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25)
▲린조아인Lintzoain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까미노 이정표 |
▲린조아인마을로 들어가는 순례자들과 마을 뒤 에로Erro언덕이 보인다. |
잠깐 쉬었다가는 걸음걸이가 가벼워질 것이라는 생각은 어제도 틀렸고 오늘도 틀렸다. 어깨는 다시 무겁고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내리 쬐는 태양의 기세는 거침이 없다. 한길사(2008)에서 출판된 책, ‘두 남자의 산티아고 순례일기’의 지은이는 순례여정길에서 참 독특한 표현을 사용한다. 너무 힘들 때마다 튀어 나오는 말, 그것은 ‘닝기리죠또’이다. 이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은어와 육두문자를 조합한 비속어 표현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정작 걸어보고 나서 정말 힘든 줄 알았다.
종종 교회의 성도들이 크고 작은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되는 일들이 있다. 병원을 심방하면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온 몸과 마음으로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며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하지만 늘상 마음 한 구석에는 ‘내가 이 분들의 아픔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하는 자책 비슷한 것이 남곤 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환난과 핍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당하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히2:18) 하면서 ‘주님의 몸소 고난당하심’의 말씀으로 위로하였다. 몸소 겪는다는 것은 이치에 가장 가깝도록 안내해 주는 지침이 된다. 생장피드포르에서 론세스바예스를 넘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던가?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아,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문자가 전해주는 그 생각이 얼마나 공허했던 것인가를 걷는 순간 진실로 깨닫게 된다.
▲린조아인마을 안내 입간판과 동네 놀이터 |
▲세퍼트 한 마리가 린조아인 바르 입구에 앉아 있다. |
오후 햇볕에 이글거리는 넓고 평평한 검은 바닥돌 길이 끝나면서 비스카레트 마을은 눈에서 사라지고, 나그네는 나무가 우거진 숲 속 그늘진 오솔길로 들어간다. 15분쯤 걸었을 때, 한적하고 아담한 린조아인Lintzoain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섰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혼자 다 차지한 수리 한 마리가 한껏 여유를 부리며 회전한다. 동네 어귀 알록달록한 작은 놀이터에 어린이들 두셋이 그네를 탄다. 놀이터 한 쪽에 지역의 이름 Lintzoain을 안내하는 입간판이 우리가 에로Erro골짜기에 들어와 있음을 설명한다. 간이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떠난 세빈이는 어디까지 갔는지 알 수도 없다. 바르bar 입구에는 세퍼트 한 마리가 스핑크스처럼 앞발을 내밀고 앉아 있다. 그 곳에서 지친 발걸음을 잠시 달랜 나그네가 또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오르막과 완만한 산등성이를 두 시간 반 정도 지나가면 에로 골짜기 내리막길에 다다른다. 이 골짜기만 내려가면 수비리Zubiri다.
아내는 이미 다리를 많이 절고 있다. 조금 먼저 가던 아내가 멈춰 선다. 도무지 안되겠는지 다리를 지탱할 나뭇가지 하나를 어디선가 구해 들고 있다. 쉼과 안식, 위로와 회복을 마음에 품고 떠난 길이었는데 고통과 한숨, 상함과 고단함이 우리에게 돌격한다. 정서적 충동이 일어날 만한 상황에도 지혜롭게 대응하는 합리적인 아내는 좀처럼 지나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 여인이지만 목회자의 아내라는 허울은, 인체 중에서 가장 이상하고 묘한 근육인 ‘혀’들의 요릿감이 되기 십상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다시 일어날 힘을 회복하는 육신의 고단함이야 어떻게든 사라지지만, 마음을 할퀴고 들어온 날카로운 오해의 조각들은 좀처럼 빠져나갈 줄을 모른다.
▲에로골짜기의 갈림길에서 순례자들이 이정표 방향으로 가고 있다. |
말없이 걷던 아내가 입술을 열었다. ‘서로에게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미워하고 아프고 힘들게 할까요? 눈물이 나요.’ 이 길을 먼저 걸었던 Y형님 내외와 그리고 혼자 쓸쓸히 힘들게 앞서 갔을 아들 세빈이가 아내의 생각속에 가득했던 까닭이다. 얼마나 힘겹게 이 골짜기를 넘었을까 생각하니 감정이 북받쳤던 모양이다. 인생길 고달프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 그저 이렇게 걷기도 힘든데 아니 때로는 서 있기조차도 힘이 드는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누며 사랑하며 이 길을 갈 수는 없는 것인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송곳처럼 뾰족하게 무릎을 찔러오는 통증이 아내와 나를 ‘게걸음’ 걷도록 만들었다.