에 대해 이 교수는 "모든 정책에 있어 우파/좌파의 이념적 구도로 양극화되면서 중도 통합의 입지는 사라져 버렸다"며 "서로 다른 것을 서로 틀린 것으로 규정하며 조화와 타협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분열된 이념논쟁과 대립구도가 바뀌어야 할 때"라며 "한국 종교는 보수-진보를 떠나서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 바른 정치가 이뤄지도록 하는데 종교가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들 종교 집단들이 이념 논쟁에 휘말리지 말고, 사회에 그리고 정치에 종교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 아래 머리를 맞댈 것을 당부했다.
"보편적 가치의 핵심이란 무엇인가"라고 자문한 이 교수는 "그것은 바로 도덕적 가치와 공동체적 가치"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위기가 도덕성과 공동체성의 붕괴로 인한 것이라면 정치가 도덕성과 공동체성의 회복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종교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종교 자체도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종교들 앞에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정치적 민주화였다. 이 교수는 "한국 종교들은 우선 위정자를 바로 뽑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며 "부정과 비리와 연루된 정치인을 제대로 심판하려는 강한 의지와 행동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헌법에 명시된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로 경제적 문제를 들었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분배 과정에서 소외되어 빈부격차가 심화되었고 이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다"면서 "무엇보다 비양심적이고 부도덕한 기업들이 기업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정당하고 공정한 게임 룰이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셋째로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사회 문제에 종교 집단이 목소리를 낼 것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급격한 사회변동은 아노미 상황을 초래해서 범죄문제, 청소년문제, 가족문제, 노인문제, 노동자문제, 농민문제, 도시빈민문제 등 많은 사회문제들이 생겨났다. 또 계층, 지역, 이념, 노사, 세대 문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갈등이 팽배해 있다"면서 "어느 때보다 공동체성이 요구되는 사회앋. 한국 종교들은 하나 되어 정치가 우리 사회를 통합하고,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넷째로 문화적 성숙 과제를 들었다. "규범문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이 교수는 "요즈음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는 돈에 집착하는 물질주의"라며 "이러한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 가치관은 사람들로 하여금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돈 벌고 신나게 쓰자고 하는 한탕주의, 편법주의, 요령주의, 향락주의 빠져들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가진 자들, 힘 있는 자들의 부도덕성은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정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한국 종교들은 하나 되어 정치 자체가 도덕성을 유지하며, 나아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와 규범 확립에 기여할 수 있도록 촉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통일과 관계된 민족 문제를 제시했다. 이 교수는 종교적 보수집단과 종교적 진보집단이 무엇보다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이 통일 문제에 대해 "먼저 양 극단, 즉 종북주의와 종미주의를 모두 배격해야 할 것"이라며 "그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해결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특히 "양극화된 두 입장의 접합점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북한의 체제와 북한의 주민은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했으며, "우선 굶주린 우리 동족을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