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과 만찬을 갖는 예수(오른쪽에서 두 번째)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스틸컷. |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 이래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뮤지컬 등등 모든 장르를 망라해 예술에서 중요한 주제로 각광(?) 받아왔다. 가히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라 할 만 하다. 가장 최근에 예수를 주제로 한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멜 깁슨이 연출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일 것이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주인공인 짐 카비젤(Jim Cavizel)의 이니셜이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와 똑같다고 해서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활절 즈음해 개봉 상영됐고, 각 교회에서 단체관람이 쇄도했었다.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은 그때나 지금이나 무섭다. 영화 초반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군 병사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다. 여기까진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 예수가 로마군에게 심문당하는 장면부터 잔혹성은 두드러진다. 갈퀴가 달린 채찍에 맞아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은 지금 돌이켜 봐도 불편하기만 하다. 아마 보통 사람 같았으면 그 정도 고문에 벌써 명이 끊어졌을 것이다.
십자가 처형 장면은 잔혹함의 극치다. 예수의 손에 큼지막한 못이 박히고 이내 십자가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아마 이 영화만큼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리얼하게 묘사한 영화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잔혹함 때문이 아니다. 잔혹하기로 따지면 <13일의 금요일>이나 <나이트메어> 류의 슬래셔 무비가 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잔혹한 이유는 예수의 수난 당하심을 극한까지 표현하면서도 정작 왜 수난을 당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리스도 수난 묘사
▲수난 당하는 예수 그리스도(좌)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스틸컷. |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의 수난 당하심은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함이었다. 이 점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 대중을 겨냥한 영화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타겟 관객을 떠나 그리스도의 수난의 의미는 분명히 밝혀줬어야 했다. 그리스도의 수난 당하심은 복음서의 가장 극적인 대목인 동시에 신학적 선명성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 없이 극한의 수난만이 표현돼 있다.
영화를 만든 멜 깁슨은 1980년대 실베스터 스텔론,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더불어 마초이즘의 대명사였다. 사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도 마초적 본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박해로 인해 온통 피투성이다. 만약 누구라도 이런 식의 가학을 당했으면 당장 절명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예수는 그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예수는 인류의 구원자라기보다 예수로 상징되는 서구 문명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즉, 멜 깁슨이 그리는 예수의 수난은 어떠한 외부적인 자극에도 서구 기독교 문명은 굳건할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주제의식은 멜 깁슨의 다음 작품 <아포칼립토>에서 아주 솔직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남미 원주민들끼리의 극한적인 싸움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그런데 영화의 끄트머리는 스페인 함대가 장식한다. 결국 서구세력(스페인 함대)이 싸움질만 하는 미개인들의 땅에 상륙해 이들을 문명화시킬 것이라는 암시적인 메시지인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많은 교회가 부활절 고난주간, 특히 예수께서 못 박힌 성금요일에 이 영화의 영상을 튼다. 이 영상을 본 신도들은 가슴을 치며 자신의 죄를 통회 자복한다. 이런 광경을 볼 때 마다 예수 수난의 의미는 간데없이 오로지 자신의 잘못을 자학적으로 고백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