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종교란 자라는 생목(生木)이지 궁궐 같은 실재 아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한겨레 특별기고서 전해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본지 자문위원) ⓒ베리타스 DB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삭개오작은교회 원로, 본지 자문위원)가 "종교란 자라는 생목(生木)을 닮은 실재이지 원형대로 보존할 궁궐 같은 실재가 아니다"라며 종교동굴에 갇힌 종교인들에게 동굴 밖으로 나올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최근 한겨레에 기고한 ‘궁궐과 동굴에 갇힌 종교를 넘어서’란 제목의 글에서 "종교인이 종교라는 궁궐에 익숙해지면 사실 아닌 것을 믿게 되고, 종교동굴에 갇히면 사실을 믿지 않게 된다"며 이 같이 전했다. 그러면서 "사찰이나 성당 밖에서 오히려 종교가 무엇인지 더 잘 보일 때가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 시대 종교가 할 일들로 △앞선 이들의 헌신과 희생이 삶의 퇴비가 되어 흙과 섞인 골짜기에 삶의 뿌리를 내려 자란 꽃들이 오늘을 사는 너와 나의 생명임을 깨닫게 해주는 일 △영글어 가는 자기 생명에 감사와 긍지를 지니면서 동시에 자기는 뒤따라오는 후속 생명의 밥과 꿈이 되어주는 ‘생명의 징검다리’임을 깨닫게 하는 일 이라고 확인했다. 이러한 삶의 진실 앞에 가방끈이 길고 짧은 것은 문제될 것이 없고, 이를 못 깨달으면 사람이 아닌, 짐승 상태에 머무를 수 밖에 없음도 덧붙였다. 
 
이러한 종교의 할 일들을 망각한 채 성장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일부 종교인들을 가리켜 그는 "종교란 심층을 문제 삼기 때문에 달리 보면 큰 누에고치 짓기에 불과할 수 있다"면서 "시대정신에 해당하는 신선한 공기와 햇볕이 드나들지 않으면 누에고치는 누에나방으로 변신하지 못하고 번데기와 명주실감 신세로 귀착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연장선 상에서 자기 과시욕에 물든 우리 시대 종교를 향해 질타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현대 종교의 위기는 철저한 고독과 내면적 신실성을 대신해주는 구원보장 보험회사가 되려는 유혹에서도 연유한다"면서 "문이 크고 그 길이 넒어 찾는 자가 많은 종교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종교가 아니라고 복음서는 경고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참된 종교일수록 고독을 가까이 한다는 말이었다.
 
더불어 문자주의 신앙관 그리고 종교의 위선에 대한 입장도 나타냈다. 김 교수는 먼저 전자에는 "‘복음주의적 정통보수 기독교’라고 자처하는 부류는 성경과 교리 안에 하느님을 유폐시키거나 독점하고 자신들도 ‘기독교 동굴’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후자에는 "오늘의 종교들이 굶주리거나 쓰레기통을 뒤지는 지구촌의 수많은 아이들을 돕는다고 쥐꼬리만큼의 ‘적선’을 하고서 종단 중흥사업과 개별 교회 부흥에 더 많은 돈과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결국 종교의 거룩한 위선이고 자기기만이며 큰 도둑질과 다름없다"고 일갈했다. 
 
끝으로 종교를 생목으로 비유한 진짜 이유와 관련해 김 교수는 "생명 있는 것은 변화하면서 자라는 법이다. 생물체만이 아니라 종교도 창조적 진화를 하는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며 "생명의 특징은 지속하면서도 새로움을 경험하고 질적 도약을 감행한다는 점이다. 이웃 종교들과 다양한 학문들로부터 겸허하게 배우면서 변화하는 용기를 지닌 종교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품위를 유지해갈 것"이라고 확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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