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는 장면. ⓒ<선 오브 갓> 스틸컷. |
왜 이 시점에서 예수일까? 크리스토퍼 스펜서가 연출한 <선 오브 갓>을 보면서 든 의문이다.
영화는 사도 요한의 입을 빌어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그린다. 영화가 그리는 예수의 생애는 복음서에 기록된 연대기와 거의 일치한다. 사실 오랫 동안 교회에 출석했다면, 아니 기독교 신앙 유무를 떠나 영화가 그리는 이야기는 너무 익숙해 식상할 정도다.
영화적으로 볼 때, 빛의 감각적인 사용,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운명할 때 그의 입과 눈을 클로즈업 한 대목은 인상적이다. 다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서른 세살의 아들을 가진 여인 치고는 너무 젊고 예쁘다는 점은 눈에 거슬린다.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하게 새로운 점이라면 예수의 죽음에 대한 해석이다. 연출자인 크리스토퍼 스펜서는 예수의 신병처리를 놓고 당대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로마 식민 당국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오고 간 것으로 묘사한다. 특히 로마 식민총독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묘사는 사뭇 파격적이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오병이어 사건을 일으킨 현장. ⓒ<선 오브 갓> 스틸컷. |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등 네 명의 복음서 기자들이 남긴 공관복음서에 따르면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놓고 심한 갈등에 휩싸인다.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빌라도의 내적 갈등을 섬세한 필치로 그린다. 그러나 이 영화 <선 오브 갓>이 그리는 빌라도 총독은 무자비한 로마 관리다. 유대인들이 로마의 세금 수탈에 항의해 폭동을 일으키려 하자 그는 군을 투입해 이를 간단히 진압한다. 그는 이어 바리사이파 수뇌부를 집합시켜 예수가 혼란을 일으키면 유월절 축제 자체를 원천 봉쇄하겠다고 으름짱을 놓는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보다 구체적이다. 이들은 예수가 설파하는 복음이 못마땅하다. 더구나 그와 그를 따르는 군중들이 그를 구세주(메시아)라고 칭송하는 건 신성모독이라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한다. 이들은 예수가 무수한 군중들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결국 그를 없애기로 결정한다.
영화에서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한 이유를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공관복음서의 기록을 볼 때,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를 눈엣 가시처럼 미워했지만 그를 죽이기로 한 배경은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예수의 죽음, 바리사이파와 로마 사이의 거래 결과
▲무자비한 인물로 그려진 빌라도 총독이 예수 사건과 관련해 군중의 뜻을 묻고 있다. ⓒ<선 오브 갓> 스틸컷. |
지금까지 기독교에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악과 동일시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역설적으로 믿음이 뛰어나고 학식도 풍부하며 율법에 정통한 부류였다. 이들은 로마의 패권을 등에 업고 이방문화(헬레니즘 문명)가 확산되는 데 맞서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다. 이에 이들은 야훼의 율법을 연구하고 이를 적용시켜 유대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 계승해 나가려고 노력했다.
이들이 그간 축적한 성서 지식으로 볼 때 예수는 야훼가 보낸 메시아가 아니었다. 따라서 예수가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한 건 대단히 불경스러웠던 일인 셈이다. 영화는 이런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고들어간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로 인해 예루살렘이 혼란에 빠지면 성전을 폐쇄하겠다고 경고한다. 이러자 가야바를 비롯한 바리사이파 수뇌부는 우려를 금치 못한다. 성전을 폐쇄하면 유대민족의 고유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예수가 메시아라는 증거도 없었다. 이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를 잡아 들여 빌라도 총독에 넘긴다.
빌라도는 그의 처리를 놓고 고심한다. 그를 심문한 결과 꼭 죽여야 할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워낙 강경했다. 이들이 동요하면 자신의 통치권이 흔들릴 것 같았다. 이에 빌라도 총독은 형식적인 동의절차를 거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기로 결정한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 ⓒ<선 오브 갓> 스틸컷 |
영화가 그리는 예수 심판의 과정은 복음서와는 사뭇 거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가 공생애를 보냈던 당시 로마 식민통치가 복음서의 기술만큼 신사적이지 않았으며,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보다 더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예수 죽음을 둘러싼 막후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영화는 무난한 편이다. 무엇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그려졌던 고난의 표현수위가 많이 낮아진 점이 다행스럽다.
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보자. 왜 이 시점에서 예수인가?
사실 예수는 유대계 자본의 입김이 센 영화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였다. 특히 헐리웃은 꾸준히 예수, 노아의 대홍수, 삼손, 다윗과 골리앗 등 성서의 전승을 시대 마다 새로운 해석을 곁들여 스크린으로 옮겼다. 이 영화 <선 오브 갓>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이다. 특히 올해는 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성서 소재영화들이 속속 쏟아지고 있다. 러셀 크로 주연의 <노아>가 지난 달 개봉했고, 마리아를 주인공으로 한 <마리아-그리스도의 어머니(Mary, the mother of Christ)>가 올해 성탄절에 맞춰 개봉될 예정이다. 또 헐리웃 미남스타 브래드 피트도 빌라도 총독을 다룬 영화에서 타이틀 롤 빌라도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십자가에서 운명한 예수를 내린 뒤 슬퍼하는 마리아. ⓒ<선 오브 갓> 스틸컷. |
이런 움직임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헐리웃은 역사상 기념비적인 사건을 새로운 시대 흐름에 맞게 재현하고 이를 통해 이 사건들이 역사에서 갖는 의미를 늘 되새김질 하게 했다. 최근의 흐름에 논의를 한정시키면, 성서 소재 영화들의 잇단 개봉은 '교회' 혹은 '신앙공동체'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자칫 정체되기 쉬운 신앙관을 다듬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노아> 개봉 이후 영화 해석을 둘러싸고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진 것이 좋은 예다.
한 번 돌이켜 생각해보자. 신앙생활 가운데 한 번이라도 예수가 어떻게, 그리고 왜 죽음을 당했는지 의문을 제기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무작정 바리사이파는 나쁘고 예수는 옳다는 단순 이분논리에 매몰돼 있는 건 아닌가를. <선 오브 갓>은 이런 의문을 품게해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볼 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