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포스터 |
우리나라에서도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적 있는 이 영화는 22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3월 6일,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선명한 화질로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다. 미국 몬태나 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감미로운 배경음악, 장로교 목사였던 작가의 신학적 성찰이 드러난 스토리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과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진리의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영화는 1900년대 미국 몬태나 주를 배경으로 한적한 시골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장로교 목사 리버런드 맥클레인(톰 스커릿 분)과 그의 두 아들 노먼(크레이크 셰퍼 분)과 폴(브래드 피트 분)을 중심으로 낚시와 종교를 통해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인생사와 가족애를 그려냈다.
원작의 작가와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서 목사로 등장하는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설교와 낚시를 통해 청교도 특유의 금욕주의적이고 경건한 삶을 강조한다. 아버지와 두 아들이 울창한 숲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빅블랙풋 강에서 낚시를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白眉)이자 대자연의 모든 섭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의 상징이기도 하다.
노먼과 폴은 아버지에게 낚시를 배우며 돈독한 형제애를 쌓아가지만 이내 시간이 흘러 아버지를 떠나 독립을 하게 된다. 신중하고 지적인 노먼은 명문대에 진학해 고향을 떠나게 되고 자유분방하고 모험적인 폴은 고향에 남아 지역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게 된다. 폴이 대학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형제는 서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삶에 마주치게 된다.
노먼은 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백인여자와 풋풋한 사랑을 하는 와중에 시카고대 영문학 교수에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지만 폴은 그 당시 백인사회 정서상 허용될 수 없었던 인디언 여자와 사귀며 도박판을 전전하다 결국 괴한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버지에게 “인간의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고 그를 영원히 즐겁게 하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받고 각자의 길을 떠난 두 아들의 대비되는 삶과 그 최후는 아버지에게 깊은 깨달음의 계기이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아버지의 죽기 전 마지막 설교는 작가의 신학적 성찰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일생의 한 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에 처한 걸 보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기꺼이 돕겠습니다. 주님!’
그러나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돕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무엇을 도와야 할지도 모르고, 때로는 그들이 원하지도 않는 도움을 줍니다.
가족들 간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랑합니다.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영화 속의 인물 폴과 노먼이 어린시절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빅블랙풋에서 낚시를 하며 우애를 다지고 있는 장면. ⓒ<흐르는 강물처럼> 스틸컷 |
죽은 아들을 향한 그리운 마음과 애틋한 심정을 뒤로한 채 설교에서 자기고백을 드러낸 아버지는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이 영화를 명작의 반열로 올려놓은 대사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는 함축적이면서도 절제된 언어로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나타낸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와 폭을 미력하게나마 깨달은 아버지가 설교를 통해 자신의 성찰을 드러냈다면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노먼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홀로 빅블랙풋 강에서 낚시를 하며 인간의 ‘삶’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고백한다.
“결국 하나로 녹아들고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것 같다.
강은 대홍수로부터 생겨나서 태초의 시간부터 바위 위로 흘러간다.
어떤 바위 위에는 영겁의 빗방울이 머물고 또 그 바위 밑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서 그 말씀이 곧 그들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난 그 강물에 넋을 잃고 마는 것이다.“
노먼과 폴에게 빅블랙풋 강은 어릴 적 아버지에게 자연의 섭리를 배운 장소이자 서로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같이 낚시를 하며 깊은 가족애를 나눈 장소이기도 하다.
강물은 거슬러 올라가지도 않으며 강물의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강물은 그저 길을 따라 흘러갈 뿐이다. 하나가 되어 흘러가는 강물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세월이 흘러 이것이 역사가 된다는 노먼의 성찰은 인간의 ‘삶’이 하나님의 뜻하신바 안에 내재되어있음을 의미한다.
22년 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빅블랙풋 강의 수려한 경관을 스크린에 담아내고 잔잔한 선율과 함께 작가의 신학적 성찰을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풀어낸 <흘러가는 강물처럼>은 명작에 걸맞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원작의 제목 “A River Runs Through It”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보며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성찰해본다.
글/ 이가람(연세대 신과대학 4학년)·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